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믿고 쓰는 미드필더-109화 (109/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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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철은 약속이 있다며 집을 나섰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는 약속 자체가 없었고 어디로 가지도 않았다. 집은 나온 그는 바로 숨었다. 그리고 그의 딸인 사지희가 양동호와 같이 집을 나와서 차에 오르는 걸 보고 포터 운전석의 수하에게 말했다.

“따라 붙어.”

사도철은 눈치 빠른 양동호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 제대로 위장을 했다. 차도 중간 중간 갈아탔다. 포터에서 세탁소 차, 일반 승용차도 차 종류 별로 번갈아가며 바꿔서 탔다. 그렇게 그는 양동호에게 들키지 않고 뒤를 미행하는 데 성공했다.

양동호는 강남의 아파트 촌과 가까운 원룸 앞에서 차를 멈춰 세웠다.

“저기 사는 놈인가 보군.”

이때 사도철은 택배 배달차를 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젊은 놈 하나가 헐레벌떡 뛰어오더니 사지희가 탄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양동호가 재빨리 차를 몰아 사라졌다.

“쫓아!”

양동호는 모르겠지만 사도철은 전문 추격 팀을 고용했고 핼리 캠까지 동원해서 양동호가 모는 차를 추적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사지희는 뛰어 봐야 사도철의 손바닥 안에 있단 소리였다.

사지희의 차는 홍대 쪽으로 갔고 그곳에서 꽤나 유명한 맛 집인 멕시코 음식점에 들어갔다.

이때 양동호는 냉동 탑차 안에 있었다. 모양은 탑차지만 그 안에는 각종 모니터와 도청 장비들이 즐비했다.

사도철은 그런 차 안에서 귀에 헤드폰을 끼고 있는 자에게 말했다.

“안에 상황을 보고 싶군.”

“네. 바로 연기 팀이 투입 될 겁니다.”

그 말 후 헤드폰을 낀 자가 무전기로 뭐라고 하자 중년의 부부가 멕시코 음식점 앞에 나타났다.

헤드폰을 낀 자의 정체는 바로 사도철이 거금을 들여서 섭외한 전문 추격팀을 이끌고 있는 사장이었다. 그가 모니터에 보이는 중년 부부를 손짓으로 가리키며 사도철에게 말했다.

“저 두 사람이 가게 안에 들어가서 감시 카메라로 그 안을 비춰 줄 겁니다.”

그 말 후 추격 팀 사장이 무전기에 대고 들어가라고 하자 중년 부부가 멕시코 음식점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현수와 사지희가 있는 테이블과 사선 방향에 위치한 테이블에 앉았다. 그때 중년 부인의 손가방이 사지희와 현수쪽을 가리켰다.

“잡혔습니다.”

다른 모니터 화면에 현수와 사지희가 서로 마주보고 앉아 있는 장면이 비춰졌다.

“으음..... 저놈이로군.”

사지철이 모니터에 비친 현수를 보고 눈빛을 빛낼 때였다.

“헉!”

사도철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그럴 것이 사지희가 갑자기 몸을 일으키더니 그 놈 입에다 뽀뽀를 한 것이다.

“저, 저 새끼가......”

사도철이 앉아 있던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리고 그의 두 눈에서 강렬한 살기가 뿌려졌다. 그 덕분에 괜히 애꿎은 추격 팀 사장만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무공 초고수인 사도철의 살기는 보통 사람이 견뎌 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지희가 세상에서 뽀뽀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이성은 아빠인 자신뿐이었다. 그런데 저 단매에 쳐 죽일 놈에게 사지희가 뽀뽀를 한 것이다.

“내 저놈을....”

사도철은 당장이라도 탑차에서 뛰쳐나가 멕시코 음식점에 난입해 들어가려 했다. 그리고 단숨에 저놈의 주둥이를 주먹으로 짓이겨 놓아야 직성이 풀릴 거 같았다.

“허어.....”

그런데 그러지 못했다. 사지희가 웃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너무도 밝고 환하게.

“저, 저 녀석.....”

사지희가 저렇게 웃은 걸 본 건 제 어미가 죽기 전을 빼고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하아!”

사도철은 긴 한숨과 함께 도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넘어 갔구나.”

사도철은 사지희가 현수란 놈에게 완전 꼬여 넘어갔다고 생각했다. 여자가 남자에게 빠지면 그건 마약만큼이나 무서운 일이었다. 그래서 그 동안 사도철이 사지희에게 접근하는 남자들을 막아 온 것이다.

또 사지희가 좋아하는 놈들도 그가 사전에 만나서 다시는 그녀 앞에 얼쩡거리지 못하게 만들었고 말이다.

사도철이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며 중얼거렸다.

“철수한다.”

사도철이 보아하니 둘은 그가 갈라놓는다고 해서 헤어질 단계를 지난 것으로 보였다. 그렇다면 좀 더 신중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었다.

“으드득!”

사도철이 모니터에서 사지희와 다정히 얘기를 하는 현수를 보고 이를 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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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는 사지희와 대화 중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지자 주위를 살폈다. 하지만 별 특이하게 그의 이목을 끌만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그들의 사선 쪽으로 웬 중년 부부가 앉아 있는 걸 빼면 말이다. 그런데 그들도 주문도 하지 않고 별안간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휑하니 가게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때 주문한 타고가 먼저 나왔다.

“타코 먹어 보셨죠?”

“네. 한 번인가 뷔페에서 먹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 곳과는 차원이 달라요. 먹어 보세요.”

사지희의 말처럼 토마토살사와 시저드레싱이 만나 상큼한 맛이 나는 타코 맛은 환상적이었다. 현수는 한입 베어 물고 맛이 있어서 입에 가득 있는 데 또 베어 먹었다.

“쩝쩝쩝...... 이런 맛있는 곳이 있는 줄 몰랐네요.”

현수는 그 말을 하면서 혜미를 여기에 데려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뒤 비주얼 깡패인 프라이즈가 나왔다. 현수는 생각보다 그 양이 많자 좀 놀랐다. 치즈소스가 듬뿍듬뿍 들어있는 프라이즈에는 소고기 부챗살이 들어있었다. 다양한 치즈가 들어있어서 맛있고 감자튀김과 고기가 버무려져 식감도 좋았다.

타코도 맛있는데 현수는 개인적으로 프라이즈가 더 나은 거 같았다. 끝으로 께사디야가 나왔다. 소시지, 파프리카, 올리브, 치즈가 들어있는 이 음식은 샐러리와 샤워크림소스, 살사소스와 곁들이면 맛이 더 좋았다.

겉은 바삭한데 안은 따뜻한 풍미가 났는데 안에 들어있는 치즈도 아주 진하고 풍성한 맛을 냈다.

“쨘!”

거기다 곁들여진 시원한 맥주! 금방 시킨 음식들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식사가 끝난 뒤 사지희가 물었다.

“어땠어요?”

“잘 먹었어요. 정말 맛있네요.”

“그렇죠? 다음에 우리 또 와요.”

사지희는 예전에 비해 애정공세에 더 적극적이었다. 아까는 테이블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현수 입에 뽀뽀까지 하고 말이다.

“저 화장실 좀....”

사지희가 멕시코 음식점을 나가기 전 화장이라도 고치려는 듯 화장실로 가자 저쪽 구석에 혼자 식사를 끝낸 양동호가 현수에게 다가와서 뜬금없이 말했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은 모양이군?”

“네?”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가 그 사이 더 강해졌어. 대체 어떻게 하면 그렇게 빨리 강해지는 건가?”

현수가 하루가 다르게 강해지는 게 같은 무공을 수련하는 입장의 양동호는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그저 열심히 수련하는 수밖에요.”

현수는 사실대로 포인트만 있으면 강해진다는 말을 양동호에게 할 수 없어서 그냥 뻔한 대답을 했다.

“그렇지. 강해지려면 열심히 수련 하는 길 밖에 없지. 스승님께서 이런 말을 자주 하셨지. 강남종귤강북위지 (江南種橘江北爲枳)라고 말이야. 강남 쪽에 심은 귤을 강북 쪽에 심으면 탱자가 된다나? 내가 지금 그 꼴인 거 같아. 그래도 태백산에 있을 때는 비록 호승심도 컸지만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는데 말이야.”

양동호는 진심으로 자신을 반성하는 모양이었다. 그때 화장실에 갔던 사지희가 돌아왔고 그들은 곧장 멕시코 음식점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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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와 사지희가 양동호가 차를 가져 올 동안 멕시코 음식점 앞에서 기다리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그때 사지희가 현수보고 뮤지컬이나 연극을 좋아하는지 물었다.

“글쎄요. 둘 다 한 번도 보러 간 적이 없어서....”

사실 지금, 그러니까 현수의 22년 삶을 돌이켜 보면 편한 날이 별로 없었다. 대학에 들어가고 고아원을 나온 뒤에 축구가 그의 삶은 전부였다. 간혹 여자와 영화는 보러 갔지만 연극과 뮤지컬 같은 문화생활까진 즐기지 못했다.

그래도 혜미가 뮤지컬이나 연극을 좋아했다면 보러 갔을지는 몰랐다. 암튼 이 당시 현수에게 뮤지컬이나 연극은 사치였다.

“그럼 우리 오늘 대학로에 연극 보러 가요.”

“연극이요?”

“대학로연극은 연인에게는 소소한 데이트 장소이고, 꿈을 가진 대학생들에게는 꿈의 장이기도 하면서 어른들에게는 옛 추억을 느낄 수 있는 추억의 장소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몇 번 친구랑 가 봤는데 그때마다 구경 온 커플이 부러웠거든요. 저도 닭살 좀 떨어 볼까해요.”

그렇게 해서 사지희와 현수의 다음 데이트 코스는 대학로연극으로 결정이 되었다. 그 사이 양동호가 몰고 온 차가 그들 앞에 도착했고 둘은 차에 올랐다.

“오빠 우리 종로구 혜화동으로 가요.”

사지희의 말에 양동호가 바로 대학로로 차를 몰았다. 혜화동으로 가는 동안 사지희는 주로 얘기를 했고 현수는 그 말을 들었다. 사지희는 그 동안 하지 못한 말을 현수에게 다 털어 놓기라도 하려는 듯 쉴 새 없이 재잘재잘 떠들었다.

현수는 사지희가 마음 놓고 얘기하게 중간 중간 ‘네?’ ‘아아!’ ‘그랬군요.’ 와 같은 추임새를 넣어 주었다. 그러던 중 오늘도 뒤 늦게 시스템이 반응을 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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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 포인트!’

현수의 입이 절로 벌어지고 어깨가 들썩이게 만들 수 있는 포인트였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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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의 스토커, 축구 후원자들은 역시 현수를 실망시키는 법이 없었다. 현수의 얼굴이 연신 싱글벙글했다. 그런 현수를 보고 사지희는 자칫 시끄러울 수 있는 그녀의 수다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 현수가 더 좋아졌다.

‘당신과 헤어지느니 차라리............’

현수는 이때 사지희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몰랐다. 그녀가 그런 극단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줄 알았다면 현수는 사지희와 더 이상 만나지도 않았을 터였다.

둘이 서로 딴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차는 대학로 가까이 접어들었다. 홍대 앞에서와 같이 사지희와 현수가 먼저 차에서 내리고 양동호는 근처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러 갔다.

그 사이 사지희와 현수는 무슨 연극을 볼지 정했다.

“옥탑방의 고양이 어때요?”

“전 아무거나 상관없습니다.”

“현수씨는 처음이니까 가볍고 유쾌한 연극이 좋겠어요. 우리 이걸로 봐요.”

그래서 결국 사지희가 옥탑방 고양이 티켓을 3장 끊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사지희는 벌써 이 연극을 봤다고 했다. 하지만 재미있어서 한 번 더 보고 싶다 나 어쩐다나. 그런데 티켓의 두 장은 붙은 좌석이고 한 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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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에서 양동호가 기가 차다는 얼굴로 사지희와 현수를 올려다보았다. 그럴 것이 사지희가 양동호가 그들을 지켜 볼 수 있는 옆 자리나 뒷자리가 아니라 떡 하니 맨 앞자리를 예매한 것이다.

덕분에 연극이 시작 되고 사지희는 거침없이 현수에게 애정공세를 퍼부었다. 그와 손을 잡고 깍지를 끼고 틈만 나면 그의 볼에 뽀뽀를 하고 말이다. 그때 마다 현수의 입에선 짧은 한숨이 흘러 나왔다.

“어!”

그런데 연극이 시작되기 전에 배우가 한 명 나왔는데 그 배우가 바로 시트콤 영 프렌즈에 조연으로 출연 중인 홍경우였던 것이다. 현수가 그걸 보고 놀라자 현수 옆의 사지희가 그에게 나름 설명을 해 주었다.

“옥탑방고양이는 러닝타임은 100분이지만 약 120분이 진행되는데 왜그러냐하면 다른 연극과 비슷하게 공연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그러니까 보통 연극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배우 한 명이 나와서 간단한 게임을 통해 객석 홍응을 이끌어내고 주의 사항을 말하곤 하는데 그걸 지금 홍경우가 하려는 모양이었다. 그는 훌륭한 배우답게 능청스럽게 관객을 가지고 놀았는데 하필 그의 눈에 현수가 띠었다.

“오오! 거기 커플.”

“저희요?”

“무대로 모시겠습니다.”

“와아아아!”

짝짝짝짝!

현수와는 달리 사지희는 아주 적극적이었다.

“현수씨. 빨리 나가요.”

그래서 결국 현수는 사지희의 손에 끌려 무대에 올라갔다. 그때 현수에게 홍경우가 슬쩍 말했다.

“고맙다. 이 형 공연도 보러 와주고.”

“뭘요. 그런데 모른 척 좀....”

“능력자야. 저번 방송국에 데려 왔던 여자는 섹시하더니 이번 여자는 청초, 가련형의 미인이고 말이야. 암튼 네가 TV에 나오고 나면 아마 시끄럽긴 할 거다.”

“네?”

현수가 그게 무슨 소리냐며 홍경우를 쳐다봤지만 그는 그때부터 현수에게 모른 척 생을 깠다.

“자. 두 분이 마주보고 서서 이걸 터트리는 겁니다.”

게다가 짓궂은 게임을 시켰다. 풍선을 불어서 현수와 사지희가 서로 껴안아서 터트리게 한 것이다. 홍경우는 일부러 풍선을 크게 불지 않아서 현수와 사지희가 쉽게 풍선을 터트리지 못하게 했다.

“호호호호!”

덕분에 사지희만 좋아서 죽었다. 그녀는 풍선을 터트리자는 건지 현수를 터트리려는 건지 모를 정도로 사심 넘치게 현수를 꽉 끌어안았다.

“오오! 여성분이 더 적극적이네요. 남성분! 뭐하세요. 힘 좀 쓰세요.”

결국 시간이 다 돼서 둘은 무대를 내려가야 했는데 그런 현수를 보고 홍경우가 찡긋 윙크를 해 보였다.

그 뒤 본격적인 공연이 시작 되었다. 연극은 재미있었다.

스토리는 진부했다. 작가가 되기 위해 상경한 여주인공과 차도남 남주인공이 옥탑방으로 동시에 이사를 온다. 하지만, 임대인의 이중계약으로 옥탑방에서 황당한 동거를 시작하면서 겪는 두 남녀의 로맨스이야기였다. 그런데 같은 또래 얘기여서 그런지 대화도 바로 가슴에 와 닿고 코믹 요소도 많아서 내내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웃음만 있는 게 아니라 젊은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부분까지 있어 나름 생각도 하게 하는 그런 괜찮은 연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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