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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인 김기수가 오기 전에 광룡파 조직원들은 알아서 다친 동료들을 챙겼다. 상처 부위에 지혈제를 뿌리고 부러진 팔 다리는 부목을 댔다. 보성도 최대한 편한 자세로 휴식을 취했는데 30분도 되지 않아서 의사가 나타났다.
조폭들에게도 위아래가 있었기에 김기수는 제일 먼저 보성의 상태를 살폈다. 머릿속을 MRI로 찍어 보지 않는 한 보성의 머리 상태를 확신할 순 없었다. 하지만 통증도 없고 이상 징후도 보이지 않았기에 김기수는 보성에게 뇌진탕 진단을 내리고 더 휴식을 취하라고 했다. 그 다음 김기수는 다친 보성의 수하들을 살폈다.
“쯧쯧. 흉터가 많이 남겠군.”
딴 때와 달리 광룡파 조직원들의 부상 정도가 심했다. 그럴 것이 그들이 상대한 자들이 그래도 그들과 같은 밥을 먹던 광룡파 조직원들이었으니 그들과 싸워 이만큼 다친 것도 적게 다친 거였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김기수는 묵묵히 부상당한 보성의 수하들을 치료했다. 그 동안 보스의 방에 있던 장용은 상철로부터 보고를 받았다.
“류수창과 그 밑에 애들을 다 처리했습니다.”
죽은 광룡파 보스를 추종하는 녀석들이었다. 그래서 제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도 광룡파 조직원이었기에 장용은 그 보고를 듣고 질끈 눈을 감았다. 그때 상철의 밑에 있던 수하가 불쑥 보스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상철에게 뭐라 얘기를 했고 상철이 굳은 얼굴로 그 수하와 함께 보스 방을 나갔다. 하지만 장용은 여전히 감고 있던 눈을 뜨지 않고 있었다. 그때 장용이 있던 보스 방을 나온 상철은 곧장 아지트 입구로 향했다.
“그러니까 지부에서 나왔다고 했단 말이지? 확실하게?”
이동 중 상철이 거듭 수하에게 물었다.
“네. 진짜 미친놈이 아니라면 우리 아지트 앞에 찾아와서 자신이 흑사회 지부에서 나왔다는 소릴 할 리 없잖습니까?”
“그렇지.”
그렇다면 확실히 이곳 제주도 흑사회 지부에서 나온 놈이 맞단 말인데 왜 그런 자가 지금 여기 나타난단 말인가?
“설, 설마.....”
상철은 이곳에서 쿠데타가 일어났고 보스인 레이펑이 제거 된 사실을 벌써 지부에서 알고 있는 게 아닌 가하는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레이펑이 죽은지 얼마나 됐다고. 반나절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그걸 벌써 흑사회 지부에서 안단 말인가? 만약 그렇다면 광룡파 조직 내 흑사회 지부에서 심어 놓은 첩자가 있거나 그게 아니면.......
‘..........감시를 하고 있었단 소린데......’
상철도 흑사회 조직 내에 그림자란 조직이 있는데 거기는 어느 나라 정보원 못지않은 도청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소문으로만 들어 알고 있었다.
만약 그렇다면 그 동안 광룡파는 흑사회란 부처의 손바닥에서 놀아난 거나 마찬가지였다.
‘일단 확인부터 하자.’
하지만 섣부른 판단을 내릴 순 없었다. 상철은 그 흑사회 지부에서 나온 자를 만나보고 나서 현 상황을 정리해서 장용에게 얘기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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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사회 지부로부터 밀명을 받은 그림자 첸은 광룡파 아지트 안에서 두 명의 조직원이 나오자 그 자들을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 그 중 눈에 익은 자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첸이 나올거라 예상했던 인물이 나온 것이다.
‘김상철! 광룡파 2인자 장용의 오른팔.... 녀석이 직접 나왔다는 건 그 만큼 광룡파에서도 긴장을 하고 있단 소리지.’
하긴 광룡파 보스가 죽은 지 얼마나 됐다고 흑사회 지부에서 지부장의 말을 전하러 사람이 나왔으니 그들도 충분히 놀랄 만 했다.
“지부에서 나왔다고요?”
상철이 조심스럽게 첸 앞에 다가와서 물었다. 그런 상철에게 첸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네. 지부장님께서 전하란 말이 있어서요.”
“하지만 저희 보스께서 지금 출타 중이셔서......”
“출타는 무슨...... 죽여 놓고.”
“뭣?”
상철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런 상철에게 첸이 손을 살짝 들어 보이며 말했다.
“진정해요. 그 책임을 묻고자 했으면 내가 아닌 흑사회 집행부가 찾아왔겠죠.”
첸의 집행부란 말에 상철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 만큼 흑사회에서 집행부란 존재는 흑사회에 소속된 조직원들에게 저승사자와 같았다. 광룡파의 조직원들이 아무리 용감하고 잘 싸워도 흑사회 집행부가 뜨면 끝장이었다. 그럴 것이 흑사회 집행부에는 무공 고수들이 포함 되어 있었으니까. 사실 무공 고수 한 명만 떠도 광룡파는 몰살을 면치 못할 터였다.
“............”
첸은 말없이 자신의 눈치만 살피는 상철을 보고 잠시 웃다가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이제 장용이 있는 곳으로 날 안내해 주겠습니까? 설마 여기서 지부장의 전언을 전하란 건 아니겠지요?”
능청스럽게 말하는 첸을 보고 상철은 잠시 복잡한 얼굴 표정을 짓다가 힘없이 대답했다.
“따라 오시오.”
그렇게 상철의 안내를 받으며 첸은 광룡파 아지트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다 앞장서서 걷고 있던 상철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그 때문에 그 뒤를 따르던 첸도 멈춰 서야 했고. 상철은 홱 고개를 돌려서 첸에게 물었다.
“우리가 레이펑을 죽인 걸 어떻게 알았소?”
“........”
그 물음에 첸은 싱긋 웃기만 했다. 그러자 상철이 다시 물었다.
“혹시 그림자요?”
“..........”
그 물음에도 첸은 웃기만 했다. 그걸 보고 상철이 짧은 한숨과 함께 다시 몸을 돌렸다. 그리고 앞장서서 걸었는데 그 때 상철의 입술이 슬쩍 위로 올라갔다.
첸은 상철의 물음에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그림자란 말이 상철의 입에서 나오자 자기도 모르게 살짝 눈빛이 흔들렸다. 상철은 그걸 놓치지 않았고.
‘역시 그림자들이 개입했어. 그렇다면.....’
상철은 장용이 광룡파 보스 레이펑을 죽인 사실을 흑사회 지부가 어떻게 알았는지 알아냈다. 그가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건 광룡파 내에 첩자가 없단 사실이었다. 대신 그림자들이 여길 도청하고 있다면 말조심을 할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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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철은 첸을 보스 방 앞에 잠깐 세워 두고 먼저 방 안에 들어갔다. 그때 보스 방에 있던 장용이 상철을 보고 말했다.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지부를 찾아가 봐야겠어.”
장용의 그 말에 상철이 바로 대꾸했다.
“그러실 거 없습니다.”
“뭐?”
“지부에서 사람이 왔으니까요.”
“...........”
상철의 말에 장용은 당황스런 얼굴 표정을 지었다. 그럴 것이 갑자기 제주 흑사회 지부에서 무슨 일로 여기로 사람을 보냈단 말인가? 상철은 장용의 얼굴 표정이 놀란 얼굴에서 궁금한 얼굴로 바뀌자 바로 말을 이어했다.
“지부에서 우리가 레이펑을 죽인 걸 알고 있습니다.”
상철의 그 말에 장용의 입이 떡 벌어졌다. 어지간히 놀란 모양이었다. 그러다 바로 상철의 말을 정정했다.
“우리가 아니라 내가 레이펑을 죽인 거다.”
상철은 장용의 그 말에서 그가 혼자서 레이펑을 죽인 책임을 지려 한다는 걸 눈치 챘다.
“형님이 레이펑을 쏴 죽인 건 맞습니다. 하지만 레이펑을 죽이라고 하고 또 그가 죽는 걸 지켜 본 저와 나머지 조직원 역시 레이펑을 죽인 거나 마찬가집니다.”
“하지만.......”
상철의 말에 장용이 바로 뭐라고 말하려 할 때 상철이 그의 말을 끊었다.
“지부에서 온 자가 그 책임을 물으러 여기 온 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지부장의 말을 전하러 왔다는데....... 일단 그 자를 만나보십시오.”
그 말 후 상철은 보스 방을 나갔고 잠시 뒤 처음 보는 자를 데리고 방 안으로 다시 들어왔다.
“반갑습니다. 장용님.”
장용은 흑사회 간부였다. 그랬기에 첸은 간부인 그에게 일단 격식을 갖춰 인사를 했다. 하지만 장용은 별로 반갑지 않는 손님과 인사나 할 기분이 아니었다.
“지부장님의 전언이 있다고요?”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첸에게 물었다. 그러자 첸이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네. 뭐 지금 상황이 장용님 입장에서는 거북할 수 있겠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저도 곧장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첸은 그렇게 말해 놓고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장용에게 말했다.
“오늘 광룡파 보스였던 레이펑이 지부장님을 만났습니다. 그 자리에서 지부장님께서 레이펑에게 특별히 임무를 맡겼고 레이펑은 그 일을 맡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레이펑이 갑자기 죽어버렸으니 그 임무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첸의 말에 장용이 그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첸은 지금 장용이 사실상 쿠데타를 일으켜서 광룡파 보스 레이펑을 제거한 것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이 레이펑이 맡은 임무 얘기만을 하고 있었다. 그 말은 그 임무가 레이펑의 죽음보다, 조직 내 하극상에 대한 처벌보다 우선한다는 얘기였다. 장용도 흑사회 간부였기에 그 정도 눈치는 있었다.
“그러니까 레이펑 대신 내가 그 일을 맡아서 해결해야 한단 거요?”
“그렇지요.”
“하지만 조직을 정비하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레이펑이 무슨 일을 맡았는지 모르지만 그의 죽음까지 묻고 갈 정도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터. 장용은 무조건 시간을 벌어놔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럴 시간 없어요. 지금 당장 움직여야 할 테니까요.”
하지만 흑사회 지부에서는 그럴 시간을 주지 않을 모양이었다.
“그래도....”
“본부에서 내려 온 임무입니다.”
“..........”
첸의 그 말에 장용은 어떻게든 사정을 해서라도 시간을 벌어 보려다 바로 입을 꾹 다물었다. 지부의 일이라면 모르지만 본부의 임무라면 무조건 해야 했다. 광룡파 같은 조선족 조직이 흑사회 내에서 인정을 받기란 어려웠다. 하지만 본부의 임무를 맡아서 그 일을 잘만 처리 한다면 광룡파도 흑사회 일원으로서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중국 내 조선족의 위상도 확실히 세울 수 있을 터.
광룡파로서는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흑사회 본부의 임무만큼은 맡을 수밖에 없었다. 첸은 본부란 말에 장용의 입에서 더 이상 핑계의 말이 나오지 않자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예상대로군.’
제이동의 말처럼 광룡파에서는 본부의 임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을 거란 말이 맞았던 것이다. 그 말은 흑사회 지부에서 광룡파 조직에 대해 속속들이 다 파악 하고 있단 말이었다. 하지만 흑사회 지부라고 해서 그들 밑의 조직에 대해 세세히 다 조사를 해 놓진 않았다.
‘제이동. 그 피가 어디 가는 건 아니군.’
첸은 북경에서 제이동의 숙부인 흑사회 장로 제수장를 모신 적이 있었다. 그때 제수장의 깐깐한 성격에 학을 뗐던 첸이었다. 그런 숙부를 닮아선지 제이동 역시 빈틈이 없었다. 그리고 영악하기가 이를 때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