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리그 -->
청백 시합 후 이명신 감독은 주전, 비 주전 가리지 않고 축구부원들 전부에게 성토했다.
“U리그 본선이 일주일도 안 남았다. 그런데 공격과 수비 모두 제대로 된 게 안 보여. 현수만 빼고 나면 말이다. 훈련하면 뭐해? 제대로 뛰지도 못하는 데.”
이명신 감독이 심재국을 쬐려 보았다. 그때 현수가 손을 들었다.
“감독님!”
“어. 그래. 현수야.”
좀 전까지 일그러져 있던 이명신 감독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아무리 화가 나도 연신대 축구부의 소년 가장인 현수 앞에서까지 화를 낼 순 없는 노릇이었다.
“훈련 말인데요. 오늘 해 보니 힘들기만 하고 효과는 하나도 없는 거 같습니다.”
“그, 그래?”
“해서 말인데 예전에 하던 대로 훈련하는 게 더 좋은 거 같은데요.”
현수는 해 달란 게 아니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이 이명신 감독에게는 그렇게 하란 소리로 들렸다.
“네가 그렇다면 당장 예전으로 돌려야지. 주장?”
“네.”
“앞으로 훈련은 네가 맡아서 예전 하던 대로. 알지?”
“네. 감독님.”
그걸 지켜보던 나머지 축구부원들의 입에서 다들 안도의 한숨이 흘러 나왔다. 반면 심재국과 그를 추종하던 비 주전 멤버 중 몇 명은 얼굴을 찌푸렸다.
그렇게 심재국의 일주일 천하는 현수의 등장으로 바로 막을 내렸다. 그리고 그는 연신대 축구부의 비 주전 선수 중 하나로 전락했다.
“그럼 주장이 마무리 훈련시키고 끝나는 대로 해산 시켜라.”
이명신 감독이 그렇게 그라운드를 떠나자 심재국이 바로 나섰다.
“강현수!”
“뭐?”
“뭐, 뭐라고? 너 지금 선배한테 ‘뭐?’라고 한 거냐?”
심재국이 두 눈을 부라렸다. 하지만 현수는 그가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선배도 선배 같아야 존중해 준다는 게 현수의 철칙이었다.
“선배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복학 했으면 얌전히 찌그러져 있어. 괜히 깝죽대지 말고.”
“너 이 개 새끼. 일루 와.”
성질 더러운 심재국의 인내심은 이미 바닥을 드러낸 상태였다. 그는 현수에게 득달 같이 달려들어서 그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퍽!
제법 둔탁한 소리와 함께 현수가 얼굴을 맞고 쓰러졌다.
“개새끼. 어디 또 씨불여 봐. 뚫린 입이라고 막 나불거리면 그 주둥이를 아주 뭉개 놓을 테니까.”
현수를 때려눕힌 심재국이 득의만만한 얼굴로 어깨에 잔뜩 힘을 줬다. 하지만 주위 분위기가 어째 썰렁했다.
“너 지금 뭐한 거냐?”
그때였다. 심재국의 뒤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심재국이 슬쩍 뒤를 돌아보니 이명신 감독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거리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감, 감독님!”
심재국이 적잖게 놀라며 말을 더듬었다.
“너 이 새끼. 순 깡패 새끼 아냐?”
“감독님. 그게 아니라 현수가 먼저.....”
“그 주둥이 닥쳐라. 내가 다 봤는데 어디서...... 네가 뭔데 우리 현수를 때려? 하아! 이 새끼가 복학해서 정신 좀 차렸나 싶었는데 달라진 게 하나도 없네. 너. 내일부터 훈련 나올 필요 없어.”
“감독님!”
“꺼져!”
이명신 감독도 화나니 무서웠다. 심재국의 말은 전혀 들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심재국은 결국 고개를 푹 숙인 체 체육관 쪽으로 걸어 나갔다.
“현수야!”
그 사이 이명신 감독이 쓰러져 있던 현수를 일으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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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관 쪽과 등을 지고 있던 심재국은 몰랐지만 현수는 체육관으로 사라졌던 이명신이 다시 그라운드로 오는 걸 봤다. 뭔가 빼먹은 말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때 마침 심재국이 현수에게 시비를 걸어왔고 말이다.
‘잘 됐네.’
현수는 심재국에게 결정타를 먹이기로 하고 그를 도발했다. 심재국이 지금껏 위세를 피운 건 다 이명신이 그를 비호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이명신이 그에게서 등을 돌린다면 어떨까?
현수가 무슨 꿍꿍이가 있는 줄도 모르고 심재국은 현수의 얼굴에 주먹을 먹였다.
현수는 그냥 한 대 맞아 주었다. 심재국의 주먹은 그리 강하지 않았지만 일부러 몸을 던져가며 리얼하게 쓰러지는 연기까지 했다. 그리고 심재국의 등 뒤에서 나타난 이명신 감독.
그걸로 심재국에 대한 이명신 감독의 신뢰도 끝이 났다.
모든 건 그렇게 정리가 되었다. 현수는 이명신 감독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났다.
“괜찮아? 병원 안 가 봐도 되겠어?”
“네. 전 괜찮습니다.”
“하아. 저런 깡패 새끼한테 그동안 내가 훈련을 맡겼다니. 어째 애들이 힘들어 하더라니.”
이명신은 모든 잘못을 심재국에게 돌렸다. 그리고 내일 당장 심재국을 축구부 명단에서 지워버리겠다고 했다.
“근데 감독님. 왜 돌아오신 겁니까?”
주장인 이기찬이 묻자 그제야 이명신이 퍼뜩 정신을 차리곤 현수에게 물었다.
“현수야. 너 안산대 선수들과 뭔 일 있었니?”
“안산대요?”
안산대면 며칠 전 현수가 월드컵 경기장에서 시트콤 영 프렌즈 야외 촬영 때 그와 같이 축구 씬을 찍은 선수들을 말하는 모양이었다.
“네. 며칠 전에 한 번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랬구나. 그 안산대 감독이 너 얘기를 하면서 내게 연락을 해 왔더라. 이왕 같이 U리그 본선에 진출 했는데 평가전이라도 하자고 말이야.”
“평가전이요?”
“대진표를 봐도 안산대와 우리가 만나려면 결승에서나 가능하니까 평가전을 해도 괜찮을 거 같긴 한데 말이야.”
“U리그 본선 대진표가 나왔습니까?”
“어. 좀 전에 팩스로 받았다. 왜? 너도 볼래?”
“네. 보여 주십시오.”
“그럼 같이 내 방으로 가자.”
이명신 감독이 현수를 데리고 체육관 쪽으로 향하자 주장 이기찬이 남아 있던 축구부원들을 통솔해서 마무리 훈련을 실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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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관 축구부실 안쪽에 위치한 감독실로 이명신과 같이 들어간 현수는 그가 건네는 A4용지 한 장을 받았다.
“그게 이번 U리그 대진표다.”
올해 U리그 본선은 8개 팀이 토너먼트를 통해 최종 우승팀을 가리게 되어 있었다.
현수는 우선 그 8개 팀부터 확인했다.
“연신대, 고구려대, 한영대, 중앙대, 건국대, 광운대. 안산대, 수원대”
그 중 연신대는 건국대와 8강전을 치르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안산대는 중앙대와 붙어서 이기고 4강에 올라가면 고구려대를 상대해야 하는데 아마도 그 때문에 연신대와 평가전을 치르려고 하는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최근 연신대가 고구려대를 박살 내 놨으니까 말이다.
‘우리 전력을 분석하면 고구려대를 상대할 때 도움이 될 게 분명하니까.’
현수는 안산대 감독이 꽤나 머리가 좋은 감독이구나 싶었다. 그에 비해 그런 의중을 전혀 간파하고 있지 못한 연신대 감독인 이명신이 그렇게 한심해 보일 수 없었다. 그래도 그는 운 하나는 끝내주게 좋았다. 옆에 현수 같은 뛰어난 선수가 있다는 게 말이다.
“현수야. 어떻게 할까?”
“평가전 말씀입니까?”
“그래. 아무래도 U리그 본선을 치르기 전에 평가전 한 번 해 보면 도움이 되긴 할 거 아냐?”
“그렇긴 하죠. 언제 하자던가요?”
“내일.”
“으음. 모레 하자고 하세요.”
“모레? 하지만 그쪽에서는....”
“싫으면 말자고 하세요. 아쉬운 건 그쪽이니까 우리 제안을 따를 수밖에 없을 겁니다.”
현수가 모레 안산대와 평가전을 치르자고 한 건 딱히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냥 안산대 감독의 의도대로 끌려가기 싫었다.
이명신은 곧장 안산대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모레 하자고 하자 처음엔 안산대 감독도 난색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명신이 현수가 시킨 대로 모레 아니면 평가전을 그만 두자고 하자 안산대 감독도 바로 모레 하자고 했다.
이명신은 안산대 감독과 통화를 끝내고 나서 뒤늦게 현수에게 물었다.
“근데 현수야. 안산대 감독이 모레 평가전 치르자고 해도 따를 거란 건 어떻게 알았니?”
“그야 이 대진표를 보고 알았죠.”
“대진표?”
“안산대가 중앙대와 붙어서 이길 경우 그 다음 대전 상대가 누구죠?”
“그야 고구려대...... 아아!”
그제야 이명신도 깨달은 모양이었다. 안산대가 왜 그렇게 연신대와 평가전을 치르려 하는지 말이다. 하지만 이명신에게는 그 이유 따윈 사실 관심 밖의 일이었다. 중요한 건 결과였다. 그 결과에 따라 이명신의 목이 잘릴지 아니면 연신대 감독직을 더 끌어갈지가 정해질 테니 말이다.
“현수야. 이번 U리그 말인데...... 우리 우승할 수 있겠지?”
그 말이 현수에겐 연신대가 꼭 우승해야 한다는 소리로 들렸다. 현수는 긴 한숨과 함께 이명신에게 말했다.
“제 말을 따르시면 우승도 가능할 겁니다.”
현수의 그 말에 이명신이 바로 대답했다.
“그야 당연하지. 뭐든 말만 해라.”
이명신은 현수가 원하면 진짜 간 쓸개 다 빼 줄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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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가 이명신과 감독실에 있을 때 연신대 축구부원들은 마무리 훈련을 끝내고 해산을 했다. 그런 가운데 주장 이기찬은 맨 마지막까지 남아서 1학년들과 그라운드 정리를 같이 했다. 그리고 막 샤워를 하러 체육관으로 가려는 데 누가 그를 불렀다.
“기찬아!”
이기찬이 고개를 돌리자 심재국이 체육관 뒤편에서 그를 손짓으로 불렀다. 심재국을 발견한 이기찬의 얼굴은 복잡 미묘했다. 이기찬은 곧장 심재국이 있는 체육관 뒤편으로 움직였다.
“기찬아. 나 축구 그만 두면 할 거 없는 거 너도 잘 알지?”
“네. 뭐....”
“그래서 말인데. 네가 현수랑, 감독님한테 잘 좀 얘기해 줘야겠다.”
“제가요? 하지만 제가 말한다고 그들이 제 말을 들을지는.....”
“그 참. 넌 꼭 해보지도 않고 초치는 소릴 잘 하더라. 그래서 못하겠단 거야?”
부탁하는 처지의 심재국이 되레 이기찬에게 화를 냈다.
“못 하겠다 기보다는 제가 말한다고 현수나 감독님이 선배를 다시 복귀시켜 줄 거 같지가 않아서 그럽니다.”
“이 새끼가 진짜..... 그러니까 네가 무슨 수를 쓰던 날 복귀 시켜 줘야지. 뭐 싫으면 어쩔 수 없지. 네 애인 찾아가서.....”
“할게요. 그러니까 제발 재은이에게만은.....”
이기찬의 연인인 이재은은 그가 어렵게 다시 만난 여친이었다. 그런데 이기찬이 이재은과 헤어지고 나서 괴로워 할 때 잠깐 만난 여자 때문에 사달이 벌어졌다.
분명 깨끗하게 헤어졌건만 그녀가 갑자기 자기를 찾아와서 다시 만나자고 애걸복걸한 것이다. 그러면서 술을 연거푸 마셨고 결국 술이 취한 그녀를 어쩔 수 없이 근처 모텔로 데려다 주고 나왔는데 이기찬이 그 여자와 같이 모텔에 들어가는 장면을 하필 심재국이 카메라 폰으로 녹화를 한 것이다.
“이걸 네 애인이 보면 아주 좋아하겠어. 술에 취해 꽐라가 된 여자와 모텔에 들어가는 남친이라.....”
심재국이 이기찬이 보란 듯 핸드폰에 녹화 된 장면을 그에게 보여 주었다. 그걸 보는 이기찬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 있었다.
“그랬군.”
그때 체육관 뒤쪽에 또 한 사람이 나타났다.
“어째서 주장이 댁을 그렇게 두둔 했는지 의아했는데 이런 이유가 있었어.”
홱!
현수가 순식간에 심재국의 손에 들린 핸드폰을 뺏었다. 그리고 핸드폰 뒤쪽을 커버를 열고서 그 안에 유심 칩을 빼내 이기찬과 심재국이 보는 앞에서 그걸 부러트렸다.
“야!”
기겁한 심재국이 현수에게 달려들었지만 현수의 발이 더 빨랐다.
퍽!
“컥!”
발차기에 턱을 맞은 심재국이 비틀거리다가 픽 쓰러졌다.
“현, 현수야!”
이기찬이 현수를 말리려 하자 현수가 딱 끊어서 얘기했다.
“가세요.”
“그, 그래도.....”
“저런 비겁한 놈은 좀 맞아야 합니다. 왜 대신 하실래요?”
이기찬은 잠시 현수를 빤히 쳐다보다 짧은 한숨과 함께 뒤돌아서 체육관을 돌아 나갔다.
“이 씨발 새끼가........”
그때 현수의 발차기에 맞아서 쓰러졌던 심재국이 씩씩 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욕은 네 부모님 앞에 가서 하고.”
파파파팟!
그 말과 동시에 현수가 동양 챔피언의 빠른 풋 워크로 심재국 앞으로 전진해 들어갔고 심재국이 그걸 보고 본능적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런 느려터진 주먹에 맞을 현수가 아니었다.
가볍게 살짝 머리를 숙여 심재국의 주먹을 피한 현수의 주먹이 심재국의 복부에 꽂혔다.
펑!
“캑!”
북 터지는 소리와 함께 심재국이 허리가 직각으로 꺾였다. 그리고 한 동안 숨을 제대로 못 쉬더니 결국 토악질과 함께 먹은 걸 죄다 토해냈다.
“우에에엑!”
그걸 보고 현수가 중얼거렸다.
“진짜 더러워서 더 상대 못하겠네.”
하지만 확실하게 마무리를 지어야 했다. 그래서 현수는 좀 더 심재국을 지켜봤다. 먹은 걸 다 토해 내고서 위액까지 우엑거리며 더 토해 낸 뒤 심재국이 겨우 안정을 되찾았다. 하지만 얼굴을 시뻘겠고 두 눈을 붉게 충혈 되어 있었다.
그런 심재국에게 현수가 다가가서 말했다.
“한 번만 더 내 눈에 띄면..... 이 정도로 안 끝날 줄 알아.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지?”
하지만 심재국은 현수를 똑바로 쬐려 볼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덜 맞은 모양이군.”
현수가 팔을 걷자 그걸 보고 심재국이 살짝 두려운 눈빛으로 말했다.
“씨팔! 그래. 때려라. 깽값 좀 벌게.”
“깽값?”
현수가 피식 웃었다. 깽값이란 건 진단서를 끊어야 받을 수 있는 합의금이다. 하지만 그건 현수에게 전혀 해당 되지 않는 소리였다. 현수는 먼저 사일런스 마법으로 심재국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그 다음 개 패듯이 녀석을 두들겼다.
“뒈져.”
퍽! 퍼퍽! 퍽!
그렇게 맞다가 혼절한 심재국에게 다가간 현수가 그에게 걸어 둔 사일런스 마법을 취소하고 신성 마법을 시전 했다.
“홀리큐어!”
그러자 입술이 찢어지고 온 몸이 멍투성이에 골절상까지 입은 심재국의 모습이 정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정신을 잃은 그를 다시 깨운 현수가 다시 비오는 날 먼지 나듯 그를 두들겨 팼다.
그렇게 세 번 정도하자 심재국이 울고 불며 현수의 다리를 잡고 애원했다.
“흑흑흑흑! 현수야! 그만 좀 때려라. 내가 잘못 했다. 다시는 네 눈앞에 안 나타날게.”
현수가 그런 심재국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지금 그 생각 잊지 마라.”
그리고 그를 수면 마법으로 잠재운 뒤 다시 신성 마법으로 맞은 흔적 하나 없이 깨끗하게 치료 하고 피가 난 곳은 혈흔까지 닦아 준 뒤 현수는 조용히 체육관 뒤를 빠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