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믿고 쓰는 미드필더-352화 (352/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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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르르르!

비어 있는 숙소 방안에 현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미 취침 시간이 지나 자정에 가까웠기에 방안은 물론 숙소 주위도 쥐죽은 듯 고요했다.

“아아아함! 졸리네. 그만 자야겠다.”

늘어지게 하품을 한 뒤 현수는 침대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피곤했던지 금방 잠이 들었다.

“으음.”

현수는 방안 천정에 설치되어 있던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백승업 수석 코치의 목소리에 잠이 깨었다.

-........집합한다.

그 집합이란 소리에 현수는 벌떡 몸을 일으켜서는 트레이닝복을 갖춰 입고 편한 런닝화를 신은 뒤 방문을 열고 복도로 나섰다. 그런 현수 앞에 옆방의 조재훈과 주철민이 비틀거리며 걷고 있었다.

현수는 복도 옆으로 돌아서 그들을 추월한 뒤 뛰어 계단을 내려갔다. 그리고 그들 보다 먼저 그라운드에 도착했다.

올림픽 대표팀은 평소와 같이 아침 운동을 시작했고 아침 식사 뒤 오전 훈련 스케줄을 소화했다. 하지만 오후에 있을 양주 상무와의 평가전 때문에 그리 격한 훈련을 하지 않았다.

현수는 점심 식사 후 자기 방에 가서 한 시간 정도 잠을 자고 일어나서 올림픽 대표팀 유니폼과 똑같은 카멜레온 축구복을 챙겨 입고 날쌘 돌이 축구화를 신었다. 거기다 현수는 인벤토리에서  정강이 보호대인 신 가드(Shin guard)까지 착용했다.

그 뒤 그라운드로 향했는데 그런 현수를 보고 조재훈이 부럽다는 듯 말했다.

“쳇! 아직 양주 상무와 치를 평가전 선발 명단도 나오지 않았는데 대표팀 유니폼을 떡하니 입고 나오다니. 하긴 너야 선발이 확실 할 테니까.”

조재훈뿐 아니라 주위 대표팀 선수들의 생각도 같았다. 대표팀에 들어 온지 불과 며칠도 되지 않은 현수지만 그가 대표팀의 수석 코치 백승업의 눈도장을 확실히 받은 건 확실했으니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현수가 그라운드에 들어서고 가볍게 몸을 풀기 시작했을 때 코칭스태프 중 한 명이 그라운드로 나와서 오늘 양주 상무와 평가전에 나설 선수 명단을 발표했다.

“포워드에는 유지광, 남동현. 미드필더에는 강현수, 양형석, 장석우, 조수영. 포백에 홍윤성, 정기윤, 조재훈, 박진영. 골키퍼는 배용수다.”

코칭스태프가 발표한 선발 선수 명단만으로도 오늘 백승업 수석코치가 양주 상무를 상대로 4-4-2 포메이션을 꺼내 들었음을 알 수 있었다.

4-4-2 포메이션의 최대 장점은 그라운드 전 지역에 걸쳐 10명의 필드 플레이어가 고르게 분포돼 있다는 점으로 그라운드 전 지역에 걸쳐 수적 우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

10명이 만들어내는 그물망 역시 촘촘해서 각각의 라인이 콤팩트한 대형을 유지하면 그야말로 물샐틈없는 압박이 가능했다.

자연스레 공이든 사람이든 그라운드 어느 곳에서도 항상 3-4명이 형성하는 블록에 갇힐 수밖에 없는 것이다.

거기다가 수비수 4명과 미드필더 4명이 폭넓게 늘어서 있기 때문에 양쪽 측면의 2종 커버는 물론 오프사이드 트랩 구사도 가능했다.

하지만 이런 4-4-2의 장점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모둔 선수들이 체력이 높아야 되며 기본적으로 개인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했는데 백승업 수석코치는 아직 올림픽 대표팀이 그 정도 수준까지 팀워크가 갖춰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강팀 양주 상무를 상대하기 위해서 무리수를 둔 듯 보였다.

어째든 현수는 그의 예상대로 오늘 평가전에서 중앙 미드필더에 선발로 출장을 하게 되었다. 코칭스태프의 호명을 받지 못한 선수들은 다들 풀 죽은 얼굴이 되었지만 이번 평가전 역시 출전 선수에 제한을 두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얼마든지 교체로 출전이 가능하다는 코칭스태프의 말에 선수들의 눈빛이 다시 살아났다. 그러고 보니 코칭스태프는 저번과 달리 벤치 대기 선수 명단을 발표하지 않았다. 그 말은 나머지 선수들 중 누구라도 교체 멤버가 될 수 있단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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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상무와 평가전을 치를 올림픽 대표팀의 선발 멤버들이 그라운드에서 몸을 풀고 있을 때 양주 상무팀 선수들을 태운 버스가 합숙소 안으로 들어왔다.

백승업 수석코치가 양주 상무의 감독인 김주선과 만나고 있을 때 양주 상무팀의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들어와서 가볍게 몸들을 풀었다.

그 사이 백승업 수석코치가 김주선 감독을 데려와서 올림픽 대표팀 선수들 앞에 그를 소개했다.

“다들 잘 알지?”

김주선 감독은 백승업 수석코치와 같이 1998년 월드컵 본선에서 뛴 멤버 중 한 명이었다.

“김 감독은 내가 아는 우리나라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이었다. 자. 후배들에게 한 마디 해라.”

김주선은 백승업 보다 한살이 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 축구단의 감독을 맡고 있는 건 그가 일본에서 지도자로서 활약이 대단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다. 나도 너희 나이 때에 국가 대표로 뽑혔었다. 하지만 그때는 프로팀도 몇 곳 되지 않았고 성인 대표 팀이 아닌 한 프로와 평가전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지금은 다들 잘 먹어서 이렇게 발육 상태가 좋지만 그때 선수들의 평균 키가 170센티도 되지 않았거든. 사실 여기 오는 동안 너희가 우리의 상대가 될까 싶었는데 막상 보니 그런 염려는 기우일 뿐인 것 같다. 우리 양주 상무는 1부 리그 팀이다. K리그 1부 팀이 얼마나 강한지 오늘 너희들에게 증명할 생각이다. 그러니 너희들도 오늘 단단히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김주선의 엄포에 대표팀 선수들이 살짝 긴장한 표정을 짓자 그 옆의 백승업이 김주선을 보고 뚱한 얼굴로 말했다.

“야! 너 왜 시합도 하기 전에 애들 기죽이고 그래?”

“일종에 심리전이죠. 성남 베어스가 여기 와서 졌다면서요? 우리까지 질 수 없는 노릇 아닙니까?”

“에이. 그래도 양주 상무는 1부 리그 팀인데 우리가 어떻게 이겨. 애들 기 안 죽게 살살 좀 해 주라.”

백승업이 엄살을 피우자 김주선이 씩 웃으며 말했다.

“선배도 이제 감독 맡아도 되겠어요. 하지만 전 그런 심리전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솔직히 말해 보세요. 우리도 이길 셈이지요?”

“쳇! 눈치 챘냐? 당연히 이겨야지. 여긴 우리 안방이잖아.”

두 감독은 서로 승리를 호언장담하며 팽팽한 기 싸움 뒤 자기 팀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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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상무 선수들이 10여분 동안 몸을 풀고 나자 오늘 평가전의 심판을 봐 줄 심판 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곧바로 시합에 뛸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나오고 각자 포지션대로 자리를 잡았을 때 올림픽 대표팀의 측면 미드필더 양형석이 옆에 현수를 보며 말했다.

“1부 리그 팀과의 시합이라 그런지 좀 떨리네. 넌 어때?”

“괜찮아. 1부 리그라고 별거 있겠어? 국내 축구가 거기서 거기지.”

살짝 국내 축구를 비하하는 발언을 했지만 그런 평소와 다름없이 거만한 현수의 모습에 신기하게도 양형석의 긴장이 눈 녹듯 사르르 풀렸다. 사실 이때 양형석뿐 아니라 선발 출장한 올림픽 대표팀 선수들 모두가 긴장한 상태였다.

그걸 아는 현수가 그들의 그런 긴장감을 풀어 주기 위해서 상태 창을 열었다. 그리고 보유 중인 마법 중에 선수들의 사기 진작은 물론 긴장감도 풀어 줄 수 있는 마법인 포더 파이트(For the fight)를 사용했는데 그 때문에 양형석은 물론 다른 올림픽 대표팀 선수들의 긴장감도 바로 풀렸던 것이다. 양진영이 모두 축구를 시작할 준비가 끝났음을 확인한 주심이 호루라기를 입에 물었다.

“삐이이이익!”

그리고 긴 휘슬 소리가 그라운드에 울리면서 경기가 시작 되었다. 먼저 선축한 양주 상무선수들이 바로 공을 뒤로 빼서 자기 진영에서 가볍게 패스 플레이를 하면서 돌렸다.

오늘 양주 상무의 전술은 4-3-2-1로 포워드 주명철을 톱으로 해 돌파가 좋은 이정우와 김명식이 좌우에서 활개 치며 공격을 이끌어 나갈 터였다.

또한 노련한 수비형 미드필더 이요한, 곽정철과 신입으로 올해 활약이 대단한 센터백 안태호가 든든하게 뒤를 받쳐 줄 테니 수비에도 빈틈이 없었다.

요즘 주명철은 K리그 클래식에서 3경기 연속 골을 넣으면서 득점력이 물올라 있었고 공격형 미드필더인 왕현후까지 가세하면 초반에 먼저 선제골을 넣을 수 있을 터였다. 그런데 초반 경기 양상은 김주선 감독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미드필더에서의 양주 상무의 패스 연결은 좋았다. 그런데 좌우 윙어와 공격수에게 패스가 들어가면 이내 공을 뺏기거나 패스 미스를 연발했다.

그렇게 끊긴 공을 올림픽 대표팀에서 한 번에 크게 전방으로 공을 찔러 넣었다.

“붙어!”

올림픽 대표팀의 키 큰 공격수에게 양주 상무의 수비수가 재빨리 달라붙었지만 그 보다 먼저 장신의 공격수가 헤딩으로 공을 떨어트렸고 그 공이 하필 쇄도해 들어 온 올림픽 대표팀 또 다른 공격수에게 연결 되었고 그 공격수가 개인기로 양주 상무의 수비수를 젖히면서 왼발로 감각적인 슈팅을 때렸다.

출렁!

그 공이 그라운드에 한 번 바운드 된 뒤 골대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양주 상무의 골키퍼 정병구가 몸을 날렸지만 워낙 골대 구석으로 향한 공이라 막을 수가 없었다.

김주선 감독은 양주 상무가 전반 10분에 선제골을 넣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내어주자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자자! 다들 집중 하자. 운 좋게 들어 간 골이다. 별거 아니니까 다들 반격해서 골을 만들자.”

김주선 감독이 양주 상무 선수들을 독려 했지만 한번 올림픽 대표팀에 넘어간 주도권이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되레 무리한 공격이 역습의 빌미를 제공했다.

터엉!

골을 넣은 올림픽 대표팀의 장신 공격수의 중거리 슛이 골포스트를 맞고 튀어 나오는 걸 보고 김주선 감독은 가슴이 철렁했다.

김주선 감독은 요즘 기량이 최고조에 이른 주명철을 앞세워 화끈한 공격 축구로 오늘 올림픽 대표팀을 확실히 제압하려 했다. 그런데 전반이 20분이나 흘렀는데 주명철에게 제대로 된 패스 한 번 들어가지 않았다.

‘이게 다 저 중앙 미드필더 때문이야.’

올림픽 대표팀의 중앙 미드필더는 하프라인을 거의 넘지 않으면서 자기 진영에서만 종횡무진 뛰어다녔다. 그러면서 다른 미드필더와 포백들을 지휘하면서 양주 상무의 공격 맥을 죄다 끊어 놓았다.

주명철에게 찔러 준 패스도 저 대표팀의 중앙 미드필더가 다 커트 해냈다. 주명철도 그걸 알고 대표팀 중앙 미드필더와 몸싸움까지 했지만 번번이 공을 뺏겼다.

게다가 역습 상황에서 올림픽 대표팀의 첫 골도 저 대표팀 중앙 미드필더가 시발점이었다. 녀석이 전방으로 길게 공을 찼고 그 공을 장신의 공격수가 헤딩으로 떨어트렸고 또 다른 공격수가 골로 연결시킨 것이다.

좀 전의 위협적인 슈팅도 대표팀 중앙 미드필더가 절묘한 스루패스로 대표팀의 공격수에게 연결해 줘서 가능한 플레이였다.

“이거 골치 아파지는군.”

김주선 감독의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저 대표팀 중앙 미드필더를 막지 않으면 오늘 시합은 양주 상무가 절대 이길 수 없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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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상무의 주명철은 오늘도 컨디션이 좋았다. 요즘 3경기 연속 골을 터트리고 있는 주명철은 이런 좋은 분위기를 더 오래 끌고 가고 싶었다. 그래서 오늘도 무조건 골을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올림픽 대표팀이면 아직 애송이들인데 적어도 3골은 넣어 줘야지.’

하지만 아무리 그가 자신이 있어도 공이 와야 골도 넣을 수 있는 게 아닌가? 답답한 그가 부지런히 뛰어다녀도 좀체 공격 진영으로 정확한 패스가 이어지지 못했다.

‘저놈 때문이야.’

주명철이 곧 잡아먹을 듯 올림픽 대표팀의 중앙 미드필더를 쏘아 보았다. 저 녀석이 그에게 오는 공은 죄다 끊어놓았던 것이다. 그래서 주명철이 직접 녀석과 부딪쳤다. 187센티에 90kg의 탄탄한 체구의 주명철이었다.

퍼억!

“어!”

피지컬로는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던 그가 그 녀석에게 맥없이 밀렸다. 녀석과 어깨끼리 부딪치는 순간 그의 몸이 홱 옆으로 밀려 난 것이다. 그 사이 녀석은 공을 뺏어서 전방으로 길게 공을 내 찼고 말이다.

“뭐, 뭐야?”

황당한 눈으로 대표팀 중앙 미드필더를 쏘아 볼 때 녀석이 내 찬 공을 올림픽 대표팀의 장신의 공격수가 또 다시 헤딩으로 떨어뜨렸고 그 공을 또 다른 공격수, 주명철도 잘 아는 남동현이 다시 잡았다. 하지만 센터백 여진구가 태클로 공을 골라인으로 걷어내면서 상대에게 코너킥 찬스를 내 주었다.

주명철은 곧장 수비에 가담하러 양주 상무 진영의 골에어리어로 들어갔고 코너킥은 남동현이 찰 모양이었다. 주명철이 아는 남동현은 축구 천재였다. 공격수지만 골킥이 아주 정확한 녀석은 지금처럼 팀 내 킥을 전담하곤 했다.

남동현이 왼손을 높이 들어 올리며 공을 찼다.

뻥!

남동현의 크로스는 빠르게 휘어져 골에어리어 안으로 들어왔다.

파파팟! 파앗!

그 공을 보고 올림픽 대표팀과 양주 상무 선수들이 일제히 점프를 했다. 하지만 그 중 절반은 서로 상대 선수를 붙잡고 있다 보니 타이밍을 놓쳤다.

특히 양주 상무의 센터백 여진구는 올림픽 대표팀의 장신 선수가 뛰지 못하게 허리를 껴안고 있었다.

남동현의 공은 예상대로 장신 선수에게 날아왔고 그 앞의 양주 상무의 풀백이 헤딩으로 걷어냈다. 그걸 보고 여진구는 재빨리 안고 있던 올림픽 대표팀 장신 선수의 허리를 풀었다. 그런데 그때 뭔가 그의 눈을 스쳐 지나갔다.

슈아아앙!

출렁!

이어 골망을 가른 소리에 고개를 골대로 돌렸는데 언제 들어갔는지 공이 그 안에 들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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