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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쓰는 미드필더-632화 (632/712)

<-- 베이징 올림픽 -->

“더 주세요.”

사지희는 현수가 만든 칼국수를 두 그릇 먹었고 현수도 남은 칼국수는 물론 국물에다가 즉석밥을 데워서 말아 먹었다.

“아아. 잘 먹었다.”

그렇게 배가 불룩하게 저녁을 먹은 두 사람은 나란히 같이 서서 설거지를 했다. 사지희가 현수가 칼국수를 만들었으니 자신이 혼자 설거지를 하겠다고 했지만 현수가 혹시나 싶어 그녀와 같이 설거지를 한 것이다.

사지희는 역시나 서툴렀다. 하지만 손끝은 여물어서 현수가 가르쳐 주자 깨끗하게 설거지를 끝냈다. 설거지 후 현수는 사지희와 같이 TV를 보다가 마트에서 사온 캔 맥주를 마셨다. 현수가 금방 한 캔을 다 마시고 다른 캔을 딸 때 사지희의 핸드폰이 울렸다.

“아빠에요.”

핸드폰을 확인한 사지희는 곧장 전화를 받았다.

“네. 네. 친구 집이요. 알았어요. 들어갈게요. 아뇨. 택시 타고가면 돼요.”

제주도에 갔던 부친 사도철이 집에 온 모양이었다.

“저 그만 가볼게요.”

사지희는 현수와 이렇게 한 공간에서 계속 같이 살고 싶었다. 하지만 결혼도 하지 않은 젊은 두 사람이 동거 하는 거 자체는 사지희도 반대였다. 현수는 그런 사지희를 집밖 도로까지 배웅해 주었다.

“들어가면 전화해요.”

현수는 사지희를 택시에 태워 보내고 택시 차량 번호를 기억한 뒤 곧장 원룸으로 돌아갔다.

“으음.......”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같이 있던 사지희가 떠나고 나자 원룸이 썰렁했다. 하지만 현수도 사지희를 계속 붙잡아 둘 순 없었다. 막말로 그가 그녀를 책임 질 거도 아니고 말이다. 그래서 현수는 남은 캔 맥주를 다 비우고 술김에 잠이 들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응?”

모르는 번호였다. 그래서 현수는 받을지 말지 고민을 하다가 그냥 받았다.

“네.”

-강현수 선수?

여자 목소리였다. 그런데 그의 이름에 선수를 붙였다. 그래서 현수는 혹시 기자인가 싶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저 이혜나에요. 왜 해장국집에서 만났던.......

“아아! 그 변호사.”

-맞아요. 휴우. 저 기억해 줘서 고마워요.

당연히 기억이 날 밖에. 당시 워낙 급하게 모텔에서 섹스를 하고 헤어진 탓에 이혜나란 여자에 대해 제대로 알아 볼 시간도 없었다. 그게 못내 아쉬웠는데 이렇게 그녀가 먼저 연락해 주니 오히려 자신이 더 고마운 현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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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혜나가 어떻게 자신의 전화번호를 알아냈는지 현수는 궁금했다. 당시 급 만남에서 모텔비 대신으로 다 섹스 판이 벌어졌지만 그때 현수는 이혜나와 전화번호를 교환한 적이 없었다.

“근데 제 번호는 어떻게 아셨어요?”

현수가 직설적으로 바로 묻자 이혜나가 바로 대답을 했다.

-인터넷에 현수씨 기사 난 걸 보고 물어물어 알아냈어요. 사실 저도 연신대 법대 출신이거든요. 그래서 아는 후배 중 연신대 축구부에 아는 사람이 있나 알아 봤더니 거기 주장의 여친과 제 후배가 친한 사이더라고요.

즉 연신대 축구부 주장인 이기찬을 통해서 자신의 전화번호를 알아냈단 얘기였다. 이기찬은 현수의 전화번호를 아는 몇 안 되는 지인 중 한 명이었고.

“그러셨구나. 그런데 왜 저한테 전화 하셨는지........”

-아아. 술 한 잔 같이 하자고요. 그때 신세도 졌고 또 만남도 너무 짧았고........ 지금 시간 되시면 좀 봤으면 하는데?

“어디신데요?”

-신촌요.

신촌이면 현수의 원룸 근처였다. 현수는 혹시 몰라 자신이 사는 곳이 신촌 근처란 얘기는 하지 않고 말했다.

“저도 그 근처에 있어요.”

-잘 됐다. 그럼 연신대 앞에 새로 생긴 포차가 있는데................

이혜나의 설명을 듣던 현수가 바로 말했다.

“거기 저도 알아요.”

-그래요? 그럼 여기로 오세요. 오는데 얼마나 걸릴까요?

“5분 쯤?”

-와아. 진짜 근처에 있네. 빨리 오세요.

“네.”

실제 그곳까지 걸어서 20분쯤 걸렸다. 하지만 현수는 거기까지 굳이 걸어 갈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포인트도 많은 데 아껴서 뭐하겠는가? 현수는 5분 동안 옷을 챙겨 입었다. 그리곤 상태창의 인벤토리에서 텔레포트 바바리 코트를 꺼내 바로 착용했다. 그러자 그의 눈앞에 상태창이 마법 아이템 창으로 바뀌었다.

현수가 머릿속으로 자신의 원룸 앞을 떠올리자 시스템에서 바로 반응이 왔다.

[띠링! 현 위치에서 대성 포차까지는 반경 9Km에 있습니다.]

현수는 바로 반경 10Km이내 텔레포트를 선택했다.

[띠링! 5,000포인트 결제. 남은 포인트 9,009,790]

결제 창이 뜨고 나자 바로 현수의 몸이 하얀 빛에 휩싸였고 머리가 아찔한 순간 현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그의 눈앞에 떡하니 대성 포차란 간판이 보였다.

“헐!”

하필 텔레포트 한 게 약속 장소인 포차 집 입구 앞이었던 것이다. 현수가 주위를 살피자 신기하게도 아무도 없었다.

평소 이 시간 때 연신대 앞에서 술을 파는 가게 주위는 온통 사람들로 들끓었다. 그런데 지금은 현수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현수는 곧장 포차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언제 그랬냐는 듯 포차 주위로 우르르 사람들이 몰려와서는 그 주위가 사람으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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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는 이혜나가 혼자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포차 안에 들어가자 저 안쪽에 그녀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차지하고 있는 테이블 위엔 음식이 가득했다.

‘설마 저 많은 걸 혼자 다 먹을 생각으로 시킨 건 아니겠지?’

그런데 그 설마가 맞은 모양이었다. 이혜나가 열심히 젓가락을 놀려 댔던 것이다. 그 결과 양볼이 불룩해진 그녀는 맛있게 입안의 음식들을 씹었다. 그 모양이 꼭 귀여운 햄스터 같았다.

“어?”

그때 이혜나의 눈과 현수의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현수를 발견하고는 환하게 웃으며 어서 오라고 손짓을 했다. 현수는 그런 그녀에게 다가가서 그녀 맞은 편에 앉았다.

“우걱우걱....쩝쩝쩝....식사 했어요?”

이혜나는 열심히 입안 음식들을 씹어서 삼킨 뒤 현수에게 물었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하긴 시간이 벌써 9신데 안 먹었을 리 없지. 저기요. 여기 잔 좀 부탁해요.”

이혜나는 마침 옆 테이블에 주문한 음식을 서빙하고 돌아서던 종업원에게 말했다. 그러자 그 종업원이 후다닥 뛰어가서는 소주잔과 맥주잔을 챙겨 가져 왔다. 그 종업원에게 현수가 잔 두 개를 받자 이혜나가 바로 소주병을 들었다. 그리곤 소주병을 내밀었고 현수는 그녀가 따라 주는 소주를 소주잔에 받았다. 그러자 소주병을 내려 놓은 이혜나가 바로 자기 앞에 가득 채워져 있는 소주잔을 들어 현수 앞에 내밀며 말했다.

“첫잔은 원샷인 거 알죠?”

그 말에 현수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모르는데요?”

“네? 그걸 왜 몰라요? 연신대 나왔으면 당연히 아는 거 아닌가?”

“저 아직 연신대 졸업 안 했거든요. 그리고 요즘 누가 무식하게 원샷을 합니까? 그냥 적당히 알아서들 마시지.”

“그, 그런가요? 제 때는 안 그랬는데.”

이혜나는 마치 자신이 오래 전 졸업생이라도 되는 듯 말했다. 현수가 보기에 이혜나의 나이는 20대 중반, 많아도 20대 후반으로 보였으니까.

“그땐 어땠는데요?”

현수가 거의 농담하듯 말했는데 이혜나는 사뭇 진지한 얼굴로 대답을 했다.

“저희 때는 선배가 따라주는 술은 무조건 다 마셨어야 했어요. 그리고..............”

현수는 이혜나의 얘기가 족히 10년도 넘은 대학 시절 얘기임을 알고는 얘기 도중에 그녀에게 물었다.

“실례인줄 알지만 너무 궁금해서요.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네 나이요? 33살요.”

“네에?”

현수는 깜짝 놀랐다. 이혜나가 어디를 봐서 30살도 넘은 여자로 보인단 말인가?

“헤에. 제가 좀 동안이긴 해요. 사실 현수씨 오기 전에 벌써 여기 남학생들에게 다 대시를 받았거든요.”

이혜나의 그 말에 현수는 여전히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하긴 자기보다 거의 10살이나 많은 여자와 그 짓을 했단 소리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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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나가 33살이 맞다는 건 바로 증명이 되었다.

“너 법대 혜나 맞지?”

“어머. 재범이?”

바로 포차를 찾은 현수도 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 시간강사가 이혜나와 아는 척을 한 것이다. 물론 그 아는 척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왜냐 하면 이혜나는 변호사고 그는 여전히 뜨내기 시간강사 였으니까.

특히 남자인 그는 자존심 때문인지 이혜나가 어디 로펌에 다니는 지만 묻고 그녀에게 명함 한 장만 받아 챙긴 체 일행과 비어 있는 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런 그를 보고 이혜나가 말했다.

“동아리 때 알았던 녀석인데 여전하네.”

“뭐가요?”

“자기보다 잘난 놈에게는 굽히고 못난 놈은 구박하고.”

그 말에 현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기억에 따르면 저 시간 강사는 딱 봐도 잘사는 집 녀석들은 학점을 후하게 주고 아닌 학생들에게는 학점을 짜게 주었다. 그래서 강현수 역시 낙제는 면한 D학점을 받아야했고. 현수는 그 얘기를 이혜나에게 했다.

“차라리 F를 줄 것이지. 그럼 제 강의라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그러니까 내가 아는 저 조재범이가 교수가 되려 한단 거네요.”

“네. 하지만 전임 강사 되기기 어디 쉽나요.”

“어렵죠. 근데 아부를 워낙 잘해서 몰라요. 저런 소인배 타입이 의외로 쉽게 전임 강사도 되고 조교수, 부교수가 되더라고요.”

“하긴 교수라는 게 능력만 있다고 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맞아요. 돈과 빽이 있어야 될 수 있는 자리가 그 자리죠.”

“보아하니 한참 선배 같은데 말 놓으세요.”

“그럴까? 근데 현수 넌 몇 살이야?”

“저요? 저는 올해............”

이혜나는 현수로부터 대답을 듣고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10살 가까이, 그것도 여자가 남자보다 많다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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