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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쓰는 미드필더-709화 (709/712)

<-- 베이징 올림픽 -->

김일중은 러시아로 유학을 갔다. 다른 형제, 자매들은 미국이다 유럽으로 유학을 가는데 말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김일중은 워낙 사고뭉치였다. 거기다 마약 없이는 살 수 없는 지경의 폐인이기도 했고.

그래서 김일중은 어쩔 수 없이 마약에 관한 한국보다는 훨씬 관대한 러시아로 갔고 거기서도 여전히 사고를 쳤다. 하지만 그가 친 사고는 현지에서 전부 무마되었고 한국에 그 사실은 일절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 김일중이 거의 3년 만에 한국에 올 수 있게 되었다.

이유는 그의 모친의 건강이 급격히 나빠져서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진단이 내려졌던 것이다.

그로 인해 한국으로 입국이 불가능했던 김일중에 내려진 금제 또한 풀렸다. 김일중의 부친에 의해서 한시적으로.

김일중의 부친은 바로 해성그룹의 회장 김만석이었다. 해성그룹은 그래도 한국에선 대기업 소리를 듣는 건실한 기업이었다. 그런 해성그룹의 오너인 김만석은 호인으로 술과 여자를 좋아했다.

그런 김만석의 주위에는 늘 여자들이 득실거렸고 그 여자들 중에 김만석의 아이를 낳은 여자들 또한 많았다.

김일중도 그런 김만석의 여자 중 한 명을 모친으로 두고 있었다. 하지만 김일중은 자신을 낳아 준 생모가 아닌 큰어머니, 즉 김만석의 법적 아내 손에서 자랐다. 그래서 김일중에게 모친은 그저 그를 낳아 준 여자에 불과했다. 그래도 그를 낳아 준 여자이기에 도의상 김일중은 그녀의 마지막을 보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하지만 단지 그게 다가 아니었다. 김만석은 한국이 늘 그리웠다. 그래서 몇 번 한국에 오려고 했지만 그를 감시하는 해성그룹의 눈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 감시가 한시적이긴 하지만 풀렸다.

포악한 야수의 목에 걸려 있던 목줄이 풀린 격이었다. 김일중은 곧장 모스크바 공항으로 향했다. 그리고 거기서 운명처럼 그의 영혼을 사로잡은 여자를 만났다. 진한 흑발에 늘씬한 몸매, 거기다 아름다운 얼굴까지. 거기다 그처럼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같이 탑승까지 했다.

‘넌 내꺼야.’

야수 김일중의 눈이 뒤집어 졌다. 그는 한국에 있을 때도 그랬지만 자신이 원하는 건 반드시 가져야 했다. 그런데 그 여자가 꽤 유명한 모양이었다. 비행기에 탑승한 그녀에게 주변 탑승객들의 사인 공세가 계속 이어졌던 것이다.

술과 마약, 그리고 여자밖에 몰랐던 김일중은 당연히 스포츠 따위엔 관심이 없었다. 그러니 한국에서 유명한 국민 스포츠 요정 주윤미를 김일중일 알 턱이 없었다.

“쩝. 이러면 곤란한데....”

김일중은 한국에 도착하면 곧장 주윤미에게 접근해서 공항에서부터 그녀를 데리고 호텔로 갈 생각이었다.

그가 아는 한 여자는 돈에 약했다. 돈이면 열에 아홉의 여자들이 그와 배꼽을 맞췄다. 그런 류의 여자는 사실 매력이 없었다. 그래서 김일중은 그런 여자들과는 대개 한 번의 만남으로 끝을 냈다. 그리고 나머지 열에 하나에 해당하는 돈으로 꼬실 수 없는 여자의 경우 김일중은 자신의 힘을 이용해서 강제로 그 여자를 취했다.

주로 여자를 납치해서 강간했는데 직접 나서기도 했지만 대개는 주위 도움을 받았다. 아무래도 그게 더 안전하니까. 그리고 증거 인멸과 만약의 경우 자신의 죄를 그 자들에게 뒤집어 씌울 수도 있었고. 하지만 지금 당장 김일중을 도울 자는 없었다. 그래서 한국에 도착하면 혼자서 주윤미를 납치하려 했는데 그녀가 유명인이라면 얘기가 달랐다. 아무래도 그를 도와 줄 사람이 필요 했던 것이다.

그래서 김일중은 생각했다. 그를 도와 주윤미를 같이 납치 해 줄 녀석들을 말이다.

“아아!”

그때 김일중의 머릿속에 그를 도와 줄 파렴치한 녀석 둘이 떠올랐다. 김일중이 한국에서 개 또라이 짓을 할 때 그의 뒤를 봐 주던 똘마니 녀석인 윤길범과 배현태를 말이다.

두 녀석 다 당시 체대에 다녔었는데 지금쯤이면 대학을 졸업했을 터였다. 하지만 요즘같은 불경기에 체대 나온 두 녀석이 취직을 했을 리 없었다.

김일중은 비행기 이륙 전 그 두 녀석 중 하나인 윤길범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할 일이 없었던지 윤길범은 꽤 긴 번호의 국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길범이냐?”

-어어. 누군데?

워낙 거리가 떨어져서 그런지 김일중이 말을 하고 나서 3-4초 터울이 있고 윤길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야. 김일중.”

-김일중? 해성가의 그 김일중?

다행히 녀석은 김일중을 잊지 않고 있었다. 놀란 윤길범의 목소리를 들은 김일중의 입가에 살짝 조소가 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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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곧 이륙할 예정이오니 그만 통화를 끝내시고 핸드폰을 끄거나 비행모드로 바꿔 주시겠습니까?”

김일중은 스튜어디어스가 다가와서 부탁을 할 때까지 열심히 통화를 했다. 그 결과 윤길범에다가 배현태까지 끌어 들일 수 있었다.

그의 예상대로 변변찮은 체대를 나온 윤길범과 배현태는 백수 신세였고 예전 그들의 물주인 김일중의 귀국을 누구보다 환영했다. 그래서 둘 다 김일중을 배웅하러 기꺼이 인천국제공항에 오기로 했다.

그렇게 윤길범과 통화를 끝내고 아예 핸드폰을 꺼 버린 김일중은 비릿하게 웃으며 자신의 먹잇감인 주윤미를 쳐다보았다. 그런 그의 끈쩍한 눈길을 눈치라도 챈 것일까? 주윤미가 그를 돌아보았고 이내 얼굴을 찌푸렸다.

“흐흐흐흐....”

하지만 김일중은 그런 주윤미를 계속 쏘아보며 기분 나쁘게 웃었다. 그러자 주윤미가 홱 고개를 돌린 뒤 두 번 다시 김일중이 있는 쪽을 쳐다보지 않았다. 그렇게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장장 9시간의 비행 끝에 김일중과 주윤미를 태운 비행기가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김일중은 주윤미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그녀 뒤를 바짝 쫓았다. 때문에 입국심사대를 통과할 때 김일중은 주윤미 바로 뒤에 서 있었다.

주윤미도 눈치는 있었다. 김일중이 스토커처럼 그녀를 쫓아오자 다급히 그와 거리를 벌리려 했다. 하지만 김일중은 끝까지 그녀를 쫓아왔고 당황한 주윤미는 도움을 청하려 주위를 살폈다. 그런 그녀 눈에 하필 안면이 있는 기자가 보였다.

주윤미는 다급히 몸을 돌려서 공항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런 그녀를 김일중이 쫓아왔고 김일중과 거리가 점점 좁혀지자 급해진 주윤미는 그녀가 당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인 그녀의 연인 강현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통화 중 뒤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던 김일중이 손수건에 강력한 수면성분의 약을 뿌리고 그 손수건으로 주윤미의 입을 틀어막았다.

출입구에서 가까웠고 마침 그들을 보는 사람이 없었기에 주윤미는 꼼짝 못하고 수면 약을 흡입한 체 기절해서 쓰러졌다.

“빙고!”

김일중은 기뻐하며 기절한 주윤미를 안아 들었다. 그리고 바로 눈앞에 있는 게이트 밖으로 나갔다.

게이트 문이 열리고 맞은 편 도로가에 정차하고 있던 파란 색 차가 김일중의 눈에 띠었다. 그 차의 창문이 열리고 그 안으로 고개를 내민 윤길범을 보고 김일중은 그쪽으로 뛰었다. 혹시나 자신이 주윤미를 납치한 걸 본 사람이 있을지 몰랐기에 나름 서두른 것이다. 그런데 공항 앞 보도에 기름칠이라도 되어 있었는지 김일중은 미끄러져서 벌러덩 쓰러졌다.

쿵!

“크윽!”

제대로 엉덩방아를 찧은 김일중은 엉치와 꼬리뼈에 가해진 충격이 척추까지 전해지면서 한 동안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런 김일중은 고통이 가시자 제일 먼저 주위를 살폈다. 좀 전까지 그가 안고 있었던 주윤미를 찾은 것이다. 그런데 웬 놈이 그의 눈앞에서 떡하니 혼절한 주윤미를 안아 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와 눈이 마주치자 기분 나쁘게 웃었다. 당연히 그 걸 본 김일중은 기분이 더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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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중은 당장 움직일 수 없었지만 그에게는 든든한 조력자 두 명이 눈앞에 있었다. 그들은 김일중이 엉덩방아를 찧자 그걸 보고 곧장 차에서 내렸다.

그중 배현태를 김일중이 부르자 윤길범이 눈치껏 주윤미와 그녀를 안고 있는 녀석을 알아서 커버 쳤다. 김일중은 배현태의 도움을 받아 겨우 몸을 일으켰다. 그 사이 윤길범은 알아서 주윤미와 그녀를 안아든 녀석이 달아나지 못하자 잘 막고 있었고.

김일중은 자신을 보고 기분 나쁘게 웃은 녀석의 얼굴을 발로 짓밟고 싶었지만 주위 보는 눈도 있고 해서 인내심을 발휘해서 좋게 말했다. 그녀를 넘기고 꺼지라고. 그런데 녀석은 그런 김일중의 호의를 보기 좋게 걷어찼다. 거기다 녀석은 여자와 아는 사이인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그녀를 납치 중인 김일중으로서는 녀석을 그냥 둘 수 없었다. 그래서 몇 마디 얘기를 주고 받다가 윤길범에게 녀석을 제압하라고 사인을 주었다. 그런데 그보다 먼저 녀석이 움직였다.

윤길범이 녀석의 발차기에 급소인 낭심을 맞고 맥없이 쓰러진 것이다. 그걸 보고 김일중을 부축하고 있던 배현태가 움직였다.

아직 허리 충격이 가시지 않은 김일중은 다시 길바닥에 주저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는 태연히 배현태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배현태가 누구던가? 비록 국가대표로 올림픽에 참가하지 못했지만 상비군으로 이름을 날리던 유도맨이었다.

당연히 주윤미를 안고 있는 녀석은 곧 배현태에 의해 길바닥에 매다 꽂힐 터였다.

“어억!”

쿵!

그리고 김일중의 예상대로 누군가 길바닥에 맥없이 꼬꾸라졌다. 그런데 그 쓰러진 자가 문제였다.

“이런 씨발....”

김일중의 입에서 절로 욕설이 튀어나왔다. 그럴 것이 그의 눈앞에 길바닥에 쓰러진 누군가가 바로 배현태 였기 때문이었다.

“헉!”

그때 언제 움직였는지 주윤미를 안고 있던 녀석이 김일중 앞에 나타났다. 김일중이 고개를 쳐들어 그를 쳐다보자 그 자가 김일중을 내려다보며 히죽 웃었다. 그리고 그 웃음을 본 김일중은 녀석이 뭐라 하는 말을 들으면서 동시에 뭔가 자기 얼굴로 날아오는 걸 보았다. 그리고 턱에 강한 충격을 받았고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의식의 끈을 놓았다.

털썩!

그렇게 맥없이 쓰러진 김일중의 뒷덜미를 주윤미를 한 팔로 안아 든 자가 잡아서 질질 끌고 도로가에 주차되어 있던 파란색 차가 있는 쪽으로 움직였다.

휙! 휙!

그 자는 차곡차곡 파란색 차 뒷좌석에 김일중을 비롯해서 뒤통수를 주먹으로 내려쳐서 기절 시킨 배현태와 윤길범을 욱여넣었다. 그리곤 안고 있던 주윤미를 운전석 옆 보조석에 태우고 유유히 그 파란색 차를 몰고 인천국제공항을 빠져 나갔다. 하지만 공항을 빠져 나오자마자 그 차는 근처 보이는 나대지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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