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믿고 쓰는 미드필더-85화 (85/712)

<-- 방송 출연 -->

한혜영이 현수와의 그 데이트로 인해서 그녀에 대한 찌라시의 소문은 사라지고 새로운 스캔들이 온 나라를 시끄럽게 했다.

[한혜영, 젊고 키 큰 남자와 데이트! 그 남자의 정체는 과연 누구?]

그런 가운데 현수는 저녁도 제대로 못 먹고 쪽 대본을 받아 든 체 멍하니 서 있어야 했다.

“하아. 그러니까 이 한 씬 촬영 때문에 여기서 계속 기다려야 한다고요? 그게 새벽이 될지도 모르고요?”

“네. 어쩔 수 없습니다. 촬영이란 게 다 그래요.”

“미치겠네.”

현수는 그제야 백성조가 방송 촬영은 낮에만 하는 게 아니란 게 무슨 소린지 알게 되었다.

“설마 일주일 내내 이러는 건 아니죠?”

현수의 질문에 이 매니저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늘어지게 하품을 하더니 눈을 감으며 말했다.

“하아아암! 틈날 때마다 자두는 게 좋을 겁니다.”

“드르렁! 드르렁!”

“하아?”

아니나 다를까? 현수 옆에 앉아 있던 백성조는 벌써 코까지 골며 자고 있었다. 참 앉아서도 잘 자는 백성조였다. 그래도 신기하게 입에서 침 한방울 흘리지 않았다.

현수는 두 사람처럼 잠이 오지 않았고 억지로 자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차에서 내려서 방송국 안을 쏘다니다가 다시 차로 돌아갔는데 그때 차 주위에서 기웃거리는 젊은 여자를 발견했다.

“아!”

그녀는 현수를 발견하고는 기뻐하는 기색과 함께 쪼르르 그에게 뛰어왔다.

“강현수씨죠?”

“네. 그런데요?”

“언니가 좀 보제요.”

“언니요?”

“혜영 언니요.”

그러고 보니 눈앞의 젊은 여자를 한혜영 근처에서 본 거 같았다. 그녀의 옷을 들고 있는 걸로 봐서 코디네이터인 모양이었다.

“가죠.”

현수는 한혜영의 코디를 따라 출연자 대기실에 들어갔다. 한혜영은 여주인공답게 대기실 하나를 통째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에 비해 5회 분 촬영 뒤 사라질 현수는 대기실조차 없고 말이다.

“어서 오세요.”

한혜영이 현수를 보고 반갑게 맞아 주었다.

“저녁 드셨어요?”

“그게.....”

“그럴 줄 알았어요. 이거 드세요.”

한혜영이 초밥 도시락을 현수에게 건넸다. 현수가 그걸 받자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첫 출연이라 정신없죠? 그래도 소속사가 Sj엔터니까 그 정도 대우라도 받는 거예요. 보통 소속사가 없거나 중소 소속사의 경우는 방송국 안에 차도 대기 어렵거든요.”

“아네.”

현수는 한혜영의 말을 대충 귀담아 들으면서 초밥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저녁을 제대로 먹지 못한 탓인지 배에서 어서 초밥을 먹으라고 아우성을 쳐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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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가 허겁지겁 초밥을 먹어 치우는 걸 말없이 지켜보기만 하던 한혜영이 그에게 음료수를 건넸다.

“천천히 드세요. 이것도 좀 마시고요.”

“쩝쩝.... 고맙습니다.”

그녀는 현수가 초밥을 다 먹고 음료수까지 탈탈 비우는 걸 보고서야 맘 편히 말을 걸었다.

“인터넷 봤어요?”

“아뇨. 아시다시피 쪽 대본 들고 대기 중이라서.”

“그쪽 매니저가 뭐라고 안 해요?”

“혜영씨 얘기는 하던 거 같은데 자세히 물어 보진 않았어요.”

“왜요?”

“원래 다른 사람들을 속이려면 자기 사람들부터 속여야 한단 말이 있잖아요.”

“호오! 그러니까 저와 스캔들의 주인공이 그쪽이란 걸 들키지 않기 위해서 일부러 그랬다 이건가요?”

사실은 귀찮아서 그랬다. 하지만 당사자인 한혜영 앞에서 그렇게 말하면 왠지 성의가 없어 보이지 않겠는가? 그래서 현수가 대충 둘러 댄 말이었다.

“저희 소속사에는 제가 잘 얘기했어요. 사실 소속사에서는 현수씨에게 고마워하고 있어요.”

“그렇습니까?”

“현수씨 때문에 시중에 떠돌던 찌라시가 완전히 사그라졌거든요. 유 대표와 엮이면서 저도 충분히 곤란해질 수 있는 상황이라....... 아무튼 저와 오늘 데이트 한 그 남자의 정체는 오늘 촬영한 방송분이 TV로 나가고 며칠 뒤에 자연스럽게 언론에 밝혀질 거예요. 저와 친하게 지내는 동생이었다고 말이죠. 그리고 그 동생이 실제 축구선수이며 시트콤 영 프렌즈의 남친 역할을 한 강현수씨란 것도 함께 밝혀질 거예요.”

“네. 뭐....”

현수도 그 정도는 그녀의 소속사 측에서 밝힐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저 때문에 피해를 입을 수도 있어요. 정말 괜찮겠어요?”

“괜찮기야 하겠습니까? 아마 뭇 남자들의 시기와 질투를 받겠죠. 뭐 그래도 시간이 약인 법이니까 금방 잊힐 겁니다.”

긍정적인 현수의 대답에 한혜영이 살포시 웃으며 말했다.

“22살 이랬죠?”

“네.”

“저보다 3살이나 어린데 생각하는 것은 저보다 더 어른 같네요. 그래서 좋아요.”

“네?”

“혹시 애인 있어요?”

애인이라? 현수는 그런 귀찮은 건 안 키운다. 섹스 파트너라면 얼마든지 환영이지만 말이다.

“없는데요.”

“그럼 나하고 진짜로 사귈 마음 없어요?”

그때 현수의 머릿속에 시스템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띠링! 한혜영은 진짜로 당신과 사귈 의중이 있습니다. 그녀와 사귄다면 관심 있어 하는 의뢰자들이 꽤 많습니다.]

의뢰자가 많다는 건 곧 포인트가 된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현수는 쉽게 사귀겠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한혜영이 원하는 게 섹스 파트너라면 얼마든지 환영이다. 하지만 보통 연인들끼리 말하는 그 애인이라면......’

현수가 말이 없자 한혜영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농담이에요. 뭘 그리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래요. 그게 더 기분 나쁘다.”

“혜영씨가 싫어서 고민한 결코 아닙니다. 혜영씨처럼 아름다우신 분이 애인이라. 남자라면 누구나 그러고 싶겠죠. 하지만 전 축구 선수로 성공하기 전까지는 애인 같은 건 키우지 않기로 작심했거든요.”

“축구 선수로서 성공이라? 현수씨의 그 성공이란 건 얼마나 거창한 꿈일까요? 그게 궁금하네요.”

“원래 꿈은 크게 꾸라고 하지 않습니까? 전 세계적인 클럽에서 뛰고 싶습니다. 그것도 세계 최고 대우를 받으면서 말이죠.”

현수의 꿈의 크기가 변했다. 예전의 그는 일본에서 뛸 때 그냥 빨리 국내 프로 리그로 돌아가서 뛰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에게 시스템이 있는 한 좀 더 큰 무대에서 뛰어 보고 싶은 욕망이 점점 더 커져 가고 있었다.

“메시나 호날두 같은?”

“네. 그들과도 경쟁해 보고 싶습니다. 전 제가 그들 보다 못하다고 생각지 않거든요.”

“와아! 그들에게 뒤지지 않는다니. 진짜 축구 잘하시는 모양이다. 꼭 현수씨 시합 보러 가야겠는데요?”

“하하하하.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언제든 환영입니다. 만약 혜영씨가 제 시합을 보러 오신다면 제가 보기 어려운 기록을 세워 보겠습니다.”

“어려운 기록이요?”

“해트트릭 알죠?”

축구에 관심 있는 한혜영이었다.

“당연하죠. 한 경기에서 3골을 넣는 거잖아요.”

“그럼 퍼펙트 해트트릭도 아시겠네요?”

“퍼펙트 해트트릭이요?”

“네. 바로 머리와 왼발, 오른 발로 골을 넣는 걸 퍼펙트 해트트릭이라고 하죠. 혜영씨가 제 시합을 보러 오시면 바로 그 퍼펙트 해트트릭을 볼 수 있으실 겁니다.”

“진짜요? 그냥 골 넣기도 어려운데 머리와 왼발, 오른 발로 각각 골을 넣겠다니.....”

한혜영은 그게 가능하긴 하냐는 듯 현수를 쳐다보았는데 현수가 자신 있게 말했다.

“그건 보러 오시면 아시게 되겠죠.”

“그 퍼펙트 해트트릭을 보기 위해서라도 현수씨 시합은 꼭 보러 가야겠네요.”

현수는 축구에 관심이 있는 여자와는 처음 만났다. 혜미는 처음부터 현수가 축구선수란 걸 알고 만났지만 그녀와 지금처럼 축구 얘기를 나눠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제 메시가 프리메라리가 발렌시아와의 시합에서 혼자서 세 명을 돌파해 들어 갈 때 그 환상적인 드리블이란...............”

한혜영은 축구 얘기를 할 때 눈빛이 빛났다. 그런 축구를 좋아하는 여자와 대화를 나누는 현수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게 점점 빠져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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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는 한혜영과 무려 두 시간 수다를 떨었다. 둘 다 쪽 대본을 받고 대기 중이었는데 덕분에 지루하지 않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계속 있을 순 없었다.

먼저 한혜영에게 촬영 시간이 다 됐다는 연락이 왔고 동시에 현수에게도 전화가 걸려왔다.

-어디에요?

“방송국에서 아는 분을 만나서 지금 출연실에 있습니다.”

그 아는 분이란 바로 한혜영이고 말이다.

-지금 바로 오세요. 출연 준비해야 하니까요.

아마 출연 전에 분장도 하고 옷도 갈아입어야 할 모양이었다.

“저도 이만 가야겠네요.”

“촬영 때 봐요.”

그러고 보니 오늘 마지막 촬영은 한혜영과 재회하는 장면이었다. 그러니까 그녀와 같이 촬영이 끝난다는 소리였다.

현수가 차로 돌아가자 이 매니저가 화를 냈다.

“어디 가면 간다고 하고 가야죠.”

“그게..... 하도 곤히 주무시기에.....”

“크음. 그래도 다음부터는 깨워서 얘기하고 어디 가도 가도록 하세요.”

“네. 뭐 그럴게요.”

백성조는 현수가 혼쭐나는 걸 보고 히죽거리며 웃다가 현수가 홱 째려보자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빨리 분장실부터 갑시다.”

이 매니저가 현수를 데리고 분장실로 갈 때 백성조도 느긋하니 그 뒤를 따라 움직였다. 그때 그런 백성조를 노려보는 한 쌍의 눈이 있었다.

“저 자로군.”

그는 바로 백성조가 신고한 배우 장석준을 배후에서 조종하던 마약 조직 쪽에서 방송국에 심어 놓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보통 사람이 출입하기 어려운 방송국 안을 그런 자가 어떻게 버젓이 돌아다니고 있는 걸까? 그건 바로 그가 방송국 직원이었기 때문이었다.

장석준은 주로 연예인들을 상대로 마약을 유통시켜 왔는데 그 중 방송국 직원도 몇 명 있었다.

최명우는 바로 그 직원 중 한 명으로 소품실에서 일을 했다. 장석준이 죽으면서 마약을 구할 수 없게 된 그에게 마약 조직에서 접근을 해왔다.

꽤 많은 마약을 건네며 마약 조직에서 그에게 요구한 건 Sj엔터테이먼트의 실장이라는 백성조란 자가 방송국에 나타나면 조직에 즉시 알려 주는 것이었다.

그 정도로 일로 두 달은 족히 맞을 마약을 공짜로 준다면 이거야 말로 꿀을 빠는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여보세요? 네. 찾았습니다. 네. 소품실로요? 그, 그건...... 아, 아닙니다. 하겠습니다.”

조직에서 최명우에게 새로운 지시를 내려왔다. 그 일만 잘 해 준다면 1년 치 맞을 수 있는 마약을 공짜로 주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런 일 쯤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마약을 위해서라면 최명우는 이미 자신의 영혼까지 팔 준비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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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장을 끝낸 현수가 분장실에 있을 때 방송국 직원이 다가와서 말했다.

“옷 가져가세요?”

“옷이요?”

현수가 이 매니저를 찾았다. 그런데 잠깐 화장실이라도 갔는지 이 매니저가 보이지 않았다.

“강현수씨 맞죠?”

“네. 그럼 따라 오세요.”

현수는 방송국 직원이 따라 오라니 일단 따라 나섰다. 그런 현수를 보고 근처 있던 백성조가 쪼르르 따라 나섰다.

백성조는 소속사의 간부였지만 현장의 일에 대해선 모르는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회사에서도 유능한 로드 매니저를 일부러 붙여 준 것이고 말이다. 그런데 그 매니저가 잠깐 화장실 간 사이에 일이 터졌다.

“여기에요.”

방송국 직원이 현수와 백성조를 소품실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소품실은 거대한 창고였다. 그때 그 방송국 직원 주위로 방송국 관리실 직원과 청소부 차림의 남자들이 나타났다.

“됐죠? 그럼 그거 어서 주세요.”

방송국 직원이 관리실 직원에게 손을 벌리자 그 자가 하얀 결정체가 들어 있는 봉지를 하나를 그 방송국 직원에게 건넸다.

현수가 딱 봐도 그건 마약이었다. 마약을 본 순간 현수는 자신과 백성조가 놈들이 파 놓은 함정에 빠졌음을 직감했다.

“당신들 뭐야?”

현수가 큰 소리로 외치며 뒷걸음질을 쳤다. 하다못해 자신의 뒤에 있던 백성조라도 소품실 밖으로 내보내려 했는데 그들 뒤쪽에서도 관리실 직원과 청소부 차림의 남자들이 나타났다.

“쳇!”

8명의 남자들에게 순식간에 포위를 당하자 백성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는 덜덜 몸을 떨면서 핸드폰을 꺼냈다. 경찰에 신고라도 할 작정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창고 안에서는 전화가 터지지 않았다.

그걸 보고 현수와 백성조를 이곳으로 유인해 낸 방송국 직원에게 마약을 건넨 관리실 직원 복장의 남자가 말했다.

“우릴 너무 쉽게 보는군. 애들아!”

그러자 창고 앞뒤에서 추가로 두 명의 남자가 더 나타났다. 그런데 그들 손에는 뭔가 최신 장비로 보이는 것이 들려 있었다.

“저게 바로 홍콩에서 비싸게 들여 온 전파 방해 장치란 거다. 저게 있으면 이 안에서 그 어떤 전파도 들어 올 수 없거든.”

그들 말 대로 제대로 준비를 한 모양이었다. 현수와 백성조를 제압한 뒤 실어 갈 박스까지 구비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자가 현수와 백성조를 향해 계속 말했다.

“그냥 시키는 대로 팔 내밀어라. 그럼 조용히 데려 갈 테니까.”

그 말 후 그 자 옆의 남자가 약병과 주사기를 꺼냈다. 그리고 그 약병에 주사기를 꽂고 약액을 주사기 안에 담았다.

“신경 안정제다. 맞고 나서 한 숨 푹 자면 된다. 뭐 그 다음은 우리 알바가 아니니까. 크흐흐흐.”

그 말을 하며 실실 웃는 그 남자를 보고 웃음이 감염이라도 된 듯 현수와 백성조를 포위한 다른 남자들도 따라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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