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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쓰는 미드필더-120화 (12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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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청무어(水淸無魚), 즉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살 수 없단 소리다.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지만 자신의 사리사욕 때문에 비리를 저지르는 인간은 꼭 있다. 그리고 그런 인간이 더 잘산다.

경찰도 마찬가지. 출세 가도를 달리는 경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원래 잘났거나 튼튼한 동아줄이 있던지.

강남 경찰서의 형사 과장인 성상용은 올해 32살인데 벌써 무궁화 두 개를 달았다. 경찰 대학을 나온 것도 고시 출신도 아닌데 말이다.

그가 이렇게 빠른 출세 가도를 달릴 수 있은 데에는 당연히 이유가 있었다. 바로 조폭조직과 그가 서로 연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다른 경찰에 비해 성상용 경감의 실적이 많았고 그것이 그를 계승 승진시켜 지금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한 것이다.

그런 그에게 붙은 별명이 바로 조폭 형사였다. 주로 조폭들을 잘 잡아넣는다고 붙여진 별명이었다. 하지만 조폭들에게 성상용은 ‘간쓸개’로 불렸다.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한다고 말이다.

제종환은 아침부터 재수 없게 그 ‘간쓸개’에게 전화를 받은 것이다.

“아침부터 무슨 일이십니까? 간, 아니 성 경감님!”

욱하는 마음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제종환은 본인 앞에다 대고 ‘간쓸개’라고 말하지 못하고 깍듯이 그의 직위를 붙여 주었다. 그런데 눈치 없는 그 인간은 자기 할 소리만 지껄였다.

-너나 아침이지 여긴 어제 밤부터 밤샘 수사 중이거든. 그나저나 이 얘기를 해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보아하니 무슨 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것도 제종환이 속한 조직과 연관 된 뭔가가 말이다. 이럴 경우 녀석의 비위를 최대한 맞춰 줄 필요가 있었다.

“성 경감님. 이거 왜 이러십니까? 우리 사이에 못해 줄 말이 뭐 있다고.”

-이번 달 우리 형사과 실적이 너무 저조 해.

“하하하. 몇 놈 넣어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어서.....”

-10명!

“그건 너무 많고 6명으로....”

-7명. 콜?

“네. 그러시죠.”

제종환이 떨떠름하니 대답하자 그제야 성상용이 입을 열었다.

-실은 어제 5신가 좀 넘어서 신고가 들어왔어. 웬 조폭들이 자신을 납치하려 한다나? 그래서 경찰이 현장에 갔는데............................

성상용의 얘기를 쭉 듣던 제종환이 움찔했다.

“동, 동구파라고요?”

-왜? 아는 얘들이야?

“아, 아니요. 어디서 들어는 본 거 같아서. 그래서요?”

-글쎄 그놈들이 청부 살인은 수십 차례나 했다지 뭐야? 그러니 대체 몇 명이나 죽여서 묻은 거겠어? 그 때문에 경찰서가 발칵 뒤집어지고......

제종환은 그가 의뢰한 일이 파토가 났음을 바로 직감했다.

‘김동구! 이 병신 새끼가 대체 일을 어떻게 처리했기에.....’

제종환은 서둘러 성상용과 통화를 끝내고 김동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객이 전화를 받지 않아.......

“이런 빌어먹을.”

김동구가 제종환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무래도 문제가 심각한 거 같았다. 제종환은 허겁지겁 옷을 챙겨 입었다. 그런 그를 보고 침대 위에 늘씬한 미녀가 말했다.

“오빠. 벌써 가게?”

아직 불끈 솟구쳐 있는 물건이 팬티 위로 티어 나와 있었지만 제종환은 그 위에 바지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미안. 오빠가 급한 일이 좀 생겨서....”

미녀에게 양해를 구하고 호텔을 나서며 제종환은 계속 김동구에게 전화를 했다. 하지만 김동구는 끝끝내 그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제종환이 호텔을 나서자 그의 차가 호텔 앞에 대기 중이었다. 그 차를 타고 제종환은 김동구와 동구파의 아지트가 있는 동작구 상도동 용문빌딩으로 향했다. 하지만 거긴 이미 경찰들이 폴리스 라인을 쳐 두고 있었다.

아무래도 어제 딸려 들어간 놈들이 놈들의 합숙소를 분 모양이었다. 제종환은 ‘간쓸개’ 말고 그가 포섭해 둔 강남 경찰서의 강력계 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윤 형사. 나야.”

-일찍도 전화 하셨소.

“어떻게 된 거야? 김동구는 잡혔고?”

-아니요. 아직 잡히진 않았는데 수배 때렸으니 곧 잡히겠죠.

제종환은 김동구가 아직 경찰에 잡히지 않았단 사실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김동구가 잡혀서 입이라도 연다면 제종환은 무사하기 어려웠다. 그 전에 그 놈의 입부터 막아야 했다.

“이번 달 용돈도 그 계좌로 넣도록 하지.”

-고맙소. 뭐 잘 쓰도록 하죠.

“혹시 김동구에 관한 정보 있으면 바로 좀 알려주고.”

-그러죠.

원래 강력계 형사 직업이 박봉인데다가 일도 더럽게 많았다. 그걸 잘 아는 제종환이 어느 날 강력계 형사 중 하나에게 접근했고 그에게 매달 200만원씩 돈을 넣어주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은밀한 관계가 시작 되었다.

그 관계가 벌써 5년 째였다. 그들의 관계가 계속 지속 될 수 있었던 건 제종환이 강력계 형사에게 절대 무리한 부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제종환은 주로 강력계 형사를 통해 정보를 들었다. 지금처럼 말이다.

강력계 형사도 자신이 알아낸 정보 정도를 제종환에게 제공하는 것에 대해서는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았고 말이다. 그렇게 둘은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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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는 연신대 축구부원들에게 간략하게 자신이 시트콤 영 프렌즈에 출연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그걸 듣고 난 축구부원들이 뭐 그리 할 말이 많은지 폭풍 수다를 떨어댔다.

“그러니까 거기 PD아들을 네가 구해줬고 그게 인연이 돼서 영 프렌즈에 출연하게 됐다는 거네?”

“현수가 축구선수다 보니까 딱 그 배역에 맞은 거지. 감독이 제대로 너한테 은혜를 갚은 거네. 너 완전 재수 좋다.”

“근데 선배. 계속 거기 출연하는 겁니까?”

“야! 넌 얘기를 입으로 들었냐? 5회 분만 촬영했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이번 주 출연하고 끝난 거지.”

“자자. 이제 그만들 하고 훈련 해야지.”

그때 주장 이기찬이 나섰다. 그의 훈련하자는 말에 현수 주위에 모였던 축구부원들이 다시 대형을 갖췄다. 그리고 가볍게 축구장 5바퀴를 돈 뒤에 체조를 하고 개별 포지션 훈련을 시작했다.

현수는 자신과 같은 포지션의 미드필더 조용식과 같이 패스 훈련을 하다가 그에게 물었다.

“심재국 선배 오늘 안 왔어?”

“응! 내가 오늘 좀 일찍 왔는데..... 너도 보다시피 안 보이네.”

현수는 심재국 다음으로 윤성찬을 찾았다. 그런데 그 녀석도 오늘 그의 눈에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조용식에게 또 물었다.

“성찬이는?”

“성찬이는 오늘 몸이 안 좋아서 못 나온다던데?”

현수는 속으로 ‘그럼 그렇지.’ 싶었다. 그놈이 그리 쉽게 축구를 그만 둘 놈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아마 오늘 하루 몸 사렸다가 내일 언제 그랬냐는 듯 또 축구장에 모습을 드러낼 놈이었다.

그 뒤로 현수는 묵묵히 훈련을 소화하며 축구에 집중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점심시간이 되었다.

곧바로 식당으로 점심을 먹으러 가는 선수들이 있는 반면 라커룸이 있는 체육관으로 가는 선수들도 제법 있었다. 그 중에 이기찬과 현수도 끼어 있었다.

이기찬과 현수는 다른 선수들처럼 라커룸 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오전 훈련 중 걸려온 전화를 확인했다.

그 다음 핸드폰을 챙겨 들고 점심을 먹으러 식당으로 향했다. 그런 선수들의 다 애인이 있는 선수들이었다. 즉 점심 먹기 전에 애인에게 전화가 왔는지 확인하고 또 점심을 먹은 뒤에는 애인에게 전화를 하려는 것이다.

평소의 현수라면 라커룸에 들르지 않고 바로 식당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을 터였다. 하지만 어제 TV출연 후 현수는 혹시 누가 그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을까 싶어서 라커룸에 갔던 것이다.

그 누군가는 바로....... 현수를 버리고 간 그의 엄마였다. 그녀도 현수가 TV에 출연한 걸 알면 혹시나 방송국에 연락해서 그에게 전화를 할 수 있는 노릇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현수는 일부러 방송국에다가 자신의 핸드폰 번호를 남겨 두었다.

강현수에게 엄마란, 그를 버리고 도망친 여자 일 뿐이지만 사무치고 보고 싶고 그리운 그의 유일한 가족이었다. 하지만 그의 핸드폰에 걸려 온 전화는 한 통 뿐이었다.

“진영호PD에게 전화가 왔네?”

현수는 식당으로 가는 도중 진영호PD에게 전화를 걸었다.

-현수씨!

“저를 너무 멋있게 찍어 주셨더군요. 고맙습니다.

-하하하. 그게 잘 찍는다고 멋있게 나오나요? 본바탕이 되니까 그 정도 나온 거죠.

“오전에 전화 주셨더군요.”

-아네. 실은 작가님이 현수씨에게 물어보라고 해서요. 혹시 더 출연해 줄 생각 없어요?

그 물음에 현수가 난색을 표했다.

“그게..... 다음 주부터 시작해서 10월 달까지 참가해야 할 대회가 줄줄이 이어지거든요. 죄송합니다.”

-현수씨가 죄송할 거까진 없고요. 바쁘다니 어쩔 수 없죠. 작가님에겐 제가 잘 말할게요.

“고맙습니다.”

진영호PD는 바쁜지 금방 현수와 통화를 끝냈다. 그 사이 식당에 다다른 현수는 곧장 식당으로 들어갔고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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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신대 언론 홍보 영상학과 3학년 구은하는 새벽 같이 집을 나섰다. 도서관에 좋은 자리를 잡으려면 이 시간에 나가야 했다.

“은하야. 이거라도 먹고 가렴.”

그녀의 모친인 안영미는 꼭두새벽부터 아침상은 차려 주지 못했지만 그녀를 위해서 머그잔에다가 갖은 곡물을 갈아 만든 가루를 양껏 부었다. 그 다음 가루가 잘 녹게 따뜻한 물을 탔다. 그리고 거기다 구은하게 먹기 좋게 꿀을 부은 다음 숟가락으로 휘휘저어서 그녀에게 건넸다.

“고마워. 엄마.”

그걸 받아 든 구은하가 그 물을 숟가락으로 떠먹을 때 안영미가 물었다.

“내일부터는 밥 차려 줄까?”

“아뇨. 진짜 괜찮아요. 배고프면 학교 식당에서 아침도 하니까 거기서 사 먹으면 돼요. 그러니까 엄마도 내일부턴 일어나시지 말고 그냥 더 주무세요.”

“그래도 어떻게 그러니. 딸자식이 공부하러 나가는 데 가는 건 봐야지.”

“하여튼 엄마도 참.”

구은하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매일 아침 그녀를 배웅해 주는 엄마가 있어 마음이 든든했다.

구은하는 엄마가 타 준 곡물가루 물을 다 떠먹은 뒤 집을 나섰다. 그렇게 일찍 도서관에 간 그녀는 자신의 옆에 자리를 잡아 놓고 공부를 시작했다.

툭툭!

그렇게 한 시간 쯤 지났을까 누가 그녀의 등을 토닥거려서 돌아보니 그녀와 같은 과 친구 이재은이었다.

이재은이 나타나자 구은하가 도서관에 잡아 두었던 자리에서 자신의 가방과 책을 뺐다. 그러자 이재은이 자신의 가방을 책상에 올려놓고 가방 안에서 지갑만 꺼내 들고서는 구은하에게 밖으로 나오라면 손짓을 했다.

구은하는 이재은과 같이 도서관 밖으로 나갔다.

“자리 맡아줘서 고마워. 은하야.”

“고마운 줄 알면 커피나 뽑아.”

“알았어. 그럴 줄 알고 지갑 들고 나왔지. 가자.”

도서관 밖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은 두 여자는 근처 벤치에 가서 앉았다.

“그 축구선수랑 연애는 잘 돼가?”

구은하의 물음에 이재은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응! 요즘 좋아.”

“잘 됐다.”

구은하는 살짝 이재은이 부러웠다. 연신대 퀸카인 그녀는 아직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못해 보고 있는 데 이재은은 사귀던 남자와 헤어지고 전에 만났던 남자와 또 만나고 있었다.

그때 구은하의 뇌리에 강현수가 문뜩 떠올랐다. 그런데 어제 그녀의 전화를 그가 무정하게 끊은 게 생각났다.

“흥! 이제 유명해 졌다 이거지?”

“응? 뭐라고?”

“아, 아무것도 아냐. 커피 다 마셨으면 이제 들어가자.”

구은하가 반쯤 마신 커피를 들고 벌떡 벤치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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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은하와 이재은은 그렇게 도서관에 들어가서 무려 3시간 반을 꼼짝도 않고 공부만 했다. 이재은도 연애하느라 바빠서 그렇지 학과 성적은 늘 상위권에 있었다. 그 만큼 한 번 공부하면 지금처럼 집중해서 공부를 했기에 그런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둘 다 배는 고팠던 모양이었다.

정각 12시에 둘은 도서관을 나와서 학생 식당으로 향했다. 둘 다 배가 고팠던 탓에 말도 없이 허겁지겁 식판을 비운 뒤 둘은 이제 살 것 같은 얼굴로 식당을 나섰다.

그 뒤 이재은이 구은하에게 같이 동아리 방으로 가자고 했다. 거기에 인스턴트커피를 공짜로 타 먹을 수 있다며 말이다.

“그래. 그럼.”

구은하도 이재은이 속한 동아리 방에 한 번 가보고 싶은 던 터라 그녀를 따라 나섰다.

“여기야.”

응원단 동아리 방은 제법 규모가 컸다. 그 안에는 각종 응원도구와 응원복이 진열 되어 있었다.

“잠깐만.”

이재은은 종이컵에 인스턴트 커피분말을 붓고 정수기에서 뜨거운 불을 부어서 잘 저은 뒤 구은하에게 건넸다.

“고마워.”

그렇게 둘이 동아리 방에 소파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였다.

쾅!

갑자기 누가 동아리방 문이 거칠게 열었다. 자연히 두 여자의 시선이 입구 쪽으로 향했는데 그때 키가 아주 큰 남자가 불쑥 동아리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를 발견한 이재은이 놀란 얼굴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준혁아!”

“이재은. 너 이리 와.”

키 큰 남자는 잔뜩 화가 난 듯 동아리방 안으로 들어와서는 이재은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그녀를 억지로 끌고 나갔다.

“이봐요. 그 손 못 놔요?”

구은하가 즉시 이재은을 구하러 나섰지만 키 큰 남자는 완전 제정신이 아니었다.

“넌 뭐야!”

키 큰 남자가 가볍게 구은하를 밀쳤는데 그녀는 맥없이 밀려나서 소파 위에 쓰러졌다. 그 사이 키 큰 남자는 이재은을 끌고 동아리 방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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