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믿고 쓰는 미드필더-696화 (696/712)

<-- 베이징 올림픽 -->

곧바로 자신의 원룸 안에 들어간 현수는 재차 시간을 확인하고 미리 준비해 둔 짐 가방을 챙겨 들었다. 그리곤 상태창의 인벤토리에서 텔레포트 바바리코트를 다시 꺼내 착용했다.

“어차피 내 차나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축구장에 가기엔 늦었어.”

현수는 곧장 오늘 축구 시합이 열릴 축구장으로 텔레포트를 시도했다.

화아아악!

현수의 몸이 밝은 빛 무리에 휩싸였다가 그 빛이 사그라지자 원룸 안에 있던 현수의 모습도 빛과 같이 사라졌다.

스르르륵!

현수는 오늘 대학 축구 왕 중 왕전이 열리는 서울 월드컵 경기장과 가까운 평화공원 공중 화장실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시간이 애매한 것이 바로 서울 월드컵 경기장 안으로 텔레포트하기엔 빨랐던 것이다. 현수는 평화 공원을 한 바퀴 걷다가 곧장 서울 월드컵 경기장 동문 쪽 주차장으로 향했다.

저번 고구려대와 시합 때 연신대 축구부 버스가 그곳에 주차를 한 게 생각이 났던 것이다. 현수가 막 그 곳에 도착했을 때 연신대 축구부 버스가 주차장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아마 현수가 없는 가운데 연신대에서 간단히 몸들을 풀고 왔을 터. 그렇다고 현수가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티끌만큼도 들지는 않았다. 어차피 그들과 자신은 레벨이 달랐으니까.

치이익!

버스가 주차를 마치자 버스 앞쪽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 안에서 제일 먼저 내린 연신대 선수는 골키퍼 방주혁이었다.

“어어?”

그는 근처에 현수가 서 있는 걸 보고 많이 놀란 얼굴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의 뒤로 연신대 선수들이 줄줄이 내렸고 그들도 현수를 발견하고 다들 놀라고 있었다.

“현수야!”

그리고 연신대 축구부 선수들이 다 내린 뒤 연신대 감독인 이명신이 내렸는데 그는 현수를 보자마자 반갑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이명신 감독은 오늘도 훈련에 참가하지 않은 강현수가 불만이었다. 그래서 훈련 중 현수 욕을 계속 해댔다. 하지만 막상 현수 앞에서 그는 언제 그랬냐며 얼굴색을 싹 바꿨다.

“빨리 왔네. 컨디션은 어때?”

“좋습니다.”

“그래. 다행이다. 오늘도 잘 부탁해.”

“걱정 마십시오. 왕 중 왕전 우승 트로피는 연신대에서 가져갈 테니.”

현수의 그 말에 이명신 감독의 입이 귀에 걸렸다. 그럴 것이 현수가 어디 한 입에 두 말하는 스타일이던가? 그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이제 현수의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게 된 이명신 감독이었다.

--------------------------------------------------

연신대와 왕 중 왕 전 2번째 경기를 치르게 된 한영대 축구부는 시합 이틀 전까지 빡세게 훈련을 받았다. 그럴 것이 왕 중 왕 전 첫 번째 경기에서 비교적 약체로 평가 받던 안산대와 1대 1로 비겼기 때문이었다.

안산대는 주축인 두 명의 주전 멤버가 빠진 상태였다. 둘 다 3학년으로 이유는 부상 때문이었지만 실제로는 스카우트 된 프로 팀에서 내년 시즌을 대비한 훈련을 받고 있었다. 둘 다 즉시 전력 감이었기에 그들을 영입한 K리그 프로 팀에서는 그들을 자신의 팀에 맞게 리빌딩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괜히 왕 중 왕 전에서 뛰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그들만 손해기에 부상을 핑계로 못 뛰게 만든 것도 있고.

때문에 안산대 전력은 확실히 이전보다 떨어졌다. 하지만 안산대는 악으로 깡으로 뛰었고 결국 첫 시합에서 한영대와 비겼다. 반면 한영대 입장에서는 반드시 이겨야 할 상대와 비기면서 체면을 구겼고 그 여파는 고스란히 한영대 감독인 편지성이 감당해야 했다.

편지성은 총장과 이사장 앞에 불려가서 개쪽을 당했다. 그 자리에서 감독직 경질과 재계약이 어려울 수 있다는 얘기까지 들은 편지성은 완전히 꼭지가 돌아버렸다. 그 결과 그날부터 한영대 축구부원들에게 악몽 같은 나날이 시작 되었다.

“빨리 뛰어!”

“헉헉헉헉.....”

한영대 선수들은 매일 같이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해야 했다. 그건 시합을 이틀 남긴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였고. 한영대 선수들은 오전에 두 경기의 연습 시합을 뛰고 오후에는 체력 훈련을 했다.

이때 편지성 감독은 체력 훈련을 핑계로 축구부 선수들에게 학교 뒤편에 있는 해발 500여미터의 산을 뛰어 오르게 했다. 그렇게 서산 산봉우리에 해가 걸쳤을 때 겨우 산을 내려 온 한영대 선수들. 그렇게 오늘 훈련이 끝났다.

“헥헥헥헥......아이고.....죽겠다.”

온 몸이 땀투성이에다가 입에서 단내를 풀풀 풍기는 한영대 선수들이 다들 잔디에 주저 않아서 거친 호흡을 고르고 있을 때 편지성 감독이 그들 앞에 나타났다.

“수고했다. 다들 해산. 아! 그리고 내일 왕 중 왕 전 두 번째 시합 있는 거 알지?”

“네에!”

“상대는 강호 연신대다. 이기라고는 하지 않겠다. 하지만 지면....... 체력 훈련 강도가 더 올라 갈 거란 건 각오하고 있도록.”

적어도 연신대를 상대로 비기란 소리였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 이미 첫 시합에서 고구려대를 대파한 연신대였다. 그에 비해 한영대는 한 달 전 고구려대와의 시합에서 4대 1로 진적이 있었고.

누가 봐도 연신대를 상대로 이기거나 비기는 건 쉽지 않았다. 그런데 편지성 감독은 그걸 가능하게 만들라고 한영대 선수들을 압박하고 있었다.

“알았나?”

“네에!”

한영대 선수들은 억지로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면 당장 야간 전술 훈련을 핑계로 편지성 감독이 그들을 밤 늦도록 붙잡고 있을 테니까.

----------------------------------------------------

다음 날 편지성 감독은 아침 훈련 시작 전에 오늘 왕 중 왕 전 두 번째 시합에 뛸 선수 명단을 발표하고 그들에게 전술적인 설명을 시작했다.

“우린 저번에 안산대를 상대 했던 대로 4-5-1 포메이션으로 전반전을 시작한다. 안산대와 시합에서 느꼈겠지만 초반 득점이 특히 중요한데...............”

그 말을 하면서 편지성 감독은 한영대 공격수들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당연히 그런 감독의 눈길이 한영대 공격수들은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골을 넣지 못하는 공격수는 입이 있어도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안산대와 경기에서 한 골 넣은 공격수 이구현이 편지성 감독에게 말했다.

“상대가 연신대인데 공격이 제대로 되겠습니까?”

그 말에 편지성 감독이 바로 대답했다.

“그러니까 전부 하프라인 밑으로 내려와서 수비를 하다가 역습으로 골을 넣어야지. 그 일을 해줘야 하는 게 공격수인 구현이 네 몫이고.”

‘쳇! 말은 쉽지......’

공격수에게 수비에 가담 하되 역습엔 골을 넣으란 건 그 만큼 공격수에게 많이 뛰란 소리였다. 사실 한영대 선수들이 죽기 살기로 뛰면 어떻게 전반전 까지 연신대를 상대로 대등한 경기를 펼칠 수 있었다. 하지만 축구 시합이란 게 전반전만 뛰는 경기는 아니지 않은가?

때문에 축구 선수에게 있어 체력 안배가 중요했다. 그런데 편지성 감독은 그런 체력적인 문제는 전혀 고려치 않고 한영대 선수들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하긴 왕 중 왕 전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거두지 못하면 학교에서 쫓겨 날 판인 편지성 감독의 입장에서는 그럴 만도 했다. 그러나 사람이란 게 억지로 밀어 붙인다고 반듯이 좋은 성과가 나오는 건 아니었다. 물론 처음은 억지로 하다보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둘 수 있을 테지만 결국 종반으로 가게 되면 파토가 나기 마련이었다.

바로 한영대 축구부가 그 양산을 보이고 있었다. 그들은 편지성 감독의 강압에 오전 훈련까지 소화하고 오후에 서울 월드컵 경기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경기장에서 또 적응 훈련을 가졌다. 그렇게 한영대 축구부 선수들이 점심은 겨우 김밥으로 때우고 저녁은 굶은 채 야간 조명등이 밝혀지기 시작한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동료들과 발을 맞추고 있을 때였다.

“하하하하.....그래서 내가 그랬지. 야. 그거 원래 네 거야.”

“푸하하하. 명석이 녀석 꼭지가 돌았겠군.”

“당연하지. 당장에 날 죽일 듯이........”

연신대 선수들이 시합을 한 시간도 채 남겨 두지 않은 시간에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 모습들 드러냈다. 그런데 바짝 긴장한 한영대 선수들과 달리 연신대 선수들은 다들 여유가 있어 보였다. 그리고 그들 중에 단연 군계일학으로 빛나는 선수가 있었다.

“강현수다.”

“고구려대와의 시합에서도 해트트릭을 기록했다며?”

“해트트릭이 뭐냐? 저 새끼 매 경기 거의 5골은 넣는다고.”

“젠장. 오늘은 좀 나오지 말지.”

“그러게.”

한영대에서도 연신대의 미드필더 강현수가 경계 대상 1호였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선수가 아니란 건 한영대 선수들이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랬다면 앞서 한영대보다 전력에서 앞선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고구려대에서 강현수에게 그렇게 많은 골을 허용하지 않았을 터.

한영대 선수들은 일제히 강현수를 노려봤다. 하지만 강현수는 그런 한영대 선수들의 살기등등한 눈빛에도 전혀 아랑곳 하지 않고 동료 연신대 선수들과 같이 라커룸으로 향했다.

---------------------------------------------------------

현수는 주차장에서 만난 연신대 선수들과 같이 오늘 저녁에 열릴 대학 왕 중 왕 전 두 번째 시합에서 뛰기 위해 서울 월드컵 경기장 안으로 들어갔다.

경기장에는 이미 상대 측 선수들이 와서 몸들을 풀고 있었다. 그때 경기장 시설 요원들이 야간 시합을 위해서 조명을 밝혔다. 현수는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상대 팀 선수들의 시선을 회피하고 유니폼으로 환복 하러 라커룸에 들어갔다.

현수는 이명신 감독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 그에게 우승 트로피를 안겨 주겠다고 말했다. 그 때문인지 이명신 감독은 아주 입이 귀에 걸려 있었다. 딱 봐도 대학 축구 왕 중 왕 전에서 우승한 감독의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그 때문에 편해진 건 현수뿐만이 아니었다.

연신대 다른 선수들도 이명신의 잔소리를 듣지 않자 다들 분위기가 좋았다. 연신대의 전술은 늘 그렇듯이 4-4-2로 미드필더인 현수가 중심이 되어 경기를 이끌어 나갈 터였다. 그래서 라커룸을 나서기 전까지 연신대 선수들은 딱히 전술적인 부분에 대해 어떤 의문도 재기하지 않았다.

“자자. 다들 나가서 그라운드 적응부터 해라.”

그래도 감독이라고 이명신이 외치자 연신대 선수들이 하나 둘 씩 라커룸을 나섰다.

“현수야!”

그때 연신대 유니폼을 착용한 현수 역시 라커룸을 나섰는데 그런 그를 누가 불렀다. 현수가 뒤돌아보니 연신대 축구부 주장 이기찬이 그를 손짓으로 불렀다. 현수는 라커룸 입구에서 몸을 돌려서 곧장 이기찬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