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이징 올림픽 -->
이주나는 자신이 원하면 당연히 현수도 자기를 따라서 룸으로 따라 올라 갈 거라 여기는 모양이었다. 지금 이주나의 모습은 확실히 매력적이었다. 170센티는 됨직한 큰 키에 글래머러스한 몸매, 거기다 성형을 하긴 했지만 예쁜 얼굴. 남자라면 환장해서 그녀를 따라 당장 룸으로 올라가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현수는 흥분은커녕 오히려 성욕이 확 사라졌다.
“이거 좀 치우자.”
현수가 잡고 있던 이주나의 끈끈한 손을 밀어내자 이주나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마치 이게 미쳤나 하는 얼굴이었다.
“술 마시러 왔지 룸에 가려고 여기 따라 온 거 아니거든. 뭐 보아하니 술은 다 마신 거 같은데 그만 일어나자.”
현수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이주나가 발끈했다.
“앉아!”
이주나의 명령조의 말에 현수는 빤히 그녀를 쳐다보고 있다가 말했다.
“내가 여기까지 따라 온 건 네가 정욱이 형의 외사촌이라고 해서야. 하지만 김정욱 선수에 대한 예의는 여기까지로 하지. 막말로 내가 김정욱 선수가 몸담고 있는 성남 베어스 선수도 아니고. 딴 팀으로 가면 서로 얼굴 붉힐 사이가 될 텐데 더는 그 선수에게 호의를 베풀 필요가 있을까 싶네. 그럼 안녕. 비싼 술은 잘 마셨어.”
현수가 손을 흔들며 호텔 라운지바를 나서자 그런 그를 이주나가 표독스런 눈으로 쏘아보았다. 그리고 핸드폰을 꺼내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는데 그러던지 말든지 현수는 곧장 호텔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 호텔 앞에 대기 중인 택시를 타려 할 때였다.
“어머. 현수씨!”
귀에 익은 여자 목소리에 뒤로 고개를 돌린 현수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그럴 것이 하필 호텔 앞에서 전처이자 이제 현수와 볼짱 다 본 사이인 양미라와 마주친 것이다. 그녀는 또 어디서 구했는지 돈 많고 골비어 보이는 놈팡이와 같이 있었다. 보나마나 이 호텔에 떡치러 온 터였다.
‘오늘 여러모로 재수가 없네.’
현수는 양미라와 더 할 말이 없었기에 그녀를 무시하고 택시에 올랐다. 그런데 막 택시 문을 닫으려 할 때 갑자기 양미라가 택시 문을 열고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그리고 재빨리 택시기사에게 말했다.
“기사 아저씨. 출발해요.”
택시 기사는 그 말에 택시를 출발 시켰다.
“지금 뭐하는 거야?”
양미라의 이런 돌발적인 행동에 현수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하자 양미라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현수씨. 지금 나한 테 화내는 거야? 아저씨. 이 사람이 바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에요. 왜 축구 선수 강현수라고. 알죠?”
양미라가 뜬금없이 택시 기사에게 현수에 대해 얘기하자 현수는 움찔했다.
‘이런.....’
이제 현수는 예전의 연신대 축구 선수 강현수가 아니었다. 대한민국 올림픽 축구 대표로 금메달을 목에 건 공인이었던 것이다. 때문에 지금 현수는 양미라에게 함부로 말을 할 수 없었다. 택시 기사가 그들을 보고 그들이 하는 얘기를 전부 듣고 있었기 때문에 말이다.
“아아! 강현수 선수. 알죠. 축구 잘 봤습니다. 금메달 딴 거 축하해요.”
“네. 고맙습니다.”
얼굴은 웃고 있지만 경직 된 현수의 몸으로 양미라가 바짝 자신의 몸을 기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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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가 슬쩍 밀쳐냈지만 양미라는 끈덕지게 현수에게 들러붙었다. 그때 현수의 눈에 버스 승강장이 보이자 바로 택시 기사에게 말했다.
“저기 세워주세요.”
택시를 출발 시킨 건 양미라지만 택시를 세우는 건 현수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아뇨. 더 가...우웁.”
양미라가 그런 택시를 계속 가게 하려 했지만 현수의 손이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어색하게 웃으며 현수가 택시 기사에게 말했다.
“여자 친구가 좀 삐져서. 그냥 여기서 내릴게요.”
그 사이 택시는 버스 승강장에 멈춰 섰고 현수는 먼저 택시 문을 열고 양미라를 밖으로 밀쳐 낸 뒤 택시 기사에게 만 원짜리 한 장을 건넸다. 그리고 자신도 택시에서 후다닥 내리면서 거스름돈을 주려는 택시 기사에게 말했다.
“잔돈은 됐습니다.”
“아네. 고맙습니다.”
호텔에서 그리 멀리 오지 않은 탓에 막 기본요금을 넘어선 터라 현수에게 내어 줄 잔돈이 꽤 되었는데 그걸 되었다고 하니 택시 기사의 입이 귀에 걸렸다. 그렇게 택시가 출발하자 양미라가 냅다 현수의 정강이를 발로 찼다.
퍽!
“아악!”
뾰족한 하이힐 앞굽에 정강이를 맞았으니 그 아픔이야 말해 뭐할까?
“실컷 날 가자고 놀더니 이제 좀 떴다고 날 이런 취급해?”
양미라가 씩씩거리며 재차 현수를 향해 발길질을 해 왔다. 택시 안에서 그녀를 짐짝처럼 밖으로 밀쳐 낸 것에 대해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었다. 하긴 그녀 같은 미녀가 언제 이런 취급을 당해 봤을까?
한 번이야 방심해서 그녀에게 맞아줬다지만 두 번 그녀에게 맞아 줄 현수가 아니었다.
턱!
그녀가 차는 발은 손을 뻗어 잡은 현수가 확 그 발을 당기자 양미라가 뾰족한 비명성과 함께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아악!”
그래도 엉덩이 탱탱해서 그런지 별로 큰 소리는 나지 않았다. 양미라는 얼굴을 찡그리다 도끼눈으로 현수를 쏘아보았다. 그런 그녀에게 현수가 말했다.
“이런 얘기까진 하지 않으려 했는데. 네가 나오는 동영상 봤다.”
현수의 동영상이란 말에 양미라의 도끼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뭐?”
“웬 늙은이와 화끈하게 하더라.”
“...............”
양미라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리고 그녀의 눈알이 빠르게 돌아갔다. 여기서 현수가 말한 웬 늙은이라 함은 축구 협회 전무 마상천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녀와 축구 협회 고위 간부의 성접대 동영상이 인터넷 상에 돌고 있단 건 그녀도 아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동영상에서 여자의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 되어 있었는데 아무래도 현수는 노모자이크 된 원본 동영상을 본 모양이었다.
“혀, 현수씨. 그, 그건 내가 속아서.....”
“아아! 그만. 우리 여기까지 하자. 너에 대해 더 실망하기 싫다.”
현수의 그 말에 나름 변명을 늘어놓으려던 양미라의 입이 굳게 닫혔다. 그때 빈 택시가 보였고 현수가 손을 들자 그 택시가 현수 앞에 섰다. 현수는 더는 양미라와 말도 섞기 싫다는 듯 바로 택시 문을 열고 안에 탑승했다. 그리고 이내 택시가 출발했는데 양미라는 떠나가는 현수를 태운 택시를 넋 놓고 바라보다 그 택시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길게 한숨을 내 쉬었다.
“하아! 괜찮은 놈이었는데..... 별 수 없지.”
그 말 후 양미라는 핸드백에서 핸드폰을 꺼내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잠시 뒤 고급 외제차가 그녀 앞에 멈춰 섰다.
“어머. 자기 미안해.”
그리고 양미라가 애교 섞인 말을 건네며 그 차에 올랐다. 그리고 잠시 정차 중이던 그 고급 외제차는 방향을 틀어서 다시 특급 호텔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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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자 때문에 진이 다 빠진 현수는 곧장 그의 집, 강북구 수유동의 전원주택으로 향했다. 그때 현수는 다시는 그 두 여자, 이주나와 양미라를 보지 말아야겠단 생각을 했다. 왠지 그들과 엮이면 좋은 꼴 보기 어려울 거 같아서 말이다.
내일부터 현수는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들을 만나기로 줄줄이 약속이 잡혀 있었다. 며칠 그녀들과 같이 뜨거운 시간을 가질 걸 생각하니 아랫도리가 불룩해졌다. 그런데 그때 현수의 머릿속에 알림 음이 울렸다.
[띠링! 잠시 뒤 강남 룸살롱 칸타타에서 패싸움이 벌어집니다. 그로 인해 올림픽 축구 대표 팀 선수 몇 명이 부상을 입고 병원에 실려 가는 불상사와 함께 언론의 뭇매를 맞게 됩니다. 이로 인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축구 선수들의 이미지가 크게 훼손 되어 신인 드래프트와 이적 시장이 꽁꽁 얼어붙게 됩니다.]
시스템의 알림을 듣고 현수의 얼굴이 굳었다. 그럴 것이 동료 올림픽 축구 대표 팀 선수들의 패싸움으로 인해 올해 신인 드래프트를 거쳐 국내 프로 축구팀에 들어갈 생각인 현수의 계획이 틀어지게 생겼으니 말이다. 그때 현수의 머릿속으로 시스템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이를 막길 원하는 의뢰인이 있습니다. 물론 귀찮으면 막지 않아도 됩니다. 보상 예상 포인트는 5,000포인트입니다.]
고작 5천 포인트에 움직일 현수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건 포인트가 문제가 아니었다. 현수의 미래가 걸린 일이니 안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저씨. 죄송합니다. 급한 볼일이 생겨서 그러니 근처 차 세울 만 한 곳이 보이면 거기서 내리겠습니다.”
택시는 근처 횡단보도 앞에서 멈췄고 현수는 이번에도 만원을 건네며 잔돈은 받지 않았다. 역시 택시가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기본요금도 넘지 않은 터였다. 그래서 택시 기사는 중간에 내렸지만 잔돈을 챙길 수 있어서 그런지 얼굴 표정이 밝았다. 그 택시가 떠나고 바로 횡단보도에 푸른 불이 들어왔다. 현수는 곧장 횡단보도를 건넸다. 그가 있는 곳 보다 횡단보도 건너편에 골목이 더 많았던 것이다.
현수는 제일 가까운 골목 안으로 들어갔고 사람이 없자 상태창의 인벤토리에서 텔레포트 바바리코트를 꺼내 걸쳤다. 그러자 눈앞에 상태창이 바뀌었다.
[마법 아이템- 텔레포트 바바리코트(포인트 소비형)]
일정 포인트 사용으로 텔레포트가 가능한 아이템이다.
1. 반경 10Km이내 텔레포트(+5,000)
2. 반경 50Km이내 텔레포트(+7,000)
3. 반경 100Km이내 텔레포트(+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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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서울 전역 텔레포트 사용권- 10장 당 (+20,000)
8. 각 도별 전역 텔레포트 사용권- 10장 당 (+15,000)
9. 대한민국 전역 텔레포트 사용권- 10장 당 (+50,000). 단 섬 제외. 섬은 별도 구매
현수가 머릿속으로 강남을 룸살롱 칸타타를 떠올리자 시스템에서 바로 반응이 왔다.
[띠링! 현 위치에서 룸살롱 칸타타는 반경 9Km에 있습니다.]
현수는 바로 반경 10Km이내 텔레포트를 선택하면 됐다.
[띠링! 5,000포인트 결제. 남은 포인트 7,660,890]
결제 창이 뜨고 나자 바로 현수의 몸이 하얀 빛에 휩싸였다. 그리고 머리가 아찔한 순간 현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제일 먼저 현수의 귀로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들렸고 뒤이어 그의 시야에 번쩍이는 사이키 조명이 보였다.
현수는 룸살롱의 빈 방에 멍하니 서 있었다. 그때 또각또각 거리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파팟!
현수는 주위를 살피다가 등받이가 있는 폭신한 소파 뒤로 뛰어넘어서 몸을 숨겼다. 그러자 잠시 뒤 딸깍 소리와 함께 룸 안의 문이 열리고 남녀가 들어왔다. 현수가 힐끗 숨은 소파 뒤에서 그들을 살폈다. 그러자 훤칠한 키에 다부진 체격의 남자와 누가 봐도 늘씬한 몸매의 여자가 현수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룸 안에 들어 온 그들 남녀는 바로 목청을 높여 싸우기 시작했다.
“강식아. 그래도 이건 아니지. 엄연히 영업 중인데 여기서 폭력을 쓰겠다니. 이게 말이 돼?”
“그럼 어쩝니까? 여기 빌딩 주인 딸내미가 그렇게 해 달라는데. 막말로 누님도 그 여자 말 안 들으면 여기서 쫓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