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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가 드리블을 치고 들어가는 걸 보고 당연히 고구려대 선수가 가로 막았다.
휙!
하지만 현수의 인사이드 드리블에 고구려대 선수는 넋 놓고 뚫렸다. 현수는 그 고구려대 선수가 눈 깜짝 할 사이 그 옆을 스쳐 지나갔다. 물론 공은 현수의 발에 있었고 말이다.
투툭!
현수는 그 공을 앞으로 차 놓고 또 다시 뛰기 시작했다. 이번엔 고구려대 선수 둘이 현수를 막아섰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파팟! 팟!
현수의 현란한 드리블에 이은 페인팅 동작에 고구려대 선수 둘이 농락당하고 젖혀졌다. 현수는 그 둘을 돌파하고 페널티에어리어 안으로 진입해 들어갔다. 그리고 한 명 더 제쳐냈다. 그런데 그 선수가 바로 고구려대 주장 조재훈이었다. 현수는 마르세유 턴으로 조재훈을 가볍게 벗겨 낸 뒤 골대를 향해 대포 슛을 때렸다.
뻐엉!
고구려대 골키퍼가 골대를 지키고 있었지만 과감히 한 가운데로 찼다.
쐐애애애액!
현수의 대포 슛을 고구려대 골키퍼가 막으려 팔을 뻗었을 때 그 공은 벌써 골키퍼의 얼굴 앞에 와 있었다. 고구려대 골키퍼는 놀라 질끈 두 눈을 감았고 공이 골키퍼의 귀를 스치고 골망을 갈랐다.
철썩!
“우와아아아아!”
그 골 만큼은 연신대 선수들도 가만있지 않았다. 환호성을 내지르며 일제히 현수에게로 몰려들었다.
거의 60-70미터를 혼자서 드리블 한 뒤 터트린 골이었다. 고구려대 선수들은 그런 현수를 막아내지 못했고.
이 한 번의 플레이로 현수는 자신과 대학리그 선수들의 격차가 어느 정도인지를 일깨워 주었다.
“헐!”
“씨발. 진짜 잘하네.”
“아주 우릴 가지고 노네. 놀아.”
당연히 고구려대 선수들의 기세도 확 꺾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아직 경기에서 진 건 아니었다. 무엇보다 고구려대 주장인 조재훈은 강현수가 자기 포지션만 지키고 있는 한 그들이 이길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빨리 올라가.”
그래서 고구려대 선수들을 다독이며 채 몇 십초 남지 않은 전반전의 고구려대 공격을 이끌었다. 센터백인 조재훈이 직접 공을 몰아서 하프라인을 넘었고 전방의 공격수 하재봉을 향해 한번에 공을 넘겼다.
파앗!
하지만 하재봉이 중앙에 위치하는 한 그곳에는 강현수가 있었다.
휙!
하재봉 보다 머리 하나 더 높이 점프한 강현수의 헤더에 조재훈의 공은 아쉽게 터치 라인 밖으로 나갔고 그 공을 잡은 고구려대 선수가 스로인을 하고 또 그공을 공격수에게 연결하려고 버벅 거리는 사이 전반전 시간이 다 되고 말았다.
“삐이이익!”
주심의 휘슬이 울리고 전반전이 그렇게 종료가 되었다. 스코어 4대 3! 전반에만 7골이 터지며 연신대와 고구려대 간의 왕 중 왕전 시합은 난타전을 양상을 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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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전이 끝나고 양팀 선수들은 대기실로 들어갔다. 그때 벤치의 양 팀 감독들은 선수들이 대기실 안으로 다 들어가고 나자 뒤따라서 움직였다. 둘 다 예민한 상태라 가능한 서로와 눈빛을 주고 받는 것 조차 조심하는 가운데 김창수 감독이 먼저 고구려대 대기실로 잰 걸음으로 들어가고 연신대 이명신 감독은 느긋하니 뒷짐을 진 체 대기실로 향했다. 그래도 1골 차 지만 앞서 있는 이명신 감독이 더 여유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대기실 안에서 연신대 선수들은 다들 훌러덩 웃통을 벗고 있었다. 그리고 지친 기색이 역력한 가운데 이온 음료를 마시며 최대한 편한 자세로 휴식들을 취했다. 그때 감독이 이명신이 나타났고 그는 다른 선수는 관심도 없는지 곧장 강현수 앞으로 걸어갔다.
“강현수. 너..........”
이명신은 생각 같아선 눈앞의 강현수에게 조인트를 까고 뺨도 한 대 때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러기엔 강현수가 너무 유명해져 버린 것이다.
“하아. 현수야. 이왕 뛰는 거 좀 더 뛰어주면 안 되겠니?”
이명신은 연신대가 3골이나 먹은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잘 알았다. 현수가 평소만큼만 뛰어 준다면 연신대가 고구려대 따위에 골을 먹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현수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었다.
“축구란게 저 혼자 하는 건 아니잖습니까? 그리고 전 제 포지션에서 제 역할을 다 했습니다. 그런데도 뚫리고 골을 먹는 건 다른 선수들의 문제겠죠. 그러니 감독님께서는 저한테 이러실게 아니라 그 선수들에게 더 열심히 뛰라고 하십시오.”
현수의 그 말에 연신대 선수들이 일제히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그 중에 성격이 제일 급한 현수와 같은 미드필더 임호룡이 말했다.
“너 지금 혼자 잘났다고 뻐기는 거냐?”
임호룡의 그 말에 현수가 바로 대답했다.
“어. 그래. 나 잘났다. 그래서 잘난 척 좀 하련다. 불만이냐?”
“뭐? 저 새끼가.....”
발끈한 임호룡이 현수에게 달려 들려하자 주장인 이기찬이 그를 막았다.
“왜들 이래?”
“기찬아. 너도 들었잖아. 저 자식 싸가지 없는 소리.”
씩씩거리는 임호룡이 곧 죽일 듯 현수를 쏘아보았다. 그러자 현수가 임호룡과 다른 선수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너희들 축구 선수 아냐? 그럼 축구로서 증명을 해 봐. 내가 없어도 너희들만으로도 이 경기를 이길 수 있단 걸 말이다. 그렇다면 너희들 앞에 내가 무릎을 꿇고 사과를 할게.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너희들이 내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할 거야.”
그 말 후 현수는 홱 몸을 돌려서 대기실 안쪽 화장실로 들어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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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가 화장실로 들어간 뒤 연신대 선수들은 다 같이 강현수를 성토했다.
“씨발. 제가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다고.”
“야야. 우리 현수 저 새끼 무릎 꿇리자.”
“그거 좋은 생각이네. 우리끼리 뭉치면 고구려대 녀석들 못 막을 리 없잖아? 안 그래?”
“맞아. 1골 차로 앞서고 있으니까 그 골만 지켜도 우리가 이기잖아.”
“현수 저 새끼는 그냥 두고 우리끼리 수비위주로 축구를 하자. 고구려대 새끼들 우리가 잠그면 골 못 넣어.”
그렇게 연신대 선수들이 작당을 했는데 그걸 연신대 감독인 이명신을 팔짱을 낀 체 지켜만 봤다. 상황이 어찌 되었던 그는 이 경기를 이기기만 하면 됐으니까. 연신대 나머지 선수들이 단합을 해서 한 골을 지켜서 이기든 아니면 현수가 미쳐 날 뛰어서 이기든.
“자자. 시간 다 됐습니다. 양 팀 선수들 나오세요.”
그때 금방 휴식 시간이 끝나고 후반전이 곧 시작 될 걸 대회 측에서 알려왔다. 연신대 선수들은 서둘러 새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현수도 언제 화장실에서 나왔는지 라커룸에서 유니폼을 꺼내서 갈아입었다. 물론 카멜레온 축구복을 벗었다가 다시 챙겨 입었지만. 귀찮지만 유니폼을 갈아입는 시늉을 해야 하니 어쩔 수 없었다.
“나가자. 다 모여 봐.”
그때 먼저 유니폼을 갈아입은 연신대 선수들이 한데 모였다. 그런데 그 자리에 현수가 낄 자리는 없었다.
“다들 알지?”
“그래. 오늘 강현수 무릎 꿇려 보자.”
“연신대 축구부가 아직 살아 있단 걸 보여 주자고.”
“하나 둘 셋! 연신대 파이팅!”
연신대 선수들은 나름 서로에게 기합을 불어 넣어 주고 기세등등하니 대기실을 나갔다. 그런 그들을 보며 현수는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아직 주제 파악들이 안 되어 있군.”
그 말 후 현수도 뒤따라 대기실을 나섰다. 그때 고구려대 선수들도 대기실 밖에 다 나와 있었는데 고구려대 주장인 조재훈은 연신대 선수들과 동떨어져 있는 강현수를 보고 입가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자. 다들 입장해 주세요.”
대회 측 관계자의 외침에 선수들이 알아서 그라운드로 나갔다. 그들은 알아서 전반전에서 뛴 진영의 반대편에 자리를 잡았고 그 사이 주심이 공을 들고 센터서클에 들어섰다. 잠시 뒤 주심이 공을 고구려대 쪽에 넘기고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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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이이이익!
주심의 긴 휘슬 소리와 함께 고구려대의 킥오프로 후반전이 시작 되었다. 전반전에 스트라이커 하재봉의 공격이 번번이 강현수에게 막히면서 기회를 잡지 못한 고구려대에서는 측면 윙어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 측면 윙어가 바로 장국영으로 그는 예전 연신대와의 시합에서도 맹활약을 펼쳤었다.
“국영아!”
김창수 감독은 장국영에게 더 적극적으로 연신대 진영으로 공을 치고 올라가라고 수신호를 넣었다. 그걸 보고 장국영이 하프라인을 넘어서 연신대 진영으로 움직였다. 그때 고구려대의 센터백 조재훈이 앞쪽 중앙 미드필더에게 길게 스루패스를 넣어 주었다.
그 공을 잡은 고구려대의 중앙 미드필더가 빠르게 공을 치고 올라갔고 그걸 막기 위해서 현수가 움직일 때였다.
고구려대의 중앙 미드필더가 현수가 오는 걸 보고 급히 측면으로 공을 찼고 그 공을 장국영이 받아서 바로 페널티에어리어로 치고 들어갔다. 그러자 연신대 수비수들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장국영에게로 쏠렸다.
“기찬아!”
연신대 골키퍼 방주혁이 소리칠 때 센터백 이기찬은 이미 점점 안쪽으로 들어오는 장국영을 확인하고 몸을 날리고 있었다.
그렇게 이기찬이 앞으로 달려 나가면서 하재봉을 마크하고 있던 연신대 수비수가 움직였고 그 짧은 순간 노련한 하재봉이 더 기민하게 옆으로 이동하며 패스 받을 공간을 확보했다.
이때 현수는 자신의 포지션을 벗어 난 하재봉을 적극적으로 마크 하지 않았다. 때문에 하재봉은 페널티 박스 안에서 연신대 수비수들에게 집중 마크를 받고 있었다.
장국영은 그런 하재봉에게 바로 공을 찔러 넣었고 하재봉은 그 공을 잡지 않고 감각적으로 하프 발리킥을 찼다.
뻥!
“앗!”
그 공은 그대로 골대로 향했고 골포스트를 맞고는 방향이 꺾여서 골대 안으로 굴러들어 가버렸다. 강현수를 힐난하며 그가 없이도 수비로 고구려대의 공격을 봉쇄할 수 있다며 큰소리치던 연신대 선수들은 후반전이 시작되고 불과 3분 만에 동점 골을 내어 주고 말았다.
그걸 보고 현수가 중얼거렸다.
“열심히만 뛴다고 다 될 거 같으면 마라톤 선수들 불러다가 축구장에서 계속 뛰게 하면 되겠네.”
하지만 현수의 그 비아냥거리는 말을 제대로 들은 연신대 선수는 없었다. 다들 고구려대에 골을 먹고 나자 머릿속이 하얗게 변한 터라 그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