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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신이 룸살롱에 나타나자 바로 몸을 일으켜서는 우르르 룸살롱을 나간 것이다. 그들은 이명신이 나타나기 전에 아가씨들과 볼일을 다 봤던 것.
그들은 김조현 회장과 이런 접대 자리를 수십 번이도 넘게 해 온 능구렁이들이었다. 딱 봐도 좀팽이 같은 이명신이 그들에게 2차 접대를 해 주지 않을 거 같자 선수를 쳐서 룸살롱 안에서 아가씨들과 먼저 섹스를 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술값은 당연히 이명신에게 덮어 씌웠고.
“이, 이봐요. 잠깐만.....”
이명신이 그들을 붙잡으려 했지만 그들은 미꾸라지처럼 그를 피해서 휑하니 룸살롱을 나가 버렸다.
“헉!”
그런 그들을 이명신은 닭 쫓던 게 지붕 쳐다보듯 멍하니 바라만 봤다. 결국 이명신은 눈물을 머금고 카드를 긁었다. 하지만 청소년 대표 팀 감독만 될 수 있다면 2천 5백만 원이 아깝지는 않았다.
“그래. 나라고 대표팀 감독이 되지 말란 법 없지. 대표팀 감독만 되면......”
프로팀 코치가 아니라 감독이 바로 될 수 있었다. 그럼 지금 투자의 몇 배, 아니 몇 십 배는 더 챙길 수 있을 터.
이명신은 속은 쓰라졌지만 미래에 K리그 감독이 되어 있을 자신을 생각하며 룸살롱을 나왔다. 그리고 편의점에 들러서 천오백 원 하는 짬뽕 컵라면으로 해장을 한 후 아깝지만 내일 차를 써야 했기에 대리 운전을 불러서 집으로 갔다.
“어휴. 술 냄새....”
집에서는 당연히 마누라가 그를 구박했다. 아니 무시했다. 술 취한 남편은 챙겨 줄 생각은 하지 않고 그에게 등을 돌린 채 계속 자버렸다.
이명신은 자기 베개를 챙겨들고 안방을 나와서 거실 소파에 몸을 뉘였다. 피곤했던지 이내 수마가 몰려왔고 그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으윽!”
그렇게 아침이 밝았고 아침 햇살이 거실에 비춰들면서 소파에서 뻗어 자던 이명신은 눈이 부셔서 잠에서 깼다.
“으으으윽!”
찌뿌듯한 몸을 일으켜 소파에 앉은 이명신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는데 집에 아무도 없었다. 마누라는 아침부터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아침상을 차려져 있지 않았고.
그나마 어제 집에 오기 전에 해장으로 짬뽕 라면을 먹은 덕에 숙취는 덜 했지만 그래도 해장국 한 그릇이 간절했다. 이럴 때 마누라가 콩나물국이나 북엇국을 끓여 놨다면 한 그릇 말아서 뚝딱 먹어치우고 출근하면 좋았을 텐데.
“쩝쩝....”
없는 마누라 타박해 봐야 뭐하겠는가? 이명신은 욕실로 가서 씻고 나와서 옷을 갈아 입었다.
“아아!”
그리곤 벗어 놓은 자신의 옷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어제 집에 오기 전 배터리가 4%밖에 남지 않았었다. 아니나 다를까? 확인하니 배터리가 다 돼서 핸드폰이 꺼져 있었다.
이명신은 서재에 충전이 다 되어 있는 배터리를 핸드폰의 배터리와 바꿔 넣었다. 그리고 핸드폰을 켜자 10여 통의 전화가 걸려와 있었다.
이명신은 누가 전화를 했는지 확인했는데 연신대 축구부 주장인 이기찬이 10통이나 전화를 했다.
“아차!”
그제야 이명신은 어제 연신대 선수들에게 8시까지 운동장에 집합하라고 한 사실이 생각났다. 시간을 확인하니 벌써 10시 30분이었다.
“젠장........”
이일로 감독으로서 위신이 깎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명신이 누구던가? 이명신은 곧장 연신대 축구부 주장인 이기찬에게 전화를 했다.
-네. 감독님.
“지금 협회야. 여기 급한 일이 있어서 일 보고 가면 오후나 될 거 같아. 그러니 주장이 알아서 선수들 훈련시켜.”
그 말 후 이명신은 바로 전화를 끊었다.
“휴우!”
그리곤 안도의 한숨을 내 쉰 뒤 이명신은 느긋하게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어차피 오후까진 시간이 남았고 이명신은 자신의 단골 찜질방으로 향했다. 거기서 남은 숙취도 풀고 거기서 유명한 성게 미역국으로 해장까지 하고 연신대로 갈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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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신대 선수들은 이명신 감독의 지시대로 다음 날 8시까지 운동장에 집합을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오지 않았다. 한 사람은 그런 지시를 내린 사람이고 또 한 사람은 선수들이 가장 껄끄러워 하는 선수였다.
대표로 주장인 이기찬이 두 사람에게 전화를 했지만 두 사람 다 전화를 받지 않았다.
“쳇.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그러게. 강현수야 그렇다 쳐도. 감독님이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냐?”
“맞아. 이럴 거 같으면 뭐 하러 이 아침에 나오라고 한 거야?”
당연히 연신대 선수들은 불만이 폭주했다. 그런 그들을 다독인 건 역시 연신대 주장인 이기찬이었다.
“무슨 사정이 있겠지. 다들 이왕 나왔으면서 불만만 토로하진 말고 그냥 기분 좋게 훈련을 하자. 어차피 그 두 사람이 있나 없나 해 왔던 훈련 아냐?”
주장의 그 말에 선수들은 속으로 불만을 삭히고 훈련에 임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연신대 선수들도 이번 대학 축구 왕중왕전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싶었던 것이다.
어째든 연신대의 성적이 좋으면 그들이 향후 프로나 실업팀 진출에 도움이 됐으면 됐지 해가 될 일은 없었으니까.
그렇게 아침부터 시작 된 훈련은 쉬지 않고 두 시간 가량 이어졌다. 선수들 모두 구슬땀을 흘려 가며 훈련을 하고 있던 그때 강현수가 나타났다.
그는 운동장을 훑어보다가 이명신 감독이 보이지 않자 곧장 축구부실로 들어갔고 거기서 나오지 않았다.
그런 그를 우연히 보게 된 1학년이 휴식 시간에 말을 했고 그 말을 들은 연신대 선수들 모두 표정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누구도 뭐라 말을 하지 못했다.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든다고 지금 강현수의 심기를 건드려봐야 좋을 게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주장인 이기찬의 생각은 달랐다. 그래서 연신대 선수들에게 훈련을 하게하고 자신만 조용히 축구부실을 찾았다. 그때 강현수는 축구부실의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인터넷으로 뭔가 검색을 하고 있던 강현수는 이기찬을 보고 아는 척을 했다.
“왔냐?”
“어. 근데 너..... 좀 너무 하는 거 아냐?”
“뭐가?”
“감독님께서 8시까지 나오라고 하셨잖아?”
“그거? 좀 늦는다고 감독님께 말했는데 못 들었어?”
강현수의 그 말에 이기찬은 더 할 말이 없었다. 감독에게 얘기를 했다면 문제 될 게 없었으니까. 하지만 실제로 강현수는 이명신 감독에게 늦는다고 연락을 한 적이 없었다. 그냥 이 자리에서 당장 이기찬과 싸우기 싫어서 둘러 댄 말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명신 감독이 아직 출근도 하지 않고 연락도 되지 않고 있던 터라 주장인 이기찬도 현수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그때 이명신 감독도 양반은 못 되는 모양이었다. 이기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이기찬은 혹시 몰라 훈련 중임에도 손에 핸드폰을 쥐고 있었다. 이기찬은 전화를 건 사람이 이명신 감독임을 확인하고 바로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이내 황당한 얼굴로 자신의 핸드폰을 내려다 보았다.
“이런 미친......”
평소 과묵한 편인 이기찬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속내를 잘 표출 하지 않는 그인데 좀 전의 이명신 감독의 전화를 받고서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차마 현수가 있어서 대 놓고 이명신 감독의 욕을 하진 못했지만 이기찬은 시뻘게진 얼굴로 곧장 축구부실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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꽝!
이기찬이 신경질적으로 축구부실 문을 닫고 나가는 걸 보고 현수가 혀를 찼다.
“쯧쯧....”
하지만 이기찬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대학 축구에서 감독의 위치는 절대 갑이었다. 때문에 이기찬이라도 감독의 눈 밖에 나면 원하는 프로 팀에 들어 갈 수 없었다. 거기다 주장인 그는 다른 선수들도 챙겨야 했다. 자신으로 인해서 연신대 팀워크에 문제가 생겨서 좋지 못한 성적을 거두게 된다면 착한 그로서는 그 죄책감에 더 힘들어 질 게 뻔했다. 그런 이유로 이기찬은 결국 화를 삭이고 다른 선수들을 독려해서 열심히 훈련에 임할 터였다.
아니나 다를까? 현수가 잠깐 자리에서 일어나서 창밖을 쳐다보니 이기찬이 훈련 중인 연신대 선수들에게 합류해서는 선수들을 독려하는 게 보였다.
“그럼 그렇지.”
현수는 이내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리고 하던 검색을 계속했다.
“SG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라.......”
새벽에 현수는 자신의 에이전트 백성조를 만났다. 그때 백성조로부터 독일 분데스리가의 팀 중 하나인 프랑크푸르트가 그에게 관심을 표명했단 사실을 얘기했다.
현수가 아는 프랑크푸르트는 오랜 역사를 지닌 명문클럽으로 바로 한국의 차범군 선수가 무려 46골을 기록하는 등 활약한 곳이다.
“연고지는 헤센주(州) 프랑크푸르트암마인(Frankfurt am Main), 팀 애칭은 ‘마인(Main)의 디바(diva)’고 홈구장은 6만 1416명 수용규모의 발트스타디온(Waldstadion)..........”
현수는 인터넷을 통해서 SG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SG Eintracht Frankfurt)에 대해 하나 둘씩 알아나갔다.
“독일이라.......”
백성조의 말에 따르면 구체적인 영입 조건에 대해 얘기 나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그곳 구단주와 감독이 현수에 대한 영입 의사가 대단했다고 했다.
현수가 독일로 온다면 모든 편의는 다 제공하고 그를 위해서 기꺼이 차범군 선수의 등번호를 달게 해 주겠다고 했단다.
“차범군!”
차범군 선수는 1989년 현역에서 은퇴 할 때 리그에서 98골을 넣고 있었다. 이는 독일 분데스리가 외국인 선수 최다 득점 기록이었다. 그 이전에는 네덜란드의 빌리 립펜스가 92골로 최고였다. 이후에는 10년 쯤 지난 후인 1999년 스위스의 스테판 샤퓌자가 106골로 그 기록을 깼다. 그러니 10년 동안 분데스리가에서 그의 기록이 깨지지 않았단 소리다. 당시로서는 세계 극강의 리그였던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10년 동안 깨지지 않을 기록을 동양의 선수가 세웠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일 일 수밖에 없었다.
축구 선수인 강현수도 당연히 차범군을 알았고 그를 롤 모델로 삼았다. 하지만 워낙 대단한 선수라 현수의 능력은 그의 발치도 따라가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차범군이 뛰었던 곳에서 나를 원한다고?”
강현수의 가슴이 갑자기 쿵쾅거리며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