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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숙적 고구려대와의 일전은 딱히 전술 같은 게 필요 없었다. 두 팀의 전력은 엇비슷했기 때문에 당일 선수들의 컨디션과 운이 승패를 좌우 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강현수란 걸출한 선수가 있는 연신대가 아무래도 고구려대를 압도하고 있었다. 그건 경기가 시작 되기 전에도 여실히 알 수 있었다.
연신대 선수들이 비교적 여유 있게 몸을 푸는 반면 고구려대 선수들은 연신대, 특히 강현수의 눈치를 살피기 급급했다.
벤치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연신대 이명신 감독은 벤치에 앉아서 느긋하게 경기가 시작 되기를 기다리는 반면 고구려대 김창수 감독은 터치 라인을 넘어가서 자기 쪽 선수들에게 계속 뭐라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럴 것이 경기도 시작하기 전에 고구려대 선수들이 벌써 얼어 있으니 그걸 풀어주기 위해서 감독이 그렇게 날 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 김창수 감독을 보고 이명신이 툭하니 한 마디 던졌다.
“그 참 시끄럽게도 구네.”
“뭐?”
그런데 그 소리를 김창수가 들었다. 안 그래도 사이가 나빴던 두 사람이었다. 경기 시작 전에야 주위 눈치도 있고 하니 서로 조심했지만 경기를 곧 앞둔 상황에서는 얘기가 달랐다. 아무래도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고 또 경기란 것이 꼭 선수들만의 싸움만 있는 게 아니었다. 벤치끼리의 싸움도 중요했고 특히 그 팀의 수장인 감독들의 싸움은 비일비재했다. 원래 둘만 만나도 으르렁 거렸던 사이였는데 상대가 알아서 먼저 시비를 걸어 주니 가만있을 김창수 감독이 아니었다.
“강현수 빼면 뭣도 아닌 것들이.”
“뭐? 너 이 새끼 지금 뭐라고 그랬어?”
발끈한 이명신 감독이 벤치에서 벌떡 몸을 일으켜서 김창수에게 삿대질을 하며 그에게 다가가자 김창수도 두 손을 허리에 얹고 어디 덤빌 테면 덤벼 보라며 턱을 쳐들었다.
“야. 말려!”
“에이. 또 시작이야?”
그런 두 사람의 충돌이 하루 이틀도 아닌 터라 벤치에서 알아서 양팀 대기 선수들이 달려 나와서 두 사람을 말렸다. 그렇게 경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두 감독끼리 부딪치며 이번 대학 왕 중 왕전 경기에서 두 팀이 얼마나 치열하게 치고받을지 벌써부터 예고가 되었다.
그렇게 양 팀 선수들이 각자 포지션에 자리를 잡자 주심이 양 팀 주장을 불러서 동전을 던졌다. 그 결과 연신대의 선축이 결정 되었다.
“좋았어.”
“전반에 끝을 내자. 연신대 파이팅.”
안 그래도 사기가 올라 있던 연신대가 먼저 킥오프까지 하게 되자 다들 이 경기를 이기기라도 한 얼굴들이었다. 현수는 이때도 중앙 미드필더로 자리를 잡았고 포워드인 고동찬이 공 앞에 섰다. 그 맞은 편에는 같은 공격수 나진목이 대기 중이었다. 주심은 곧장 손목시계에 스타트 버튼을 누르며 휘슬을 불었다.
“삐이이이익!”
주심의 긴 휘슬에 연신대가 킥오프를 했다. 고동찬이 앞에 있는 나진목에게 공을 밀고 하프 라인을 넘어가자 그 공을 받은 나진목이 곧장 공을 뒤로 차고 고동찬과 같이 좌우로 간격을 벌리며 고구려대 진영으로 들어갔다.
나진목에게 패스를 받은 중앙미드필더 강현수는 공격수인 나진목과 고동찬이 고구려대 진영으로 들어가다 바로 마크를 당하는 걸 보고 공을 옆으로 돌렸다.
라이벌전이란 이미지가 남아선지 양 팀 선수들이 정말 악착같이 뛰었다. 하지만 이제 막 전반전이 시작 되었을 뿐이었다. 열심히만 뛴다고 이길 수 없는 게 축구였다. 중요한 건 골이었다. 그 골을 넣기 위해서 현수는 상대 진영을 흔들어 놓을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그걸 실천하기 위해서 현수는 연신대의 양 측면 미드필더에게 패스를 넣으면서 그들을 좌우 윙어로 써 먹었다.
“막아!”
“빨리 뛰어!”
연신대의 좌측 미드필더가 터치라인을 따라 과감하게 돌파를 시도하자 역시나 고구려대 진영이 크게 흔들렸다. 고구려대의 좌측 풀백과 함께 센터백이 같이 따라 움직이면서 중앙이 빈 것이다.
“지금이다.”
현수는 고구려대의 시선이 좌측 미드필더에게 쏠려 있을 때 하프 라인을 넘어서 곧장 페널티에어리어까지 올라갔다.
그때 좌측 미드필더가 용케 공을 뺏기지 않고 페널티에어리어 근처까지 돌파해 와서는 공격수 고동찬에게 땅볼 패스를 넣었다.
“고동찬 잡아!”
“야! 붙으라고. 빨리!”
그런 고동찬을 고구려대 수비수 둘이 밀착 마크를 했는데 고동찬이 그 공을 받지 않고 흘렸다. 왠지 그래도 될 거 같아서 말이다. 그가 그런 생각을 한 건 연신대의 중앙 미드필더 강현수가 하프라인을 넘어서 고구려대 진영으로 들어오는 걸 고동찬이 봤기 때문이었다.
강현수가면 그가 흘린 공을 잡지 않을 까 싶었는데 과연 그의 예상대로 강현수가 그 옆에 나타나서는 공을 찼다.
펑!
그리 강하게 찬 것 같지 않은 공은 빠르게 날아가서 순식간에 골대에 다다랐다.
터엉!
빨랫줄처럼 뻗어 나간 공은 골포스트를 때리고는 굴절되어 골대 안에 떨어져서 골망을 갈랐다.
출렁!
경기가 시작 되고 불과 1분이나 지났을까? 그것도 골대를 때린 공이 네트를 갈라버리니 고구려대 골키퍼인들 어쩔 도리가 없었다.
고구려대 선수들은 전부 황당한 눈으로 현수를 쳐다보았다. 좀 전 보여준 현수의 슛은 결코 대학 리그에서 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던 것이다. 현수는 단순한 그 슈팅 하나로 자신의 존재감을 고려대 선수들에게 각인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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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아아아!”
반면 연신대 벤치에는 난리가 났다. 정확히는 이명신 감독 혼자서 지랄발광을 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런 이명신을 고구려대 감독인 김창수가 못마땅한 얼굴로 쳐다보기만 했고.
그에 비해서 축구장에서 직접 경기를 뛰고 있는 연신대 선수들은 현수의 골에 대해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강현수니까 저 정도 플레이는 당연한 거란 인식이 있다 보니 첫 골이 터져도 그 골을 강현수가 터트리다보니 감동도 적을 수밖에 없었다. 아마 첫 골을 공격수인 고동찬과 나진목이 터트렸다면 이런 시큰둥한 반응은 아니었을 터였다.
“뭐야? 이게.....”
그런데 강현수는 그런 연신대 선수들의 반응이 살짝 기분 상했다. 그래도 골을 넣었는데 와서 축하의 말을 건네는 녀석이 하나도 없다니 말이다.
“이것들이 배가 불렀네.”
현수는 피식 웃으며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기분이 상하다보니 별로 뛰고 싶은 생각도 없어졌다. 그래서 그에게 공이 넘어오면 지체 없이 근처 선수에게 패스를 했다. 즉 더 이상 자신이 경기 운영에 관여 하지 않겠다는 듯 말이다. 그런데 그 점을 연신대 선수들보다 고구려대 공격수가 먼저 캐치했다.
“재훈아. 강현수가 별로 뛸 생각이 없는 모양이야. 아님 어디 아프기라도 하던지. 영 뛰질 않고 있어.”
“그래?”
그 사실을 고구려대 공격수는 고구려대 주장이자 센터백인 조재훈에게 얘기했고 조재훈은 연신대의 그 약점을 파고들면서 반격에 나섰다.
고구려대의 미드필더들이 빠르게 패스를 주고받다가 연신대의 빈틈이 드러나자 곧장 그쪽으로 패스를 찔러 넣었던 것이다.
그렇게 연신대의 빈 왼쪽 측면으로 날아간 공을 고구려대의 윙어가 잡고 빠르게 연신대 진영으로 치고 올라갔다.
그때 고구려대의 원톱 스트라이커 하재봉이 빠르게 페널티에어리어로 쇄도해 들어갔다. 현수는 그걸 보고도 그냥 있었다.
현수가 있을 때 연신대 중앙은 가장 두터운 수비를 자랑했다. 하지만 그런 현수가 뚫리면 연신대 중앙은 무인지대나 마찬가지였다.
“안 돼!”
“막아!”
연신대 진영으로 쭉 치고 올라간 고구려대 윙어의 정교한 패스가 고구려대의 스트라이크 하재봉에게 정확히 택배 배달이 되었다. 하재봉은 연신대 수비수들이 자리를 잡기 전에 감각적으로 돌파해 들어갔다.
“잡아!”
“앗!”
힘과 기술에서 우위인 하재봉은 연신대 수비 2명을 그대로 뚫었고 황급히 달려 나오는 연신대 골키퍼 방주혁의 겨드랑이 사이로 강하게 공을 차 넣었다.
출렁!
그 공이 골망을 갈랐다. 그 골에 양 팀의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와아아아아!”
“됐다!”
특히 경기 시작하자마자 골을 먹고 침울해져 있던 고구려대 벤치에서 난리가 났다. 그 중에서 가장 난리법석을 뜬 건 역시 감독인 김창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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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이 경기를 이기기라도 한 듯 기뻐서 방방 날 뛰는 김창수를 보며 이명신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터치라인으로 다가가서 소리쳤다.
“강현수. 너 지금 뭐하는 거야?”
대 놓고 선수를 질책하는 이명신의 외침에 현수는 슬쩍 먼 산만 쳐다봤다. 그런 강현수를 다른 연신대 선수들도 불만 어린 눈빛으로 쬐려 보았다.
이번 꼴은 강현수가 자기 역량 만큼 뛰지 않아서 먹은 골이었다. 하지만 앞서 선취 골을 강현수가 기록하다보니 다들 뭐라고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때 주장인 센터백 이기찬이 강현수에게 쓴 소리를 내뱉었다.
“야. 너 똑바로 안 뛸 거야?”
그 말에 강현수의 대답이 다른 연신대 선수들의 입을 쩍 벌어지게 만들었다.
“응. 똑바로 안 뛸 거다.”
“뭐?”
“걱정 마. 지게 만들진 않을 테니까.”
현수는 그 말 후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자기 자리로 돌아갔고 경기는 바로 재개 되었다. 그리고 자기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연신대 선수들에게 알려주기라도 하려는 지 고구려대 공격수의 공을 간단히 뺏어냈다.
뻥!
그리고 대충 찬 현수의 공이 크게 원바운드 되면서 고구려대 미드필더의 키를 훌쩍 넘겼고 그걸 나진목이 잡아내서 고구려대 진영 페널티에어리어 안으로 치고 들어갔다.
“막아!”
고구려대의 골키퍼가 다급히 소리를 치며 골에어리어 밖으로 달려 나올 때 나진목은 그의 앞을 막고 있던 수비를 가볍게 제치고 강하게 공을 때렸다.
“헉!”
그 공은 고구려대 골키퍼가 감각적으로 내 뻗은 손을 스쳤지만 워낙 강하게 때린 공이라 튕겨나지 않고 그대로 골대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출렁!
그렇게 강현수의 한 번에 넘겨주는 킬 패스로 추가골이 터지면서 연신대가 다시 2대 1로 앞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