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 034. 조별과제 모임
까톡! 까톡! 까톡!
연락이 올 리가 없는 핸드폰에 연속으로 알람이 울렸다.
무슨 일인가 확인해보니 저번에 조별 과제용으로 만든 단톡에서 메시지가 와있었다.
-장민혁 : 안녕하세요! 저희가 풀어야 할 문제가 나왔어요. 캡처한 거 첨부파일로 올려드릴 테니 한 번 확인해보세요.
-장민혁 : 캡쳐본1.jpg
-서아린 : 와 생각보다 빨리 올라왔네. 어떻게 바로 알았어?
-장민혁 : 나도 동기가 알려줘서 알았지. 근데 문제가 좀 어려워 보인다.
-장민혁 : 아직 5월 초지만 기말고사 공부할 거 생각하면 기간은 한 달 정도 남은 것 같은데, 한 번 모여서 계획 좀 짜볼까요? 다들 어떠세요?
-서아린 : 난 찬성! 이왕이면 최대한 빨리 모였으면 좋겠네.
-박우진 : 저도 찬성입니다.
-신아영 : 저도 찬성해요.
일이 있었는지 10분 후에 메시지를 읽은 신아영을 마지막으로 다들 찬성을 했다.
상태를 보니 일단 다들 의욕이 있어 보여 다행이었다.
괜히 잘못 걸려서 탈주하거나 메시지 안 읽는 사람들보단 훨씬 나았으니.
-장민혁 : 그럼 언제 모이는 걸로 할까요? 전 이번 주에는 일이 있어서 토요일이나 다음 주부터 가능할 것 같아요.
-서아린 : 난 이번 주 다 가능! 주말도 별 상관없어.
-박우진 : 저도 언제든지 가능합니다.
-신아영 : 저도 이번 주에 했으면 좋겠네요. 주말도 괜찮아요.
-장민혁 : 그럼 이번 토요일에 학교 앞 라이프 카페에서 모이는 걸로 할까요? 시간은 언제가 괜찮나요? 전 점심 이후로 가능해요.
-서아린 : 그럼 1시에 만나는 건 어때? 날도 더운데 카페에서 에어컨이나 쐬자!
-박우진 : 1시 괜찮네요. 저는 가능합니다.
-신아영 : 저도 그 때 괜찮아요.
-장민혁 : 이번 주 토요일 라이프 카페 오후 1시에 모이는 걸로 다들 괜찮죠? 그럼 그 때 만나요.
-서아린 : 응 그 때 봐!
-박우진 : 알겠습니다.
-신아영 : 늦지 않게 갈게요.
그 메시지를 끝으로 더 이상 알람은 울리지 않았다.
나는 스크롤을 올려 장민혁이 올린 캡쳐본을 다운 받아 켜 봤다.
"오...씨발 이게 뭐야."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하는 복잡한 회로.
심지어 풀이 과정이랑 왜 그렇게 풀었는지 물어보는 질문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조별 과제니까 쉬운 문제가 주어지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이건 좀 예상외의 난이도였다.
제일 싫은 건 기말고사 범위에 있는 개념들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강제로 예습과 복습을 통해 차근차근 풀어가야 하는 아주 악질적인 의도가 다분한 문제.
일단 토요일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미리 공부하기로 하며 전공 책을 폈다.
가서 아무것도 모른 채 멍 때릴 수는 없으니 말이다.
*
토요일 12시 30분.
나는 단톡방 메시지를 보며 약속 장소와 시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가방에 그동안 공부한 내용과 조교가 올려준 문제를 프린트한 걸 넣고 현관으로 나갔다.
보통 10분 전에 도착하는 게 약속의 기본이었기에 조금 이르게 집을 출발했다.
슬슬 봄을 벗어나 여름에 가까워진 날씨를 지나 카페를 찾아가니, 1등으로 도착했을 거라는 내 예상과는 달리 장민혁이 이미 도착해 4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일찍 오셨네요."
"아니에요. 저도 방금 왔습니다."
간단한 인사 후 서로 핸드폰만 보고 있자, 잠시 뒤 서아린이 밝게 인사해왔다.
"안녕하세요! 저 왔어요. 다들 일찍 왔네요!"
테이블로 다가온 그녀는 장민혁 옆자리에 앉아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단톡에서도 반말을 쓰는 걸 보면 아마 친한 사이 같았다.
그리고 약속 시간 2분 전, 주위의 이목을 끌며 신아영이 등장했다.
통이 넓은 검은색 슬랙스 바지와 흰 티 위에 입은 회색 가디건을 걸쳐 입고 있어 봄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
"안녕하세요. 제가 꼴찌네요. 괜히 미안하게."
"아니요! 괜찮아요. 아직 1시도 되지 않았는데 뭘요."
자리가 딱 하나 남았기에 그녀는 자연스럽게 내 옆에 앉았다.
앉자마자 나는 향긋한 냄새.
아무리 오나홀을 통해 많이 따먹었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가까이서 보니 색다른 느낌이었다.
뭔가 섹스할 때 짓는 표정과 지금의 도도한 표정을 보니 엄청난 괴리감에 다른 사람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그렇게 다들 모이고 살짝 어색한 분위기가 지속되자 서아린이 박수를 치며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일단 마실 것부터 시킬까요? 전 마끼아또요!"
그녀가 운을 떼자 각자 한 명씩 마시고 싶은 걸 말했다.
그러자 나가기 편한, 테이블 바깥쪽에 앉은 신아영과 서아린이 주문을 하러 떠났다.
다시 남자 둘이 남은 썰렁한 테이블.
가만히 창밖을 쳐다보고 있자 장민혁이 먼저 말을 걸었다.
"그..복학생이라고 하셨죠? 저번에 그렇게 들은 것 같아서요."
"아 예, 군대 갔다가 이번에 복학한 17학번, 24살입니다."
"아이고, 형이었네요. 저는 아직 군대를 안 가서 19학번, 22살입니다."
내가 '3학년인데 군대를 안 갔다 왔어?'라는 의문에 찬 표정을 짓자 장민혁이 설명을 덧붙였다.
"제가 수술을 해서 허리가 안 좋은데, 혹시 군대 갔다가 더 나빠질까 봐 지금 상황 좀 지켜보고 있어요."
"아 그것 참 안타깝네요. 수술이라니.."
이런저런 대화를 하고 있자 주문을 하러 갔던 신아영과 서아린이 커피를 들고 왔다.
우린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커피를 마시며 슬슬 회의 분위기로 이끌었다.
"이제 시작해볼까요?"
나는 가방에서 프린트한 문제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다들 한 번씩은 보고 왔겠지만 막상 문제를 보자 짧은 침음을 흘렸다.
"음...이거 뒷 단원에 나오는 내용 아니에요? 아예 새로운 기호들이 보이는데..요?"
"나중에 진도 나가면 하도록 할까요?"
"맞아요, 이거 나중에 교수님이 가르쳐주면 하는 게 어때요?"
서아린과 장민혁이 자신 없는 말투로 말했다.
하지만 신아영은 생각이 달랐는지 그 둘을 보며 다른 의견을 냈다.
"저는 빨리 시작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어차피 기말고사 범위니까 공부도 미리 하고, 학점도 잘 받고 일석이조잖아요?"
마침 나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2대2로 의견이 갈렸지만 학점 얘기가 나오니 서아린과 장민혁의 생각도 달라졌는지 이내 동의를 했다.
대충 방향이 정해지자 나는 내 계획을 말하기 위해 슬쩍 말을 꺼냈다.
분위기를 보니 나만 공부해 온 것 같아 오늘은 그냥 지나가기로 마음을 먹은 채.
"그럼 오늘은 전체적인 계획만 짜고 해산하도록 하죠. 지금 문제 쳐다본다고 풀리는 것도 아니니."
"아 그전에 근데 저 물어볼 거 있는데요, 혹시 복학생이신가요?"
아까 장민혁이 했던 질문과 똑같은 질문이 서아린한테서 들어왔다.
분명 저번 연락처를 교환할 때 말한 것 같은데 대충 들었던 것 같다.
입을 열려는 순간, 장민혁이 먼저 선수를 쳤다.
"아 그럼 여기서 제대로 자기소개를 하고 갈까요? 이제 종강까지 계속 봐야 하는 멤버인데."
딱히 반대하는 듯한 분위기는 아니었기에 그는 말을 이었다.
"제가 먼저 해도 되죠? 전 전기 공학과 19학번 장민혁 22살입니다."
"저도 같은 과 19학번 서아린 22살이에요."
"이번에 복학한 17학번 24살 박우진입니다. 물론 저도 전기공학과입니다."
"저도 같은 과 19학번 22살 신아영이라 해요."
소개가 다 끝나자 조원들이 전부 나를 쳐다봤다.
뭔가 기대에 가득찬 눈빛.
"아 왠지 못 본 얼굴이다 싶더니..역시나 복학생이었군요..."
뭔가 조장을 맡아야 할 것 같은 불안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군대를 갔다 왔고, 나이가 제일 많으니 믿음직할 것 같다는 요상한 논리.
여기서 빠지기도 뭐하고 분위기도 그래서 슬쩍 운을 띄어봤다.
"그럼...제가 조장을.. 맡아도 될까요?"
"네!"
"전 좋아요."
이 말만을 기다렸다는 듯 조원들한테 바로 대답이 나왔다.
이렇게 된 거 확실하게 나가자고 마음을 먹고 내가 공부한 내용들을 꺼냈다.
"사실 제가 미리 공부를 좀 해왔거든요. 이 부분은 다음 주에 진도 나갈 부분이고, 이건 책에서 보면.."
내가 계획을 세세하게 말해주자 다들 놀란 눈빛으로 쳐다봤다.
설마 이렇게까지 공부해올 줄은 몰랐다는 얼굴.
"전 그냥 학점 잘 받고 싶어서요, 모두 열심히 해줬으면 좋겠네요."
무슨 애들 데리고 과외하는 느낌이었다.
다음 주는 여기까지 공부해서 이 문제 풀고, 그 다음 주는 여기까지 공부하고...
"와! 저희가 조장 하나는 잘 뽑았네요! 그럼 이 계획대로면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서 점검하고 같이 공부하는 거죠?"
"네, 대신 모두 공부를 해와야 가능한 계획이라 모두 괜찮나요?"
"네!"
모두 동의하는 말과 함께 내 설명은 끝이 났다.
다들 전체적인 계획이 짜여지자 한시름 놓았다는 얼굴로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시간이 지나 커피가 거의 밑바닥을 드러냈을 무렵, 신아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그녀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장민혁과 얘기를 하던 서아린이 갑자기 주제를 바꿨다.
"아 맞다. 혹시 너 그 소문 들었어?"
"어떤 거?"
"쟤 신아영. 남자친구랑 헤어졌다는데?"
"아! 그거 나도 들어보긴 했는데 그거 가짜 뉴스 아니야?"
"그 남자친구 임스타에 들어가 봤는데 같이 찍은 사진 같은 거 다 삭제되어 있다던데?"
"아 진짜? 예전에 학교에 온 거 본 적 있는데 엄청 잘생겼던데? 키도 크고. 근데 왜?"
"모르지, 근데 공부도 잘하고 집도 잘 살고 그냥 완벽하던데..신아영급이니까 가능한 건가?"
"아니면 꼬추가 작아서 그랬을 수도?"
"야 미쳤냐? 이히히히힣"
가만히 대화를 듣고 있자 재밌는 소리가 들려왔다.
신아영이 남자친구랑 헤어졌다니?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같이 서올대공원가서 데이트하던 커플인데?
더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신아영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 모두 입을 다물고 딴짓을 했다.
그리고 얼마 뒤, 커피를 다 마신 우리들은 다음 주에 만나기로 하며 해산했다.
오늘 한 번 찾아가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