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믿고 쓰는 미드필더-334화 (334/712)

<-- 올림픽 대표 -->

그 외국인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몇 되지 않을 터였다. 바로 현 국가대표 축구팀을 이끌고 있는 도널드 베이커 감독이었으니 말이다.

이 당시 베이커 감독은 성인 축구팀뿐 아니라 올림픽 대표 팀까지 같이 이끌고 있었다.

현수는 백승업 수석 코치와 함께 감독 실에 들어갔고 베이커 감독이 웃는 얼굴로 현수를 맞았다.

“현수. 환영합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현수는 베이커 감독이 내민 손을 잡고 악수를 나눴다. 그리고 베이커 감독이 자리를 권하자 백승업 수석 코치와 함께 빈자리에 앉았다.

그때 베이커 감독이 핸드폰을 꺼내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 뒤 통화가 연결 되자 베이커 감독이 영어로 통화를 했는데 현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 지 궁금해서 바로 상태창을 열고 보유 중인 마법 중에 통역 마법인 베어리어스 트랜스레이트 랭귀지 리스닝(Various translate language listening)과 베어리어스 트랜스레이트 랭귀지 스피킹(Various translate language speaking)을 사용했다. 그러자 베이커 감독이 떠드는 영어가 현수의 귀에 속속 다 이해 되어 들려왔다.

“.........그러니까 빨리 감독실로 오라고. 알아. 나도 바쁜 거 아는데 오늘 새로 들어온 선수와 얘기는 나눠 봐야 할 거 아냐? 뭐? 30분이나 기다리라고? 하아. 이거 통역을 더 뽑던지 해야지.”

“저와 대화를 하실 거면 통역은 필요 없습니다.”

현수가 유창한 영어로 베이커 감독에게 말하자 베이커 감독이 흠칫 하며 현수를 쳐다보았다.

“됐어. 안 와도 될 거 같아. 그럼 끊는다.”

그리곤 통화를 끝내고는 놀랍다는 얼굴로 현수를 보며 말했다.

“영어를 잘하는 군?”

“네. 회화에 관심이 많아서 학원도 다니고 외국인들과 틈날 때마다 대화를 나누다보니 귀가 트이더군요. 그래서 몇 개 국어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몇 개 국어? 그럼 영어 말고 다른 언어도 할 수 있단 건가?”

“네. 불어와 독일어, 스페인어, 중국어, 일본어도 할 줄 압니다.”

현수는 마법으로 지구상의 모든 언어를 다 할 줄 알지만 그 중 몇 개만 언급했다.

“오오! 축구뿐 아니라 머리까지 좋은 선수가 들어왔군.”

베이커 감독은 진심으로 현수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얼굴에 시종일관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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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커 감독과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얘기를 나눴다. 하지만 베이커 감독은 철저이 실력 위주로 선수를 기용하는 것으로 유명한 감독이었다. 따라서 현수 역시 그의 테스트를 통과 해야 만 올림픽 대표팀에서 선수로 뛸 수 있게 될 터였다.

베이커 감독은 현수에게 그 점을 확실히 말했고 현수도 주전 경쟁에는 자신 있다며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하하하하. 그 자신감만큼이나 실력도 되길 바라네. 일단 숙소에 가서 짐을 풀게. 백 코치님. 현수군을 숙소로 안내 좀 해 주십시오.”

백승업 코치도 베이커 감독이 자신에게 한 말은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그러죠. 현수야. 가자.”

현수는 백승업 코치와 함께 감독실을 나와서 앞으로 자신이 쓰게 될 숙소로 향했다. 올림픽 대표팀 합숙소는 모두 3개의 동으로 이뤄져 있었고 그 건물들 한 가운데 잔디 구장이 위치했다.

현수는 그 중 가운데 위치한 건물로 백승업 코치와 함께 움직였다. 백승업 코치는 현수를 2층으로 데려갔고 복도 제일 끝에 위치한 방 앞에서 현수에게 말했다.

“이 방을 쓰면 된다. 2인 1실인데 여긴 빈방이니까 혼자 쓴다고 보면 돼.”

현수도 독방을 쓰는 게 더 좋았던지라 고개를 끄덕이며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은 양쪽 벽에 침대가 놓이고 1미터 정도 여유가 있을 정도로 좁았다. 하지만 올림픽 대표팀 선수들에게 숙소는 잠만 자는 곳인 만큼 넓을 필요는 없었다.

“저녁은?”

현수가 방에 들어가는 걸 복도에서 지켜 보던 백승업 코치가 물었다.

“아직 안 먹었는데요.”

“그래? 그럼 나와 같이 식당부터 가자. 짐 정리는 뒤에 하고.”

“네.”

현수는 방에 짐만 두고 백승업 코치를 따라 나섰다. 백승업 코치는 숙소 건물 지하로 내려갔는데 그곳에 식당이 위치해 있었다. 식당에는 몇몇 선수들과 코칭 스태프들이 식사 중이었다.

“백 코치님. 식사가 늦으시네요?”

“어. 뭐 그렇게 됐어. 마저 식사들 해.”

“네. 맛있게 드십시오.”

백승업 코치는 선수들의 인사를 받으며 곧장 현수를 데리고 식판이 있은 곳으로 향했다. 현수도 식판을 챙겨 들고 배식 코너로 가서 음식을 받아서 백승업 코치와 마주 보고 식탁에 앉아서 식사를 했다. 음식은 비교적 먹을 만 했기에 현수는 잔반은 남기지 않고 식판을 깨끗이 비웠다.

그렇게 식사가 끝나자 백승업 코치는 일이 있다며 숙소 건물을 나섰고 현수는 2층으로 올라가서 자기 숙소 방에 들어갔다. 그리고 짐을 막 다 정리 했을 때 방 안 스피커에서 안내 방송이 흘러 나왔다.

[8시까지 선수 전원 전술 회의실에 집합한다.]

딱 듣기에 백승업 수석 코치의 목소리였다. 현수는 그 방송을 듣고 시간을 확인했는데 벌써 7시 45분이었다. 현수는 짐정리를 마무리 하고 곧장 숙소 방을 나섰다. 그때 그의 옆방에서 현수 또래의 선수 두 명이 나왔다. 다행히 그 중 한 선수가 현수를 알아봤다.

“어. 강현수!”

U리그에서 현수에게 영혼까지 탈탈 털린 고구려대 센터백 조재훈이었다. 조재훈은 대학 최고 수비수였기에 올림픽 대표팀에 선발 된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 옆의 선수와 현수는 일면식도 없었다. 그걸 간파한 듯 조재훈이 현수를 보고 말했다.

“이쪽은 성남 베어스에서 뛰고 있는 주철민.”

조재훈이 소개까지 해 줬는데 모른 척할 수 없었던 현수가 먼저 주철민에게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연신대 강현수입니다.”

“아네.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연신대를 U리그 우승에 FA컵 우승까지 시킨 장본인이라면서요?”

주철민의 말에 현수가 홱 조재훈을 쬐려 봤다. 보나마나 조재훈이 입을 턴 모양이었다.

“크음. 시간 없어. 빨리 전술 회의실에 가자.”

조재훈이 현수의 살벌한 눈을 피해서 곧장 앞장을 섰다.

“야! 같이 가.”

그런 그의 뒤를 주철민이 쫓았고 전술 회의실이 어딘지 모르는 현수는 별수 없이 그들을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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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가 전술 회의실에 들어섰을 때 회의장의 올림픽 대표팀 선수들로 꽉 들어차 있었다. 현수는 그 중 빈자리에 앉았는데 처음 보는 현수를 올림픽 대표팀 선수들이 힐끗거리며 쳐다 보았다. 그리고 그 중에 현수를 아는 선수들이 그를 보고 쑥덕거렸는데 현수는 그들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관심이 없었기에 팔짱을 낀체 멍 때리고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렇게 몇 분 지나지 않아서 수석 코치인 백승업이 5명의 코칭스태프들을 대동하고 전술 회의실에 나타났다.

“식사들 했나?”

회의실 무대 단상에 오른 백승업이 선수들에게 물었다.

“네에!”

그러자 선수들이 일제히 대답했고 백승업이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다들 알겠지만 감독님은 성인 대표팀의 평가전 때문에 며칠 여기 오시지 못하신다. 해서 내일부터 너희들의 훈련은 나와 여기 계신 코치님들이 맡게 될 것이다.”

그 말에 선수들은 그러려니 하고 아무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현수도 현 올림픽 대표팀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게 백승업 수석 코치란 거 정도는 알고 있었다.

베이커 감독은 욕심이 많았다. 그래서 성인 대표팀 말고도 올림픽 대표팀도 자신이 맡을 수 있다고 했고 그걸 협회에서 수용하면서 지금은 성인 대표팀 말고 올림픽 대표팀의 전력도 삐꺽 거리고 있었다.

베이커 감독은 며칠 뒤에 있을 우루과이와의 평가전에서 2대 1로 이기면서 겨우 경질 될 위기를 모면한다. 하지만 대표팀이 일본과의 평가전에서 3대 0으로 대패하면서 결국 짐을 싸고 만다. 그것이 앞으로 일어날 A매치 결과였다.

그 뒤 올림픽 대표 팀마저 일본 올림픽 대표팀에 5대 0으로 지는 수모를 겪는다. 현수는 적어도 대한민국 올림픽 대표팀이 일본에서 5대 0으로 참패하는 꼴은 두고 보지 않을 생각이었다.

‘내가 뛰는 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

현수가 다부지게 다짐을 하고 있을 때 단상위의 백승업 코치가 현수를 불렀다.

“전술 회의를 하기 전에 오늘 새로 우리 팀에 합류한 선수 한 명을 소개하겠다. 강현수. 이리 나와라.”

현수는 백승업 코치의 부름을 받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단상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와 같이 올림픽 대표팀에서 뛰게 될 선수들에게 인사를 했다.

“반갑습니다. 연신대에서 미드필더로 뛰고 있는 강현수입니다.”

현수의 인사에 그를 환영한다는 의미의 박수 소리가 나왔다. 현수의 소개가 끝나자 백승업 코치는 현수에게 내려가도 좋다는 눈짓을 해 보였고 현수는 곧장 단상 아래로 내려가서 원래 자신이 앉았던 자리로 걸어갔다.

스윽!

그때 통로 쪽으로 누가 다리를 내밀었다. 앞만 보고 걸을 경우 그 다리에 걸려 넘어 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무공을 익히고 있는 현수의 감각이 갑자기 튀어 나온 다리를 감지했다.

꽉!

현수는 그 다리에 걸리긴 커녕 사뿐히 그 다리를 지르밟았다.

“아악!”

오히려 현수에게 다리를 내 민 선수가 비명을 내질렀다.

“이, 이런..... 미안합니다.”

현수가 자기는 몰랐다며 비명을 내지른 선수에게 사과를 했다.

“거기 뭐야? 강현수. 빨리 들어가.”

그 모습을 단상에서 지켜보던 백승업 코치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하자 현수에게 다리를 밟힌 선수가 짜증 섞인 얼굴로 현수에게 손짓을 했다. 빨리 꺼지라고 말이다. 현수는 그의 발에 밟혀서 살갗이 벗겨진 그 선수를 지나쳐서 자기 자리로 걸어갔다. 그때 현수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는데 그걸 발견한 선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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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술 회의는 1시간 정도 하고 끝이 났다. 말이 전술 회의지 진짜 전술적인 회의는 하지 않았다. 내일부터 있을 실전 훈련에 대한 얘기가 주를 이뤘다. 그리고 그 실전 훈련을 하기 위해서 팀을 둘로 나눴다.

백승업 코치는 그 두 팀을 청팀과 백팀이라 정했는데 실제로는 주류와 비주류로 나뉘었다.

청팀인 주류는 올림픽 대표팀에 제일 먼저 뽑힌 선수들로 주전 멤버의 70-80%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에 비해 백팀인 비주류는 올림픽 대표팀 선수 선발 뒤 필요에 의해서 보충 된 선수들로 후보 선수들의 대부분이었다.

“쩝! 백팀인가?”

현수는 오늘 막 들어 왔으니 당연히 비주류인 백팀에 속했다.

“내일 오전 훈련을 소화하고 나면 오후에는 청팀과 백팀의 연습 시합을 치룰 생각이다. 그 멤버 구성은 나와 여기 있는 코치들이 내일 너희들의 오전 훈련 하는 걸 보고 정할 것이다. 그러니까 명단 발표 역시 연습 시합 10분 전에 너희들에게 알려 줄 것이고 말이다.”

한마디로 내일 오전 훈련에 불성실하게 나오면 연습 시합에서 배제 시키겠단 소리였다. 그 말뜻은 올림픽 대표팀 선수들도 다 알아 들은 듯 다들 표정이 좋지 않았다.

“자. 그럼 오늘 전술 회의는 여기서 끝마치겠다. 다들 각자 방으로 돌아가서 쉬도록.”

백승업 코치의 해산 명령에 선수들이 우르르 일어나서 출구로 나갈 때 백승업 코치가 현수를 따로 불렀다.

“넌 장비실에 가서 축구 용품들을 받아 가도록 해라.”

그리고 장비실 위치를 현수에게 알려 주었다. 현수는 곧장 장비실로 향했고 그곳에서 큰 박스 하나를 받아서 자기 방으로 향했다.

자기 방에서 현수는 들고 온 큰 박스를 개봉했다. 그러자 그 안에 축구화를 비롯해서 트레이닝복과 유니폼, 양말과 정강이 보호대 등이 들어 있었다.

“어디.....”

현수는 태극기가 달려 있는 유니폼부터 먼저 입어 보았다. 누군가 그랬다. 대표 선수가 되어 태극기가 달린 유니폼을 입으면 가슴이 쿵쾅거린다고 말이다. 하지만 현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현수는 바로 대표팀 유니폼을 벗어서 문가에 있는 침대 이외의 유일한 가구인 옷장 안에 유니폼을 걸어두었다. 그리고 나머지 장비들도 잘 정리해 뒀다.

“똑똑!”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지?”

현수는 곧장 문 쪽으로 가서 방문을 열었다. 그러자 그 앞에 아까 전술 회의실에서 현수에게 다리를 밟힌 녀석이 인상을 팍 쓰고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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