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화 > 099. 잠 못 드는 밤
"하..문제 존나 안 풀리네.."
의자를 뒤로 적히고 과열됐던 머리를 식혔다. 뭐 재밌는 게 없나 눈동자를 뒤룩뒤룩 굴리고 있자, 구석에 두었던 영양제와 정력제가 보였다.
그러고 보니 이것들 산지도 꽤 됐는데. 얼마나 남아있더라?
나는 의자를 정상으로 되돌린 후. 통을 흔들어봤다.
덜그럭덜그럭.
생각보다 가벼운 무게.
뚜껑을 열어보니 대충 10알 정도가 남아있었다.
요즘 윤혜윤과도 관계를 많이 맺다 보니, 먹는 빈도가 증가한 게 그 원인인 것 같았다.
또 몇 십만 원어치의 돈이 빠져나갈 생각을 하니 골치가 아파졌다.
지금의 생활을 생각하면 싸게 먹히는 거긴 하지만 말이다.
생각난 김에 어플에 한번 들어가 보기로 했다.
까먹기 전에 미리 사놓으면 좋기도 하고, 좋은 신제품이 나왔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근데 되게 오랜만에 들어가는 거 같네."
사실 말이 어플이지 신체 정보나 좋아하는 체위, 상점을 빼면 특별한 기능은 없었기에. 자주 들어가는 편은 아니었다.
어플에 들어가 상접 탭을 누르니, 추천 상품과 함께 등록된 여자들의 이름이 나열됐다.
먼저 신아영부터 살펴보기로 했다.
[애널 비즈]
실리콘으로 제작해, 사용 후 물로만 닦아도 재사용이 가능할 정도로 위생적인 제품입니다.
탄력적이고 유연성이 뛰어나 내부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격렬한 플레이를 하셔도 무방! 구슬이 튀어나올 때의 색다른 쾌감을 즐겨보세요!
[관장약]
단 한 번의 사용만으로도 직장 안쪽을 깨끗하게 만들어줍니다.
인체에 무해하며 향기로운 냄새까지 첨가되어, 거부감을 최소로 해줍니다.
애널 초보자도 쉽게 이용 가능한 최고의 관장약!
이것 참. 또 취향이 바뀐 건가?
예전의 신아영 칸에는 야외용품들이 많았었는데.
몇 번 공원이나 길가에서 전라 노출을 하다 보니 그쪽 성욕은 해소가 된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 제일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게 애널이라.. 메모 완료.
다음은 윤혜윤 칸을 눌러봤다. 얘는 헬스 물품이 대부분이었는데 어떻게 바뀌었으려나?
[목줄]
지배당한다는 감정을 강하게 느끼게 해주는 제품입니다. M의 성향을 가진 사람에게는 최고의 선물!
3m 까지 늘어나는 줄이 들어있으며, 상황에 맞게 길이를 줄여 고정시킬 수도 있습니다.
[구속구]
팔이나 다리를 강제로 벌리게 해주는 도구입니다.
쇠막대의 길이를 1m까지 늘릴 수 있어, 다양한 자세로 플레이가 가능합니다.
또한 내부에 보들보들한 털이 장착되어 있어, 손목이나 발목에 자국이 남지 않지 않습니다!
운동 관련 물품들은 어디 가고 이런 게 나와있는 걸까. 섹스에 눈을 떠서 완전히 성향이 변한 건가?
계속 놀리거나 괴롭혀도 좋아했던 모습을 생각하면, 아마 당하는 걸 알게 모르게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정확한 건 나중에 해보기로 하고..다음은 한채아.
[바르는 진통제]
몸이 아프거나 통증이 있는 당신을 위한 최고의 약!
바르는 약이기 때문에 특정 부분만 골라, 일시적으로 신경을 마비시킬 수 있습니다.
효과는 2~3시간 정도 지속되니 사용에 유의해주세요!
[수면제]
한 알만 먹어도 3분 내에 잠이 솔솔 오는 최고의 불면증 치료제!
다만 미리 잠들 곳을 봐 둔 뒤에 먹어주세요. 실수로 먹었다가 길가에서 뒹굴어도 책임지지 않습니다!
물론 자고 일어나면 피로가 싹 풀려 있을 겁니다.
딱 봐도 무슨 상황인지 머릿속에 그려졌다. 유두가 민감해져서 밤을 지새우고 있는 한채아.
내가 한 짓이지만 뭔가 미안했다.
상시 발기 조교를 하는 게 목표였지만, 잠을 자지 못 하게 할 의도는 없었으니.
그래도 오일이 잘 먹혔다는 뜻이기도 하니 기대가 됐다.
나는 젖꼭지의 모습을 상상하며 한희진 칸을 눌렀다.
[코스프레 세트]
바니걸, 란제리, 산타복 등등 취향에 맞는 옷들이 잔뜩 준비되어 있습니다.
물론 1벌을 추가할 때마다 가격이 증가합니다. 완성도나 내구도만큼은 최고이니 믿고 주문하세요!
[야외용 카메라 및 받침대]
예쁜 사진이나 영상을 남기기 위해선 카메라만 좋아야 하는 게 아닙니다.
구도와 상황에 맞는 다양한 장비들!
삼각대 및 짐벌 같은 촬영 세트로 인생 사진을 남겨보세요!
코스프레 복장이야 방송용으로 입으려고 하는 거겠고.
근데 야외용 카메라는..설마 바깥에서 자위 방송을 하는 건 아니겠지?
아니면 마음속 깊숙이 그걸 원하고 있던가.
"..다들 취향이 다양해서 다행이네. 겹치는 것보단 나으니까."
나는 핸드폰에서 눈을 뗐다. 쉬는 동안 잠깐 들어온 건데 재밌는 걸 봐버린 기분이다.
일단 영양제와 정력제를 구입하기 위해 검색을 했다.
혹시 슈퍼 정력제 이런 건 없나 뒤져보기도 했지만, 아쉽게도 그런 건 없었다.
잠시 뒤. 결제가 완료됐다는 문자를 확인한 후. 알바 가기 전까지 공부에 몰두를 했다.
시간이 지나 오후 5시 50분.
나는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가며 인사를 했다.
띠링띠링.
"안녕하세요. 저 왔습니다."
"아, 안녕하세요. "
안에 들어가니 한희진이 인사를 받아주었다.
원래라면 밝은 목소리의 한채아가 먼저 반겨줬을 텐데. 잠시 딴 데 갔나?
조금 아쉬움을 느끼며 카운터로 들어갔다. 일단 유니폼을 입는 게 최우선이니.
색..색...
옷걸이가 안쪽에 있는데. 그 사이에 커다란 장애물이 가로막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 졸고 있는 점장님.
안 보인다 했더니 여기 있었나.
"저기, 점장님?"
"에..? 네네네! 무슨 일이시죠?"
"안쪽으로 들어가야 되는데 잠깐 의자 좀 땡겨주세요."
"아 미안해요. 너무 피곤해서..그새 졸아버렸네요."
깜짝 놀라며 일어나는 한채아.
그녀는 빨개진 눈을 비비며 의자를 앞으로 옮겨주었다. 그리고 다시 눈을 감으며 꿈나라로 떠나버렸다.
꾸벅꾸벅 고개가 앞뒤로 흔들리는 걸 쳐다보고 있자. 계산대에 있던 한희진이 조용히 말했다.
"요즘 언니 불면증인가? 그거에 걸려서 밤에 잠을 잘 못 잔데요."
"불면증이요? 저번에는 한번 잠들면 못 일어날 정도로 깊게 잔다고 하지 않았나요?"
"요즘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나 봐요. 얼굴도 퀭하고 많이 힘들어 보이니까. 손님 없을 때 저렇게 쪽잠이라도 자는 거죠."
"그렇군요.. 조용히 있어야겠네요."
자기 일터에서 졸 정도로 피곤한 모양이었다.
오일이 좀 많이 민감하게 해주기는 한데. 잠을 못 잘 정도인 것 까지는 모르겠다.
그냥 한채아의 유두가 특이하다고 생각하자.
"근데 곧 1호점으로 넘어가실 시간 아닌가요?"
"깨우긴 해야 되는데..저렇게 자고 있는 걸 보면 건드리기 미안해서요."
"그래 보이긴 하네요. 그럼 제가 깨울까요?"
"그래주시겠어요?."
한희진이 허락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한채아의 어깨에 손을 댔다.
그리고 살살 흔들며 깨우기 시작했다.
"점장님. 이제 1호점 가실 시간이에요. 일어나세요."
"으헤..? 아..아..! 미안해요. 하아...진짜 요즘 몸이 이상해서."
"며칠 쉬시는 건 어때요? 힘드시면."
"진짜..그래야 할 거 같아요. 이러다 사고 한번 칠 거 같아서 무섭네요. 저도."
그렇게 말한 한채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얼굴을 정면에서 보니 눈 아래가 검게 물들어 있었다.
요즘 다크서클이 생기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거 같은데.. 원인이 뭘까?
"오후 10시쯤에 올게요. 좀 더 빨리 올 수도 있고..그럼 오늘도 부탁해요."
"조심히 가세요."
한채아가 나가고. 나는 한희진을 보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근데 병원 가야 되는 거 아니에요? 많이 힘들어 보이시던데."
"저도 아침에 말해봤는데 단순히 잠을 못 자서 그런 거라고. 딱히 병원에 갈만한 정도는 아니랬어요."
"다른 병일 수도 있는데. 그래도 되는 건가요?"
"언니가 너무 확고하게 말해서요. 자기 몸은 자기가 잘 안다고."
하긴, 유두가 민감해서 잠에 들지 못하는 건데. 남한테 어떻게 말하겠는가.
오늘 밤 한번 찾아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으며, 편의점 일을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손님들이 슬슬 줄어들고 한가한 시간이 되었다.
팔린 물품들은 마감 1시간 전에 채우는 게 국룰이니. 청소를 하기 위해 창고로 향했다.
기계처럼 대걸레를 빨고, 이곳저곳 뽈뽈 돌아다니며 바닥을 닦았다.
매장을 거의 다 닦았을 무렵. 무언가 이상한 점을 느꼈다.
수상할 정도로 조용한 매장.
노래도 끈 상태였기에 고요함은 그 이상이었다.
본능적인 감각. 한희진이 무언가를 하고 있을 것 같다는 내 식스센스가 발동을 했다.
나는 대걸레를 들고 천천히 카운터 쪽으로 걸어갔다. 발걸음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용히.
안쪽으로 들어가지는 않고, 옆쪽에서 슬쩍 그녀를 봤다.
타자를 바쁘게 치며 스크롤을 내리고 있는 한희진.
그냥 커뮤니티를 하고 있었나 하고 관심을 끄려는 순간. 핸드폰 화면에 영상이 재생됐다.
눈에 확 띄는 배경과 인물.
거의 5초 정도밖에 되지 않는 짧은 영상이었지만, 분명 내 기억에 있는 장면이었다.
'저거.. 쟤 아니야?'
핑크빛 방과 알몸으로 자위하고 있는 금발에 푸른 눈을 한 미녀.
물론 찾아보면 저 모든 조건을 만족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한희진이 저 영상을 보고 있다?
저건 무조건 본인이다.
나는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까치발을 들었다.
그때 실수로 손이 미끄러져 대걸레를 놓쳐버렸다.
서둘러 잡으려 했지만, 이미 진열대와 바닥에 부딪치고 있었다.
탁! 타타닥!
몸을 크게 움찔거리며 이쪽을 쳐다보는 한희진. 눈이 마주쳐 버렸다.
그녀는 핸드폰 화면을 빠르게 끄며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뭐..뭐예요. 거기서 뭐해요."
"청소하고 있었는데 대걸레를 놓쳐버려서요. 별 거 아니에요."
"본 거 아니죠?"
"뭘요?"
"아니에요. 청소하던 거 마저 하세요."
그렇게 말한 그녀는 의자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빠르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려는 듯. 오랫동안.
나는 대걸레를 주우며 방금 봤던 화면을 떠올려봤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웹 사이트의 디자인이 눈에 익었었다.
'트위따였나? 아주 비슷했는데.'
방송하는 사람이 sns를 하는 일은 비일비재했으니. 아마 맞을 것이다.
게다가 저렇게 관심을 받기 좋아하는 한희진의 성격상. 거의 100% 하고 있을 것 같았다.
'집에 가서 바로 뒤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