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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끼리의 싸움은 기세 싸움이었다. 한 번 밀리면 끝장이기에 그들은 독해졌고 그 어떤 조직과의 싸움에서도 밀리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잔인해 졌고 그런 그들을 보고 두려워하는 자들을 보고 우월감에 휩싸였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괴물 집단인 지금의 광룡파였다.
광룡파 조직원 중 사람을 죽여 보지 않은 자는 없었다. 때문에 그들에게 사람은 가축이나 다를 게 없었다.
가축은 언제든 잡아먹을 수 있는 짐승이었다. 그런 짐승의 팔 다리를 자르고 목을 베는 게 뭐가 문제란 말인가? 사람들은 짐승의 후뇌와 간을 꺼내서 요리해 먹는다. 생선은 당연히 머리를 쳐내고 내장을 훑어내고 굽던 튀기든 삶아 먹는다. 그게 뭐가 잔인하단 말인가?
광룡파 조직원들을 그렇게 철저히 인간에 대한 인성이 배제 된 자들이었다. 그렇기에 살인을 저지른다고 해도 그들에게 죄책감 따윈 없었다.
“저기 오네요.”
수하의 시선이 정면을 향했다. 그러자 보성도 살짝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검은 승용차 한 대와 승합차 두 대가 광룡파 아지트 뒤쪽 냉동 창고가 있는 공터 안으로 들어왔다. 그걸 보고 보성이 거의 다 빨아서 필터만 남은 담배꽁초를 아무렇게나 앞쪽으로 던졌다.
“가자.”
그리고 앞쪽으로 걸어가면서 땅바닥에 나뒹굴고 있던 담배꽁초를 발로 밟아 껐다. 신기하게도 사람은 그렇게 쉽게 잘 죽이는 보성이지만 버린 담배꽁초의 불은 꼭 껐다. 이게 다 그가 어릴 때 주입 받은 교육 때문이었다. 바로 불조심 말이다. 중국에서도 불은 무서운 존재였다. 산이며 평지며 심지어 마을까지 순식간에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으니까. 그래서 어릴 때부터 글은 못 깨우쳐도 주입식으로 불조심에 대해서만큼은 철저히 시킨 것이다. 그 영향으로 보성은 확실하게 발로 짓이겨서 담뱃불을 껐다. 그 뒤 곧장 검은 승용차에서 내리고 있는 류수창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이내 사람 좋은 얼굴로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장 다 봐 왔어?”
“어. 뭐. 그런데 무슨 일이야?”
류수창은 불쑥 그에게 나타난 보성을 보고 어리둥절해 했다. 그러면서도 류수창의 눈을 재빨리 주위를 살폈다. 하지만 주위에 아무도 없고 보성의 옆에도 수하 하나만 붙어 있는 걸 보고 이내 경계를 풀었다.
류수창은 요즘 광룡파 내에 좋지 않은 기류를 감지하고 있었다. 때문에 오늘은 보스인 레이펑을 만나서 담판을 지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조직의 2인자인 장용이 그가 레이펑을 만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지금처럼 자잘한 일을 그에게 시키면서 말이다.
류수창은 장용의 지시로 오전에 수하들을 이끌고 근처 대형 마트를 찾았다. 그리고 거기서 조직원들이 먹을 식자대를 구입했다.
광룡파 조직원들이 하루에 먹어치우는 음식의 양은 상당했다. 그렇다고 매일처럼 장을 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래서 광룡파에서는 아지트 뒤쪽에 아예 냉동창고를 만들었다. 그리고 수시로 식자재를 구입해서 그 안에 저장해 뒀다. 그래야 혹시 모를 사태가 발생하면 거기 음식으로 버틸 수 있을 테니까.
류수창은 바로 그 식자재를 구입하러 자신의 수하들을 데리고 아지트를 비웠다. 하지만 이왕 나간 김에 류수창은 수하들과 같이 회식을 했다.
장용이 식자재를 사오라고 했지 언제까지 사오라고 하진 않았으니까. 오늘 중으로 아지트로 가면 될 일이었다.
그래서 최대한 늦장을 부리다 아지트로 돌아온 류수창을 장용의 왼팔인 보성이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께름칙한 기분이 들었지만 보성의 말에 그런가 보다 했다.
“과자 좀 사 왔냐?”
다른 녀석들과 달리 유달리 단 걸 좋아하는 보성이었다. 그런 보성이라면 장 봐 온 류수창을 찾아 올 만도 했다.
“과자는 무슨.... 네 나이가 몇인데....”
류수창이 한심한 눈으로 보성을 쳐다보다 뒤쪽 승합차에서 내리는 그의 수하들에게 외쳤다.
“빨리 식자재 창고에 넣어.”
“네. 형님.”
류수창의 수하들이 큰소리로 대답하고는 승합차에서 장 봐 온 식자재들을 바로 챙겨들었다. 그리고 우르르 냉동 창고로 움직일 때 류수창이 곧장 아지트 뒷문으로 움직였다. 딱 봐도 일은 밑에 수하들에게 시켜 놓고 자신은 아지트에 들어가려는 모양새였다. 그런 그를 보고 보성이 말했다.
“어이. 창고 장부에 들여 온 물품 확인서 작성해야지.”
“뭐?”
“그렇잖아. 네가 장봐 왔으니까 네가 직접 확인하고 장부에 사인해야지. 안 그래?”
식자재를 구입해 온 책임자는 류수창이었다. 때문에 그가 냉동 창고에 장 봐온 식자재를 넣고 그 수량을 장부에 기재 하고 확인 사인까지 하는 게 맞았다. 하지만 그건 류수창의 밑에 수하가 그 대신 확인하고 가라로 사인해도 됐다. 하지만 그걸 보성이 이렇게 걸고넘어지면 류수창도 별 수 없었다.
조직 내 규율이란 게 그냥 있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광룡파 보스인 레이펑은 그 규율을 어기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때문에 보성이 이 일을 레이펑에게 일러바친다면 한 소리 들어야 했기에 류수창은 일그러진 얼굴로 곧장 몸을 냉동 창고 쪽으로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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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은 류수창이 자신의 수하들과 같이 냉동 창고로 들어가는 걸 보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옆에 있던 그의 수하에게 턱짓을 보냈다. 그러자 그 옆의 수하가 핸드폰을 꺼내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고 그쪽에서 전화를 받자 바로 말했다.
“됐다. 나와라.”
그 말 후 그 수하는 들고 있던 핸드폰을 호주머니 속에 넣었다. 그때였다. 냉동 창고 주위에 숨어 있던 보성의 수하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보성은 그들을 보고 옆의 수하와 함께 창고 쪽으로 움직였다. 그렇게 보성이 냉동 창고 앞에 도착했을 때 그의 수하가 들고 있던 칼과 도끼를 보성에게 건넸다. 보성은 장갑을 끼고 나서 그 칼과 도끼를 각기 양손에 챙겨 들었다. 그리곤 주위를 둘러보고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안에 있는 것들...... 다 죽인다.”
그 말 후 보성이 맨 앞장을 서서 냉동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런 보성의 뒤를 칼과 도끼를 든 그의 수하들이 우르르 뒤 따랐다.
“헉!”
콰직!
보성은 냉동 창고 안에서 그와 제일 먼저 눈이 마주친 류수창의 수하 머리에 도끼를 박았다.
푸욱!
그리고 그 뒤에 넋놓고 서 있은 류수창의 또 다른 수하의 가슴에 칼을 찔러 넣었다.
슈욱!
단숨에 상대 심장을 꿰뚫은 보성의 창은 바로 밖으로 나왔고 동시에 류수창의 수하의 심장에서 뜨거운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그 피를 보고나자 보성을 비롯한 그의 수하들의 눈빛이 광기로 물들었다.
“쳐!”
뒤쪽에서 보성의 옆을 지키던 수하가 소리쳤고 그 소리에 보성의 수하들이 일제히 창고 안의 류수창과 그 수하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창고 안이 삽시간에 피로 물들었다.
“이보성!”
그때 창고 안쪽에서 악에 받친 귀에 익은 목소리가 울려왔다. 바로 류수창이 내지르는 소리였다.
“비켜!”
퍽!
류수창의 발차기에 가슴을 맞은 보성의 수하가 맥없이 나가 떨어졌다. 하지만 잠시 ‘켁켁’ 거리며 숨을 몰아쉬던 그 수하는 다시 몸을 일으켰다. 물론 그 사이 류수창은 그 수하를 지나쳐서 냉동 창고 출구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퍽! 퍼퍽!
류수창도 장용처럼 최근에 흑사회 간부가 되었다. 하지만 흑사회에서 간부가 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다른 간부의 추천이 있어야 했고 그 다음 자신의 실력을 입증 받아야 했다. 류수창은 레이펑의 추천을 받았고 쿵푸의 고수로 자신의 실력을 흑사회 본부에서 인정받았다.
그 말인 즉 류수창은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란 소리다. 그걸 증명하듯 류수창의 현란한 발차기에 칼과 도끼를 든 보성의 수하들이 픽픽 나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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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도 류수창이 싸움 꽤나 한다는 걸 잘 알았다. 실제 광룡파가 다른 조직과 싸울 때 류수창이 쿵푸로 상대를 쓰러트리는 것도 여러 번 봐 왔고. 하지만 그래 봤자 다. 무공 고수가 아닌 바에야 결국 다구리에 장사 없는 법.
“가자.”
보성이 직접 류수창이 있는 쪽으로 움직였다. 그런 그의 옆으로 둘 씩 보성의 수하들이 뒤따랐다. 그들 모두 칼과 도끼를 들고 있었는데 다들 피가 흥건히 묻어 있었다. 그 만큼 싸움에서 한가락 하한 녀석들이었다.
보성은 그들을 데리고 직접 류수창을 잡으려 하고 있었다. 이때 류수창은 일단 냉동 창고를 빠져 나가는 데 집중했다. 창고를 나간 다음에 아지트로 가서 이 사실을 보스인 레이펑에게 얘기하면 보성을 비롯한 자기를 죽이려 한 녀석들은 죄다 레이펑의 손에 죽어 나갈 터.
류수창은 자신을 향해 흉기를 휘둘러 대는 보성의 수하들을 날렵한 동작으로 피하고 쓰러트리고는 출구 쪽으로 밀고 올라갔다. 그런데 그의 앞에 보성이 나타났다.
“어이. 류수창!”
“너 이 새끼....”
안 그래도 자신을 냉동 창고 안에 밀어 넣고 그의 수하들을 동원해서 제대로 뒤통수를 친 보성을 갈아 먹어도 시원찮게 생각 중이던 류수창이었다. 그런데 녀석이 보란 듯 자기 눈앞에 나타났으니 이보다 반가울 수 없었다. 하지만 보성에게 다가가려던 류수창이 움찔했다. 그럴 것이 보성의 양 옆에 조직원들이 움직인 것이다. 그들은 재빨리 사방에서 류수창을 에워쌌다. 그걸 겉 눈질로 확인하던 류수창은 앞쪽에서 기척이 일자 황급히 몸을 틀었다.
서걱!
하지만 회피 동작이 좀 늦은 듯 그의 앞가슴으로 섬뜩한 느낌이 일었다. 그의 앞섬 옷자락이 잘려 있었고 그 안쪽으로 그의 가슴쪽 맨살이 드러났다. 피하지 않았다면 자칫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을 수 있었다.
류수창은 속으로 안도하며 바로 반격을 가하려 했다. 하지만 그의 정면에서 칼을 휘두른 보성은 이미 몸을 뺀 상태였다. 오히려 류수창이 그를 쫓아서 그를 공격하면 그를 에워싸고 있는 보성의 수하들이 기회다 싶어 움직일 터. 그럼 류수창도 부상을 피할 순 없었다. 넷이 한꺼번에 흉기를 휘두르는 데 그걸 류수창이 전부 피해 낼 순 없었으니까.
‘여기서 다치기라도 하면.....’
류수창의 몸놀림은 둔해 질 것이고 그럼 놈들은 더욱 집요하게 자신을 노릴 터. 결국 놈들에게 당할지 몰랐다.
류수창은 다른 곳은 몰라도 적어도 이곳 냉동 창고 안에서 죽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살기 위해서 대 놓고 보성에게 덤벼들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