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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쓰는 미드필더-600화 (600/712)

<-- 베이징 올림픽 -->

슥!

장필모를 부축하고 있던 현수의 반대 손에 카드 하나가 쥐어졌다.

“계산할 게요.”

그 말을 하며 카운터의 직원에게 카드를 건네자 술이 오른 장필모가 그 카드를 보며 중얼거렸다.

“흐흐. 내 카드란 같은 카드 쓰네.”

그 소리에 현수는 속으로 생각했다.

‘같은 카드가 아니라 네 카드다.’

현수는 일시불로 깔끔하게 결제를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카드를 도로 장필모의 지갑 속으로 돌려놓아야 했는데 그것 역시 카드를 훔치는 거만큼이나 귀찮은 일이었다. 그러나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시스템이 바로 반응을 보였다.

[띠링! 훔친 물건을 도로 원래 자리로 보내는 마법이 있습니다. 3서클인 그 마법을 구입하시겠습니까?]

현수는 시스템의 장사 속에 피식 웃었다. 하지만 문제 될 건 없었다. 현수에겐 저렴하게 그 마법을 쓸 수 있는 렌트 마법이 있었으니까.

현수는 3서클의 언도 어 스톨런 아티클(Undo a stolen article)마법을 앞서 사용한 스틸 씽(Steal thing)마법처럼 렌트해서 사용했다.

[띠링! 50포인트 결제. 남은 포인트 8,845,790]

그러자 결제창이 뜨고 그의 손에 쥐어져 있던 카드도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 사이 현수는 부축한 장필모를 데리고 서해 일식을 나와서는 근처 사우나로 향했다. 장필모가 사우나에게 한숨 자고 나면 괜찮아 질 거라고 해서 그 말을 들어 주고 있었던 것이다. 현수는 귀찮지만 장필모를 사우나 수면실에 집어넣었다.

“휴우. 다 됐다.”

그 다음 막 사우나를 나서려 할 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확인하니 장희진의 핸드폰 번호였다.

현수가 장희진에게 자신의 핸드폰 번호를 알려 줄 수밖에 없었던 건 그녀의 눈썰미 때문이었다.

안 그래도 이준혁과 통화가 되지 않는다고 불만이던 장희진은 현수의 핸드폰을 보고 이준혁이 핸드폰을 바꿨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점심 식사 도중 현수의 핸드폰을 슬쩍 빼낸 그녀는 그 핸드폰으로 자신의 핸드폰에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찍힌 현수의 핸드폰 번호가 그녀의 핸드폰에 저장 된 것이다.

“여보세요.”

현수는 일단 그녀의 전화를 받았다. 그러자 애교 섞인 장희진의 목소리가 바로 현수의 귀에 들려왔다.

-오빵. 여기 리베라 호텔 2503호야. 빨리 와.

뚜뚜뚜뚜뚜.

그 말을 지껄인 뒤 장희진은 바로 전화를 끊었다. 당연히 그런 일방적인 장희진의 처사에 현수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게 진짜.....”

하지만 통화를 끝낸 현수는 주위부터 살폈다. 혹시 근처에 리베라 호텔이 있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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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컷은 다 똑같았다. 아름다운 암컷이 유혹하면 다 넘어가게 되어 있었다. 그런 점에서 장희진은 보통 아름다운 암컷이 아니었다. 현수도 올림픽 때 같은 방을 쓰던 배재성이 장희진의 브로마이드를 보면서 아랫도리를 손으로 주물럭거리는 걸 자주 봤다. 그 만큼 그녀는 뭇 남성들의 아랫도리를 설레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가졌다. 그리고 현수도 그 매력에 빠진 수컷 중 하나였고 말이다.

단지 이준혁이라는 조폭 새끼의 정부란 게 마음에 걸렸지만 이미 죽은 녀석을 질투할 만큼 현수는 속 좁은 남자는 아니었다.

처음 현수는 장희진의 전화를 그냥 씹을 생각이었다. 리베라 호텔에 있다가 현수가 오지 않으면 장희진도 그냥 나오겠지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자기도 모르게 주위를 살피며 리베라 호텔을 찾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현수는 긴 한숨과 함께 탐지 마법을 사용했다. 그 결과 리베라 호텔은 여기서 택시로 기본요금이 나오는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즉 걸어서 가기엔 거리가 좀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텔레포트 마법을 쓰기도 그렇고 해서 현수는 일단 서해 일식으로 가서 장롱에 올려 두었던 캠코더를 챙긴 뒤 큰길로 나가서 택시를 잡아탔다.

“리베라 호텔로 가주세요.”

“네.”

비교적 젊어 보이는 택시 기사가 기분 좋게 밝은 목소리로 대답하곤 택시를 유턴했다. 그때 현수의 핸드폰이 또 울렸다. 확인하니 백성조였다.

“네. 형.”

오늘 저녁에 만나기로 했던 백성조였다. 그가 갑자기 전화를 했을 땐 그 만한 이유가 있을 터라 현수는 바로 그 전화를 받았다.

-어. 현수야. 오늘 저녁에 만나기로 한 거 뒤로 좀 미루자.

“왜요?”

-회사에 일이 좀 생겨서. 자세한 건 만나서 얘기하고 모레 저녁에 만나자.

“그래요. 그럼.”

백성조와 통화를 끝낸 현수는 아차 싶었다. 그럴 게 오늘 오후에 주윤미와 만나기로 한 약속이 생각 난 것이다. 그렇다면 장희진에게 가는 건 포기해야 했다. 장희진 따위 때문에 자신이 어렵게 만들어 놓은 여친 주윤미를 놓칠 순 없으니 말이다. 현수가 택시 기사에게 막 근처에서 내려 달라고 말하려던 그때 현수의 핸드폰이 울렸다. 확인하니 주윤미였다.

“네. 윤미씨.”

현수가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주윤미의 목소리는 그다지 밝지가 않았다.

-저기.....진짜 미안해요. 시청 행사가 끝나자마자 바로 공항으로 가야 할 거 같아서요. 모스크바에서 문제가 좀 생겨서......

현수는 주윤미가 쥐구멍이 있으면 숨고 싶을 정도로 미안해하고 있음을 그녀의 목소리만 들어도 알거 같았다. 그래서 더 밝게 말했다.

“전 괜찮아요. 그러니 미안해 할 거 없어요. 전 오히려 윤미씨가 걱정 되네요. 추운 모스크바에서 잘 지낼지 말이에요.”

-저는 괜찮아요. 모스크바에 한 두 번 가는 것도 아니고. 정말 미안해요.

그때 주윤미의 전화 너머로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공항에서 다시 전화 할게요.

그 말 후 주윤미는 전화를 끊었고 그 사이 택시 차창 너머로 리베라 호텔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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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쩝쩝....”

택시에서 내려서 리베라 호텔 정문 앞에 선 현수는 입맛을 다셨다. 무슨 머피의 법칙도 아니고 오늘 약속이 죄다 취소되면서 현수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곳에 오게 되었다. 마치 장희진과 이 호텔에서 꼭 만나기라도 해야 한다는 듯 말이다.

“에이. 모르겠다.”

현수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그를 유심히 지켜보는 한 쌍의 눈이 있는 걸 현수는 알지 못했다.

“이준혁? 손태섭 밑에 그 이준혁 맞는데......”

신세기파의 보스 노우진의 최측근으로 급부상중인 중간 보스 장천식이 호텔 앞에서 자신의 차를 기다리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빠!”

그때 미니스커트에 그 아래 쫙 빠진 다리 각선미를 자랑하는 미녀가 나타나서 그의 팔짱을 꼈다. 그리고 발렛 주차 되어 있던 그의 하얀색 BMW가 그 앞에 도착했다.

“고객님. 여기.....”

호텔 직원이 건네는 차 키를 받아 챙긴 장천식은 뒤돌아서 호텔 안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이준혁은 벌써 사라지고 없었다.

“오빠. 배고파. 어서 가요.”

“어. 그래.”

미녀의 재촉에 장천식은 곧장 운전석으로 향했다. 그 사이 미녀는 운전석 옆 보조석에 올라타고 있었다. 그때 운전석에 타면서 옆을 쳐다 본 장천식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럴 것이 보조석 쪽 열린 차문 너머로 좀 전 그에게 차 키를 건넨 호텔 직원이 넋을 놓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 직원의 시선은 차안에 타고 있던 미녀의 두 다리였고 말이다. 워낙 치마가 짧았던 탓에 차에 앉자 거의 팬티까지 다 보일 거 같았던 것이다.

“야 이 씹새끼야!”

여전히 조폭 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던 장천식의 입에서 좋은 말이 나 올리 없었다. 그 욕설에 흠칫한 호텔 직원이 후다닥 도망을 쳤고 그런 그를 쫓기라도 하려는 듯 장천식이 다시 차 밖으로 나가려 하자 보조석의 미녀가 그런 그의 팔을 잡아채며 말했다.

“오빠. 그냥 가요. 남자들이 다 그렇지 뭐.”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자기 옆의 미녀를 보고 장천식이 길게 한숨을 내 쉬며 말했다.

“하아. 너도 이제 옷 좀 고상하게 입어라.”

“내 옷이 뭐 어때서?”

미녀의 이름은 효숙이었다. 지방에서 올라 온 그녀는 뛰어난 미모 때문에 단숨에 강남의 유명 룸살롱에 취직이 되었다. 그런 그녀를 장천식이 발견하고 자신의 여자로 픽업한 것이다.

효숙의 외모는 장천식의 이상형에 가까웠다. 하지만 단점이 있었으니 그녀 머리가 텅텅 비었단 것이다. 그 빈 머리에 하필 허영심이 가득 차 있어 장천식도 요즘 고민 중이었다.

이 여자를 계속 데리고 있어야 할지 아니면 다시 룸살롱으로 돌려보내야 할지를 말이다.

“예쁘기만 하구만. 아씨. 나 배고파. 빨리 출발 해.”

효숙의 짜증에 장천식은 일단 차를 출발 시켰다. 그리고 그녀가 먹고 싶다는 순댓국밥집으로 차를 몰았다.

좀 전까지 장천식은 효숙과 호텔VIP룸에서 섹스를 나눴다. 외모만 놓고 보면 효숙은 요즘 잘나가는 탤런트나 모델 못지않았다. 그리고 섹스도 잘 해서 그녀와 침대에서 뒹굴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문제는 섹스 뒤였다.

VIP룸에 어울리게 조금 고상을 떨어도 될 텐데 그런 게 그녀에겐 없었다. 배가 고프면 룸서비스 시켜 먹으면 될 것을 굳이 시장통의 순댓국밥집에 가잔다.

찌이이이잉!

운전 중이던 장천식의 옆에서 핸드폰이 울렸다. 문자가 온 모양이었다. 마침 신호가 걸려서 차를 세운 장천식이 핸드폰을 확인했다.

“어라?”

그랬더니 부재중 전화가 십여 통이나 걸려와 있었고 문자도 몇 통 보였다. 이게 다 효숙과 즐길 생각에 핸드폰을 차에 두고 내린 탓이었다. 누가 그에게 전화를 걸고 문자를 보냈는지 바로 확인했다.

“씨발........하필......좆 됐다.”

장천식도 중간 보스로 조직에서 방귀깨나 뀌는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그의 위에 몇 분의 형님들이 있었고 그 중에서도 가장 깐깐한 인간이 바로 그에게 십 여 통이나 전화를 걸어 대고 문자까지 보낸 것이다.

그는 손태섭과 함께 신세기파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조직의 3인자 하재봉이었다. 장천식은 바로 좀 전 하재봉이 보낸 문자부터 확인했다.

[보스 집합 걸었다. 빨리 튀어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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