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믿고 쓰는 미드필더-111화 (11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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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리블의 마지막은 게임 방식의 드리블이었는데 출발과 함께 드리블을 하며 고깔을 통과한 뒤 스타트라인으로 복귀하면 다음 주자가 출발하는 방법으로 진행, 마지막 주자가 스타트라인으로 복귀하면 게임 종료되었다.

“야야! 뛰어! 뛰어!”

심재국의 말에 따르면 이 놀이 게임이 재미와 함께 드리블 능력의 향상 성취감, 승부욕을 자극 발달시킨다고 하는데 현수가 볼 때는 아닌 것 같았다.

그것도 적당히 쉬어가며 할 때 얘기지 이렇게 무식하게 뛰게만 하면 선수들만 지쳐 나갈 뿐이었다.

“자자. 이제 진짜 마지막이다.”

점심시간도 다 되었는데 훈련을 질질 끄는 심재국 때문에 대부분의 축구부원들의 얼굴에는 짜증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 진짜 마지막 훈련이란 게 축구부원들의 남은 체력마저 다 갉아 먹는 그런 훈련이었다.

바로 드리블하며 100M 전력달리기!

2명의 선수를 스타트 지점에 위치시키고 신호와 함께 드리블을 하면서 100M를 전력질주 시키는 거였다.

이때 이긴 선수는 바로 점심을 먹으러 가고 진 선수는 남아서 축구공과 그라운드를 정리해야 했다.

역시 심재국에 따르면 이 방법을 통하여 드리블 찬스 시에 빠른 스피드로 대쉬(Dash) 할 수 있는 드리블 능력을 기를 수 있단다.

맞는 얘기라 딱히 반발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걸 뛰고 난 연신대 축구부원 중에서 주저앉아 헥헥 거리지 않는 선수는 몇 명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심재국이 앞서 열외 시켰던 선수들이었고 드리블 전력 달리기에서도 이긴 쪽에 서 있었다.

“그럼 주장! 우리 식사 하러 가니까 애들 데리고 뒷정리 잘하고 와.”

심재국이 주장을 비롯한 드리블 전력 달리기에서 패한 체 헐떡거리고 있는 나머지 선수들을 한심한 눈으로 바라본 뒤 이긴 선수들을 데리고 먼저 식당으로 향했다.

현수 역시 당연히 이긴 쪽에 있었기 때문에 바로 식사를 하러 가도 됐지만 일부러 그라운드에 남았다. 그리고 지친 다른 선수들을 대신해서 그라운드에 굴러다니고 있던 공을 주우러 뛰어 다녔다.

“고맙다.”

그런 현수에게 주장인 이기찬이 다가와서 말했다.

“뭘. 서로 도와가며 뛰는 게 축구지.”

현수가 환하게 웃으며 일부러 그라운드 구석에 있는 축구공만 집중적으로 뛰어가서 챙겼다. 덕분에 한결 수월하게 뒷정리를 마친 연신대 축구부원들이 식당으로 향했다.

그들이 막 식당에 들어섰을 때 이미 식사를 마친 심재국과 드리블 전력 달리기에서 이긴 선수들과 마주쳤다. 심재국이 자기가 무슨 감독이나 코치라도 된 듯 거만한 얼굴로 주장인 이기찬에게 물었다.

“뒷정리 다하고 온 거냐?”

“네. 다 끝내고 오는 겁니다.”

이기찬의 대답에 심재국이 심드렁한 얼굴로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는 휑하니 식당을 빠져 나갔다. 그런 그의 옆에 윤성찬이 언제 뽑아 왔는지 캔 커피를 그에게 건네고 있었다.

“여기.....”

“오오! 그래. 역시 성찬이 뿐이야.”

심재국이 윤성찬을 칭찬하며 그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렇게 그들이 다정한 선후배의 모습을 보여 주며 식당 밖으로 나갈 때 현수와 나머지 축구부원들은 식판을 챙겨 들고 뒤 늦게 점심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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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후 소화가 좀 될 만하니 심재국이 훈련을 하자고 했다. 아직 점심시간이 10분 남았는데 말이다.

“빨리 빨리 움직여. 이런 썩어 빠진 정신 상태로 뭘 하겠다고.”

현수는 그런 심재국에게 말하고 싶었다. 그래도 작년 보다 올해가 훨씬 성적이 좋다고 말이다. 작년 이맘 때 연신대는 U리그 예선 탈락은 물론 FA컵도 광 탈락해 있었다. 그래서 방학 기간 동안은 아예 훈련도 하지 않았다.

“자. 가볍게 축구장부터 돌아.”

이번에도 심재국은 구보부터 시켰다.

“10바퀴다.”

또 10바퀴란 말에 축구부원들이 다들 얼굴을 찌푸렸다. 그걸 보고 오전엔 가만있었던 현수가 나섰다.

“10바퀴는 너무 많은데요?”

“뭐? 그래서 못 뛰겠단 거냐?”

“아뇨. 진짜 감독님이 10바퀴 뛰라고 했는지 여쭤보고 오겠습니다.”

현수가 무리에서 이탈해서 체육관으로 가려하자 심재국이 소리쳤다.

“거기서!”

하지만 현수는 계속 걸어가며 심재국에게 말했다.

“지금 훈련 시간 아닌데 제가 왜 선배 말을 들어야 하죠?”

아직 훈련 시간까지는 몇 분이 남은 상황이었다. 축구부원들을 억지로 소집 시킨 것은 심재국이었다. 그러니까 그건 적어도 감독의 지시 사항은 아니란 소리였고 그렇다면 축구부원들이 꼭 그의 말을 따를 필요는 없었다.

“야! 거기 안 서?”

심재국이 버럭 소리쳤지만 현수는 더 빨리 체육관 쪽으로 걸어갔다.

“저 새끼가....”

심재국은 결국 뛰어가서 현수의 팔을 붙잡았다.

“너 이 새끼 미쳤어?”

“이 팔 놓죠?”

현수와 심재국의 살벌한 눈빛이 서로 부딪쳤다. 순간 심재국은 자신이 상대하고 있는 녀석이 다른 축구부원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녀석이란 걸 깨닫고 이내 잡고 있던 현수의 팔을 놓았다.

“네가 일주일 동안 훈련을 안 나와서 모르는 모양인데 축구부의 모든 훈련은 내가 지시해. 그러니까....”

심재국은 최대한 인내하며 현수에게 좋게 설명을 하려 했다. 하지만 현수가 중간에 그의 말을 끊었다.

“그러니까 바꿔야죠. 어디서 굴러온 축구도 모르는 사람 하나 때문에 팀워크가 엉망이잖아요. 지금.”

“뭐? 엉망? 너 이 새끼.....”

현수의 말에 격노한 심재국의 현수의 멱살을 잡았다. 그때였다.

“너희들 뭐하니?”

이명신 감독이 체육관에서 나오다 그걸 보고 외쳤다. 순간 심재국이 잡고 있던 멱살을 풀고 사람 좋은 얼굴로 현수의 유니폼을 털어 주는 시늉과 함께 이명신 감독에게 말했다.

“현수와 오후 훈련 때문에 얘기를 좀 하고 있었습니다.”

“싸우는 거 같던데?”

어느 새 그들 가까이 다가 온 이명신 감독이 의심스런 눈빛으로 둘을 쳐다보았다. 그때 현수가 이명신 감독에게 뭐라 말을 하려 했는데 심재국이 그럴 틈도 주지 않고 끼어들었다.

“감독님. 애들 집합해 있는데 어서 가시죠?”

“벌써?”

아직 점심시간도 끝나지 않았는데 선수들이 집합해 있단 말에 이명신 감독이 흐뭇한 얼굴로 심재국을 쳐다보았다.

일주일 전 심재국이 복귀하기 전까지만 해도 연신대 축구부원들은 비루먹은 강아지 같았다. 하지만 그가 온 뒤 선수들은 훈련하려는 의지가 보였다. 항상 훈련 시간 전에 이렇게 집합해 있든지 아니면 훈련 중에 있었던 것이다.

“오후엔 무슨 훈련 할 거지?”

이명신 감독의 질문에 심재국이 바로 대답했다.

“패스와 개별 훈련이 잡혀 있습니다.”

“그럼 패스 훈련만 하고 한 시간 뒤에 청백 시합을 하도록 하자.”

“청백 시합을요?”

“저번 일주일 내내 체력과 기본 훈련만 했잖아? 이제 슬슬 실전 훈련에 들어가야지. 그렇게 준비 해.”

이명신 감독은 그렇게 지시를 내리고 집합해 있는 축구부원들에게는 가보지도 않고 뒤돌아서 체육관으로 돌아갔다. 그때 현수가 심재국에게 말했다.

“평소대로 5바퀴 뛰죠? 아님 제가 감독님에게 얘기할까요?”

현수의 말에 심재국이 와락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대답했다.

“씨팔. 니 좆대로 해라.”

그리곤 축구부원들이 있는 쪽으로 휑하니 걸어갔다. 현수는 그런 그의 뒤를 따라가며 생각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강물을 흐린다더니 그 말이 맞군.’

현수는 저 미꾸라지 같은 놈을 어떻게 할까 걸어가며 계속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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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의 반발로 구보는 5바퀴만 뛰었다. 축구부원들이 다들 현수에게 고마워하는 눈치들이었다. 사실 점심을 먹으며 현수는 입이 싼 축구부원 하나에게 축구부가 왜 이런 상태가 되었는지 자세히 들었다.

그러니까 현수가 훈련을 나오지 않은 저번 주 월요일 심재국이 나타났고 그가 이명신 감독에게 갖은 아부를 떨면서 주장인 이기찬 대신 선수들의 훈련을 맡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명신 감독은 현 주장인 이기찬 보다 복학한 자신이 더 선수들을 돈독하게 이끌 수 있다고 했고 이명신 감독이 분위기도 쇄신할 겸 한번 그에게 기회를 준 것이다. 물러터진 주장 이기찬은 그걸 그대로 수용했고 말이다.

그 뒤 축구부의 훈련을 도맡게 된 심재국은 빠르게 축구부를 장악해 나갔고 일주일 사이 지금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이다.

심재국의 등장에 누구보다 기뻐한 건 윤성찬이었다. 김창수처럼 심재국과도 사이가 나쁘지 않았던 윤성찬이었으니까.

그 뒤를 이어서 주전 자리를 꿰차지 못한 선수들이 심재국을 따랐다.

사실 현수가 돌아오면 심재국 역시 낙동강 오리알 신세였다. 그걸 알고 있던 심재국이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교체 멤버나 후보 선수들을 끌어 모아서 한 바탕 반란을 준비 중이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심재국은 일부러 강도 높게 훈련을 실시했다. 연신대 축구부의 주전 선수들을 상대로 말이다. 그 과정에서 후보도 되지 못한 1, 2학년 축구부원들만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고 있었고 말이다.

“자자. 빨리 패스 훈련 하자.”

5바퀴 축구장을 돌고 온 축구부원들이 채 숨을 고르기 전에 심재국이 나서서 다음 훈련을 시켰다.

보통 패스 훈련은 다섯 단계로 나뉘는 데 그 첫 번째가 혼자서 가볍게 공을 차보는 기본 동작이었다. 특히 인사이드 패스 시에 자세를 낮추고 시선을 목표지점을 주시해야 했다. 하지만 이 동작은 체력 소모가 적어선지 심재국은 바로 건너뛰었다.

그 다음이 2인 1조로 정지해 있는 공을 상대에게 보내는 패스 훈련인데 이것도 5분쯤 실시하고 넘어갔다.

세 번째 단계는 벽을 이용한 패스 연습이었는데 연신대 축구부는 축구장을 빙 두르고 있는 콘크리트 계단에서 이 훈련을 했다. 때문에 공이 어디로 튈지 모른 체 공을 차야 했는데 심재국은 이 훈련을 무려 30분 넘게 시켰다.

“헉헉헉헉!”

공이 이리저리 튀어대니 그 공을 쫓는 선수들은 금방 지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심재국과 그를 추종하는 선수들은 그 훈련을 빼먹고 네 번째 단계의 1대 1로 패스를 주고받는 훈련을 했다.

그 뒤 마지막 남은 10분 동안 연신대 축구부원들은 2대 1 패스와 삼각 패스 등 응용 동작을 연습했다.

그렇게 한 시간의 패스 연습이 끝났을 때 연신대 축구부 감독 이명신이 다시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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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출근하자마자 유혜란은 회장실로 올라갔다.

“회장님 뵈러 왔어요.”

“하지만 약속이.....”

회장 비서가 곤란한 얼굴 표정을 지었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바쁜 사람 중 한 명이 바로 삼정그룹 유정만 회장이었다.

비서의 스케줄 표에는 유정만 회장의 1년 치 스케줄이 다 잡혀 있었다. 그 중에서 시간을 뺀다는 건 유정만 회장의 지시가 없는 한 불가능한 일이었다.

“제가 꼭 뵙고 드릴 말씀이 있다고 전해 주세요.”

유혜란이 전혀 물러 설 기미를 보이지 않자 결국 회장 비서가 회장실에 노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나오면서 유혜란에게 손짓을 했다. 들어오라고 말이다.

유혜란은 비서가 열어 준 문을 통해 회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저번과 달리 유정만 회장은 책상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서류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무슨 일이냐?”

딱 봐도 중요한 서류를 결제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지금 유혜란에게 중요한 건 회사 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제발 사모님 좀 어떻게 해 주세요.”

사모님이란 말에 유정만 회장이 움찔하며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뭐라고?”

그런 유정만 회장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저희 모녀를 구해 준 제 지인에게 경호원들을 보낸 게 그럼 잘한 일인가요?”

유정만 회장도 들어 알고 있었다. 저번 주 토요일 백화점에서 유혜란과 그녀의 모친이 평창동에서 보낸 경호원들에게 끌려 갈 뻔한 일을 말이다. 그리고 그때 유혜란과 아는 사이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그 경호원들로부터 두 모녀를 지켜 주었단 것도 말이다.

“그랬군.”

평창동 그 여자라면 그러고도 남았다. 유정만 회장은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자신의 뒤를 이을 첫째와 둘째 아들의 얼굴이 떠오르자 그 화도 식어들었다. 어째든 그 여자는 자신의 후계자가 될 녀석들을 낳은 여자가 아니던가?

“그래서 뭘 원하니?”

유정만 회장이 유혜란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그러자 유혜란이 똑바로 유정만 회장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그 사람은 아무 잘못도 없어요. 그러니 그 사람 건드리지 말라고 사모님께 얘기해 주세요. 더불어 회장님께서 그 사람의 안전을 약속해 주시고요.”

“알았다. 약속하지. 그런데 그 사람과 너의 관계를 물어봐도 될까?”

그 물음에 유혜란이 바로 대답했다.

“제 생명을 구해 준 적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게 다냐?”

유혜란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듯 즉각 대답했다.

“네.”

“더 할 말은?”

“없습니다.”

“그럼 가 봐.”

유정만 회장의 축객령에 유혜란은 바로 몸을 돌려서 회장실을 나섰다. 그런 그녀를 유정만 회장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흥미롭군.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은 거야?”

유정만 회장이 바로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회장님!

“혜란이 말인데. 뒷조사 좀 해. 특히 누구와 만나는지 말이야.”

-알겠습니다.

유혜란은 지금껏 유정만 회장을 똑바로 바라보고 자기 할 말을 다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 그녀는 당돌하게도 그렇게 했다. 그런 변화는 뭔가 중요한 계기가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유정만 회장은 그 이유가 최근 유혜란이 만나는 사람의 영향이라 확신했다.

“유혜란이라......”

유정만 회장은 그리 꽉 막힌 스타일은 아니었다. 장남이라고, 아들이라고 회사를 물려 줘야 한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제일 중요한 건 능력이었다. 자식 중 가장 뛰어난 경영 능력을 지닌 한 명이 그의 뒤를 물려 받게 될 터였다.

“딸이라도 아들보다 유능하다면.....”

그는 기꺼이 그 딸에게 회사를 넘길 수 있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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