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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선 연결 오나홀로 따먹기-117화 (117/615)

< 117화 > 117. 3인 술자리

아무래도 즐거운 방학의 시작이란 건 취소해야 할 것 같다.

첫날부터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아니, 애초에 윤혜윤과는 옆집 이웃이니까.

이런 걸 전혀 예상하지 못 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아까 내 집에 가자라고 했을 때부터. 요상한 느낌이 들긴 했으니 말이다.

"오빠..저거 그냥 둘 생각은 아니죠?"

저거라니. 표현이 좀 과격한 거 같은데.

아무래도 단둘이 있는 즐거운 시간을 기대했는데, 예상치 못하게 방해 받아서 그런 것 같았다.

"내가 가볼게."

"저도 같이 가요."

신아영은 내 팔을 완전히 가슴이 끼운 채. 내 옆구리를 툭툭 쳤다.

반팔을 입고 있던 터라 커다란 멜론이 그대로 옷 위로 형태를 드러났다.

나는 기분 좋은 물컹함과 부담감을 느끼며, 천천히 문 앞으로 갔다.

"음..  혜윤아 안녕? 무슨 일이야?"

"응? 아, 오빠! 안녕하..세...요?"

내 얼굴을 보며 활짝 웃더니, 옆에 있는 신아영을 보고는 다시 표정이 굳어졌다.

"혜윤 씨. 안녕하세요? 타이밍 좋게 여기서 만나네요?"

"안녕하세요. 저는 옆집에 사니까 여기 있는 건 당연한 건데... 신아영 씨는?"

"저는 오빠랑 같이 놀러 왔죠. 밤새도록..♡"

"아.. 저번처럼 하루 종일 소리 내시려고요? 옆집에 엄청난 민폐인데."

"어? 설마 '밤새' 들으셨나요? 이거 정말 죄송하네요."

"중간에 이어폰 끼고 자서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에요."

한 마디도 안 지고 주고받는 두 명.

빨리 중재를 하지 않으면 진짜 밤새 이러고 있을 것 같다.

"둘 다 그만. 시험도 끝났는데 싸우지 말자. 혜윤이도 오늘 끝났지?"

"응. 오빠. 그래서 같이 마시려고 이거 사 온 건데..."

말끝을 흐리며 내 옆 쪽을 쳐다보는 윤혜윤.

그 시선을 눈치 챘는지 신아영이 발끈하며 말했다.

"제가 먼저 찜했거든요? 전 시험도 같이 보고 복도에서 기다리다 같이 온 건데."

"저는 시험 일찍 끝나서 미리 준비 다 해놨는데요."

"진짜 그만. 오늘은 시험도 다 끝났으니 다 같이 놀자. 괜찮지?"

"네에."

"..어쩔 수 없죠."

여기서 누구 하나를 선택한다는 폭탄을 끌고 갈 수 없다.

나는 계획을 틀어 두 명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갔다.

"이거 열어봐도 되지?"

"네. 여기요."

가방을 내려놓고, 윤혜윤이 가져온 봉투를 열어봤다.

맥주 4캔이랑 냉동 곱창 및 닭발.

신아영은 그걸 보더니 헛웃음을 내뱉었다.

"아니, 둘이서 이렇게 많이 먹으려고 사왔어요? 그것도 맥주를 4캔씩이나."

"흥. 천천히 먹으면 그럴 수도 있죠. 괜히 중간에 모자란 것보단 나으니까."

"하긴, 많이 먹어도 밤에 운동하면 퉁칠 수 있으니까.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거 무슨 뜻이에요?"

"별 뜻 없어요."

나 때문에 말다툼을 하는 건 알겠지만.

그래도 나랑 가장 친한 지인들인데, 싸우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컸다.

"일단 3명이 됐으니까 편의점에 가서 먹을 거나 더 사오자."

"네."

"좋아요."

"나 혼자 갔다 올 테니까 쉬고 있을래?"

"저는 같이 갈래요."

"저도요."

신발장으로 몸을 돌리자, 내 뒤를 따라오는 그녀들.

아무래도 오늘은 계속 붙어있어야 할 것 같다.

편의점 가는 길.

왼쪽에는 신아영. 오른쪽에는 윤혜윤이 나란히 줄을 맞췄다.

발을 내딛고 신발이 땅에 닿는 소리까지, 마치 한 명이 걷는 것처럼 일정하게 걸어갔다.

한 마디도 없이 말이다.

띠링띠링.

"어서 오세..엑."

"안녕하세요. 열심히 하시네요."

나를 보자마자 눈살을 찌푸리는 한희진.

하지만 뒤이어 들어오는 신아영과 윤혜윤을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와..여기 새로 리모델링 했나 보네요?"

"처음 와봐?"

"네. 집 주변에 가까운 편의점이 있어서 딱히 여기를 오진 않아요."

"꽤 크지?"

"네.. 저 잠시 구경 좀 하고 올게요. 살 거 있으면 고르기도 하면서요."

신아영은 매장을 둘러보며 감탄을 하더니, 안쪽으로 사라졌다.

"저도 살 게 있나 보고 올게요."

"응. 갔다 와."

윤혜윤도 신아영을 뒤따라갔고, 나는 카운터 쪽으로 눈을 돌렸다.

찌릿.

"...오늘 중요한 시험 있다고 알바 하루만 뺀다고 했으면서. 여자를 양손에 끼고 왔네요? 이거 놀리려고 하는 거 맞죠?"

"방금 시험 끝나서 아는 사람이랑 같이 온 것뿐이에요."

"아..그럼 이제부터 즐겁게 놀겠네요. 부럽다아. 그것도 저렇게 예쁜 여자들이랑.."

"하하.."

어째 삔또가 좀 상한 거 같은데. 더 대화를 하다간 잔소리만 잔뜩 들을 것 같다.

슬쩍 진열대 사이로 들어가려 하자, 창고 쪽에서 누가 날 불렀다.

"어머? 우진 씨. 오늘 쉰다 했으면서 왔네요?"

언제 봐도 빛나는 외모를 자랑하는 한채아.

진열 중이었는지 바구니에 물건을 잔뜩 넣고, 그 위에 가슴을 올려놓고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점장님. 시험 끝나서 뭐 좀 사러 왔어요."

"그렇군요. 오늘은 제가 희진이 도와주려고 남아있었으니까, 걱정 말고 재밌게 놀다 오세요."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 주에 봬요."

"네에~"

나는 과자나 이온 음료를 고르며 매장을 돌아다녔다.

그때 손에 무언가를 든 신아영과 윤혜윤이 다가왔다.

"다 골랐어?"

"네. 이거."

둘이 짜기라도 한 듯. 양 손에 소주병을 쥐고 있었다.

총 합하면 4병.

"너무 많이 가져온 거 아니야? 집에 맥주도 있잖아."

"3명인데 이 정도는 괜찮잖아요. 그리고 전 은근 잘 마시니까 걱정 마세요."

신아영은 소주를 흔들며 웃어 보였다.

"혜윤이는?"

"저도 괜찮아요."

얘는 저번에 술집에서 술 먹다 뻗었었는데. 진짜 괜찮은 거 맞나?

그때 내가 등에 엎어서 집까지 데려다줬었는데.

잠깐 걱정이 들었지만. 이번엔 집에서 마시는 거니 위험해 보이지는 않았다.

어차피 윤혜윤은 바로 옆집이기도 하고, 신아영은 애초에 내 집에서 자고 갈 생각이었으니.

"계산이요."

카운터에 소주 4병을 올려놓자, 바코드기를 들은 한희진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하지만 옆에 사람이 있어서 그런지. 별말 없이 계산을 마쳤다.

"안녕히 가세요."

"네. 다음에 봐요."

띠링띠링.

밖으로 나오자 신아영이 바로 말을 걸어왔다.

궁금한 걸 참고 있었던 것 같다.

"오빠. 여기 단골이에요? 다들 안면이 있는 것 같네요?"

"내가 말 안 해줬나? 나 여기서 알바하고 있어."

"네? 진짜요? 언제부터 시작했어요?"

"시작한 지는 대충 한 달 정도 됐고, 수목금 18~23시까지."

"으음..."

순간 그녀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다시 돌아왔다.

"오빠가 알바하겠다는데 말릴 수는 없죠. 근데..알바생들이 다 예쁘네요. 그것도 엄청."

"정확히 말하면 키 큰 사람은 점장님이고, 저기 카운터에 있는 금발애는 그 분의 여동생이야."

"와..점장님이었어요? 젊어보이시던데 대단하네요."

"아영이도 알 걸? 저기 미래대 1호점 편의점. 거기도 저 사람이 운영하고 있어."

"아! 그렇게 말하니 본 것 같기도 하네요."

"혜윤이는 몇 번 와봤으니 다 알고 있지?"

"네. 전에 오빠가 말해주기도 했어요."

잠시 후. 편의점에 갔을 때보단 풀린 분위기로 집에 도착했다.

우린 저번처럼 바닥에 둘러앉아, 사온 것들을 가운데에 모아놓았다.

맥주 4캔, 소주 4병, 이온음료 1병, 과자 및 안주들.

"너네.. 이거 다 먹을 자신 있으니까 골라온 거 맞지?"

"아직 저녁 9시밖에 되지 않았는데 충분하죠."

"안되면 내일까지 먹으면 되죠."

내일까지 있을 생각이었나? 일단 먹어보고 생각하자.

나는 먼저 맥주캔을 들고 건배 자세를 취했다.

"간단하게 맥주나 마시자. 자!"

"건배!"

청량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다같이 몇 모금 들이마셨다.

바닥에 캔을 내려놓자 윤혜윤이 먼저 말을 꺼냈다.

"맞다. 신아영 씨는 어디 사세요? 자취? 아니면 기숙사?"

"저는 여기서 7분 정도 떨어진 곳에서 자취하고 있어요."

"그러고 보니 우진 오빠랑 같은 3학년이라 하셨죠?"

"네. 전기공학과 3학년이요."

"그럼 저보다 나이 많으시겠네요. 22살 맞나요?"

"네. 그럼 혜윤 씨는 21살?"

"맞아요. 그럼 아영 언니라고 불러도 되나요? 신아영 씨는 너무 입에 안 붙어서요."

"응. 편한 대로 불러요. 나도 혜윤이라 불러도 되지?"

"네. 괜찮아요."

급속도로 친해지는 두 사람. 벌써 말까지 놓은 거 같다.

그래도 핏대 세우고 싸우는 것보단 훨씬 보기 좋았다.

나는 조용히 맥주를 마시며 대화를 들었다.

"근데 언니는 왜 공대에 들어갔어요? 거기 엄청 힘들지 않나요?"

"그냥..뭐 만들고 조립하는 게 재밌어서 들어갔는데, 막상 오니까 배우는 건 다 수학이랑 공학이더라."

"듣기만 해도 머리 아프네요."

"혜윤이는 전공이 뭐라고 했지?"

"저는 영문학과요."

"좋아하는 거라도 있어서? 아니면 성적 맞춰서?"

"아빠가 무역 쪽에서 일하셔서 외국어에 관심이 있기도 했고요, 뭔가 영어 발음 잘하면 멋있기도 하잖아요."

"그렇구나.. 이유가 특이하네."

신아영과 윤혜윤은 서로에 대해 질문을 하며, 맥주를 끊임없이 마셨다.

한 캔을 다 비웠을 무렵. 신아영이 소주를 흔들었다.

"이제 이걸로 넘어가 볼까요?"

"집에 소주잔 없는데 어떻게 할까? 물컵이라도 가져와?"

"네. 그거라도 써요. 음료수를 섞으면 되니까요."

자리에서 일어나 컵을 3개 가져왔다.

적당히 두 음료를 따르고, 우리 셋은 건배를 하며 다시 이야기꽃을 피웠다.

다만 이번 질문의 대상은 나였다.

살짝 붉어진 얼굴을 한 윤혜윤이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오빠에 대해 별로 아는 건 없네요. 오빠는 공대에 왜 왔어요?"

"나는..그냥 취업이 잘된다 해서 왔어. 별 이유는 없어."

"그게 가장 중요한 거 같은데요. 헤헤.."

헤실거리며 끊임없이 웃음을 짓는 윤혜윤.

지금 소주 1병을 거의 다 비웠다 해도, 1/3을 했는데 저 상태를 보니. 꽤나 술이 약한 것 같았다.

신아영도 그걸 눈치챘는지 조용히 말을 건넸다.

"혜윤아. 벌써 취한 거 같은데 방에 들어가서 자는 건 어때?"

"안 취했어요. 아직 멀쩡한 데에."

"무리하면 내일 힘들 텐데?"

"저 가면..오빠 덮칠 거면서. 절대 안 돼요."

"안 덮칠 테니까 걱정 말고 가도 돼."

"거짓말."

본인을 앞에 두고 저런 말을 잘도 하네.

덮친다니 마니.

그보다 신아영은 그냥 반응이 좋아서 놀리는 것 같은데.

윤혜윤은 진지하게 대답하는 게 꽤나 귀여웠다.

슬슬 방 안이 후끈해지자 나는 새로운 소주병을 들었다.

원래라면 신아영이랑 바로 섹스 삼매경이었겠지만, 이런 식으로 평범하게 노는 것도 괜찮았다.

"아 오빠. 잠시 뚜껑 열지 말아 봐요."

"응? 왜?"

"제가 오늘 재밌는 걸 챙겨 왔는데 같이 해요. 원래 오빠랑 둘이서 하려고 했는데, 뭐 3명이어도 상관은 없어요."

신아영은 자기 가방을 뒤지더니 핑크색의 수상한 상자를 꺼냈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그것을 살살 흔들었다.

"이런 거 되게 새롭지 않아요? 재밌을 거 같은데."

그 상자의 겉면에는 흐르는듯한 글씨체로 이렇게 쓰여있었다.

'러브 젠가- 커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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