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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찬은 억울한 얼굴로 주심에게 가서 강력하게 항의를 했다. 그러자 주심은 이기찬이 잘 왔다며 그 앞에 노란 카드를 꺼내 보였다.
그 카드를 보자 이기찬은 긴 한숨과 함께 입을 꾹 다물었다. 여기서 더 항의를 했다가는 주심이 카드 색깔을 바꿀지 몰라서 말이다.
곧 키커로 하재봉이 나섰다. 연신대 선수들은 골키퍼 방주혁에게 일말의 기대를 걸었다.
삐익! 파파팟!
주심의 휘슬이 울리자 하재봉이 공을 향해 달려갔고 곧바로 강하게 공을 찼다.
뻐엉!
철썩!
강하게 구석을 향해 찬 하재봉의 공을 연신대 골키퍼 방주혁은 막아내지 못했다. 공의 방향은 잘 잡았는데 키커가 워낙 공을 강하게 차다보니 공의 속도를 방주혁의 몸이 따라 잡지 못한 것이다.
“하아!”
결국 한 골 더 허용하면서 스코어가 4대 7로 3골 차로 확 벌어졌다. 축구에서 2골 차와 3골 차의 격차는 컸다. 특히 그게 후반이라면 사실상 경기의 승패는 갈렸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걸 알았기에 연신대 선수들의 사기가 팍 꺾였다.
“틀렸어.”
“졌다. 졌어.”
연신대 선수들 태반이 패배감에 휩싸였고 나머지 선수들 역시 점점 패배에 물들어 갈 때 오직 한 선수만 생각을 달리 했다.
‘지금부터 시작해도 역전은 가능해.’
그런 태평한 생각을 하는 연신대 선수가 누굴까? 당연히 강현수였다. 현수는 후반전 남은 시간이 20여분 쯤 남은 걸 확인하고 이제 슬슬 움직여야 할 때라 생각했다. 여기서 더 늦추면 천하의 강현수라 할지라도 고구려대와 벌어진 격차를 뒤집기 어려웠다.
“이제 슬슬 인정을 할 때도 됐는데.....”
현수가 그 말을 혼자 중얼거릴 때였다. 연신대 주장 이기찬이 현수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강현수. 우리가 잘못했다. 그러니 화 풀고 제대로 뛰어 다오.”
이기찬이 연신대 선수들을 대표해서 현수에게 부탁을 해 왔다. 현수는 그 말을 듣고 그라운드에 연신대 선수들을 쳐다봤다. 그러자 연신대 선수들이 재빨리 그의 눈을 피해서 먼 산을 쳐다봤다.
현수에게 사과를 하는 게 쪽팔려서 인지 몰라도 연신대 선수들은 최대한 그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 그런 그들을 보고 현수는 피식 웃으며 이기찬에게 큰소리로 말했다.
“좋아. 그럼 내가 나설 게. 대신 앞으로 가급적 내가 시키는 대로 움직여 줬으면 좋겠어. 다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겠지만 이번 왕중왕전이 아마 내가 너희들과 뛰는 마지막 경기가 될 거야. 그래서 가급적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다. 그러니 내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이번 왕중왕전이 끝날 때까지만 참아. 그럼 너희가 내 비위를 맞출 일도 없을 테니까.”
강현수의 그 말에 그를 회피 중이던 연신대 선수들이 일제히 그를 쳐다보았다. 강현수가 자기 입으로 더 이상 연신대에서 뛸 일이 없다고 얘기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더불어 강현수가 없는 연신대를 생각하자 연신대 선수들 모두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특히 2학년 주전 멤버들의 허탈감은 더 했다. 지금 3학년들이야 강현수 덕에 프로와 실업팀 진출이 거의 확정적이었다.
올해 대학 리그 우승 뿐 아니라 FA컵 우승까지 차지한 연신대가 아니던가? 거기다 왕중왕전까지 우승한다면 프로와 실업팀들이 최우선적으로 연신대 출신 선수들을 영입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 아래 연도 선수들은 달랐다.
과연 내년에 연신대가 강현수 없이 이 정도 성적을 낼 수 있을까? 2학년 주전 멤버들은 바로 고개를 내저었다. 그래서 그들은 강현수가 내년 4학년에 적어도 봄철 리그 까지만이라도 연신대에서 뛰어 주길 바랐다. 하지만 오늘 강현수가 선언을 해 버렸다.
이번 왕중왕전을 끝으로 자신이 더 이상 연신대 유니폼을 입고 뛸 일은 없을 거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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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점한 연신대의 킥오프로 후반전 경기가 재개 되었다. 공격수 나진목이 공을 밀자 그 공을 받은 고동찬이 곧장 자기 뒤쪽의 중앙 미드필더 강현수에게 공을 넘겼다. 그리고 고구려대 진영으로 밀고 올라갔다. 그러자 고구려대 수비수가 각각 한 명식 나진목과 고동찬을 커버했다.
그 순간 강현수의 눈이 반짝 빛났다.
“후후후후.”
그리고 이 사이로 웃음소리가 흘러나오고 동시에 강현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툭툭툭!
강현수가 직접 공을 몰아 하프 라인을 넘어 오자 필드의 고구려대 선수들이 다들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야! 막아!”
그런 그들 사이에서 고구려대 주장 완장을 찬 선수가 버럭 소리쳤다. 책임감 때문인지 아니면 강현수를 질투해선지 모르지만 고구려대 주장 완장을 찬 선수의 외침에 근처 고구려대 미드필더들이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앞쪽과 옆에서 고구려대 공격수들이 협력해서 강현수를 압박해 들어왔고.
파파팟!
하지만 그들이 움직일 때 강현수 역시 움직였다. 그 결과 강현수 전면의 고구려대 중앙 미드필더가 제일 먼저 그와 부딪쳤다.
“헉!”
그러나 분명 부딪쳤는데 강현수는 고구려대 중앙 미드필더를 살짝 벗겨 내고 계속 앞으로 돌파를 해 나가고 있었다. 그 만큼 강현수의 움직임이 빨랐던 것이다.
“못 막으면 붙잡아!”
강현수가 중앙 미드필더를 통과해서 단숨에 페널티 박스 앞까지 쭉 밀고 들어가는 걸 보고 고구려대 공격수 하재봉이 버럭 소리쳤다. 하재봉을 비롯한 고구려대 공격수들은 강현수를 더는 쫓지 못하고 뒤에서 소리를 쳤는데 그 소리를 들은 고구려대 수비들이 진짜 강현수를 붙잡을 기세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강현수는 자신을 잡으려드는 고구려대 수비수들을 지그재그로 공을 꺾어 방향을 틀어가며 피해내고는 슈팅을 때렸다.
뻐엉!
강현수가 찬 공은 빨랫줄처럼 쭉 뻗어나갔다. 그 뻗어 나가는 각도만 보면 골대를 벗어 날 거 같았다. 그래서 뒤에서 그 슈팅을 본 고구려대 선수들이 다들 안도해 할 때였다.
슈욱!
골대 위를 통과 할 거 같아 보였던 공이 갑자기 뚝 떨어져 내렸고 그대로 골포스트 구석으로 들어가더니 골망을 갈랐다.
철썩!
“우와아아아!”
강현수의 돌파에 이은 슈팅으로 간단히 한 골을 만회한 연신대 벤치에서 함성이 일었다. 그 함성 중 가장 큰 소리는 단연 연신대 감독 이명신이 내질렀다.
“그렇지. 그래야 강현수지. 크하하하.”
이명신의 그런 웃음을 옆 벤치의 고구려대 김창수 감독이 듣고 불안 듯 힐끗 그를 쳐다보다 이내 시선을 필드로 돌리고는 고구려대 선수들에게 외쳤다.
“라인 내리고 재봉이 하고 국영이까지 강현수 마크 해.”
김창수 감독은 강현수를 1대 1 대인 마크로는 막을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아예 고구려대 공격을 포기하면서 공격수 두 명을 강현수에게 붙였다. 그렇게 되면 3명이 강현수를 마크하게 되는 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창수 감독은 불안한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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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익!
주심의 휘슬과 함께 실점한 고구려대에서 킥 오프를 했다. 하재봉이 공을 빼자 그 공을 받은 장국영이 곧장 공을 뒤로 뺐다. 그리고 고구려대 안에서 공을 돌리기 시작했다.
“저, 저.....”
그걸 보고 연신대 이명신 감독이 발끈하며 옆 벤치를 돌아봤다. 그때 고구려대 김창수 감독은 팔짱을 낀 체 고구려대 선수들이 자기 진영에서 공을 돌리는 걸 흡족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고구려대의 의도는 명확했다. 이제 20분남은 후반시간을 최대한 끌어서 이대로 승리를 굳히겠다는 것.
5대 7! 그리고 70분!
연신대 이명신 감독이 서울 월드컵 경기장의 디지털 전광판에 표시 된 스코어와 그 옆의 후반에 흐른 시간을 확인하고는 조급한 얼굴로 외쳤다.
“뭣들 하고 있어. 라인 올려서 공을 빼앗지 않고.”
이명신 감독의 외침에 연신대 선수들이 일제히 허리 라인을 끌어 올리며 고구려대 진영으로 올라갔다. 바로 그때였다. 고구려대 센터백 조재훈이 보낸 신호를 읽은 고구려대 윙어 장국영이 측면에서 튀어 나가며 단숨에 하프 라인을 넘었다. 그리고 연신대 오른쪽 측면을 빠르게 질주 해 나갔고 그런 그를 향해 조재훈이 길게 공을 차 넣었다.
“앗!”
라인을 올리면서 안쪽 공간이 훤히 열린 가운데 조재훈이 찬 롱 볼을 장국영이 기어코 잡아냈다.
툭툭!
그리고 방향을 틀어서 막 페널티 박스 쪽으로 공을 치고 들어갈 때였다.
촤아악!
갑자기 측면에서 들어 온 태클에 장국영은 몸을 솟구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공을 보고 정확히 들어 온 태클이라 장국영이 피하지 않으면 장국영 자신만 크게 다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장국영은 태클을 피한 뒤 누가 이렇게 빠르고 정확한 태클을 걸었는지 확인을 하려 고개를 돌렸다.
파파파팟!
그때 그 선수가 벌써 장국영 옆을 통과해서 하프 라인 쪽 연신대 선수에게 패스를 하고 있었다.
“헉!”
그때 장국영은 그 선수가 등번호를 보고 기겁했다.
“강현수!”
언제 움직였는지 강현수가 득달같이 수비에 가담해서 고구려대의 기습을 막아내고 유유히 중앙선을 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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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수는 고구려대가 라인을 내리고 수비 위주로 나올 때 예상을 했다. 반대로 연신대에서 라인을 끌어 올리면 고구려대에서 역습을 가할 거란 걸 말이다. 그래서 연신대 선수들이 이명신 감독의 지시에 라인을 대거 끌어 올리며 고구려대 진영으로 들어갔을 때 그는 같이 올라가는 척 하면서 실제로는 자신의 자리, 중앙 미드필더의 위치를 고수했다. 그러자 고구려대 센터백 조재훈이 기다렸다는 듯 공을 연신대 측면으로 길게 찼다. 강현수는 그때 공의 방향을 읽고 뛰기 시작했다.
파파파팟!
당연히 사람이 공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측면으로 내달려서 조재훈의 롱 볼을 받은 장국영이 볼 컨트롤을 하고 또 공의 방향을 틀면서 시간을 끄는 사이 강현수는 장국영의 움직임을 읽고 그가 있는 곳까지 다이렉트로 달려왔다. 그래서 그가 패널티 박스에 들어서기 전에 그가 있는 곳에 다다랐고 지체 없이 태클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