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리그 -->
현수 앞으로 건국대 선수들의 수비벽이 세워지고 건국대 골키퍼가 뭐라고 계속 소리를 질러 댈 때 주심이 휘슬을 불었다.
“삐익!”
현수는 전방을 힐끗 쳐다보고 공을 향해 뛰어갔다. 그리고 디딤 발을 딛고 발 안쪽을 공에 스치듯이 찼다.
현수가 인 프런트로 감아 찬 공은 수비벽을 넘어 골대로 향할 때 크게 곡선을 그렸다. 그리고 크로스바와 왼쪽 골포스트 사이로 들어갔다.
출렁!
건국대 골키퍼는 그대로 선 체 꼼짝도 못했다. 어차피 몸을 날려 봐야 막을 수 없었으니 말이다.
“헉!”
현수의 프리킥을 보고 건국대 감독은 입을 떡 벌렸다. 그때 그 옆에 있던 건국대 선수가 중얼거렸다.
“마치 베컴의 감아 차기를 보는 것 같아.”
베컴의 감아 차기는 일명 알아도 못 막는 슛으로 유명했다. 감아 차는 궤도가 골대 사각지대로 휘어들어 가기 때문에 골키퍼의 손이 닿지 않았던 것이다.
“저거 국내에서 놀 실력이 아닌데요?”
건국대 감독 옆의 선수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말하자 건국대 감독도 같은 생각인지 고개를 끄덕거렸다.
“완전 대박이다. 연신대 감독은 대체 무슨 복이야. 젠장.”
건국대 감독은 갑자기 성질이 났다. U리그 본선 시작과 동시에 광 탈락한 것도 짜증났지만 자기보다 모든 면에서 떨어지는 실력의 연신대 감독이 선수 하나 잘 만나서 저렇게 승승장구하는 게 영 못마땅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연신대 이명신 감독은 아주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스코어 7대 0!
이제 상대 팀에 메시나 호날두가 와도 이젠 역전은 불가능했다. 그때 현수는 벌써 자기 자리로 돌아가 있었다.
7골을 먹은 건국대는 완전히 기가 꺾였다. 그러다보니 소극적으로 플레이를 했고 이에 연신대가 더 강하게 압박을 가했다. 그러자 패스미스가 빈번해지면서 볼을 전혀 점유하지 못했다.
반면 연신대는 하프라인 넘어 건국대 진영에서 내려오지 않고 계속 공격을 퍼부었다. 이에 건국대 선수들은 몸으로 연신대의 공세를 막아냈다.
여기서 더 골을 먹으면 진짜 학교 망신에 건국대 축구부는 한 동안 고개도 들고 다니지 못할 터였다. 그래서 건국대 선수들은 더 악에 받쳐서 뛰었다. 그런데 그걸 비웃기라도 하듯 연신대 감독이 선수 교체를 단행했다. 연신대의 핵심인 강현수를 뺀 것이다.
현수가 시간을 확인하니 후반전도 15분 쯤 남았다. 그래서 별 불만 없이 현수도 감독의 지시에 따랐다.
현수 대신 1학년 배성재가 들어갔다. 현수는 교체 하면서 배성재를 확 째려봤다. 그러자 배성재가 슬그머니 현수의 눈을 피했다.
‘이놈은 또 뭐로 감독 눈에 든 거야?’
요즘 이명신은 현수 대신 중앙 미드필더 자리에 꼭 이놈을 넣었다. 마치 현수의 후계자라도 되는 양 말이다. 그렇다고 녀석이 실력이 있느냐? 그건 또 아니었다. 같이 훈련 해 본 결과 현수가 보기에 1학년 배성재는 윤성찬 같은 놈이었다. 실력은 개뿔도 없는 게 주전은 뛰려고 아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요 며칠 윤성찬은 학교에 나오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얼굴에 철판을 깐 놈이라 내일이라도 짠하고 축구부에 나타날 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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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신 감독은 현수가 벤치로 들어오자 웃으며 그를 반겼다.
“수고했다.”
“네.”
현수는 이명신이 내민 손을 가볍게 잡고는 벤치에서 후배가 건네는 수건을 받아서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현수가 교체되자 연신대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특히 현수 대신 들어간 배성재가 패스를 주고받는 게 서투르다보니 미드필더에서 당장 삐걱거렸다.
“어어!”
툭!
파파파팟!
건국대 공격수가 배성재에게 달려들자 놀란 녀석이 공을 흘렸고 그 공을 건국대 공격수가 잡아서 바로 연신대 진영 안으로 치고 들어갔다.
“저, 저.....”
그걸 본 연신대 감독 이명신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막아!”
촤아아악!
그나마 수비 쪽에서 과감한 태클로 그 공격을 끊어 냈다. 하지만 그 공도 연신대의 왼쪽 수비수 장철우가 우물쭈물하는 사이 건국대의 또 다른 공격수에게 뺏겼다. 그리고 그 공격수가 골라인으로 공을 치고 올라가다가 크로스를 올렸고 그 크로스 된 공을 연신대 센터백 이기찬과 몸싸움 중인 건국대 공격수가 발리슛으로 연결 시켰다.
철썩!
연신대 골키퍼 방주혁이 반응하기엔 공이 너무 빨랐다.
“우와아아아!”
“됐다.”
연신대 옆 건국대 벤치에서 한 바탕 난리가 났다. 특히 건국대 감독이 크게 기뻐했다. 겨우 0패는 모면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반면 연신대 벤치는 크게 동요는 없었지만 이명신이나 벤치 선수들의 표정이 그리 밝진 않았다. 현수가 교체 된지 채 2분도 되지 않아서 골을 먹었으니 말이다.
“자자. 연신대 파이팅!”
킥 오프를 하며 연신대 공격수 고동찬이 크게 소리를 쳤다. 그 소리에 그라운드 안의 연신대 선수들이 파이팅을 외쳤는데 어째 목소리에 영 힘들이 없어 보였다. 연신대 두 공격수는 킥 오프 뒤 건국대 진영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평소대로 공을 중앙 미드필더에게 넘겼다. 그런데 그 중앙 미드필더가 문제였다.
“아앗!”
현수 대신 중앙 미드필더 자리를 맡은 배성재가 볼 트래핑에 실수를 한 것이다. 아무래도 앞서 저지른 실수가 상대 팀의 첫 골 빌미가 된 것 때문에 긴장을 한 모양이었다.
그걸 건국대 공격수가 또 놓치지 않고 인터셉트해서 곧장 연신대 진영으로 파고 들어왔다.
“씨발! 막아!”
연신대 수비수들도 배성재의 연이은 실수를 보고 입에서 욕이 튀어 나왔다. 다행히도 이번엔 센터백 이기찬이 건국대 공격수와의 몸 싸움 끝에 공을 뺏어냈다. 그리고 공을 습관처럼 중앙 미드필더에게로 찼다. 그게 또 실수였다.
파악!
“아악!”
배성재에게 공이 패스 될 때 건국대의 중앙 미드필더가 연신대 진영으로 넘어와서 배성재와 부딪친 것이다.
몸싸움에서 맥없이 밀려 난 배성재는 이기찬의 패스를 받지 못했다. 대신 그 공을 받은 건국대 미드필더가 전방으로 높게 센터링을 올렸다.
그 공을 건국대 공격수가 높이 뛰며 헤딩으로 떨어트렸고 그 공이 하필 쇄도해 들어오던 다른 건국대 공격수의 발에 맞았다.
철썩!
이번에도 연신대 골키퍼 방주혁은 반응도 못했다. 골대 구석진 곳으로 공이 워낙 빠르게 날아가서 골망을 가른 것이다.
“와아아아!”
“그렇지. 하하하하.”
내리 두골이 터지자 건국대 벤치의 분위기가 확 살아났다. 더불어 그라운드에서 건국대 선수들의 기세도 확 올라갔고 말이다. 하지만 후반전까지 남은 시간은 채 10분도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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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신대 선수들은 내주지 않아도 될 골을 두 골이나 내 주자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야! 배성재. 너 밑으로 내려 와.”
“저 새끼 때문에 이게 뭐야.”
결국 배성재가 수비형 미드필더로 내려오고 중앙 미드필더 자리를 조용식이 대신 맡았다. 그러자 더 이상 패스 미스로 인한 실수는 없었다. 하지만 연신대의 공격 역시 답답하게 진행 되었다.
조용식의 패스가 연신대 공격수에게 전달되기 전에 중간에서 계속 끊겼던 것이다. 그건 곧 반격의 빌미를 제공했다.
“뚫리지 마.”
“사람을 잡으라고.”
그나마 연신대의 수비진이 겨우겨우 실점 위기를 막아냈다. 하지만 그것도 한두 번, 결국 연신대 수비도 뚫리고 말았다.
건국대 공격수들의 절묘한 원투 패스에 수비진에 뚫리고 골키퍼와 1대 1 찬스에서 건국대 공격수는 차분히 골키퍼 가랑이 사이로 공을 차 넣었다.
출렁!
다시 공이 골망을 가르고 건국대 공격수가 바로 골대로 뛰어 들어가서 공을 챙겨서 하프라인으로 뛰어갔다.
3골 째 넣고 나자 건국대 선수들의 표정이 바뀌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패잔병 같았던 그들의 두 눈이 뭔가 기대에 가득 찬 얼굴로 변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현재 스코어는 7대 3으로 무려 4골차나 났다. 그리고 남은 시간은 이제 7분여. 추가 시간까지 계산해도 10분인데 10분에 4골을 넣는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현수는 벤치에서 첫 번째와 두 번째 골을 먹을 때까지는 가만있었다. 하지만 3번째 골을 먹자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터치라인으로 다가가서 연신대 선수들에게 외쳤다.
“공을 계속 돌려. 뭐 하러 공격하려 해. 시간을 끌란 말이다.”
현수의 그 말에 연신대 선수들도 오늘 시합이 단판 승부란 점을 떠올렸다. 7골이든 1골이든 이기기만 하면 됐다.
연신대의 킥 오프로 경기가 빠르게 재개 되었다. 현수의 말대로 연신대는 2선에서부터 공을 돌렸다. 현수가 없어도 그건 충분히 가능했다. 그렇게 연신대에서 공만 돌리고 좀체 공격에 나서지 않자 건국대에서 별수 없이 라인을 끌어 올리며 전 방위적인 압박에 나섰다.
그때 건국대 진영도 빈틈이 드러났고 조용식의 패스도 먹혀들었다. 연신대 오른쪽 공격수 고동찬이 그 공을 받아서 골라인을 향해 무조건 치고 올라갔다. 그리고 건국대 수비진과 대치를 하며 30여초는 더 시간을 잡아먹었다.
결국 골라인으로 공이 넘어가며 골킥이 선언 되었지만 그 사이 5분의 시간이 훌쩍 흘렀다. 이제 후반전 남은 시간은 2분여, 추가시간을 합쳐도 5분밖에 남지 않았다.
그 상황에서 건국대는 침착하게 공을 전방으로 투입 시켰다. 강현수가 없는 연신대와는 한 번 해 볼만하다는 자신감이 붙은 건국대 공격수는 과감히 돌파를 시도했고 그 돌파를 막기 위해서 연신대 수비는 반칙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삐익!”
주심이 그걸 보고 곧장 반칙을 선언했다. 아까 현수가 멋진 프리킥 골을 성공 시킨 위치와 비슷한 곳이었다. 직접 프리킥으로 연결이 가능한 지점에서 건국대 공격수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전방을 주시하며 주심의 휘슬을 기다렸다.
그 사이 연신대 선수들이 벽을 쌓았는데 건국대 선수 하나가 그 한가운데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 때 주심의 휘슬이 울렸고 건국대 공격수는 그대로 벽 한가운데를 향해 땅볼을 찼다. 순간 벽 한 가운데 끼어 있던 건국대 선수가 폴짝 뛰었고 그 선수의 뛴 발 아래로 땅볼이 지나갔다.
출렁!
그리고 연신대 골키퍼 방주혁은 벽을 뚫고 들어 온 공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당연히 그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 나왔다.
“이런 씨발....... 벽도 제대로 못 서냐?”
방주혁이 같은 팀 선수들을 탓할 사이 건국대 선수 하나가 골대에 들어 간 공을 챙겨서 하프라인으로 뛰어갔다.
스코어 7대 4!
이대로 계속 골을 넣으면 동점에 역전도 충분히 가능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시간이 없었다. 연신대에서 킥오프를 하고 공을 돌렸고 그걸 뺏기 위해서 건국대에서 다시 전 방위적인 압박을 가했다. 하지만 연신대 미드필더들도 그리 호락호락 하진 않았다. 그들은 아예 교체 되어 들어 온 배성재는 배제하고 빠른 패스를 주고받았고 그 사이 시간은 계속 흘렀다.
그런 가운데 마음 급해진 건국대에서 반칙까지 하면서 시간을 더 잡아먹은 가운데 연신대는 끝까지 공의 소유권을 잃지 않았다. 그렇게 주심이 준 3분의 추가 시간도 다 되었다.
삐이이이익!
주심의 긴 휘슬 소리와 함께 결국 경기가 끝났다. 승리한 연신대 선수들은 다들 어깨가 축 늘어진 체 벤치로 돌아 온 반면 막판 4골을 몰아치며 기세를 올렸던 건국대 선수들은 다들 아쉽다는 얼굴로 벤치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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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하고도 침울한 연신대 선수들에게 이명신이 말했다.
“다들 수고 했고 여기서 바로 해산 하도록 하겠다. 내일은 평소처럼 훈련할 테니 늦은 일 없도록 하고.”
그 말 후 이명신 감독은 휑하니 사라졌다. 그에겐 선수들의 기분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이겼다는 결과만 중요할 뿐.
연신대 선수들은 각자 짐을 챙겨서 올 때처럼 차가 있는 선수들의 차에 몸을 싣거나 짐을 맡겼다. 그러고도 차에 못 탄 나머지 선수들은 걸어서 연신대로 움직였다.
현수는 4명의 선수에 차에 못 탄 선수들의 짐을 트렁크 가득 싣고 연신대로 향했다. 그리고 체육관 안 샤워 실에서 씻고 나오자 걸어 온 선수들을 만났다. 그들에게 자신의 차에 실려 있던 짐을 나눠준 후 현수가 라커룸에서 옷을 갈아입고 차로 갈 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확인하니 사지희였다.
“네. 지희씨.”
-오늘 시합 이기신 거 축하 드려요.
“어? 그거 어떻게 아셨어요?”
-저는 못가도 사람은 보낼 수 있잖아요. 저 대신 동호 오빠 밑에 분을 보냈거든요. 그 분이 거기서 핸드폰으로 경기 상황을 알려 주셨어요.
“그랬구나. 하여튼 축하는 고맙게 받도록 하죠. 집입니까?”
-네. 며칠 집에서 꼼짝 못하게 있게 생겼어요.
“어제 무슨 일 있었군요?”
-또 아빠랑 싸웠죠. 뭐. 현수씨 한 테는 항상 미안해요. 저 때문에 괜히.....
“괜찮습니다. 그래봐야 죽기밖에 더 하겠습니까?”
-..........
현수의 그 말에 사지희가 더 침울해졌다. 그녀의 아버지인 사도철은 진짜 현수를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서 흔적도 없이 없애 버릴 수도 있는 무서운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현수도 말해 놓고 나서 자신이 사지희에 말실수 한 걸 깨달았다. 하지만 현수도 사람이다 보니 어쩔 수가 없었다.
‘준비를 해둬도 역시 두려운 마음은 여전한가 보군.’
현수는 씁쓸하게 웃으며 다시 연락하자는 말로 사지희와 통화를 끝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