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 > 031. 헬스장#1
서올대공원에 갔다 오고 난 3일 뒤.
다시 이번 주부터 수업과 과제 폭탄이 시작됐다.
특히 내일까지는 중간고사 시험지 확인 기간이라 평소보다 좀 더 바쁜 날이 되었다.
까톡!
알림이 울려 핸드폰을 켜고 메시지 내용을 살펴봤다.
-xxx과목 수강하는 학생들은 xx일 xx시까지 제2 과학관 xxx호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000과목 수강하는 학생들은 00일 00시까지 제1 과학관 000호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역시나 과톡에서 온 시험지를 확인하라는 메시지였다.
스크롤을 올려 예전 메시지를 다시 보니, 곧 있으면 다른 과목의 시험지를 확인하러 갈 시간이었다.
지금 나가면 딱 맞을 것 같아 옷을 입고 문밖으로 나가니 옆집도 타이밍 좋게 같이 열렸다.
문에서 나온 사람은 긴 검은색 체육복 바지에 후드티를 입고 있었고, 전에 헬스장에서 봤던 크로스백을 매고 있어 어딜 가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서로 잠깐 눈이 마주쳤고 그녀가 먼저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어!?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아 예 안녕하세요. 헬스장 가시나 봐요?"
"헤헤..딱 복장 보니 아시겠죠? 우진 씨는 어디 가시나요? 학교 수업?"
"저는 중간고사 시험지 확인하러 잠깐 학교에 가려고요. 채점 제대로 되어있나 한번 봐야죠."
"그쵸- 중요하죠. 아! 그리고 혹시 헬스장 등록하셨나요? 그동안 한 번도 못 본 것 같아서..."
"그게.. 이번 주는 계속 바빠서 이제 등록하려고 했어요. 일단 3개월 정도만 끊어 보게요."
"아! 지금 마침 관장님이 계실 시간인데, 그럼 이따 시험지 확인 끝나고 헬스장 한 번 들려 보실래요? 제가 잘 말해둘게요."
"그럼 저야 감사하죠. 빨리 끝나면 들려볼게요."
"네에~ 빨리 왔으면 좋겠네요. 그럼 이따 봬요."
대화를 나누다 마침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기에 적당히 인사를 하며 헤어졌다.
그녀와 마주치지 않은지 고작 며칠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새 뭔가 좀 바뀐 느낌이 들었다.
콕 집어 얘기할 수는 없지만...밝아졌다? 활기차다? 그런 느낌이었다.
뭐 밝아진 건 좋은 거니 그렇다 치고.
일단 빨리 가야 시험지 확인에 줄을 서지 않을 테니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음...이상 없네요. 감사합니다."
"네, 그럼 점수 이대로 올릴게요."
나는 시험지를 확인 후 조교와 간단한 인사를 하고 건물을 빠져나와 헬스장으로 향했다.
깔끔한 복도를 지나 입구에 들어서니 전에 봤던 여직원이 아는 채를 했다.
"어, 안녕하세요. 아까 혜윤이가 곧 올 거라고 했는데, 오늘 등록하신다고 하셨나요?"
"네, 그새 말했나 보네요. 일단 3개월치만 끊어주세요."
결제를 마치고 나서 여직원이 번호가 달린 열쇠를 하나 건네줬다.
"아시다시피 회원님의 사물함 열쇠고요, 기본적인 트레이닝 복은 제공되지만 직접 가져오셔도 상관은 없어요. 혹시 사이즈가 맞지 않으시면 따로 말씀해주세요."
"아 감사합니다."
번호가 적힌 사물함으로 가 열어보니 헬스장 로고가 박힌 회색 체육복 세트가 있었다.
온 김에 간단하게 운동 좀 하고 갈까 해서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기구들이 있는 쪽으로 갔다.
하지만 평소에 달리기나 팔굽혀펴기 같은 기초 운동만 했었기에, 막상 뭘 해야 될지 몰라 가만히 멍을 때렸다.
'일단 윤혜윤한테 찾아가서 물어볼까? 1년 반 동안 운동했다고 했으니.'
나는 그녀를 찾기 위해 헬스장을 크게 한 바퀴 돌기 시작했다.
평일 낮이었지만 좋은 헬스장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꽤나 있었다.
데드리프트를 하는 근육 빵빵한 아저씨, 간단히 런닝머신을 뛰는 아줌마, 덤벨 들고 있는 대학생까지 상당히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빠질 수 없는 내 눈앞의 레깅스 차림의 여자까지.
저게 그 뭐였더라? 힙쓰러스트..라고 했나?
어깨를 의자 위에 놓고, 무릎이 땅과 90도를 이루도록 몸을 지탱해서 골반을 들어 올리는 운동.
옆에서 보면 엉덩이와 허리 라인에 눈이 가고, 대각선으로 보면 탄탄한 복근과 살짝 튀어나온 보지 둔덕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허리를 내렸다가 다시 쭈욱 올리는 게 운동인지 섹스 어필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야했다.
나는 조금 눈동자를 올려 적당히 큰 예쁜 가슴과 쇄골을 훑어보고 마지막으로 얼굴은 예쁠지 보니...
"흐으읏...하아... 흐으으읏..! 하아..."
거기엔 내가 찾아다녔던, 신음 같은 목소리를 내며 운동하고 있는 윤혜윤이 있었다.
맥이 탁 풀리며 눈동자만 몰래 굴리던 것을 멈추고 그냥 대놓고 쳐다봤다.
하긴 이렇게 몸매 좋은 여자가 널렸을 리가 없지.
말을 걸려고 했지만 뭔가 운동 중에 말을 걸면 위험하다는 글을 어디서 본 것 같아 끝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잠시 후.
내가 주변에서 계속 서성이자 불편했는지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바벨을 내려놓고 몸을 일으켰다.
"저기요, 왜 자꾸...어라!? 우진 씨? 생각보다 빨리 오셨네요."
"네. 시험지 확인하는 줄이 짧아서요. 그보다 운동 좀 가르쳐 줄 수 있나요? 처음이라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음...그럼 체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야 되니, 저기 런닝머신 한번 뛰어보실래요?"
그녀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 함께 갔다.
"속도는 이 정도로 하고.. 힘들면 말해주세요. 그럼 시작!"
우우웅 거리는 소리와 함께 움직이는 벨트.
조금 빠른 걸음 정도의 속도였기에 여유롭게 시작을 했다.
그러나 벨트는 점점 빨라졌고 어느새 전력 질주와 비슷한 속도가 되어 나는 항복을 외쳤다
"하아...하아...너무 빠르게 올린 거 아니에요?"
"생각보다 여유롭게 뛰시길래..좀 무리하게 올리긴 했네요. 미안해요."
내가 숨을 고르느라 말을 잇지 못하고 있자 다시 말을 걸었다.
"근데 운동 처음이라고 하신 것 치고는 체력이 좋으시네요?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하아...요즘...매일...달리기 좀 해서...그런가 봐요."
그녀는 비에 젖은 것 같이 땀을 흘리는 나를 미안한 듯 쳐다보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리고 1분 뒤, 손에 보온병을 들고 와 나에게 보온병 뚜껑을 뒤집어 안에 든 것을 한잔 따라줬다.
"이거 제가 가져온 이온 음료예요. 얼음이 들어있어서 시원할 테니 마시고 땀 좀 식히세요."
물보다 약간 탁한 걸 보니 아마 보카리 스위트인 것 같았다.
한 번에 원샷을 하고 잠시 쉬고 있으니 이번엔 아령이 있는 쪽으로 날 데려갔다.
"이번엔 4kg부터 천천히 늘려가 볼게요. 팔을 쭉 아래로 하시고 어깨 높이까지 들어 올려 보세요."
그렇게 10개 3세트를 마친 후 무게를 6kg까지 올려봤지만 팔이 떨려 포기를 했다.
"전 여기가 한계인가 보네요. 팔이 쑤시네요."
"아니에요. 처음인데 이 정도면 괜찮은데요. 대충 체력은 알았으니..몸 만드는 목표가 어디세요?"
"음..딱히 정해둔 것은 없는데..체력 증가가 목표여서요. 막 근육질 이런 거에는 관심 없어요."
그 말에 진지한 표정으로 고민을 하는 윤혜윤.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자 옆에서 누가 큰소리로 웃으며 다가왔다.
자세히 보니 아까 데드리프트를 하던 근육빵빵 아저씨였다.
"오!! 이게 누구야! 혜윤이가 남자 친구를 데려왔네?"
"아이, 아저씨 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운동 배워보고 싶다고 해서 와본 지인이에요."
반바지에 몸에 딱 붙는 반팔을 입은 짧은 머리를 한 아저씨.
얼굴 자체는 어디서나 볼 법한 푸근한 인상이었지만 몸은 그렇지 않았다.
나를 10명으로 복사해서 싸워도 떡발릴 것 같은 엄청난 체격 차이.
나는 살짝 위를 올려다보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체력 좀 늘려보려고 찾아와 봤습니다."
"어우, 안녕하세요. 우리 혜윤이가 또 남자 회원을 물어왔네."
"네? 또라뇨?"
"아~ 정확하게 말하자면 혜윤이를 보고 여기 헬스장을 등록한 남자들이 한둘이 아니라서요. 하하하!"
호탕하게 웃는 아저씨와 얼굴을 붉히는 그녀.
뭐 이해는 간다. 솔직히 나도 윤혜윤이 아니었으면 등록하지 않았을 수도?
"혜윤이하고 아는 사람이라고 하니까 내가 공짜로 운동 가르쳐 줄게요. 이 정도 서비스면 괜찮죠?"
"관장님께 직접 배우는데 저야 감사하죠. 내일부터 나오면 되나요?"
"전 매일 여기 머물고 있으니 언제든지 오세요. 만약 도망가버려도 혜윤이가 다시 잡아 오겠죠. 하하하!"
등골이 살짝 오싹해지는 것과 동시에 대화는 끝났고 관장님은 오늘 헬스장에 적응해 보라면서 딴 데로 갔다.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자 조용히 있던 그녀가 말을 걸었다.
"그...여기 헬스장 오라고 일부러 영업한 거 아니에요...그냥 아는 사람이 운동 시작한다 하니까 뭔가 좋아서..."
"주변에 운동하는 사람이 없거든요. 아는 여자애들은 걷기 정도만 하지, 본격적으로 하는 사람은 없고...남자는..딱히 알고 지내는 사람이 없어서..."
아까 관장님이 말했던 '남자를 물어왔다.' 라는 표현이 신경 쓰인 듯 변명을 했다.
나는 괜찮다며 손사래를 치며 말을 받았다.
"아니에요. 어차피 여기 헬스장이 시설도 좋아서 등록하려고 마음먹은 상태였고, 아는 사람이 옆에서 운동 가르쳐 주면 뉴비 입장에서 좋기만 하죠."
그 말이 듣기 좋았는지 눈이 살짝 호선을 그렸으며, 입가가 조금씩 실룩거렸다.
"아, 그리고 저는 이만 돌아가 볼게요. 집에 과제가 쌓여있어서 오늘은 잠시 들려서 등록하려고만 했어요."
"제가 괜히 시간 많이 뺏은 것 같네요. 저는 좀 더 운동하고 갈 테니 먼저 가보세요."
"네. 열심히 하세요."
그 말을 끝으로 각자 갈 길로 몸 방향을 틀었다.
나는 트레이닝 복을 벗어 빨래 주머니에 넣고 시원하게 샤워를 해 몸에 묻은 땀을 닦아냈다.
그리고 몸과 머리를 말린 후 원래 옷으로 갈아입고 나서 집으로 출발했다.
집에 도착해 밀린 과제를 하던 중 약 1시간 뒤 옆집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신경을 끄고 문제를 이어 풀려고 하니, 이번엔 핸드폰에서 알림이 울렸다.
-까톡!
"이번엔 또 뭔데."
-XXX과 공지.
안녕하세요. xxx과목 조교 xxx입니다.
교수님께서 조별 프로젝트를 하나 진행하라고 하셨습니다.
기말고사 전까지 완성해 제출 및 발표하는 형태이며, 점수 배분은 상당히 클 예정입니다.
아래 엑셀 파일은 100% 랜덤으로 뽑은 조원들 명단입니다.
각 조원들은 알아서 모인 후 프로젝트를 진행해 기말고사 전까지 완료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첨부된 엑셀 파일을 열어보니 대충 4인 1조로 이루어진 것 같았다.
나는 스크롤을 내리며 같은 숫자가 써져있는 조원들의 이름을 하나씩 확인해갔다.
6조 박우진,
6조 서아린,
6조 장민혁,
6조 신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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