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믿고 쓰는 미드필더-649화 (649/712)

<-- 베이징 올림픽 -->

백성조는 장PD와 현수를 근처 소고기 집으로 데려갔다. 딱 봐도 비싸 보이는 곳으로 장PD는 백성조가 책임 PD인 자신을 제대로 예우해 준다고 여겼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기도 했다.

백성조는 최근 MBS 방송국 드라마와 예능 프로에서 Sj엔터테이먼트 소속사 연예인들이 차별을 받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있었다.

그 이유는 거기 드라마와 예능 책임 PD들이 소속사를 길들인다는 명분으로 Sj엔터 소속 연예인들을 까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 그래도 그 때문에 골치가 아팠던 백성조였다. 그런데 잘하면 그 문제를 오늘 바로 해결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현수야. 너 나 좀 도와줘야겠다.”

식사 중 잠깐 화장실을 간 현수를 따라 나 온 백성조가 자신의 용건을 현수에게 얘기했다.

“뭘 도와줘요?”

“그게........”

백성조는 현수를 이용해서 Sj엔터테이먼트에 필요한 문제를 해결할 생각임을 사실대로 얘기했다. 하지만 현수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그 말은 저보고 내일 저녁에 한영대와의 경기에 뛰라는 소리잖아요?”

“그렇지. 대신 네 부탁은 뭐든 내가 다 들어 줄게.”

“뭐든 지요?”

“야! 뭘 그렇게 진지하게 날 보고 말해. 들어 줄 수 없는 황당한 부탁 같은 거 빼고.”

현수는 에이전트인 백성조에게 이런 식으로 짐 하나 지워 놓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싶었다. 안 그래도 곧 K리그 신인드래프트가 곧 있을 터. 현수는 올해 거기에 참가할 생각이었다.

그로 인해 K리그에서 강현수를 두고 영입 전쟁이 장난 아닐 터. 그때를 대비해서 백성조의 오늘 부탁은 가능하면 들어 주는 게 좋았다.

“알았어요. 까짓 뛰어 주죠.”

“잘 생각했다.”

얘기가 끝난 둘은 곧장 장PD가 기다리고 있는 자리로 움직였다. 그리고 장PD와 백성조간의 밀당이 시작 되었다.

식사가 끝나 갈 무렵 백성조가 아예 현수가 내일 뛰는 대신 MBS 방송국에서 현수에게 뭘 해 줄 건지 대 놓고 물었다. 그러자 장PD가 말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든 다 들어 주겠소.”

그 대답에 백성조는 Sj엔터테이먼트 소속 연예인들이 요즘 MBS 방송국에서 당하고 있는 부조리를 얘기했다.

“.......그, 그건 우리 스포츠국의 일이 아니라서.....”

장PD는 바로 손을 내저었다. 그런 그를 보고 백성조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우리 장PD는 내일 현수가 필요 없구나?”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그쪽과 난 소속이 다르단 말이죠. 내가 책임 PD지만 그쪽 책임 PD에게 감내라 배나라 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라서.....”

“그럼 그 위치에 계신 분에게 얘기를 하세요.”

“네?”

“스포츠국 국장님과 친하시다면서요?”

“그, 그건....”

“싫으시면 오늘 얘기는 없었던 걸로....”

“자, 잠깐. 시, 시간이 필요합니다.”

장PD는 핸드폰을 들고 자리를 비웠고 10여분 쯤 뒤 환하게 웃은 얼굴로 돌아왔다.

“저희 스포츠국 국장님께서 그 문제라면 다 해결해 주시기로 하셨습니다. 대신 강현수 선수도 왕전왕전에 결승전 까지 다 뛰어 주셔야 합니다.”

“네?”

예상 밖의 저쪽 요구에 현수가 고개를 내저었고 그걸 본 백성조가 이번엔 장PD에게 시간을 달라고 했다. 그리곤 강현수를 데리고 화장실로 향했다.

“결승전까지 몇 경기 더 뛰어야 하는데?”

“총 4경긴데 한 경기 뛰었으니 3경기 남았네요.”

“그냥 뛰어주라.”

“안 돼요. 힘들단 말이에요.”

“좋아. 그럼 네 부탁 하나를 더 들어 줄게.”

백성조의 그 말에 잠깐 생각하던 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현수가 승낙하자 백성조가 바로 손을 내밀었고 그 손을 현수가 잡았다.

--------------------------------------------------

장PD와 백성조는 합의가 이뤄지자 그제야 술을 마셨다. 그렇게 시작 된 술판은 2차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유는 강현수 때문에 말이다.

내일 시합에서 뛰어야 하는 강현수는 당연히 술을 마실 수 없었다. 그런 강현수를 두고 두 사람이서 술을 마시자니 흥이 날리 없었던 것이다.

“저 그럼 내일 봅시다.”

“조심해서 들어가십시오.”

“자주 뵙겠습니다. 장PD님.”

백성조와 현수는 장PD가 대리운전자가 모는 자신의 차를 타고 떠나는 걸 직접 확인했다. 그게 접대에서 마지막으로 할 일이라나 뭐래나.

“내가 왜 이런 걸 배워야 합니까?”

“야. 너 죽을 때까지 축구만 할 거냐? 막말로 나중에 다른 일도 할 수 있는 거 아냐? 그때를 대비해서 배운다고 생각해. 가자.”

“가긴 어딜 가요. 저 갈 데 있단 말입니다.”

“갈 데? 어디?”

현수는 왠지 자신이 성보라의 집에 간다는 말을 백성조에게 해선 안 될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친구 녀석이 군대를 가서요.”

“그거 다음으로 미루면 안 돼?”

“왜요?”

“왜긴. 오늘 아니면 또 언제 시간이 날 줄 알고. 그래서 너하고 얘기나 좀 하려고 그러지.”

얘기 좋다. 하지만 백성조는 나쁜 술버릇이 있다. 바로 술 취하면 한 소리를 계속 리와인드한다는 거. 현수는 한 번 당해 본 적이 있었던 터라 진저리를 치며 말했다.

“안 돼요. 그 친구 내일 군대 간단 말입니다. 안 그래도 계속 미뤄 왔는데 오늘 못 보면 저 친구 하나 잃을지 몰라요.”

현수가 이렇게까지 얘기하니 백성조도 더는 그를 붙잡지 못했다.

“그럼 또 봐요.”

현수는 곧장 택시를 잡아타고는 백성조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런 현수를 보고 백성조는 입맛을 다셨지만 내일 시합이 있는 녀석인지라 더는 귀찮게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백성조와 헤어진 현수는 택시를 타고 곧장 성보라가 사는 집으로 향했다. 성보라 집 앞에서 택시가 멈춰섰다. 그리고 택시에서 계산을 끝낸 현수가 내렸고. 현수가 그 집 앞 대문 앞에 섰을 때 현수를 태우고 온 택시가 그의 뒤쪽을 지나쳐갔다.

“크음.”

현수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전장에 나서는 병사처럼 비장한 얼굴로 성보라 집 초인종을 눌렀다.

------------------------------------------------------

초인종이 울리고 초인종 카메라를 통해 안에서 확인하는 거 같은 낌새가 느껴지더니 이내 대문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일었다.

찌이잉! 철컥!

철제 대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안에서 현수를 확인하고 문을 열어 준 것이다. 현수는 열린 철제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철제 대문이 잠기게 잘 닫은 후 마당을 거쳐서 현관 입구 쪽으로 움직였다.

현관문은 열려 있어서 현수는 바로 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벌써 거실에서부터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거 쎄 한데....’

현수는 조심스럽게 현관 앞에 슬리퍼를 신고 거실로 들어갔다. 그러자 거실 소파에 굳은 얼굴로 앉아 있는 성보라와 이윤미가 보였다. 그녀들은 서로 눈빛조차 마주치지 않았다.

현수의 등장에 이윤미의 시선이 움직였다. 하지만 성보라는 현수는 꼴도 보기 싫은 지 계속 한 곳만 주시하고 있었다.

“우리 플레이 보이씨께서 오셨네. 아니 사기꾼이라고 해야 하나?”

이윤미가 바로 가시 돋친 독설을 내 뱉었다. 현수는 그런 이윤미를 쳐다보았는데 그녀 표정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 어떤 말로도 그녀의 마음을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오히려 성보라가 겸연쩍은 얼굴로 짧게 한숨을 내 쉬는 게 잘만하면 설득이 가능할 거 같았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성보라를 설득한다고 달라 질 건 없었다.

무엇보다 자신으로 인해서 성보라와 이윤미의 관계가 파탄이 난 거 자체가 문제였다.

‘그렇다면.......’

현수는 자신이 계획한 대로 이 사태를 해결하기로 결심하고 일단 두 사람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그런 그에게 이윤미가 가소롭다는 듯 말했다.

“아주 철판을 깔았네. 깔았어. 그래 무슨 개소리를 늘어놓을지 들어는 보자.”

일본에서 현수에게 안겨서 껄떡 숨넘어가도록 좋아 죽겠다던 이윤미가 아니었던가? 그런 그녀가 이제는 현수를 철천지원수로 대하고 있었다. 이래서 님이 남이 되는 건 한 순간이라고 한 모양이었다.

현수는 이런 이윤미의 반응이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가 자신이 모든 것이나 마찬가지인 소속 연예인과 붙어먹었으니까. 하지만 이윤미의 그런 집착은 너무 병적이었다. 사태를 굳이 이런 식으로 만들 필요는 없었는데 말이다. 현수는 씁쓸하게 웃으며 이윤미와 성보라 둘에게 수면 마법을 걸었다.

“슬립(Sleep)!”

그러자 현수를 곧 죽일 뜻 쏘아보고 있던 이윤미와 시선을 딴 곳에 두고 있던 성보라 모두 소파에 앉은 상태에서 잠들었다.

이윤미는 소파 옆으로 쓰러졌고 성보라는 소파 등받이에 기댄 체 고개를 뒤로 젖히고 누웠다.

----------------------------------------------------

현수는 그렇게 잠든 두 사람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리곤 진심으로 두 사람에게 사과를 했다.

“원래는 깨어 있을 때 해야 할 사과지만 내 사과를 두 사람이 받아 드리지 않을 거 같아서. 아무튼 둘의 관계는 예전과 같아 질 거야. 그리고 윤미씨 한테는 정말 미안해. 하지만 이게 최선인 거 같아.”

현수의 계획은 이윤미의 성보라의 기억을 조작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현수와 이윤미의 관계가 서로 호감은 있지만 육체적인 관계까지 가지 않은 것으로 만들 터였다. 그리고 성보라는 일본에서의 현수와 맺게 된 육체적 관계가 발전 되어 연인 사이가 된 것으로. 또 현수가 일본에서 이윤미와 관계를 깨끗이 정리한 것으로 만들어서 사실상 현수와 성보라가 사귀고 이윤미는 그걸 알면서 성보라를 위해서 둘의 관계를 모른 척 하는 매니저로 남게 만들 계획이었다.

이를 위해서 현수는 인벤토리에서 메모리 컨트롤 모자를 꺼냈다. 그리고 이윤미부터 머리에 그 모자를 씌웠다. 그러자 마법 아이템인 메모리 컨트롤 모자에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상대의 기억 어느 부분을 지우고 어떻게 조작할지 정하세요. 모자에 손을 올리면 상대의 기억 속을 검색할 수 있습니다.]

현수는 메모리 컨트롤 모자가 시키는 대로 모자를 쓴 이윤미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현수가 그의 기억 속으로 들어갔다.

현수는 이윤미의 과거 기억속으로 들어갔다. 그가 이윤미를 처음 만났을 때, 그리고 그녀와 사귀기로 했을 때, 그리고 그녀와 뜨거웠던 시간들. 그 모든 추억을 현수는 이윤미의 기억 속에서 지워버렸다. 그리고 다른 조작 된 기억을 그녀 기억 속에 심었다.

“휴우. 됐다.”

이제 이윤미는 더 이상 자신의 여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이제 현수의 여자인 성보라의 매니저일 뿐이었다.

현수는 그런 이윤미를 보고 씁쓸하게 웃으며 그녀 머리에 씌워져 있던 메모리 컨트롤 모자를 벗겼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그 모자를 들고 성보라에게 다가가서는 그녀 머리에 메모리 컨트롤 모자를 씌웠다.

[상대의 기억 어느 부분을 지우고 어떻게 조작할지 정하세요. 모자에 손을 올리면 상대의 기억 속을 검색할 수 있습니다.]

현수는 역시 메모리 컨트롤 모자가 시키는 대로 했고 성보라의 과거 기억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녀와 처음 만났을 때, 그리고 이윤미와 현수가 사귀기로 한 사실을 알고 두 사람을 축복했을 때, 그리고 일본에서 현수와 넘어선 안 될 선을 넘고 자책해야 했던 기억들.

“역시.......”

현수 생각대로 자책감에 사로잡힌 성보라가 결국 그 사실을 이윤미에게 밝혔고 그 얘기를 들은 이윤미는 눈이 돌아갔다. 그리고 성보라와 현수를 짐승 취급했다. 그렇게 그 동안 친 자매처럼 지내왔던 이윤미와 성보라의 관계도 파탄이 나고 말았다. 현수는 더는 성보라의 기억을 들여다보지 않고 바로 지워 버렸다. 보나마나 이윤미가 그 동안 얼마나 성보라를 괴롭혀 왔을지 뻔했으니까.

“이젠 다 잊어. 얼굴이 반쪽이 다 됐군.”

현수는 성보라의 기억을 지운 뒤 그녀의 가름한 턱선을 손으로 쓰다듬어 주었다. 그렇게 계획 했던 대로 이윤미와 성보라의 기억을 지우고 또 조작하는 걸 전부 끝낸 뒤 현수는 메모리 컨트롤 모자를 다시 상태창의 인벤토리에 집어 넣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