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출연 -->
송구현의 대기실에 들어가면서 현수가 제일 먼저 확인한 것은 안에 누가 있느냔 것이었다.
다행히 송구현과 현수를 여기로 불러 온 메니저 녀석 말고는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 다음 현수는 대기실 안쪽에서 CCTV를 찾았다. 역시나 배우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CCTV는 대기실 안에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신경 쓸 거 없군.’
현수는 편안하게 대기실 안으로 들어갔고 그런 그를 송구현이 거만한 자세로 앉아서 째려보고 있었다.
“저기.....무슨 일이죠? 왜 저를 찾으셨나요?”
현수가 가능한 어리숙하게 행동했다. 그래야 놈이 더 빨리 자신의 본성을 드러낼 테니 말이다.
“어이. 축구 선수씨. 이 바닥에도 상도덕이란 게 있어. 그쪽이 함부로 한혜영과 시시덕거릴 군번은 아니란 소리지.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어?”
송구현도 그나마 처음엔 좋게 얘기로 풀어 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그건 현수가 원하는 바가 전혀 아니었다.
지금 현수는 주먹이 근질근질했다. 속도 부글부글 끓어올랐고 말이다.
몇 놈 패 놔야 풀리지 싶었는데 눈앞의 송구현은 격투기까지 했다니 맷집도 있을 테고 가지고 놀기엔 딱 이었다. 그런데 조용히 얘기로 끝내라고?
말 같지 않은 소리다.
“저.... 축구 선수씨 아니고 강현수입니다. 그리고 한혜영씨와 시시덕거린 적 없는데요?”
“뭐?”
현수의 말대꾸에 송구현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이런 자기 밖에 모르는 녀석들이 가장 싫어하는 게 좀 전 현수처럼 따박따박 말대꾸하는 놈이었다.
“저 씨뱅이가 좋게 말로 하려 했더니..... 도저히 안 되겠네.”
송구현이 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곤 두 팔부터 걷어 올렸다. 녀석의 굵직한 팔뚝이 나 싸움 좀 한다는 티를 팍팍 풍겼다. 하지만 그 정도 보여 주기 식의 요식 행위에 겁먹을 현수가 아니었다.
오히려 현수가 송구현의 속을 더 긁어 놓았다.
“씨뱅이 아닌데. 이 씹 새끼야.”
“뭐, 뭐? 저 씨, 씨발 새끼가 지금 뭐란 거야?”
송구현은 기가 차서 말까지 더듬거렸다. 그때 그 옆의 매니저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씹 새끼라는데요? 하아. 아주 간이 배 밖으로 튀어 나온 놈입니다. 형님.”
송구현은 매니저와 형님 동생 하는 사이인 모양이었다. 손발이 잘 맞는 녀석들이었다.
“맞지? 분명 나한테 씹 새끼라고 했지? 너 일루와.”
송구현이 쌍심지를 켜고 현수를 향해 오라고 손짓을 했다. 하지만 현수가 왜 그가 오란다가 간단 말인가?
“니가 와. 이 씹 새끼야.”
“헉!”
“저, 저 호로 새끼가....”
결국 현수의 도발에 넘어간 송구현이 물불 안 가리고 현수에게 달려들었다.
퍽!
그런 녀석의 안면에 현수가 깔끔한 쨉을 선사했다.
“윽!”
현수의 주먹에 얼굴을 맞고 두 어 걸음 뒤로 물러난 송구현이 얼굴이 아픈지 오만상을 찌푸릴 때였다.
주르르!
송구현의 한쪽 콧구멍에서 코피가 흘렀다.
“형, 형님. 코, 코피....”
“뭐?”
송구현은 대기실 옆 벽에 쭉 붙어 있는 거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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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구현은 코피가 줄줄 나는 자신의 코를 보고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저 씨발 새끼가 진짜.....”
송구현은 터프하게 한손으로 ‘스윽’ 코피 나는 자신의 코를 훔쳐낸 뒤 홱 시선을 현수에게로 돌렸다.
“너 이 새끼. 오늘 제삿날인 줄 알아라.”
그 말과 동시에 송구현이 현수에게 달려들면서 몸을 솟구쳤다. 그리고 현수를 향해 제법 강력한 발차기를 날렸다. 격투기 배웠다는 말이 거짓은 아닌 모양이었다. 제법 발차기에 힘이 실려 있었다.
휘익!
현수가 가볍게 팔로 가드를 올렸다.
빡!
송구현의 발이 그 가드를 강하게 때렸고 말이다. 보통 때라면 송구현의 발차기에 맞은 사람이 뒤로 물러나거나 고통스런 비명을 내질러야 했다. 하지만 현수는 그 자리에 꼼짝도 하지 않았고 발차기한 송구현이 되레 뒤로 밀려났다.
“어어!”
현수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가리고 있던 가드를 내렸다. 송구현의 발차기는 체중까지 실려서 꽤나 위력적이었다. 하지만 상대가 내공을 쓸 줄 아는 현수란 게 문제였다.
현수가 가드로 올린 그의 두 팔엔 내공이 실려 있었다. 그런 그의 팔을 송구현이 발로 찼고 말이다.
원래라면 발차기의 위력이 현수의 두 팔에 먹혀야 하는데 내공 때문에 그 위력은 사라지고 대신 반탄력에 의해서 발차기한 송구현의 몸이 뒤로 밀려 난 것이다.
파파팟!
그때 현수가 빠른 풋워크로 발차기 후 채 중심도 잡지 못하고 있던 송구현에게 접근해 들어갔다.
퍽!
그리고 또 다시 짧고 간결한 쨉을 송구현의 얼굴에 선사했다.
“큭!”
송구현이 짧은 비명성과 함께 두어 걸음 뒤로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주르르!
그리고 또 다시 송구현의 코에서 코피가 흘렀다. 이번엔 아까 코피 났던 콧구멍과 다른 콧구멍에서 코피가 났다. 역시 옆 거울을 통해서 그걸 본 송구현이 씩씩 거리며 다시 옷 소매로 코를 훔치고 현수를 향해 선불 맞은 곰처럼 달려들었다.
발차기가 안 먹히자 이젠 아예 테이크다운(take down, 둘이 서로 맞붙은 스탠드(stand) 자세에서 태클 등의 기술을 걸어 상대방을 넘어뜨리거나 엉덩방아를 찧게 하는 것)으로 격투기 주짓수 기술을 써먹으려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녀석의 의도대로 따라 줄 현수가 아니었다.
현수는 머리를 숙이고 밀고 들어오는 녀석을 보고 바로 무릎으로 니킥을 날렸다.
뻑!
“으으윽!”
일반 발차기보다 배는 더 강한 위력의 니킥이었다. 그게 송구현의 이마에 제대로 들어가자 기세 좋게 덤벼들었던 송구현이 뒤로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그러다 볼썽사납게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형, 형님!”
그런 그의 곁으로 그의 얍삽한 매니저가 뛰어가서 그를 부축했다.
“이이, 쪽팔리게....”
송구현도 영 바보는 아니었다. 몇 차례 자신의 공격을 너무도 간단히 막아내는 현수가 보통 놈이 아니란 걸 간파한 것이다.
“좀 놀아 본 놈인 모양인데. 너 사람 잘못 건드렸어. 비켜.”
송구현은 자신을 부축해서 일으켜 준 매니저를 밀쳐 내고 현수에게 다시 다가가려 했다.
“어?”
하지만 송구현은 한 걸음 내 딛자 바로 머리가 띵해지며 맥없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런 송구현을 보고 현수가 한 소리 했다.
“야. 머리에 카운터가 제대로 들어간 상탠데 그것도 모르냐? 그러고도 무슨 격투기를 배웠다고 떠들고 다니는 지.....”
그 말 후 현수가 송구현 앞으로 다가가서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여전히 머리가 띵한 상태에서 송구현은 넋을 놓고 그런 현수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짝!
현수의 손이 대뜸 사정없이 송구현의 뺨을 때렸다. 송구현의 고개가 홱 옆으로 돌아갔다. 그런 그의 귀로 현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 그래도 스트레스 풀 때도 없었는데 잘 됐다. 좀 맞자.”
짝! 짝! 짝! 짝!
경쾌한 박수 소리가 송구현의 대기실 안에서 들려왔다. 하지만 그 소리는 박수 칠 때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송구현의 뺨에 싸대기 날리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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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버버.....”
송구현의 두 뺨은 퉁퉁 부어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런 그의 뺨을 현수가 또 때리려 하자 송구현이 두 눈에 또르르 눈물을 흘리며 두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하지만 현수의 스트레스는 아직 덜 풀렸다.
“제....제....”
그때 송구현이 손짓으로 자신의 매니저를 가리켰다.
“아아. 너 대신 저 놈 때리라고?”
현수의 그 말에 재빨리 고개를 끄덕이는 송구현. 역시 의리가 있었다. 맞는 것도 나눠 맞자니 말이다.
“너 일루 와.”
“사, 살려 주세요.”
송구현의 매니저가 현수 앞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열심히 비벼댔다.
“저는 송구현이 시켜서 형님을 여기로 데려 온 것 밖에 아무 잘못도 없습니다.”
급해지자 형님이라 부르던 송구현을 이제 생 까고 그 이름만 불러댔다. 그리고 현수를 형님이라 존칭했다. 역시나 얍삽한 녀석이었다.
“네 잘못은 날 여기로 데려 온 거야.”
짝!
“아악!”
“그러니까 맞아도 싸.”
송구현의 대기실에서 또 다시 경쾌한 박수소리가 울려왔다. 송구현 매니저의 귀싸대기 날리는 소리였다.
“으흑흑흑!”
송구현 만큼이나 두 볼이 퉁퉁 부어 오른 매니저가 억울하다는 듯 울었다. 그런 녀석을 보고 송구현이 킥킥 거리고 웃다가 현수 눈에 띠었다.
“웃어?”
“아으돼에.....”
퍽! 퍽!
현수는 이번엔 발로 송구현의 몸을 구석구석 짓밟고 찼다. 그렇게 5여분 먼지 날리게 송구현을 구타하자 나자 송수현이 울부짖었다.
“크흐흐흑......그마아...안.....때.....려. 자알 모으....해에....따”
“뭐? 잘못했다고?”
“으응......흐흐흑......다 아시는...... 안....그르을...께.”
“그래. 네가 잘못 했지. 그러니까 좀 더 맞자.”
퍽! 퍽! 퍽!
현수는 신나게 송구현을 짓밟고 발길질을 해 댔다. 그러다 녀석이 혼절할 지경에 이르자 시선을 딴 쪽으로 돌렸다.
“사, 사아려.....주....세요. 딸꾹!”
송구현의 매니저가 현수를 보고 기겁해서 딸꾹질까지 해 댔지만 현수는 무자비했다.
퍽! 퍽! 퍽!
현수에 의해 풀풀 먼지가 날리도록 맞은 송구현의 매니저가 울고 불며 현수의 다리를 붙잡았다.
“으흑흑흑......그마안....때에려.... 흑흑흑.. 사알려....주우...세요. 제에바알!”
현수는 그런 녀석의 머리끄덩이를 잡아서 기어코 자신의 다리에서 떼어 낸 뒤 또 때렸다. 녀석이 의식이 혼미해 질 때까지 말이다.
“새끼들. 까불고 있어.”
현수는 넝마마냥 너덜너덜해진 체 대기실 한쪽 구석에 널려 있는 송구현과 그의 매니저를 두고 그곳을 빠져 나왔다.
“오빠아!”
그때 한혜영의 코디 이지혜가 현수를 발견하고 버럭 소리쳤다. 이지혜는 현수보다 2살 어렸다. 그래서 어제부터 현수를 오빠라고 불렀다.
“어. 지혜야.”
“어디 갔었어요? 화장실에도 없고. 언니가 오빠 찾아오라고 난린데.”
“그, 그게.....”
현수는 다시 한혜영의 대기실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랬다간 또 다시 한혜영에게 붙잡혀서 무슨 꼴을 볼지 몰랐다. 한혜영은 그렇게 안 봤는데 푼수 끼가 넘쳤고 거기다 눈치도 없었다. 자기 딴엔 현수에게 잘한다고 하지만 그걸 받는 사람은 부담스럽고 또 짜증도 났다.
“현수씨! 여기 있었네.”
그때 구원의 손길이 나타났다. 바로 현수의 실질적인 매니저인 이 매니저가 나타 난 것이다.
“촬영 들어가야 하니까 빨리 갑시다.”
현수가 이 매니저에게 끌려가자 이지혜도 뭐라 말을 하지 못했다. 촬영하러 간다는데 무슨 말을 더 한단 말인가? 이지혜는 쪼르르 한혜영의 대기실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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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는 서둘러 분장을 받고 촬영에 나섰다. 작가가 무슨 심정에 변화라도 생겼는지 갑자기 쪽 대본이 추가 되면서 현수의 역할도 늘어 난 것이다.
“어라. 대사도 있네.”
클럽에서 여주인공 남정과 그 친구들이 위기에 처한 순간 현수가 나타나서 그들을 구하는 씬이었다.
“현수씨. 액션 장면은 스턴트맨이 할 테니까 모션만 좀 취해 주세요.”
진영호 PD의 말에 현수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뭐? 스턴트맨이 못 와?”
“그, 그게 오는 도중에 사고가 생겼다고.....”
“하아. 꼬이네 꼬여.”
오늘도 밤샘 촬영을 해야 하는 진영호 PD의 얼굴에 다크 서클이 더 진해졌다. 그런 그에게 현수가 다가가서 말했다.
“저 PD님?”
“네. 현수씨.”
“저.... 스턴트맨 없이 제가 하면 안 될까요? 저 무술 좀 하는데.”
“그래요? 그래 주면이야 고맙죠.”
진영호 PD의 얼굴에 다크 서클이 조금은 옅어졌다.
“레디이.... 액션!”
현수는 스턴트맨 이상 가는 장면을 연출해서 주변 스텝과 연기자들의 박수를 받았다.
“현수씨. 대체 못하는 게 뭐야?”
그때 현수 옆으로 한혜영이 냉큼 다가와서 말했다.
“하하. 저도 못하는 거 많아요. 보시다시피 몸 쓰는 거야 운동하니까 잘하는 거고요.”
“노래도 잘하잖아?”
“에이. 그건......”
“현수씨. 노래 좀 해요?”
그때 진영호 PD가 현수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아닙니다. 저는.....”
“가수보다 더 잘 불러요. 제가 보장해요.”
“호오! 전직 걸 그룹 멤버께서 보장하신다면 확실한 건데.......”
한혜영의 그 말이 화근이 되었다. 진영호 PD가 작가에게 전화를 걸었고 잠시 뒤 쪽 대본이 날아왔다.
“허어.”
현수가 클럽에서 브루스 타임 때 감미로운 노래를 부르는 씬이었다. 어제 새벽 게임 단기 무료이용 쿠폰에다가 1,000포인트까지 써 가며 가수가 되었던 현수였다. 그 유효 시간이 하루였으니까 다행히도 그는 아직까지 가수 상태였다.
문제는 노래였다. 작가가 무슨 억하심정인지, 아니면 자기만의 감성이 있는지, 혹은 자기 취향에 맞춰서 고른 건지 몰라도 아주 골치 아픈 노래를 선곡한 것이다.
바로 박요신의 ‘추억은 사랑의 닮아.’ 사실 이 노래는 박요신이 아니면 쉽게 소화해내기 힘든 곡이었다. 그만의 특유한 창법이 아니면 노래가 영 살지 않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