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이징 올림픽 -->
하지만 현수가 누구던가? 저들이 유도하는 말 따위에 그냥 넘어 갈 그가 아니었다.
“여자는 무슨......”
현수가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지만 배재성이 바락바락 우겼다.
“아냐. 내가 틀림없이 봤다고. 여자가 저 녀석에게 뭐라고 하는 걸 말이야.”
배재성이 끝까지 우기자 남동현도 그 말을 믿는 눈치라 현수가 별 수 없이 말했다.
“좀 전에 여자가 내 옆에 있긴 했어.”
“거봐. 내 말 맞다니까.”
“하지만 그 여자가 나보고 얘기한 건 아니고 핸드폰을 받은 거였어. 그러니까 넌 그 여자가 통화하는 것이 내게 말하는 것처럼 보인 거고.”
“뭐?”
“그 여자가 이렇게 서 있지 않았어?”
현수가 주윤미가 서 있던 곳에 서서 핸드폰을 들고 얘기하는 시늉까지 해 보이자 그제야 배재성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그런가?”
“그런 거네 뭐. 저 녀석에게 여자는 무슨...... 나라면 또 모를까.”
자기편인 남동현이 돌아서자 배재성도 더는 우기지 못하고 현수 말에 수긍하는 듯 했다.
펑! 펑! 펑! 펑!
그 사이 하늘 위 폭죽은 절정에 이르렀고 현수와 남동현, 배재성도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아름답다.”
“그러게. 진짜 아름다운 밤이야.”
“이렇게 금메달을 목에 걸고 있는데 당연히 아름다울 수밖에.”
잠시 뒤 폭죽이 더 이상 터지지 않자 경기장 주위가 환하게 밝아지면서 폐막식의 끝을 알리는 음악과 마지막 합동 공연이 시작 되었다.
그 공연을 끝으로 올림픽은 막을 내렸다. 다음 개최지인 영국 런던에서 만남을 기약하기로 한 채.
“자. 다 끝났다. 가자.”
현수는 대한민국 축구 올림픽 대표팀 동료들과 같이 그들이 타고 온 버스에 올라탔고 그 버스는 곧장 어디 론가로 향했다. 그곳은 근처 술집이었고 거기서 대한민국 축구 올림픽 대표팀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이 한데 어울려서 술을 마셨다. 하지만 12시에 파장을 했고 그들은 대기 중이던 버스에 다시 올라서 올림픽 선수촌으로 향했다.
선수촌 입구에 도착한 버스에서 우르르 내린 대한민국 축구 올림픽 대표팀 선수들은 곧장 그들 숙소로 향했다.
그때 현수는 맨 뒤에 내려서 버스 기사가 열어 준 짐칸에서 주윤미의 쇼핑백들을 챙겨 들고 조용히 옆으로 빠졌다.
다들 취한 터라 자신이 사라진 것도 모르고 숙소로 가는 대한민국 축구 올림픽 대표팀 선수들을 지켜보고 있던 현수는 그들이 보이지 않자 그제야 옆길로 빠졌다. 그리고 리듬체조 선수들이 쓰고 있는 건물 쪽으로 향했다.
“어?”
그런데 그 건물에서 대한민국 선수들이 쓰는 방에 불들이 꺼져 있었다. 당연히 주윤미의 방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현수는 상태창을 열고 주윤미가 지금 어디 있는지 알아보려고 위치 추적 마법을 사용하려 했다. 그때였다.
[띠링! 주윤미와 그의 동료 둘이 클럽에서 놀다가 주윤미가 조선족 폭력배들에게 납치 되었습니다.]
“뭐?”
황당한 시스템의 반응에 현수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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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윤미와 같은 리듬체조 선수 박화영은 어제 외출을 나갔다가 괜찮은 중국 남자를 만났다. 한국에서도 몇 대 없는 최고급 외제차를 모는 그 중국 남자는 유창하게 한국어를 사용했다. 자신을 중국 재벌가의 일원으로 소개한 그 남자는 자신과 같은 젊은 중국 재벌가 남자들이 두 명 더 있는데 내일 그들과 미팅을 하자는 제의를 박화영에게 했고 그녀는 그러자고 했다.
자신과 친한 리듬체조 선두 둘을 데려 가면 될 테니 말이다. 그 둘도 박화영처럼 허영이 심했다. 그러니 중국 재벌가의 남자들이라면 무조건 미팅에 나가겠다고 할 터였다. 그리고 그 날 밤 숙소에서 그들에게 그말을 했을 때 그녀들은 좋다고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에 둘 중 하나가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하더니 병원에 실려 갔다. 그러곤 맹장 수술을 받았다는 게 아닌가.
때문에 미팅에 펑크가 났고 그 펑크 난 자리를 메우려고 박화영과 다른 한 명의 리듬체조 선수가 노린 게 바로 주윤미였다.
그녀들은 눈물까지 흘려가며 주윤미에게 매달렸고 안 그래도 마음이 약한 주윤미는 어쩔 수 없이 그녀들의 부탁을 들어 주기로 했다.
“야. 빨리 가자.”
올림픽 폐막식이 끝나고 경기장을 나서던 주윤미의 양 옆에 같은 리듬체조 선수들이 나타나서 그녀를 양팔을 붙잡으며 말했다.
“뭐?”
“오늘 우리랑 미팅하러 가기로 했잖아?”
“아아! 맞다.”
그 말에 그제야 주윤미는 오늘 낮에 이 둘과 같이 미팅하러 가기로 한 게 생각났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자신의 짐 가방을 가져 간 현수가 그녀의 숙소 앞에서 하염없이 그녀를 기다려야 할지 몰랐다.
“늦었다. 빨리 가자.”
“자, 잠깐만...... 어디 연락 좀 하고........”
주윤미는 현수에게 사정이 생겨서 그러니 오늘 밤에 짐 가방을 가지고 자신의 숙소에 올 필요 없다고 연락을 취하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두 동료 리듬 체조 선수들이 막무가내로 그녀를 끌고 갔고 그 과정에서 주윤미의 호주머니에 들어 있던 그녀의 핸드폰을 떨어트렸다.
“빨리 타.”
주윤미는 두 동료 리듬체조 선수들과 경기장 근처에서 택시를 탔고 그제야 몸이 자유로워진 그녀는 핸드폰을 찾았다.
“어?”
하지만 그녀 호주머니에 있어야 할 핸드폰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주윤미는 현수의 핸드폰 번호가 기억나지 않았다.
“아아. 어떡하지?”
현수에게 당장 연락 할 길이 없어진 주윤미는 빨리 미팅을 하고 숙소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두 동료들에게 확실히 말했다.
“난 미팅에 참석만 하고 바로 숙소로 돌아갈 거야. 그런 줄 알아.”
“그래. 그렇게 해.”
두 동료들도 자기보다 더 예쁘고 인기도 많은 주윤미가 미팅 장소에 계속 있는 게 부담스러웠기에 그렇게 하라고 했다. 하지만 그건 그 두 동료의 생각일 뿐이었다. 막상 미팅 장소에 가자 중국 재벌가의 일원이란 젊은 남자들 셋이 전부 다 주윤미에게 꽂혀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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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팅 남들은 당연히 주윤미가 미팅에만 참가하고 숙소로 돌아가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들 중 미팅에 참가한 남자는 노골적으로 주윤미의 동료이자 여자 미팅 주선자 박화영에게 말했다.
“주윤미가 가면 미팅도 쫑 나는 거야. 그리고 베이징에서 가장 유명한 멤버십 클럽도 물 건너가는 거고 말이야.”
미팅 남이 말한 베이징 클럽은 박화영도 들은 적이 있었다. 중국 최상류층 자제들만 출입이 가능하다는 그 클럽은 진짜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곳에 가기 위해서 박화영과 그녀의 동료 리듬체조 선수 이가람은 또 주윤미를 붙잡고 늘어졌다.
“윤미야. 진짜 미안한데 클럽까지만 따라 가 주면 안 되겠니. 응?”
“뭐? 클럽? 안 돼!”
“거기 클럽은 아무나 갈 수 있는 데가 아니야. 제발...... 딱 한 번만........이렇게 빌게. 응?”
박화영과 이가람은 막무가내로 주윤미을 잡고 애원을 했고 결국 마음 약한 주윤미는 그들 말대로 클럽에 가기로 했다.
“이게 진짜 마지막이야. 클럽에 들어가면 난 바로 숙소로 갈 테니 그런 줄 알아.”
“그래. 그럼.”
그렇게 3명의 중국 재벌가의 일원이란 젊은 남자들과 주윤미 일행은 미팅 장소에서 북경에서 최근 가장 핫(HOT)하다는 클럽으로 향했다.
3명의 미팅 남들은 다들 최고급 외제차를 몰았고 주윤미도 그 중 한 명의 차에 탑승했다. 그런데 그 차의 주인은 장중모란 자로 실제로 그는 중국 재벌가와는 거리가 먼 자였다. 그는 북경의 조선족 폭력 조직의 두목인 장대모의 동생으로 형의 배경만 믿고 사건 사고를 일으키고 다니는 날건달이었다.
당연히 그가 어울려 다니는 녀석들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즉 박화영과 이가람의 파트너인 2명의 미팅 남들도 장중모와 비슷한 놈들이었던 것이다.
장중모는 평소 북경에서 최고급 백화점을 돌면서 허영심 많은 젊고 예쁜 여자를 골라서 재벌인척 접근해서 그녀를 유혹하고 충분히 즐긴 뒤 술집에 팔아먹었다. 그런 장중모에게 허영덩어리 박화영이 걸려 든 것이고 말이다.
그런 장중모는 박화영이 대한민국 리듬체조 선수란 말에 속으로 웃었다. 그녀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워낙 출중한 그녀의 미모 때문에 미팅 얘기를 꺼냈고 다행히 박화영도 미팅을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다음 날 미팅 장소에 박화영이 데리고 나타난 여자 중에 장중모도 잘 아는 대한민국 스포츠 스타 주윤미가 떡하니 나타난 것이 아닌가?
주윤미를 실제로 본 장중모는 그만 그녀에게 반하고 말았다. 주윤미는 자신과 같은 사기꾼이 감당할 수 있는 여자가 아니란 걸 알면서도 그녀를 욕심 낸 것이다.
“실물이 훨씬 아름다우시네요.”
“고마워요.”
차를 타고 가는 동안 장중모는 갖은 미사어구를 동원해서 주윤미의 환심을 사려 했다. 하지만 이미 강현수란 남자에게 푹 빠져 있는 주윤미는 장중모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중모는 포기하지 않고 주윤미에게 잘 보이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다.
쿵콰쾅! 쿵! 쿵! 쿵! 쿵!
시끄러운 음악에 귀가 다 멍멍한 주윤미는 춤과 남자에 빠져 있는 동료 박화영과 이가람을 보고 더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척!
그런 그녀의 손을 장중모가 잡아챘다.
“윤미씨. 어디 가려고요?”
“저, 저는..... 화장실 좀.....”
주윤미는 이대로 클럽을 나갈 생각이었지만 장중모에게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그런 어설픈 그녀의 거짓말을 간파 못할 장중모가 아니었다.
“갔다. 오세요.”
그런데 장중모는 잡고 있던 주윤미의 팔을 놓아 주었다. 그리고 그녀가 사람들 사이로 사라지자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나야. 애들 근처 있지? 그래. 지금 나갈 테니까 애들 준비해 두고 차도 대기 시켜 둬.”
그렇게 통화를 끝낸 장중모는 남은 술잔을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주윤미가 사라진 쪽으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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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윤미는 잠시 헤매긴 했지만 다행히 클럽 출구를 발견하고 밖으로 나갔다.
“휴우. 살았다.”
시끄러운 음악 소리와 후텁지근한 열기, 땀과 향수가 범벅 된 괴상한 냄새에서 벗어난 주윤미가 나름 자유를 만끽하고 있을 때였다.
“여어. 예쁜데?”
“그러게. 중모가 제대로 골랐네.”
“근데 어디서 본 거 같지 않아?”
“어디서 보긴. 뭐 보나마나 누구랑 똑같이 성형한 거겠지.”
“하여튼 그게 문제야. 성형 때문에 이젠 못 생긴 년 찾기가 더 어렵다니깐.”
5명의 험상궂게 생긴 남자들이 자신을 에워쌌는데 겁먹지 않을 여자는 없었다. 그건 주윤미도 마찬가지였다.
“누, 누구세요?”
그때 클럽에서 한 남자가 나와서 주윤미가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그 남자를 본 주윤미의 겁에 질린 얼굴이 확 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