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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쓰는 미드필더-553화 (553/712)

<-- 베이징 올림픽 -->

띠리리리링!

그때 책상 위에 올려 져 있던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이명신은 씩씩 거리며 책상 쪽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책상 위에 핸드폰을 흘깃 살피곤 재빨리 핸드폰을 주워들었다.

“어. 혜숙아.”

자신의 동창이자 정부인 혜숙이었다. 바로 어제 마누라와 대판 싸우게 만든 원인 제공자이기도 했고 말이다.

-어디야?

“어디긴. 학교지. 넌?”

-공항 가는 중이야. 그 사람 오늘 2시 비행기로 온다고 했잖아.

“아. 맞다. 그랬지.”

그래서 어제 일부러 혜숙과 만나서 3번이나 정사를 나눴었는데 그걸 깜빡 하고 있었다. 그 만큼 어젯밤 마누라와 대판 싸웠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수차례 이혼 얘기가 나왔고 결국 참지 못한 이명신이 이혼하자고 외치면서 싸움도 잦아졌다.

이혼할 마당에 언성을 높이고 싸울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침이 되자 이명신은 자신의 말을 번복했다.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목표인 그에게 이혼이 웬 말이란 말이냐?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거기다 이혼할 경우 아이들은 또 어쩌고? 이혼하면 당장 곤란한 일투성이었다. 그러니 이명신은 어째든 마누라를 달래서 이혼만큼은 막아야 했다. 그래서 아침에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고 겨우 마누라 마음을 돌려놓고 출근을 했다. 그 때문에 현수와의 약속 시간도 한 시간이나 늦었고 말이다.

-근데 걱정이야. 그이가 날 가만 내버려 두지 않을 텐데.

누구 놀리는 것도 아니고 혜숙이 툭 내뱉는 그 말에 이명신의 이마에 핏줄이 곤두섰다. 그럴 것이 혜숙의 몸을 딴 남자가 탐한다는 생각이 들자 욱하며 화가 치밀어 올랐던 것이다.

사실은 정반대로 혜숙의 남편이 이명신에게 화를 내야 정상인데 말이다.

-뭐 어쩔 수 없지. 며칠 만 참으면 되니까. 남편 떠나면 그 때 연락할 게. 그 전엔 자기도 나한테 전화하지 말고. 알았지?

“그, 그래. 알았어.”

혜숙의 입에서 남편이란 말이 나오자 그제야 자신이 불륜을 저지르고 있단 사실이 생각난 이명신은 살짝 말을 더듬으며 대답했다. 그 대답을 듣자마자 혜숙은 전화를 끊었다.

“씨발년!”

전화 종료 음이 들리기 무섭게 이명신의 입에서 쌍욕이 터져 나왔다. 혜숙이 지금 전화한 이유는 이명신을 격동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함으로서 바짝 몸이 달아 오른 이명신이 그녀의 곁을 떠나지 못하게 만들려는 고도의 계산된 행동이었던 것이다. 이명신도 이제 그걸 눈치 차렸지만 혜숙의 그물을 벗어나기엔 그녀와의 섹스가 너무 좋았다.

“젠장.....”

생각 같아선 이대로 혜숙과 영영 헤어지고 싶었다. 하지만 어제 그의 품에서 숨넘어가는 교성을 터트리며 미친 듯 허리를 놀려대던 혜숙이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이명신은 혜숙과 헤어지는 걸 좀 더 미루기로 했다.

“그래. 이 짓도 곤 신물 날 거야.”

이명신은 뭘 진득하게 오래 하지 못했다. 그런 그의 성격 상 혜숙과의 관계도 그리 오래 가지 않을 터였다.

“이런....”

시간을 확인한 이명신이 놀라며 서둘러 외출 준비를 서둘렀다. 점심 약속이 있었던 것이다.

협회에 들르기 전에 전남 페가수스에서 수석 코치를 맡고 있는 선배를 만나기 되어 있었다.

평소 연락도 없던 그 선배가 그에게 연락한 이유는 오직 하나였다. 전남 페가수스로 현수를 데려가기 위해서 말이다.

올림픽이 시작되기 전부터 이런 유의 전화는 걸려왔었다. 그러다 올림픽 중에 수시로 현수를 데려가고 싶다는 국내 프로 축구팀의 러브콜이 쇄도했고 그때마다 이명신은 현수의 에이전트 전화번호를 그들에게 알려 주었다. 그러자 좀 조용해졌는데 무슨 의도인지 모르지만 몇몇 국내 프로 축구팀에서 그와 접촉을 시도해왔다. 아무래도 현수의 은사나 마찬가지인 이명신을 설득하면 현수를 자기 팀으로 데려 올 수 있을지 모른단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현수와 이명신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당연히 이명신의 말을 들어 먹을 현수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접촉 해 온 프로팀을 상대로 이명신은 거짓말을 했다. 현수가 자기 말을 잘 듣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자 몸이 단 프로팀에서 이렇게 이명신을 살뜰하게 챙기기 시작한 것이다.

“점심은 전남 페가수스한테 얻어먹고 저녁은 광주 무등 FC로군. 기분도 안 좋은데 오늘은 끝까지 달려봐야겠군.”

아무래도 점심을 쏘는 전남 페가수스보다 저녁을 접대하는 광주 무등 FC의 등골이 휠 듯했다. 체육관을 나선 이명신은 근처 주차장에 대 놓은 자신의 차를 타고 전남 페가수스 수석 코치를 만나기로 한 장소로 곧장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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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신을 만나고 체육관을 나서는 현수의 입가에 피식 웃음이 지어졌다.

“이로서 일주일의 시간을 번 건가?”

아직 학생신분인 현수는 졸업하기 위해서 출석 일수를 잘 조절해야 했다. 하지만 감독이 도와준다면 졸업하는데 필요한 출석 일수를 채우는 건 문제 될 것이 없었다. 현수는 당장 처리해야 할 일들이 있었다. 그 일들을 처리하면서 현수는 자신의 장래에 대해 좀 더 깊게 생각해 보기로 했다.

사실 현수는 국내 프로 리그에서 뛰다가 해외로 진출할 생각이었다. 그 생각은 올림픽 참가 중에도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올림픽이 끝나고 나자 생각이 좀 바뀌었다. 이렇게 현수의 생각이 바뀐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상급으로 업그레이드 된 카멜레온 축구복 때문이었다.

대학리그와 FA컵에서 현수는 카멜레온 축구복을 중급으로 업그레이드 하지 않아도 엄청난 활약을 선보였다. 그런 그가 중급으로 업그레이드 한 후 국내 축구는 물론 외국 선수들을 상대로 빼어난 축구실력을 뽐냈었다. 그런 현수가 카멜레온 축구복을 상급으로 업그레이드 하면서 대망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리고 그는 이제 자신이 세계적인 축구 선수가 되었음을 자각했다. 그런 현수에게 국내 리그에서 뛰는 건 상어가 우물이나 연못 안에 있는 거와 마찬가지였다. 무릇 상어란 대해를 누비고 다니며 먹이를 사냥해야 정상인 법이었다.

“곧 백성조가 귀국한다니 그와 얘기 해 보지 뭐.”

현수는 이 일을 우선 자신의 에이전트인 백성조와 상의해 보기로 했다. 그런 의미에서 현수는 백성조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법 길게 신호가 가고 백성조가 전화를 받았다.

-어. 현수야.

“어디에요?”

-지금은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이야.

“공항이요?”

-어. 안 그래도 전화하려던 참이었는데 나 지금 한국 들어간다.

“그래요? 잘 됐네. 안 그래도 형하고 상의할 일이 있었는데.”

-상의? 아아. K리그 어떤 팀에 들어갈지 정하려고?

현수는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던 백성조에게 전화상으로 국내 K리그에서 뛰겠다는 언질을 주었다. 하지만 백성조는 여전히 해외 팀을 알아봤다. 현수가 K리그에서 뛴다고 해 봐야 그 기간은 길어야 2년으로 본 것이다.

그 뒤에 해외 진출을 해야 하는데 그 전에 사전에 현수가 뛸 만한 해외 구단을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백성조는 이번 해외 출장을 통해서 해외 축구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였는지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영국에서 우연히 알게 된 세계적인 축구 에이전트 멘데르스와 몰래 접촉을 했다.

멘데르스는 독일에서 뛰고 있는 선수를 영입하러 프랑크푸르트를 찾았는데 그런 그를 쫓아 백성조가 프랑크푸르트로 날아간 것이다. 그리고 기어코 그를 만났다. 하지만 그와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에 대해서 백성조는 함구했다.

‘이건 현수와 직접 만나서 얘기하는 게 좋겠어.’

한국에 가면 현수와 프랑크푸르트에서 만난 세계적인 축구 에이전트 멘테르스와 그가 나눈 얘기를 현수에게 들려 줄 생각이었다.

-안 그래도 나도 너하고 상의할 일이 있었는데 잘 됐다. 한국 가면 바로 만나자.

“네. 그래요.”

백성조와 만나기로 한 이상 딱히 더 할 말이 없었던 현수는 곧장 그와의 통화를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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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통화를 끝낸 뒤 현수가 정면을 쳐다보자 눈앞에 학교 도서관이 보였다. 도서관하면 그 안에서 지금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 그의 섹파 김혜미가 생각났다. 현수는 핸드폰을 살폈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점심이나 같이 먹을까?”

혹여 그녀의 공부에 방해가 될까 걱정도 들었지만 어차피 그녀도 점심은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 생각이 들자 현수는 혜미에게 전화를 걸었다. 도서관에서 공부 중인 혜미는 좀 늦게 전화를 받았다.

-어. 왜?

“나 지금 학굔데. 점심 같이 먹자고.”

-...........

혜미는 잠시 말이 없었다. 하지만 이내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그러자. 어디서 볼까?

“도서관 근천데 바로 나올래?”

-알았어.

현수는 도서관 입구 앞으로 갔고 1분도 채 기다리지 않아서 혜미가 도서관을 나오는 걸 볼 수 있었다. 그녀는 핸드폰과 지갑만 든 체 현수가 있는 쪽으로 쪼르르 뛰어왔다.

“본지 얼마나 됐다고 또 와?”

그리고 살짝 현수의 팔을 꼬집으면서 눈을 흘겼지만 대담하게 그의 팔짱을 꼈다. 그런 혜미를 보고 현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참새가 방앗간을 두고 그냥 지나갈 순 없잖아.”

“뭐? 그럼 내가 방앗간이라고?”

“예민하긴. 학교 온 김에 널 보고 가려는 이 파트너의 애절한 마음을 이해해 주면 안 될까?”

“애절은 개뿔. 뭐 먹을 거야?”

“먹고 싶은 거 있어?”

“시원한 냉면이 당기긴 하는데.....”

구내식당에도 냉면을 팔았다. 하지만 맛이 없었다. 그래서 꺼려하는 혜미를 보고 현수가 말했다.

“그럼 밖에서 먹자. 좀 빨리 걸으면 되잖아.”

빨리 걸어 나가서 밖에 냉면 전문점에서 냉면을 먹고 빨리 걸어서 오면 되지 않냐는 현수의 말에 혜미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자.”

그렇게 둘은 평소보다 빠른 걸음으로 도서관을 벗어나서 곧장 학교 정문 쪽으로 향했다.

“후루룹.....쩝쩝쩝.....”

현수는 물 냉면 곱빼기를 시켰고 혜미는 보통을 시켜서 허겁지겁 냉면을 먹었다.

“만두도 먹어.”

현수는 직접 젓가락으로 만두를 집어 혜미의 입으로 가져갔다.

“아아....쩝쩝쩝.....”

혜미는 현수가 집어 준 만두를 크게 입을 벌리고 입속에 넣은 뒤 씹다가 환하게 웃었다.

“마시쪄....후루룩.”

그리고 현수를 향해 젓가락을 들지 않은 왼손의 엄지를 내밀며 말했다. 그리곤 곧장 시원한 냉면 국물을 들이켰다. 그런 혜미를 보고 현수의 입가에도 절로 미소가 어렸다.

여름의 끝자락임에도 냉면 전문점은 사람들이 꽤 많았다. 하지만 혜미와 현수가 들어갔을 때 막 자리가 비었고 둘은 후다닥 그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그리고 빠르게 주문을 했고 냉면 전문점 답게 5분도 되지 않아 주문한 냉면과 만두가 나왔다. 둘은 5분 만에 그걸 먹어치웠다. 그리고 냉면 전문점을 나와서 다시 학교로 향했다. 그때 현수가 시간을 확인하고 혜미에게 말했다.

“빨리 먹어서 그런지 얼추 학교 구내식당에서 밥 먹은 거나 비슷하게 시간 잡아먹겠어.”

그런 현수를 보고 혜미가 생글거리며 웃었다. 자신을 이렇게 지극 정성스럽게 챙겨주는 현수가 당연히 좋았던 것이다. 그러면서 오늘 따라 더 섹파인 현수가 점점 더 자신의 남친, 혹은 애인처럼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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