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출연 -->
현수는 그렇다고 박요신의 목소리를 흉내 내서 부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 만의 감성을 살려서 현수는 차분히 노래를 불렀다.
“그대가 부네요~ 내 가슴 안에 그대라는 바람이.......................”
현수의 노래에 클럽 무대 안이 정적에 휩싸였다. 방송 스태프들과 다른 연기자들도 현수의 노래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하아! 이 정도 노래 실력이면 당장이라도 데뷔해도 되겠는데?”
“그러게. 혹시 가수 지망생인데 연기자로 전향한 거 아냐?”
“그렇겠지. 소속사가 Sj엔터테이먼트라면서.”
현수는 주위에 속닥거리는 소리에도 집중해서 노래를 계속 불렀다.
“단 한 번 의심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는데........... 가져가세요. 좋은 기억마저도.........”
사람들이 하나 둘씩 현수의 목소리에 매료 되어 갔다. 그 중 특히 여자들은 두 눈을 감고 황홀경에 빠져들었다. 그 중에는 한혜경도 있었고 말이다.
‘저 남자. 너무 멋있어. 꼭 내 걸로 만들고 말 테야.’
한혜경이 현수를 소유하기 위해 활활 투지를 불사르고 있는 줄 꿈에도 모른 체 현수의 노래도 슬슬 막바지로 접어들었다.
“.............오늘도 기다려요. 나를 잘 알잖아요.”
현수의 노래가 끝나자 잠시 주위에 정적이 감돌았다.
“와아아아!”
“휘이이익!”
“장난 아니다.”
“노래 진짜 잘 부르네.”
“가수해도 되겠어요.”
“박요신보다 더 잘 불러요.”
주위의 반응이 장난이 아니었다. 진영호 PD까지 현수에게 다가와서 그의 노래를 극찬했다.
“현수씨. 정말 매력 있네요. 혹시 고정 출연 생각 없으세요?”
진영호 PD가 파격적인 제안을 해 왔다. 누구라도 연기자라면 ‘네’ 하겠습니다 라는 말이 나와야 정상인 상황이었다. 하지만 현수는 아니었다.
“죄송하지만 이번 주 촬영까지가 끝입니다. 전 축구 선수고 다음 주부터 축구를 해야 하거든요.”
“그렇군요. 정말 아쉽네요. 현수씨 같은 매력을 가진 남자 연기자가 흔치 않은데 말이죠.”
진영호 PD는 정말 현수가 가진 재능이 너무 아까웠다. 작가도 현수가 노래 부르는 장면을 보고 그의 목소리를 듣고 나면 아마 고정으로 그를 계속 쓰고 싶어 할 터였다.
시트콤 영 프렌즈의 작가 성향을 누구보다 잘 아는 진영호 PD였다. 오히려 현수가 5회 촬영으로 시트콤 영 프렌즈를 떠나는 걸 작가가 더 아쉬워하고 그를 잡지 못한 진영호 PD를 타박할 게 확실했다.
현수는 사람들의 반응에 감격했다. 특히 자신의 노래가 원 가수 박요신 보다 낫다는 얘기에 그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그런 사람들의 극찬에 현수는 몸 둘 바를 몰랐다. 그러는 가운데 촬영은 계속 진행 되었다.
새벽 1시쯤 이날 끝 촬영이 이뤄졌다. 바로 키스신이었다. 현수가 여주인공 남정을 집까지 바래다주고 돌아설 때 남정이 현수를 불러 세운다. 그리고 달려들어서 현수의 입에 뽀뽀 하는 씬이었는데 남정이 계속 NG를 냈다.
“에이. 혜영씨 너무 느끼는 거 아니에요?”
“그러게. 이러다 입술 닳겠어요. 적당히 좀 합시다.”
한혜영은 무려 15번의 NG를 내고 나서야 제대로 된 장면을 찍는데 성공했다.
현수도 남정, 그러니까 한혜영과 뽀뽀하는 게 싫진 않았다. 하지만 자꾸 하니 그게 입술인지 물컹한 젤린지 모를 지경이었다. 그래도 한혜영의 입술은 달콤했다.
“다들 수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촬영이 끝나고 피곤에 찌든 스태프들과 연기자들이 순식간에 촬영장에서 사라졌다. 한혜영도 다른 스케줄이 있는지 황급히 촬영장을 떠나기 바빴다.
현수는 백성조와 같이 주차장에 주차 중인 차로 향했다. 이 매니저는 12시쯤 백성조가 퇴근을 시켰다. 마지막 촬영 정도는 백성조가 매니저 역할을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현수와 백성조와 달리 이 매니저는 가정이 있었기 때문에 백성조가 늦어도 퇴근은 시켜 준 것이다.
“우리 또 모텔 가는 겁니까?”
“내일은 오전부터 촬영이 있어. 그냥 여기 근처서 자는 게 나아. 왜? 모텔 싫어? 그럼 딴 데로 갈까?”
“오오. 그럼 모텔 말고.....”
당연히 현수는 모델보다 더 나은 호텔을 생각했다. 하지만 짠도리 백성조는 그 보다 못한 쪽을 생각하고 있었다.
“여관이나 여인숙으로 갈까?”
“하아! 그냥 모텔로 가죠.”
결국 현수와 백성조는 어제 묵었던 그 모텔로 향했다. 그곳은 무인 시스템이라서 좋았다. 방은 어제와 좀 다른 방을 골랐다. 같은 값이면 굳이 어제 묵었던 방에 묵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둘은 씻지도 않고 각기 침대와 그 밑에 꼬꾸라졌고 이내 깊게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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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처럼 아침 8시 30분에 이 매니저가 와서 둘을 깨웠다. 둘은 대충 씻고 방송국으로 향했다.
벌써 사흘 째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둘의 모습은 꾀죄죄했다. 그나마 현수는 분장이라도 받고 의상이라도 바꿔 입으니까 좀 나았는데 백성조는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 매니저가 그에게 말했다.
“실장님. 집에 들어가셔서 옷이라도 좀 갈아입고 오시죠? 그래도 저희 Sj엔터테이먼트의 간부이신데 이런 모습은 좀.....”
“보기 좀 그렇지?”
“안 좋은데요.”
“그래도 어쩔 수 없어. 나 혼잔 못 움직이거든.”
이 매니저는 백성조가 마약 조직의 표적이란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백성조가 왜 혼자 못 움직이는지에 대해서도 당연히 몰랐다.
“오빠!”
“어. 미숙아.”
대신 이미숙이 백성조의 집에서 그의 속옷과 겉옷들을 챙겨 왔다. 그때 센스 있게 이미숙은 현수가 갈아입을 속옷도 같이 구입해서 가져 왔다.
“현수씨도 이걸로 갈아입으세요.”
“네. 고맙습니다.”
안 그래도 속옷을 이틀 넘게 입어서 찜찜했던 현수였다. 현수와 백성조는 따로 대기실도 없어서 촬영장 화장실에서 속옷을 갈아입었다.
현수는 이미숙을 보자 그녀의 친구이자 자신의 섹스 파트너 혜미가 떠올랐다.
안 그래도 그녀에게 방송국 구경도 시켜 주고 진영호 PD와 시트콤 영 프렌즈의 연기자들도 보여주기로 한 게 생각난 현수는 곧장 혜미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현수야.
다행히 오늘은 혜미가 도서관에 가지 않은 모양이었다. 현수가 전화를 해도 바로 받는 걸 보니 말이다.
“부탁 좀 하자.”
-뭔데?
“내 원룸에 가서 속옷하고 양말, 갈아입을 겉옷 좀 챙겨서 방송국으로 와라.”
전에 혜미를 데리고 원룸에 갔을 때 그녀에게 그곳 도어록의 비밀번호도 가르쳐 준 현수였다.
-방송국?
“그래. MBS방송국. 네가 그토록 와 보고 싶어 했던 시트콤 영 프렌즈 실내 촬영장으로 찾아오면 돼.”
-진짜?
“어. 진영호 PD와 네가 보고 싶어 하던 홍경우도 여기 있어.”
-바로 챙겨 갈게.
“방송국 오면 전화 해. 내가 데리러 나갈 테니까.”
-알았어.
현수가 혜미와 통화하는 걸 지켜 본 이미숙의 얼굴 표정이 썩 밝지 않았다.
“전 그럼 가 볼게요.”
“왜? 온 김에 촬영장 구경하고 가.”
“그러세요. 마침 촬영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거 같으니까 제가 안내 할게요.”
현수가 직접 안내하겠다고 하자 이미숙의 얼굴이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하게 밝아졌다.
“그, 그럼 구경 좀 할까요?”
현수는 이미숙을 데리고 세트장을 돌아다니며 MBS방송국 실내 촬영장 구경을 시켜 주었다.
“어머. 저 사람은 송구현......”
이미숙이 송구현을 발견하고는 사인을 받으려 가방에서 노트와 펜을 꺼낼 때 송구현이 현수를 보고 기겁해서 달아났다.
“어? 어디 갔지?”
좀 전까지 눈앞에 있었던 송구현이 사라지자 이미숙이 어리둥절해 할 때 현수가 말했다.
“송구현 사인은 제가 가시기 전에 받아 드릴 게요.”
“진짜요? 송구현과 친하신가 봐요?”
“네. 아주 친합니다.”
‘주먹질에 발길질 할 정도로 다정한 사이지.’
송구현과 그 매니저의 얼굴은 그 사이 많이 좋아져 있었다. 현수는 송구현 대신 영 프렌즈에서 가장 인기 있는 남자 주인공 신동호에게 이미숙을 데려갔다.
매너 좋은 신동호는 이미숙이 내민 노트에 사인을 해 주고 기념 촬영까지 해 주었다.
“현수씨. 여친?”
“네. 뭐....”
현수는 딱히 이미숙을 자신의 여친이 아니라고 부정하진 않았다. 이미숙은 그게 좋은 지 아까와 달리 현수 곁에 좀 더 다가섰다.
이미숙에게 대충 촬영장 구경을 시켜 준 뒤 현수는 그녀를 백성조에게 맡겨 두고 송수현의 대기실로 향했다.
“헉!”
“뭐, 뭐냐?”
현수가 불쑥 대기실에 나타나자 송구현과 그의 매니저가 기겁부터 했다.
“너, 너한테 진짜 아무 유감없다. 어제 때릴 만큼 때렸잖아?”
“때리러 온 거 아닌데?”
“그, 그럼 왜 온 거야?”
현수가 종이 한 장을 송구현 앞에 내밀었다.
“사인 해 달라고.”
“뭐?”
“아는 여자 애가 너의 사인 받아 달라고 해서. 부탁 좀 하자.”
현수가 자기 입으로 부탁한다고 하는 데 차마 사인을 안 해 줄 수도 없는 노릇. 송구현은 덜덜 손을 떨면서 사인을 했다.
현수는 송구현이 사인한 종이를 챙겨들고 나오며 한 마디 했다.
“얼굴 붓기가 제법 빨리 빠졌네?”
그 말에 송구현과 매니저가 벌레 씹은 얼굴로 변했다. 어제 받은 그 고통을 생각하니 분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걸 밖으로 표출 하진 못했다. 그랬다간 어제 같은 꼴을 또 당할지 모르니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현수가 말했다.
“재미없네. 난 또 발끈하면 더 줘 패줄 생각이었는데.”
현수의 그 말에 송구현과 매니저 둘 다 등골이 서늘했다. 만약 좀 전에 말실수라도 했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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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숙은 오전 촬영 후 현수와 백성조와 같이 방송국 식당에서 같이 점심을 먹었다.
“이거요.”
“고마워요.”
현수가 송구현의 사인을 건네자 이미숙이 기뻐했다. 그런 이미숙을 보면서 현수는 이미숙이 송구현의 진면목을 알고 나서도 그를 좋아할까 생각을 해 봤다. 대답은 ‘아니올시다.’ 였다.
이미숙은 보기엔 뚱뚱한 것이 성격도 좋아 보일 거 같았지만 실제로는 깐깐했다. 특히 예의 없는 사람을 극도로 싫어했고 말이다. 그런 그녀가 욕 잘하고 시비 잘 거는 송구현을 좋아할 리 없었다.
“그럼 다음에 또 봐요.”
이미숙은 혜미가 오기 전에 서둘러 방송국을 떠났다. 그녀가 떠나고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서 김혜미가 방송국에 왕림하셨다.
“여기.”
“고마워.”
혜미가 건넨 짐 가방을 현수가 바로 받아 챙겼다.
“진영호 PD는?”
그런 현수에게는 관심도 없는지 혜미가 촬영장부터 훑으며 말했다.
“PD님은.....”
“현수씨! 촬영 준비 됐죠?”
“아. 네. 혜미야. 잠깐만.”
마침 현수가 바로 다음 씬 촬영 인지라 별 수 없이 촬영장 안내를 근처에 있던 백성조에게 부탁했다.
“뭐? 그런 걸 왜 나한테 시켜?”
“싫어요?”
“당연......가만 혹시 안내할 사람이 저기 있는 저 아가씨야?”
“네. 맞아요.”
“그래?”
혜미의 얼굴은 연예인보다는 좀 떨어지지만 몸매는 최상이었다. 백성조도 혜미를 직접 보고는 바로 생각을 바꿨다.
“내가 안내 하지. 너는 걱정 말고 촬영이니 잘해.”
백성조는 아주 신이 나 보였다. 현수는 혜미를 백성조에게 부탁하고 촬영을 시작했다.
현수가 여주인공 남정과 사귀기로 한 후 남정의 친구들과 처음으로 함께 한 자리에서 다들 재미있고 유쾌하게 노는 씬 이었는데 촬영 한 번에 OK 사인이 나왔다.
“수고했고 다음 촬영까지 대기해 주세요.”
아직 쪽 대본도 다 나오지 않은 터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때 한혜영이 현수에게 다가왔다.
“점심 먹었어요?”
어제와는 또 다르게 약간 거리를 둔 채 한혜영이 현수에게 물었다. 안하던 존댓말까지 하면 서 말이다.
“네. 방송국 식당에서 먹었어요.”
“방송국 식당 밥 먹을 만하죠?”
“네. 괜찮던데요.”
“우리 저녁은 같이 먹어요.”
한혜영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오늘은 곤란했다. 혜미 때문에 말이다.
“죄송한데 친구가 와 있었어요. 친구에게 저녁이라도 같이 먹이고 보내야 제 속도 편할 거 같거든요.”
“그, 그래요? 뭐 그럼 어쩔 수 없죠.”
누가 코치라도 한 듯 지금의 한혜영은 어제 현수가 알던 그 한혜영이 아니었다.
“이따 저녁 촬영 때 봐요.”
한혜영은 시크하게 그렇게 현수에게서 먼저 등을 돌렸다. 그렇게 걸어가던 한혜영 옆에 이지혜가 나타났다.
“나 어땠어?”
한혜영이 바로 이지혜에게 물었다.
“잘했어요. 언니.”
“하아. 정말 어렵다. 그냥 나랑 사귀면 될 걸 말이야.”
“언니! 요즘은 들이 대는 여자는 매력 없거든요.”
“그래도 밀당 이런 건 나하곤 안 맞는 거 같아.”
“조금만 참아 보세요. 제가 시킨 대로만 하면 현수 오빠가 언니한테 사귀자고 할 테니까요.”
“진짜?”
“언니가 누군지 잊었어요? 요즘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여배우 한혜영이에요. 올 여름 휴가지에 데려 가고 싶은 여자 연예인 1위에 빛나는 언니라고요. 지금은 버팅기지만 현수 오빠도 남자인 이상 결국 언니에게 넘어 올 수밖에 없을 거예요.”
확신에 찬 이지혜의 말에 한혜영의 얼굴에도 자신감이 되살아났다. 하지만 한혜영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하하하하!”
“호호호호!”
강현수가 웬 늘씬한 미녀와 같이 그녀들 앞을 휑하니 지나갔던 것이다.
“저, 저 여자 누구야?”
한혜영의 질투 섞인 시선으로 강현수 옆의 늘씬한 몸매의 여자를 보고 말했다.
“제가 알아보고 올게요. 언니는 일단 대기실에 가 계세요.”
“하지만.....”
이지혜는 어제부터 오늘까지 한혜영을 들들 볶았다. 제발 좀 나서지 말라고 말이다. 그녀는 말을 할수록 깨는 스타일이었다. 때문에 말을 적게 하는 게 그녀에게 덕이었다.
“언니!”
“아, 알았어.”
이지혜는 강현수의 실질적인 매니저인 이 매니저에게 접근해서 현수 옆의 여자가 누군지 알아냈다.
“그러니까 여자 친구란 얘기네요?”
“그렇지. 같은 학교 친구라는데 현수를 막 대하는 걸 보면 애인은 아닌 거 같아. 하지만 둘이 친한 건만은 확실해.”
그 말을 듣는 이지혜의 표정도 그다지 밝지가 않았다.
“좋지 않아.”
이지혜에게 편안한 이성 친구란 언제 애인으로 발전해서 부부가 될지도 모르는 위험한 존재였다.
이지혜 위에 두 언니들이 바로 그런 케이스로 그 편안한 남친과 초고속 연애 뒤 결혼해서 벌써 애를 둘씩이나 낳고 살고 있었다.
이지혜는 한혜영의 대기실로 가서 사실대로 현수의 여친에 대해 얘기를 했다. 하지만 한혜영은 오히려 태연했다.
“현수씨 정도 되는 남자가 여친 하나 없다면 그게 이상한 거지. 상관없어. 나 한혜영이야. 내가 찜한 남자를 그리 쉽게 뺏기지 않아.”
한혜영이 되레 투지를 불살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