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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쓰는 미드필더-667화 (667/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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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나 다를까? 마롱의 입에서 레이펑이 기대했던 말이 흘러 나왔다.

“일단 지금하고 있는 일에서 다 손 떼. 나머진 내가 알아서 해결 할 테니까.”

소나기는 피하고 볼 일이었다. 어차피 한 동안 잠수를 탈 생각이었던 레이펑은 지부장의 말에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마롱의 말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이따가 화순항으로 가. 거기가면 운룡호란 배가 있을 거야. 거기 선장을 만나면 물건을 줄 거야. 그 물건 챙겨서 일단 아지트에 근신하고 있어.”

마롱은 별거 아닌 거처럼 말했지만 그걸 듣는 레이펑은 아니었다. 제주 화순항은 서귀포시의 인덕면에 위치한 항구였다. 주로 중국에서 건너 온 배들이 많이 정박하는 그 항구는 흑사회에서 밀수품을 들여 올 때 자주 이용하는 곳이었다.

운룡호란 배 이름만 들어도 그 배는 중국에서 온 배였다. 그런데 그 배의 선장이 물건을 준다고 했다.

‘설마......’

그 물건이 문제였다. 만약 운룡호의 선장이 줄 거란 물건이 레이펑이 생각하고 있던 그 물건이 맞다면 레이펑은 시한폭탄을 맡게 되는 셈이었다.

“지부장님. 그 물건 말인데요. 그건 아니겠지요?”

“그거면?”

“네?”

레이펑은 서슬 퍼런 마롱의 안광에 그 물건이 그가 생각하고 있던 그 시한폭탄이 맞다는 걸 직감했다. 그리고 여기서 말 한 마디 잘못하면 살아서 이 방을 나가지 못할 거란 것도. 레이펑은 일단 살기 위해서 입을 열었다.

“아, 아닙니다. 그 물건 잘 받아서 가지고 있겠습니다.”

“그래야지. 중요한 물건이니까 잘 가지고 있어.”

“네.”

레이펑의 양쪽 구렛나루 사이로 주르르 땀방울이 흘러 내렸다. 하지만 레이펑은 억지로 웃고 있었다. 그런 레이펑을 보고 마롱이 한심하단 얼굴로 말했다.

“그만 가 봐.”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레이펑이 벌떡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마롱에게 고개를 숙인 뒤 휑하니 지부장 실을 빠져 나갔다. 냅다 꽁무니를 빼는 레이펑을 보고 제이동이 마롱에게 말했다.

“그림자 붙일까요?”

“.........”

마롱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물건이 물건인 만큼 마롱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만약 레이펑이 딴 마음을 먹고 있다면 그에 대한 대비를 해야 했기에 녀석에게 사람은 꼭 붙일 필요가 있었다. 마롱의 승낙을 얻은 제이동은 곧장 핸드폰을 꺼내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어. 나다. 지금 레이펑이 내려가니까 그림자 붙여.”

흑사회에서 그림자란 은밀하게 뒤를 쫓는 미행자를 말했다. 그림자는 들키지 않게 미행 훈련을 철저히 받는다. 그리고 들켜도 제 2, 제 3의 그림자가 있기 때문에 한 번 그림자에 걸리면 그림자를 떨쳐 내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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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펑은 식겁한 얼굴로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그리곤 그 엘리베이터를 타고 곧장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띵동! 촤르르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기 무섭게 그 안에서 튀어 나간 레이펑은 곧장 자신의 차로 향했다. 그리고 차에 타기 전 레이펑은 주위를 살폈다. 하지만 그의 눈에 거슬리는 건 어떤 것도 발견 되지 않았다. 그러자 곧장 차에 오른 레이펑은 차에 시동을 걸었다. 그리곤 차를 몰아서 흑사회가 지부로 쓰고 있는 건물을 빠져 나갔다.

레이펑은 혹시나 미행이 붙었나 싶어서 제주 시내를 몇 바퀴 돌았다. 하지만 누가 자신을 쫓는 의심스런 정황이 포착 되지 않자 그제야 차를 몰아서 자신의 아지트로 향했다. 그때 레이펑의 차 뒤로 경차 한 대가 따라 붙었다. 그 차 안에는 중년의 여자가 타고 있었는데 손에 장갑까지 낀 것이 딱 봐도 장롱 면허 아줌마였다. 그런데 그 중년 여자의 입에서 비웃음소리와 함께 중국말이 흘러나왔다.

“뻐언다안(笨蛋, 멍청이)!”

중년 여자가 바로 레이펑의 뒤를 쫓기로 되어 있던 그림자였던 것이다. 중년 여자는 이미 레이펑의 목적지를 알고 있었다. 때문에 굳이 시내에서 레이펑의 뒤를 쫓을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레이펑이 그의 아지트로 가는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걸 모르고 레이펑은 시내에서 혼자 미행이 있는지 알아본다고 난리법석을 떤 것이다.

그림자는 수시로 차선을 바꿔 가면서 레이펑에게 들키지 않게 그를 미행했다. 그리고 레이펑이 그의 아지트로 가는 게 확실하자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거기로 간다.”

그 말 후 중년 여자는 자신의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바로 유턴을 해서 사라졌다. 그 때 자신이 미행당하고 있는 줄 전혀 모르고 있던 레이펑은 자신의 아지트로 곧장 차를 몰았고 거기에 도착하자 차를 주차시키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스윽!

그때 아지트 근처에 숨어 있던 또 다른 그림자가 그걸 확인하고 또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그 전화를 받은 곳은 광룡파의 아지트 근처에 세워져 있던 승합차였다. 그런데 그 승합차 안은 각종 장비들이 가득 들어 차 있었다. 그리고 그 차 안에 두 명의 남자들이 타고 있었는데 그 중 한 명은 전화를 받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헤드폰을 머리에 착용하고 있었다.

“어. 놈이 들어갔다고? 알았다.”

간단히 통화를 마친 승합차 안에 남자가 헤드폰을 착용하고 있는 남자에게 말했다.

“레이펑이 들어갔다는데 맞아?”

그러자 헤드폰을 착용하고 있던 남자가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흑사회 그림자들이 미행에 이어서 광룡파 아지트 안을 도청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레이펑과 광룡파 조직원들은 흑사회 손바닥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당연히 그 사실을 레이펑과 광룡파 조직원들은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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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운이 좋았다. 장용이 승합차에 싣고 찾은 성산 병원의 응급실에 김기수와 친분이 있는 의사가 있었던 것이다. 김기수가 그 의사에게 싸바싸바를 하고 나서 곧장 장용에게 와서 말했다.

“빨리 돈 챙겨 와요.”

김기수의 돈이란 말에 장용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중인지 바로 눈치 챘다.

“얼마나?”

“두 당 천만 원이니까 5천!”

김기수의 5천이란 말에 장용이 눈살을 찌푸렸다. 5천만 원이 뉘 집 똥개 이름도 아니고. 하지만 장용은 바로 움직였다.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이었다. 장용에게는 돈보다 그의 수하들 목숨이 더 중했다.

하지만 당장 무슨 수로 5천만 원을 준비한단 말인가? 하지만 김기수는 곧장 은행으로 달려갔다. 마침 그의 수중에 광룡파 운영 자금이 들어 있는 통장이 있었다. 그 돈은 조직의 돈이라 보스인 레이펑의 허락 없이 함부로 인출해선 안 됐다. 그러나 이미 레이펑에게 죽을 각오를 하고 있던 장용에게는 인출해도 되는 돈이었다.

장용은 은행에서 현금으로 5천 만원을 인출해서 그걸 들고 병원으로 뛰어갔다. 그 사이 그의 수하들의 응급 처치가 이뤄지고 있었다.

“여기....”

장용이 찾아 온 현금 5천 만 원을 김기수에게 건네자 김기수가 그 돈은 응급실 의사에게 넘겼다. 그러자 응급실에 응급 처치만 받고 대기 중이던 장용의 수하들이 차례로 수술실로 올라갔다.

“휴우!”

마지막 수하까지 수술실에 들어가는 걸 확인하고나서야 장용이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그런 그에게 김기수가 다가와서 말했다.

“괜찮겠습니까?”

미친 짓으로 수하들은 살렸지만 정작 장용이 문제였다. 이 사실을 광룡파 보스 레이펑이 알면 장용은 죽은 목숨이었다.

“뭐 어쩌겠나? 다섯이 죽는 거 보다 하나 죽는 게 낫겠지.”

곧 사형대에 끌려갈 사형수처럼 처연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장용을 보고 김기수가 말했다.

“여긴 내가 있을 테니까 들어가 보세요. 가서 사정 해 보십시오. 혹시 모르잖습니까?”

김기수는 만약을 얘기했지만 누구보다 레이펑의 성정을 잘 아는 장용이었다. 레이펑은 사실대로 말하고 자비를 구한다고 해서 장용을 살려 줄 위인이 아니었다. 하지만 직접 레이펑을 보고 얘기를 하긴 해야 했다.

안 그러면 레이펑이 광룡파의 다른 조직원들에게 분풀이를 할 수 있었다. 특히 장용을 따랐던 수하들에게. 그래서 장용은 타고 온 승합차를 몰고 다시 아지트로 향했다. 거기가 그의 무덤이 될 수 있었지만 장용은 묵묵히 차를 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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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펑은 자신의 아지트 안에 들어서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하아!”

그리고 동시에 짜증이 확 치밀어 올랐다.

“이 씨발 놈들. 확 다 쳐 죽여서........”

레이펑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레이펑은 제주 지부장인 마롱을 비롯해서 북경의 흑사회 본부와 흑사회 회장까지 싸잡아서 욕을 해댔다. 그런 레이펑을 광룡파 조직원들은 묵묵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렇게 레이펑은 10여분에 걸쳐서 욕으로 진정성 넘치는 욕 랩을 해대다가 어느 정도 화가 진정 되자 불쑥 말했다.

“....근데 장용 어디 있어?”

레이펑이 그의 오른팔인 장용을 찾는 건 당연했다. 그런데 그가 장용을 찾자 그때까지 가만있던 광룡파 조직원들이 움찔하며 슬그머니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수하들의 그런 행동을 눈치 못 챌 레이펑이 아니었다.

“가만....... 다친 애들 어디 있어?”

그러고 보니 레이펑이 보낸 의사로부터 치료를 받은 녀석들도 어째 보이지 않았다. 사도철에게 당한 녀석들과 장용이 같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무슨 말이겠는가?

“장용. 이 미친 새끼가........”

레이펑은 그때부터 꼭지가 확 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도의 인내심을 발휘해서 수하들을 추궁했다. 그리고 사실을 확인 했다. 그의 생각대로 장용이 기어코 다친 수하들을 데리고 병원으로 간 것이다. 레이펑이 보낸 의사의 말만 듣고 수하들을 살리겠다고 기어코 그의 명령을 무시한 것이다.

레이펑도 수하들이 죽어 간다는 데 당연히 병원에 보내고 싶었다. 평소라면 당연히 그렇게 했을 테고. 하지만 지금 그들이 병원에 가게 되면 자신과 나머지 광룡파 조직원들이 노출이 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사도철이 움직인 제주도 본토 조직원들에게.

레이펑도 사도철이 제주도 본토박이 조직을 뒷배로 두고 있다는 것은 익히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철을 친 건 그 만큼 자신이 있어서였다.

사도철을 잡아서 탈탈 다 털어 먹고 난 뒤 그를 시멘트 통에 넣어서 바다에 던져 버릴 생각이었으니까. 그러면 후환 따윈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일이 틀어졌다.

사도철은 잡지 못했다. 그러니 사도철이 가만있을 리 있겠는가? 아마 지금 쯤 제주도 본토박이 조직원들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레이펑과 광룡파 조직원들을 찾고 있을 터였다.

사도철로부터 광룡파 조직원들 중 다친 녀석들이 있단 얘기를 들은 놈들이 병원인들 안 뒤질 리 없었다. 그런데 병원에 장용과 사도철에게 당한 조직원들을 떡하니 데리고 갔다니.

놈들에게 장용과 다친 수하들이 잡혔다면 이곳은 더 이상 안전한 아지트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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