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이징 올림픽 -->
메뉴판에는 음식의 사진이 있고 이름을 말하지 않아도 되게끔 번호가 적혀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사진을 보고 먹고 싶은 음식의 번호를 주문하면 되었다. 외국인를 배려한 메뉴판인 것이다.
그때 종업원이 다시 나타났고 주문 용지와 연필을 내밀었다. 아예 주문을 종이로 받겠다는 모양이었다. 주윤미는 그 종이를 받자 바로 6025번을 적었다. 바로 새우 샤오마이, 그녀의 코치가 먹으라고 추천했다는 그 새우 딤섬이었다. 엘리엇도 사진 속 음식을 보고 두 가지 음식의 번호를 적었다.
금정현의 메뉴판에는 사진과 숫자뿐 아니라 한자어 아래 영문 표기가 되어 있어 한자를 몰라도 그 음식 이름을 알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거기다가 각 음식의 재료 또한 한자어와 영어로 표기되어 있고 말이다.
중국 음식은 호불호가 확연하게 나뉘기에 메뉴 선정이 정말 까다로울 수밖에 없는데 이 때 요리 재료를 살피면 자기 취향에 맞는 음식을 고를 수 있었다.
현수도 음식 재료를 보고 자기 입맛에 맞는 음식 두 개를 고른 것이다.
“어?”
그런데 그때 주윤미가 3가지나 더 번호를 적고 더 적을 기세였는데 그걸 현수가 말렸다.
“윤미씨. 우리 그거 다 못 먹어요.”
“아! 맞다.”
주윤미는 아쉽다는 듯 더 음식 번호를 적지 않았고 대신 현수가 도수 낮은 술과 음료수를 더 주문했다.
주문한 음식은 만들어 지는 대로 나왔는데 현수와 주윤미의 음식 취향이 같아선지 나오는 음식 마다 먹을 만 했다.
“한 잔 해요.”
“네.”
평소라면 절대 입에 대지도 않았을 술이었다. 하지만 올림픽 폐막식이 곧 열리는 마당이지 않은가? 주윤미도 이럴 때는 술 한 잔 마시는 거에 대해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그제 현수가 들어 올린 술병을 향해 술잔을 내밀었다.
쪼르르!
현수는 술잔에 반잔만 술을 따랐다. 도수가 약하다고는 하지만 20도는 되었기에 혹시나 적게 따라 준 것이다. 주윤미가 술을 잘 못 마신다거나 조금만 마셔도 취하거나 할 경우를 염두에 두고서 말이다. 하지만 주윤미는 그 술을 원샷하고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술 좀 마시네요?”
“네. 저희 집안 내력이 좀..........주당이 많은 편이거든요.”
주윤미의 그 말에 엘리엇은 더는 부담 없이 주윤미의 술잔에 술을 꽉 채워 주었다. 하지만 술은 한 병만 마셨다.
올림픽 폐막식에 참가해야 하는데 술에 취해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으음......쩝쩝쩝.....이거 너무 맛있다.”
주윤미도 새우 딤섬의 맛에 반한 모양이었다. 다른 음식에 비해 젓가락이 많이 가는 걸 보니 말이다. 그리고 그녀는 음료수, 특히 탄산음료에 환장을 했다. 그럴 것이 체중 조절을 해야 하는 그녀에게 콜라와 사이다 같은 설탕이 많이 들어가는 탄산음료는 절대 먹어선 안 될 음료였으니 말이다.
“캬아. 이 맛이야.”
주윤미는 콜라를 빨대로 빨아 마시고는 술을 마실 때보다 더 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현수도 허리띠를 풀고 본격적으로 음식을 먹기 시작했는데 그래도 요리 6가지를 전부 먹어 치우진 못했다.
“더는 못 먹어.”
“나도요.”
항상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던 주윤미가 볼록한 배를 만지는 걸 보고 엘리엇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어렸다. 그런 그녀에게 엘리엇이 제안했다.
“여기서 올림픽 주경기장까지 걸어서 30-40분 걸린다는데 소화도 시킬 겸 걸을까요?”
현재 시간은 7시 30분이었다. 8시 30분까지 올림픽 주경기장에 가면 되니까 한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그래요. 같이 걸어요. 가는 길에 쇼핑도 좀 하고요.”
그 말 후 주윤미가 먼저 일어났다. 그리고 계산서를 챙겨들고 먼저 카운터로 향했다. 여기 음식 값은 자신이 지불하려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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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을 끝내고 현수와 주윤미는 금정헌 밖으로 나왔다. 금정헌 밖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그걸보고 주윤미가 말했다.
“조금만 늦게 왔어도 줄 설 뻔했네요.”
“그러게요. 오늘 운이 그리 나쁘진 않은 거 같네요.”
그런데 줄 서 있는 사람들 중에 현수와 주윤미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당연히 한국 사람들이었고 현수는 그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 지 귀를 기울였다.
“체조......주윤미.....”
“....옆에는........축구 선수........강현수.........”
주위 시끄러운 중국 사람들 때문에 그들이 무슨 얘기를 나누는지 정확하게 들리지는 않았지만 현수가 들은 얘기만으로도 귀찮은 일이 생길 거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 중 둘이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한 명은 사진을, 다른 한 명은 현수와 주윤미가 같이 있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촬영했다. 그런데 그 장면을 보지 못한 주윤미가 또 실수를 저질렀다.
“우리 저쪽으로 가요.”
그녀가 다정하게 현수의 팔짱을 낀 것이다. 그 장면을 두 사람이 열심히 사진 찍고 동영상으로 핸드폰에 담았다.
현수는 그 사실을 주윤미가 알면 걱정할 게 뻔한터라 그냥 모른 척 그녀와 같이 팔짱을 낀 체 큰 길 쪽으로 걸어갔다. 그렇게 현수와 주윤미가 다정한 연인처럼 금정헌에서 사라지는 걸 촬영한 두 사람은 로또라도 걸린 듯 기뻐했다.
“대박! 축구 스타 강현수와 체조 스타 주윤미가 연인 사이라니.......”
“하하하하. 이거 잡지사나 방송국에 넘기면 얼마나 받을까?”
“못해도 몇 백은 받지 않을까?”
“그렇지?”
“잘하면 여행경비 다 나오겠다.”
신이 난 두 사람은 신주단지 모시듯 조심스럽게 핸드폰을 챙겼다. 그리고 얼마 안 기다려서 금정헌에 자리가 나자 일행과 같이 식당으로 들어간 그들은 기분 좋게 이것저것 시켰다.
“다 먹어. 오늘은 우리가 쏜다.”
“고마워. 안 그래도 먹고 싶은 거 많았는데 잘 됐다.”
그들은 예상했던 것 보다 두 배는 더 많은 음식을 시켰고 배 터지게 음식을 먹었다.
“아아. 배부르다.”
“진짜 잘 먹었다. 중국에 와서 이렇게 많이 먹은 건 처음이야.”
“그러게. 이게 다 강현수와 주윤미 때문이지?”
“맞아. 그 둘이 사귄다는 거 밝혀지면 아마 대한민국이 시끄러울 거야.”
“어디 보자. 둘이 팔짱 끼고 웃는 장면이.......... 어?”
“왜?”
“사, 사진이 없어.”
“뭐?”
“헉! 이, 이게 어떻게 된...........”
“너는 왜?”
“강현수와 주윤미를 찍은 동영상이 없어.”
“뭐? 그럴 리가. 잘 찾아 봐.”
하지만 현수와 주윤미의 사진과 동영상을 찍은 두 사람 모두 아무리 찾아도 그들 핸드폰에서 현수와 주윤미를 찍은 사진, 동영상 파일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예산을 오버해서 식사를 한 그들의 저녁 스케줄은 취소 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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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와 주윤미의 사진과 동영상을 찍은 두 핸드폰에서 사진과 동영상 파일을 지워 버린 건 현수였다. 현수가 주윤미와 팔짱을 끼고 북명 거리를 거닐 때 상태창을 열고 오늘 구입한 해킹 마법을 사용해서 그 파일들을 지워 버린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주윤미는 북경 거리를 거닐며 아이 쇼핑에 여념이 없었다.
“저 모자 너무 예쁘다.”
그리곤 쪼르르 그 모자를 파는 가게로 들어간 주윤미가 빨간 모자 하나를 쓰고 나왔다. 그렇게 올림픽 주경기장까지 1/10도 가지 못했는데 벌써 시간이 8시 20분이었다. 이게 다 주윤미 때문이었다. 현수의 손에 들린 쇼핑백만 10개가 넘었다.
“미안해요.”
결국 중간에 현수는 택시를 잡았고 그 택시를 타고 올림픽 주경기장으로 향했다. 그렇게 8시 30분 정각에 올림픽 주경기장 앞에 도착한 현수는 그 앞에 모여 있는 대한민국 선수단을 발견하고 그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현수와 주윤미가 함께 움직이진 못했다. 선수단에는 각종 언론 매체 기자들도 섞여 있었기 때문에 말이다.
“이따 제가 몰래 현수씨 한데 갈게요.”
그래서 둘은 각기 멀찍이 떨어져서 선수단에 합류 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주윤미가 쇼핑한 짐 가방은 현수의 몫이었고 말이다.
“야! 손에 든 거 다 뭐야?”
“어라? 너 쇼핑한 거야?”
그곳에서 축구 올림픽 대표팀 선수들을 만난 현수는 이게 주윤미 거란 말은 할 수가 없었다. 그랬다간 녀석들이 현수를 가만 두지 않을 테니 말이다. 다행히 축구대표팀을 태우고 온 버스가 근처에 있어서 현수는 그쪽으로 뛰어가서 버스 짐칸에 주윤미의 쇼핑 백들을 우겨 넣었다. 그리고 일행들에게 돌아갔을 때 올림픽 축구대표팀 감독 백승업이 외쳤다.
“자. 인원 점검하겠다.”
정말 선수촌장의 지시로 인원 점검이 이뤄진 것이다. 현수와 축구 선수들 모두 선수촌장을 흉봤다.
“여기가 무슨 군대도 아니고 말이야.”
“그러게. 그래서 성과도 별로잖아?”
“맞아. 10위 권 밖의 성적이라니. 아마 돌아가면 바로 잘릴 걸.”
“아냐. 선수촌장이 잘릴 일은 없어. 선수촌장 대통령하고 대학 동창사이잖아.”
“그래? 쳇! 그럼 운영 위원 몇 명 잘리는 걸로 끝나겠네.”
현수는 아직도 학연 지연에 얽매이는 대한민국의 세태에 혀를 찼다. 그 사이 인원 점검이 빠르게 이뤄졌고 그 결과는 선수촌장에게 바로 보고가 되었다. 그리고 인원 점검이 끝나자 올림픽 주경기장 안으로 대한민국 선수단의 입장이 이뤄졌다.
그렇게 정확히 9시에 베이징 올림픽 폐막식 행사가 거행 되었다. 현수는 개회식 때와 마찬가지로 기수로 태극기를 들고 맨 앞에 서야 했다.
펑! 펑! 펑! 펑!
“와아아아아!”
축포와 함께 폭죽이 하늘을 수놓았다. 경기장 상공을 형형색색의 불꽃들이 아름답게 수놓고 있을 때였다.
“진짜 예쁘죠?”
언제 왔는지 주윤미가 현수 옆에 서 있었다. 힐끗 옆의 그녀를 확인한 현수는 시선을 여전히 하늘에 둔 채 대꾸했다.
“그러게요. 누구 보단 못하지만.”
“흥! 아부실력이 축구 실력보다 더 위에 있는 거 아니에요?”
“듣기 싫으면 진실을 얘기하고요.”
“칫! 누가 싫다고 했어요? 근데 제 짐 가방들은 어쨌어요?”
“숙소가면 제가 갖다 줄게요. 그걸 지금 들고 다니고 있으란 소릴 하는 건 아니겠죠?”
“그, 그야 그렇죠.”
그때 현수는 갑자기 따가운 시선을 느꼈다. 그래서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의 룸메이트 남동현과 배재성이 먹잇감을 발견한 하이에나처럼 침을 질질 흘리며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귀찮은 일에 엮이기 싫으면 빨리 동료들에게로 돌아가요.”
현수가 주윤미는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를 주윤미가 아니었다.
“그럼 이따 제 방에서 봐요.”
그 말 후 주윤미는 휑하니 현수를 지나쳐서 리듬체조 선수들이 있는 쪽으로 걸어가 버렸고 그녀가 떠난 곳에 뒤늦게 하이에나들이 나타났다.
“어라? 네 옆에 기웃거리던 여자는 어디 갔어?”
“없는데?”
하이에나들은 현수 주위를 배회하며 열심히 누굴 찾았다. 그런 그들에게 현수가 시치미를 뚝 떼며 말했다.
“무슨 여자?”
“분명 여자였어. 그것도 아주 늘씬한.....”
“나도 봤어. 널 보고 뭐라고 한 거 같은데 말이야.”
남동현과 배재성이 의심스런 눈으로 현수를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