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믿고 쓰는 미드필더-626화 (626/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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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에 불과 하단 점이었다.

“자자. 실점은 잊자. 까짓 점수야 내면 되지.”

“그래. 우리도 점수 내면 되잖아.”

연신대 선수들은 힐끗 현수의 눈치를 살피면서도 자존심 때문인지 자신들이 잘못했단 소리를 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 끼리 뭉치면 골도 넣을 수 있다며 킥오프 후 공격에 나섰다. 하지만 현수 없는 연신대 공격력으로 고구려대 수비진을 뚫는 건 어려웠다.

특히 센터백 조재훈과 그 좌우 풀백 김호균과 주민상은 셋 다 빠른 발과 탄탄한 체격을 지니고 있어서 고구려 통곡의 벽이라고 불렀는데 그들 앞에서 연신대 공격수들은 번번이 가로 막혔다.

그 동안 현수가 그들을 뚫고 공격수들에게 공을 패스해 주었기에 공격수들도 마음 놓고 슈팅을 때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현수가 없으니 공격수들은 직접 그들을 상대할 수밖에 없었다.

툭!

“젠장.....”

그리고 그들에게 공을 뺏겼다. 그런데 진짜 골치 아픈 건 그 뒤였다. 조재훈이 뺏은 공을 즉시 고구려대 측면 윙어 장국영에게 연결 한 것이다.

파파파팟!

장국영은 그 공을 몰고 터치라인을 따라 연신대 진영 코너 라인 가까이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그 다음 페널티 박스 안으로 크로스를 올렸다.

휙!

그 공을 보고 고구려대 스트라이크 하재봉이 연신대 수비수들을 사이에서 몸을 솟구쳤다. 연신대 수비수들이 그를 적극 마크했지만 하재봉이 연신대 수비수들과의 몸싸움에서 결국 승리한 것이다.

하재봉은 공을 강하게 헤더하지 않고 방향만 살짝 틀었다. 그런데 운이 따라 줬는지 그 공이 절묘하게 골대 구석으로 흘렀고 연신대 골키퍼 방주혁이 다급히 몸을 날렸지만 원 바운드 된 뒤 그 공은 골키퍼 손 끝을 살짝 스치며 골대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우와아아아!”

고구려대 벤치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유독 큰 소리와 함께 웃음 소리가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바로 그거야! 하하하하!”

누구 보란 듯 큰소리로 웃어 대는 고구려대 김창수 감독이었다. 그런 그를 옆 벤치의 연신대 이명신 감독이 곧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지만 김창수는 그쪽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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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을 먹은 연신대 골키퍼 방주혁이 신경질적으로 골망을 향해 공을 걷어찼고 여태 다른 선수들의 반응에 아무 말도 없었던 주장 이기찬의 얼굴도 심각해졌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연신대가 대학 리그 왕 중 왕전에 참가 한 건 우승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럼 내년에 4학년이 되는 연신대 선수들이 실업이나 프로팀에 갈 기회가 더 늘어 날 테니까. 그 때문에 현재 뛰고 있는 선수들 대부분이 3학년들이었다. 그 때문인지 몰라도 현수와 같은 학년의 선수들은 강현수에 대해 괜한 자존심을 내세우고 있었다.

‘사실 현수가 아니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지도 못했을 녀석들이........’

하지만 이기찬 혼자 반대해 봐야 다른 선수들에게 욕만 먹을 터. 그래서 참았는데 당장 연신대 골키퍼 방주혁부터 그런 선수들에게 불평을 터트렸다.

“똑바로 좀 해라. 아님 현수에게 사과를 하던지.”

그런 방주혁의 말에 연신대 다른 선수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대 놓고 방주혁에게 뭐라고 할 수 없는 게 후반 시작 전까지 앞서가다 이제 역전까지 당했으니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거, 걱정 마라. 바로 동점 만들테니.”

그래도 자존심이 남아 있었던지 연신대 공격수 고동찬이 말했고 그런 그의 말을 다른 공격수 나진목이 거들었다.

그들 둘은 전반전에 골을 터트렸기 때문에 후반전에도 충분히 골을 터트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강현수가 없이 그들만으로 골을 터트리기 어렵단 걸 말이다. 그래도 그 사실을 다른 선수들에게 차마 말할 순 없었다.

‘그래. 계속 뚫어 보자. 설마 한 번은 뚫리겠지.’

고구려대 통곡의 벽도 그들이 계속 두드리다보면 뚫리겠지 싶었다. 하지만 그건 그들만의 오산에 불과했다.

파악! 툭!

“헉!”

나진목이 개인기로 무리하게 고구려대 수비진을 뚫으려다 또 공을 빼앗겼다. 그러나 공을 뺏긴 게 문제가 아니었다.

뻐엉!

그 뺏긴 공이 고구려대 센터백 조재훈에게 넘어가고 조재훈이 한 방에 그 공을 측면 윙어 장국영에게 차면서 또 다시 연신대 측면이 맥없이 뚫리고 만 것이다. 그리고 이어진 장국영의 얼리 크로스!

휙! 퉁! 철썩!

고구려대의 스트라이크 하재봉은 그 찬스를 놓치지 않고 머리로 해결했다. 하재봉의 헤더에 연신대 골키퍼 방주혁은 또 맥없이 골을 내어 주고 말았다. 수비수가 셋이나 하재봉에게 달라붙었지만 소용없었다.

연신대 수비수들의 능력으로 하재봉을 커버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던 것이다.

“와아아아!”

하재봉은 골을 넣고 나서 난리법석을 떨었다. 하긴 개인적으로 해트트릭을 달성했으니 기뻐 할 만도 했다. 반면 연신대 선수들의 얼굴은 다들 벌레 씹은 얼굴로 변했다.

하재봉은 전반전에 중앙 돌파를 시도하며 강현수에게 막혀서 고전을 했었다. 하지만 후반 들어 오면서 강현수를 피해서 돌아서 페널티 박스 안으로 들어가면서 혼자 두 골을 뽑아냈다.

그러니 연신대 선수들이 볼 때 강현수가 제대로 하재봉을 커버하지 않아서 내어 준 골로 비춰졌다.

“야. 강현수. 너 똑바로 안 뛸래?”

“그래. 하재봉이는 네가 막아야지.”

그런 연신대 선수들에게 강현수가 말했다.

“내가 왜? 내가 수비수냐?”

“뭐?”

“난 미드필더다. 페널티 박스 안까지 뛰어 들어가서 수비를 도우려면 몇초는 걸린다. 그런데 그 전에 너희들이 골을 먹어 버렸잖아?”

최민혁의 그 말에 연신대 선수들은 할 말이 없었다. 현수의 말이 틀리지 않았던 것이다. 공격수들 역시 수비를 하러 내려왔지만 그 전에 골이 터져 버렸기에 뭘 돕고 자실 게 없었다.

그 만큼 고구려대의 측면 돌파에 이른 크로스는 위협적이었고 그걸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연신대에는 없었다.

있다면 최민혁이 더 열심히 뛰어 주는 건데 최민혁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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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어 4대 6! 후반전 시작할 때만해도 한 골 앞서던 연신대가 이제 2골 차로 뒤지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아직 후반전 시간이 30분 정도 남은 터라 2골 차는 얼마든지 극복이 가능했다. 하지만 그건 고구려대가 골문을 잠그지 않았을 때 얘기였다. 고구려대가 작심하고 문을 잠그면 연신대 전력으로 2골은커녕 한 골도 넣기 힘들었다.

방법이 있다면 하나. 강현수가 미쳐 날 뛰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연신대 선수들은 여전히 정신을 못 차렸다. 누구도 강현수에게 사과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뭐 설마 강현수가 알아서 뛰겠지.’

‘강현수가 고구려대에게 지게 하겠어?’

하지만 그건 연신대 선수들의 오산이었다. 강현수는 여기서 지더라도 상관없었다. 이명신 감독에게 한 약속? 그건 안 지켜도 그만이었다. 오늘 시합 후 프로 진출을 선언하고 축구부에는 안 나가면 그만이었으니까.

이제 곧 4학년인 강현수는 취업을 이유로 학점 대체가 얼마든지 가능했다. 때문에 아예 학교를 나가지 않아도 됐다. 그런 강현수를 연신대 감독이나 선수들이 뭘 어쩌겠는가?

“저, 저.....”

2골이나 뒤진 상황에서도 연신대 선수들과 강현수가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걸 보고 연신대 감독 이명신은 속이 타들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터치 라인에서 버럭 소리쳤다.

“야. 빨리 현수에게 사과 해. 네까짓 것들이 뭘 한다고...........”

그런데 그런 이명신의 막말이 연신대 다른 선수들의 자존심을 더 자극 시켰다. 그래서 그들은 감독의 말은 무시하고 경기를 진행 시켰다.

파팟!

강현수 대신 미트필더 임호룡이 공격수 고동찬에게 제법 괜찮은 패스를 연결 시켰고 고동찬은 터치라인을 따라서 공을 치고 올라갔다. 중앙 돌파가 번번이 막히자 고동찬도 방법을 바꿔서 고구려대 진영의 측면을 뚫으려 한 것이다.

촤아아아!

하지만 고구려대 수비진은 그리 쉽게 뚫리지 않았다. 오히려 앞서 나가자 수비수들이 더 적극적으로 수비에 임했다. 그래서 전반전에는 잘 쓰지 않았던 태클도 서슴없이 해 왔고 그 태클에 걸린 고동찬은 맥없이 쓰러졌다. 하지만 주심은 휘슬을 불리 않았다. 수비수가 공을 건드렸다는 이유에서 말이다. 한 마디로 고구려대 수비수가 제대로 태클을 건 것이다.

“젠장......”

그리고 바로 반격이 가해졌다. 또 다시 고구려대 센터백 조재훈이 측면 윙어 장국영에게 길게 패스를 연결한 것이다.

“막아!”

그걸 보고 연신대 측면 미드필더 임호룡이 아예 측면으로 빠져서 장국영을 마크했다.

파파파파팟!

“헉!”

하지만 임호룡으로는 장국영의 빠른 발을 잡지 못했다. 장국영은 또 다시 터치라인을 따라 질주하다가 코너 라인 가까이에서 페널티 박스로 크로스를 올렸다. 그때 이미 해트트릭까지 기록하며 골맛을 볼 만큼 본 고구려대 스트라이크 하재봉은 연신대 페널티 박스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번 역시 강현수를 피해서 돌아서 페널티 박스로 진입해 들어 온 것이다. 때문에 강현수는 하재봉보다 한 템포 늦게 페널티 박스로 들어왔고 장국영의 크로스가 올라 올 때 강현수를 비롯한 연신대 공격수들은 페널티 박스 밖에 있었다.

이에 페널티 박스 안에서 하재봉을 막을 수 있는 건 연신대 수비수들 뿐이었다. 그 중 센터백 이기찬이 악에 받쳐 외쳤다.

“잡아.”

“이번엔 어림없다.”

그렇게 연신대 수비수들에 에워싸인 가운데 하재봉은 기어코 몸을 솟구쳐 올렸다. 또 다시 몸 싸움에서 연신대 수비수 3명이 하재봉을 막지 못한 것이다.

“아악!”

그런데 하재봉이 크로스 된 공을 향해 헤딩을 하려다 비명과 함께 뒤로 벌러덩 쓰러졌다. 누가 봐도 위험한 상황. 그때 놀란 이기찬이 하재봉을 뒤에서 받쳤다.

삐이이익!

그때 주심의 휘슬이 울렸고 페널티 킥을 찍었다. 그리곤 손짓으로 이기찬을 가리키곤 그가 뒤에서 하재봉을 잡아 당겼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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