< 194화 > 194. 밤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다음 날. 퇴실 1시간 전이라는 전화를 받고 겨우 일어날 수 있었다.
목과 어깨를 돌리자 뚜두둑하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조금 피곤하긴 하네.. 그래도 운전하기에는 무리 없어 보이고.'
사실 이 정도로 멀쩡한 게 신기하긴 했다.
야외에서 아영이와 즐긴 뒤, 방에 와서 혜윤이까지 함께 2번을 더 상대했으니 말이다.
"몇 시에요..?"
쥐죽은 듯이 자고 있던 그녀들이지만, 방금 전화 소리에 정신을 차린 듯했다.
나는 엉덩이를 주무르며 잠을 깨웠다.
"우리 1시간 내로 나가야 돼. 먼저 씻고 올 테니까 짐 같은 거 미리 챙겨놔."
"네에..."
"응.. 졸린데.."
피로감이 한 번에 밀려왔는지 빨간 눈을 비비며 일어나는 둘.
원래의 예쁜 목소리도 온데간데없이 갈라진 것이 대신하고 있었다.
어제와는 완전 딴판이었다.
"둘 다 목소리 쉬었네. 어제 그렇게 신음 지르더니 이럴 줄 알았다."
"제가 내고 싶어서 냈나요.. 오빠가 내게 했으면서."
"맞아. 원인 제공은 본인이 하고서는 왜 우리 탓해요."
"분명 야외에서 하기 전까지는 괜찮았는데, 갔다 와서 한 건 옆방을 넘어 옆옆방까지 들릴 정도로 컸으니까 그렇지."
내 말에 신아영과 윤혜윤은 눈을 획 돌렸다. 찔리는 게 있는 모양.
대충 무슨 까닭인지는 알지만, 마지막 2번은 정도가 좀 심하긴 했다.
"딱히 뭐라 하려는 건 아니야. 어쨌든 갈 준비 하자."
사실 나도 자매들에게 신음을 들려주려는 목적은 있었으니 넘어가기로 했다.
시간이 없으니 대충 씻고 나왔다. 어느새 준비를 끝내고 다시 침대에 누워있는 둘.
눈을 감고 있는 게 상당히 피곤한 듯했다.
"힘들면 집에 가서 씻을래?"
"네에. 지금은 그냥 좀 더 자고 싶어서요."
"헬스 빡세게 했을 때보다 더 힘들어요..."
윤혜윤이 저런 모습을 보이는 것도 오랜만이다.
같이 헬스 하는 입장이지만 저걸 보면 피로감 줄어드는 버프가 참 사기라 느껴졌다.
"마사지라도 해줄까?"
나는 침대에 걸터앉으며 양쪽 다리에 손을 올렸다. 처음엔 순수한 의도였지만 알몸으로 흐트러져 있는 걸 보니 자지가 꿈틀했다.
당연히 나도 방금 씻고 나온 터라 다 벗고 있는 상태. 신아영과 윤혜윤은 몸을 움츠리며 괴물 보듯 나를 봤다.
"오빠, 설마 또 하려는 건 아니겠죠?"
"밤에는 먼저 하자고 난리를 치더니 아침에는 갑자기 왜 이래?"
"저 진짜 보지 헐어요.."
"장난이야. 나는 매점 가서 간단하게 먹을 거 사올 테니까, 정신 차리면 출발하자."
적어도 초콜릿이나 소시지 정도는 먹어야 할 것 같다. 밥을 넘길 상태는 아니니까.
문을 열고 나가자 저 앞에 익숙한 형체가 보였다.
조금 비틀거리며 계단으로 향하고 있는, 170cm의 늘씬한 보라색 투톤 헤어 소유자.
평소보다 좀 푸석해 보였지만 여전히 빛이 나긴 했다.
가까이 다가가 어깨를 쿡 찔렀다.
"채아 누나. 안녕하세요."
"어..? 어... 안녕."
나를 보자 흠칫 놀라는 한채아. 하지만 놀란 건 나도 마찬가지다.
다크서클이 뭐 저리 진한 건지. 살아있는 게 맞나 싶을 정도였다.
'우리 때문에 잠 못 잔 건가..'
미안했지만 뭐라 사과하기가 애매했다. '밤새 섹스하느라 시끄럽게 해서 죄송합니다?'
이제 와서 이렇게 말하긴 늦었지.
그렇다고 '좋은 아침입니다!' '잘 잤어요? 고급 펜션이라 그런지 침대가 아주 푹신하네요.'
라고 말한다? 그건 눈치 밥 말아먹은 사람도 하지 않을 짓이다.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자 한채아가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물었다.
"우진이는.. 어디가?"
"전 방금 일어나서 간단하게 뭐라도 먹으려고 매점이요."
"응... 그렇구나. 어제 힘 잔뜩 썼으니 먹어야지."
"하하... 네."
뭔가 가시가 돋친 듯한 말투. 어찌 됐든 잘못은 내 쪽이니 가만히 있기로 했다.
일단 화제부터 돌리자.
"근데 누나는 언제 출발할 거예요? 곧 퇴실 시간인데."
"우리도 전화받고 방금 일어났거든. 퇴실 1시간 전 전화 아니었으면 대낮까지 그대로 잤을 뻔했잖니."
"많이... 피곤하셨나 봐요."
"그래. 옆방의 누구가 엄청나게 열정적인 바람에 말이지."
말을 안 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조용히 옆을 걷고 있자 한채아가 지나가듯 질문을 던졌다.
"근데 그 여자애들이랑 무슨 사이야? 보통 사이가 아닌 건 알겠는데 2명은..."
"전에 말했던 대로 여자친구예요."
"여자...친구? 2명이잖아."
"2명 다요."
"...그렇구나."
충격을 받은 것 같았지만 어느 정도 예상을 했는지 그닥 티를 내진 않았다.
조금이라도 훈수를 둘 줄 알았는데 말이다.
대신 약간 냉랭해진 분위기. 그녀는 뭔가 깊게 생각하는 듯 고운 이마를 찌푸렸다.
그건 매점을 이용하고 나올 때까지 지속되었다.
아무 말 없이 로비를 지나, 사람이 없는 곳으로 들어서자 한채아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래... 뭐, 우진이는 편의점 일만 잘하면 되고, 사생활이니까 이해는 할게."
"고마워요."
"됐어. 나도 남 말할 처지는 아니니 그런 거야. 나쁜 건 나도 마찬가지니까. "
"네?"
그녀는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추가로 무어라 중얼거렸다.
들리지는 않았지만 대충은 예측이 갔다.
"아니, 아니야. 본인들이 좋다는데 내가 간섭할 건 아니란 뜻이야. 그 대신 오늘 들은 건 비밀로 할게."
"어제 너무 시끄럽게 해서 죄송해요."
"괜찮아. 그래도 우진이가 엄청 힘이 넘친다는 건 알았으니 일 더 시켜도 불만은 없겠지?"
"네. 얼마든지요."
슬쩍 웃으며 내 어깨를 치는 한채아. 나는 어물쩍 넘어가려는 분위기에 편승했다.
평소와 같이 딴 얘기를 하며 방앞에 도착했다. 헤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안부를 물었다.
"근데 누나 운전할 수 있겠어요? 다크서클이 엄청난데."
"중간중간 졸리면 바로 갓길에서 눈 좀 붙이면서 가야지. 사고 나는 것보단 나으니까."
"희진이는 운전 못 하나요?"
"완전 기절 직전이던데? 어젯밤에... 아니다. 걔도 그 소리를 듣고 제대로 잘 수 있었겠니?"
"그렇겠네요."
"가족끼리 얼마나 민망했는지 아니? 그나마 성인이니까 다행이었지."
나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긁었다. 슬슬 헤어질 타이밍.
한채아도 느꼈는지 먼저 문고리를 잡았다.
"그럼 나중에 편의점에서 보자. 일 많이 시킬 거니까 각오해? 이건 진심이야."
"각오하고 있을게요."
"기대되네. 그럼 잘 가."
그녀가 먼저 안으로 사라지고, 나도 방 안으로 들어갔다.
30분 뒤. 에너지 보충을 하고 짐을 챙겨 나왔다.
그럼에도 여전히 힘든지, 모자를 푹 눌러쓰고 바닥을 쳐다보며 걷고 있는 신아영과 1초 주기로 눈을 감았다 떴다를 반복하고 있는 윤혜윤.
나는 들고 있는 짐을 전부 뺏으며 차 문을 열었다.
"뒤에서 편히 자면서 가."
"오빠는.. 괜찮아요? 전 죽을 거 같은데."
"난 생각보다 멀쩡하니까 걱정마."
"혹시 멀쩡한 척, 강한 척하는 거 아니에요? 만약 교통사고라도 나면 저희 진짜 죽는 건데 좀 불안하네요."
"그런 말 할 기운이 있는 걸 보니 아영이도 힘든 척하는 거 같은데? 어제 더 할 걸 그랬나?"
"지금 제 눈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요?"
"못하지."
신아영은 진한 다크서클을 가리키며 얼굴을 내밀었다. 가뜩이나 쾡한 눈에다 모자의 그림자까지 드리우니 무섭기 짝이 없었다.
나는 등을 토닥여주며 뒷좌석으로 들어가게 했다.
남은 건 윤혜윤. 먼 산을 바라보고 있는 눈앞에 손을 휙휙 흔들었다.
"혜윤이는 헬스 더 열심히 해야겠네?"
"저보고 근육녀가 되라고요? 그 정도까지는 싫어요."
"근데 지금으론 내 체력 감당 안 되잖아."
"몰라요. 그럼 보지 단련이나 해야죠."
드디어 정신이 나가버린 건가. 저런 해괴한 말을 바로 내뱉다니.
입밖에 내기 전 뇌를 거치긴 한 걸까?
"...보지 단련은 또 뭐야. 잠꼬대는 잘 때만 해라."
"농담 아닌데요? 보지 조이는 연습으로 오빠를 더 가버리게 하면 된다는 전략이에요."
"열심히 해봐. 그리고 꼭 나중에 성과 보여주고."
"일단 자고요... 나중에."
하품을 크게 하며 차 안으로 쌩하니 들어가는 윤혜윤.
실시간으로 잠드는 걸 보며 나도 운전석으로 들어갔다.
부우웅....
시동을 걸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주차장을 삥 돌며 출구로 가고 있자, 한채아와 한희진이 차에 짐을 넣으며 준비하고 있는 게 보였다.
창문을 내렸다.
"먼저 가볼게요."
"아, 우진이 조심히 잘 가고."
"누나도요."
반갑게 손을 흔들어주는 언니와는 다르게 한희진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내 눈을 흘낏 한 번, 그리고 창문 틈새로 신아영의 얼굴을 보더니 귀신이라도 본 표정을 지었다.
지금 아영이 얼굴이 무섭긴 하지. 이해한다.
그렇다고 뒷걸음질 칠 정도까지는 아닌데.
약간의 의문을 품으며 광란의 밤을 보낸 펜션을 떠나 집으로 향했다.
"이번 여행 정말 재밌었어요. 나중에 또 같이 가요. 오빠."
"그래. 아영이도 몸조리 잘하고 나중에 보자."
"네에~ 혜윤이도 잘 가."
"잘 가요. 언니."
먼저 아영이를 내려줬다. 오는 내내 잔 보람이 있는지 한층 밝아진 그녀였다.
나는 기지개를 켜며 뒤를 돌아봤다.
"우리도 얼른 가서 잘까?"
"...그런 의미는 아니겠죠?"
"무슨 의미인데?"
"아무 짓 안하고 껴안고 자는 거면 허락할게요."
"나는 그런 의도가 전혀 없었는데? 혜윤이 또 하고 싶었어?"
"아무 짓 안한다고 했잖아요."
"나야 괜찮은데, 혜윤이가 먼저 덮칠까 무섭네."
"됐어요 짐승. 저 혼자 푹 잘 거니까 오늘은 얼굴 코빼기도 내밀지 마요."
삐죽 입을 내미는 그녀. 저 귀여운 반응을 보면 안 놀릴 수가 없다.
"미안, 그럼 출발할게."
"네에."
나도 슬슬 피로가 올라왔기에 최대한 빨리 집으로 이동했다.
그렇게 혜윤이와 인사를 나누고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끼익.
문을 열자마자 바로 침대에 누웠다. 눈꺼풀이 무거워지는 걸 느끼며 그대로 몸에 힘을 뺐다.
위이이잉...
위이이잉...
얼마나 잤을까. 어둑해져 있는 창문 밖과 진동이 울린 핸드폰.
내가 알람을 맞췄었나? 화면을 켜자 23:20 이라는 숫자가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잘 들어갔냐는 신아영의 까톡과 잘 자라는 윤혜윤의 까톡이 도착해있었다.
답장을 해준 뒤 다시 눈을 감으려고 할 때, 추가로 메시지가 올라왔다.
"누구한테 온 거지? 방금 도착했네?"
확인을 했다.
-han_zazi123 : 야 있냐? 빨리 대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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