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믿고 쓰는 미드필더-76화 (76/712)

<-- 방송 출연 -->

새벽 2시가 넘은 시각. 현수가 선사한 쾌락의 사슬을 끊고 유혜란이 기어이 일어나서 씻었다. 그만큼 그녀에겐 외박은 절대 허락지 않은 일이었다. 원래 상태로 옷을 챙겨 입고 모텔 방을 나서던 그녀가 현수에게 말했다.

“넌 자고 가.”

약간 슬프고 또 아쉬운 목소리로 말이다. 섹스 후 유혜란은 꼭 현수에게 말을 놓았다.

그걸로 마치 현수와 자신의 관계를 구분 짓듯이 말이다.

넌 나보다 어리다. 그러니까 우린 원 나잇 스탠드 그 이상도 그 이하의 관계도 아니다 뭐 그런 선을 긋는 행위 말이다.

현수도 그녀가 예쁘고 몸매도 좋고 거기다 성격까지 털털해서 매력적이었지만 사실 엄청난 포인트를 선사 하니까 이렇게 열심히 관계를 가지고 그녀를 만나는 거지 특별한 감정까지 있는 건 아니었다.

왜 남녀 관계란 것이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하지 않던가?

현수도 마찬가지였다. 언제 볼지 모를 유혜란에게 마음을 내어 줄 정도로 현수는 그리 여리고 또 헤픈 남자는 아니었다.

“네.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조심해서 가세요.”

현수도 유혜란에게 볼 장은 다 봤으니 그녀가 지금 가더라도 상관없었다.

유혜란은 조용히, 아니 쓸쓸하게 모텔을 빠져 나갔고 현수는 아침 7시 알람을 맞춰 놓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아침에 알람이 울리자 현수는 씻고 옷을 챙겨 입은 뒤 바로 모텔을 나섰다.

강남의 아침은 저녁만큼이나 사람들로 분주했다. 현수는 근처 해장국 집으로 가서 빈속을 채운 뒤 강서 쪽으로 움직였다.

가까운 강남의 율현동에도 대규모 중고차 매매 시장이 있었지만 그곳엔 현수가 아는 사람이 없었다.

현수는 지하철을 타고 그가 가려 했던 강서의 중고 매매 시장에 들어섰다. 그때 현수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확인하니 전화번호가 어째 눈에 익었다. 그래서 받았더니 Sj엔터테이먼트라고 했다.

“그러니까 다음 주 한 주는 다 비워 놓아라 이거죠?”

-그렇습니다. 5회분 촬영인데 방송국에서 일주일 안에 촬영을 끝낸다니 그 정도면 충분하겠네요.

“알겠습니다. 그럼 월요일에 제가 어디로 가면 되죠?”

-아침 8시 30분까지 저희 회사로 와주세요. 그럼 그때부터 그쪽을 담당할 매니저가 픽업해서 방송국으로 가든 촬영지로 직접 가든 알아서 할 테니까요.

“네. 그럼 월요일 아침 8시 30분까지 Sj엔터테이먼트로 가겠습니다.

통화를 끝낸 현수는 중고 매매 시장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그러자 그를 호구로 본 몇몇 중고차 중개인이 접근해 왔는데 현수가 그들을 다 거부했다.

“아는 중개인 있습니다.”

“에이. 그러지 마시고 제가 싸고 좋은 차 사게 해 드릴게.”

싸고 좋은 차라? 웃기는 얘기다. 어떻게 좋은 차가 쌀 수 있단 말인가?

여기 중고차 중개인들 중 열에 열은 사기꾼들이다. 하지만 백에 한 명은 정직한 중개인이 있다. 현수는 그런 정직한 중개인 한 명을 알고 있었다.

“저기 있군.”

바로 현수 눈앞의 저 백종훈이란 중개인이다. 그는 미래에, 그러니까 정확히 3년 뒤 현수가 일본 J1리그에서 다시 한국 K리그 클래식으로 돌아왔을 때 그에게 중고차를 판 중개인이다.

당시 현수는 아는 지인을 통해 저 사람을 소개 받았다. 답답할 정도로 고지식한 저 양반은 절대 고객을 속이지 않고 중고차를 팔았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정직함 때문인지 고객이 꾸준했다.

아마 지금도 다르지 않을 터였다.

“저기.... 중개인이시죠?”

“네. 맞습니다.”

“차 좀 보여 주세요.”

“지, 지금 저보고 말씀 하신 겁니까?”

“네. 왜 안 됩니까?”

“안 되긴요. 됩니다. 이쪽으로.....”

그는 이때도 역시나 고지식했다. 그러나 미래에서처럼 고객은 많은 거 같지 않아 보였다.

“이 차는 보기엔 번듯해 보이지만 정면으로 충돌한 적이 있는 찹니다. 그리고 연식도 오래 됐고..........”

중고차의 장점 보다는 단점을 더 부각시켰다. 그러니 차를 잘 팔아먹을 리 있나? 하지만 그에게 차를 사면 적어도 속아서 차를 살 일은 없었다.

현수는 그가 추천하는 국산 중형차를 소개 받았다.

“이 소X타는 2005년 식으로 사고도 없었고 뛴 킬로수도 2만으로 지금 딱 타기 좋은 찹니다. 그리고 여기 Sc5는 연식은 2004년 식이고 사고 없고 킬로수는 3만인데 가격은 소X타보다 200만원 더 쌉니다.”

“저 소X타가 얼마라고요?”

“주인은 1,200만원을 원하는 데 1,100만원에 조율해 보겠습니다.”

“그럼 저 소X타로 할게요.”

“잘 선택하셨습니다. 잠깐만요.”

백종훈은 차주에게 전화를 한 후 현수에게 말했다.

“차주께서도 1,100만원에 파신 다네요. 바로 계약하시죠. 참! 현금 거래 하시면 50만원 더 깎아 주신다는 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현금으로 계산하죠.”

어차피 포인트가 곧 현금인 현수였다. 현수는 계약서를 작성하고 근처 은행으로 향했다. 은행에 가는 도중 현수는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2,000포인트 현금화 했으면 좋겠는데?’

그러자 시스템이 바로 알아서 포인트를 현금으로 환전해 주었다.

[띠링! 2,000포인트 결제. 남은 포인트 724,390]

동시에 현수의 핸드폰에 문자가 날아왔다. 확인하니 현수의 주거래 은행에서 현금 2천만 원이 입금 되었다는 문자였다.

현수는 자신의 주거래 은행에 가서 그 중 1,200만원을 인출했다. 그 다음 그 은행에서 증권 계좌를 만드는 일도 잊지 않았다.

그 뒤 중고차 매매 시장으로 다시 돌아가서 차 가격으로 1,050만원을 지불하고 나머지 중개 수수료를 30여만 원을 내고 나서 자동차 키를 받았다.

“자동차 등록증은 주소지로 제가 보내 드리겠습니다.”

“그럼 수고 하세요.”

현수는 평범해 보이는 은색 소X타를 몰고 중고 시장을 빠져 나왔다. 기름이 반 칸 정도 밖에 없어서 우선 근처 주유소에서 기름을 가득 넣은 뒤 현수는 자취방으로 향했다.

어제 입은 옷을 그대로 입고 있어서 찜찜했던 것이다. 자취방에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은 현수는 곧장 강남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 개포동의 한 아파트 단지로 향했다.

현수가 기억하기로 이곳 아파트 가격이 내년에 딱 2배 올랐다. 올 연말에 재개발 계획이 발표 되면서 말이다. 그 뒤로 더 올라서 2016년에는 그곳 30평형대의 아파트 가격이 14억을 호가했다.

“어서 오세요.”

현수는 그곳 아파트 단지의 복도방 중 아무 곳이나 들어갔다. 중년의 진한 화장에 향수 냄새가 지독한 중개사 아주머니가 현수를 반갑게 맞았다.

“총각이죠?”

“네. 뭐....”

“혼자 살 오피스텔?”

“아뇨. 아파트요.”

“혼자 살 아파트면 20평형?”

“네. 뭐.... 그런데 요즘 아파트 2채 이상 사면 중과세 붙나요?”

“붙긴 하는 데 그리 많진 않아요.”

“그렇다면 30평형대의 아파트 2채를 구입했으면 하는데.”

“2채씩이나요?”

중개사 아주머니의 눈이 반짝 빛났다.

“물건은 있나요?”

“당연히 있죠. 마침 급매로 나온 32평형 아파트가 두 채 있는데.....”

“가격은 얼마에요?”

“자X 아파트는 2억 3천, 은X 아파트는 2억 1천인데 둘 다 얘기 잘하면 2억 2천과 2억에 살 수 있을 거예요.”

두 아파트 다 연식이 오래 되다보니 이때는 아파트 가격 자체가 그리 비싸게 형성 되어 있진 않았다.

“지금 볼 수 있나요?”

“물론이죠.”

중개사 아주머니는 현수를 데리고 바로 앞 아파트 단지부터 데려 갔다. 자X 아파트는 위치도 층수도 괜찮았다. 그런데 은X 아파트는 위치가 별론데 층수도 저층이었다.

현수는 자X 아파트는 2억 2천에 바로 계약하고 은X 아파트는 계약하지 않았다. 대신 괜찮은 물건 나오면 복덕방에서 연락을 주기로 했는데 현수가 자X 아파트를 계약하고 바로 계약금을 지불하자 복덕방에서 은X 아파트의 다른 물건을 보여 주겠다고 했다.

아마 중개사 아주머니가 현수가 젊어서 그런지 그가 아파트 2채를 사겠다는 말에 의구심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현수가 덜컥 바로 아파트 한 채를 계약하는 걸 보고 숨겨 놓은 괜찮은 물건을 꺼내 놓은 것이다.

현수는 중개사 아주머니와 같이 그 은X 아파트에 가 봤는데 층수는 중 저층인데 위치가 좋았다. 그래서 현수는 그 아파트를 2억에 구입했다. 그리고 이왕 구입하는 김에 그 근처 원룸도 하나 구입했다. 지금 사는 자취방은 옥탑 방으로 살기가 불편한 건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돈도 있는데 굳이 그런 곳에서 궁상 떨 필요 없다 싶어서 현수도 딱 눈감고 지른 것이다. 그 구입가가 8천으로 현수는 아파트 2채와 원룸을 구입하는 데 딱 5억을 사용했다.

물론 세금 부분과 중개 수수료는 오늘 현수가 중고차 구입할 때 포인트를 현금으로 환전한 2천만 원의 남은 돈으로 얼추 해결이 되었다.

[띠링! 50,000포인트 결제. 남은 포인트 674,390]

현수는 생활비 겸 주말에 혜미와 놀러 가서 쓸 돈도 있어야겠다 싶어서 1,000포인트를 더 현금으로 환전했다.

[띠링! 1,000포인트 결제. 남은 포인트 673,390]

그 다음 현수는 증권사로 향했다. 주식 계좌는 앞서 은행에서 만들어 놓은 터라 바로 거래가 가능했다. 증권사도 미래의 현수가 이용했던 그 증권사였다.

2016년에는 지점장이 지금은 증권사 직원으로 현수 앞에서 현수도 잘 모르는 주식 용어를 섞어가며 뭐라 열심히 투자할 만한 주식을 얘기했다. 그런 그 증권사 직원에게 현수가 딱 4종류의 주식을 얘기했다.

“삼정엔지니어링, 금우석유, 에이블비엔씨, Sj엔터테이먼트. 이 네 곳 주식에 5억씩 투자하겠습니다.”

“네?”

그 4곳의 주식이 향후 2년 안에 2-5배까지 뛴다. 현수가 아는 건 딱 거기 까지였다.

놀란 직원 앞에 현수는 바로 그 자리에서 증권 계좌로 20억을 쏴 주었다.

[띠링! 200,000포인트 결제. 남은 포인트 473,390]

현수는 더 많은 포인트를 확보할 자신이 있었다. 그렇다면 굳이 현재 쓰지도 않는 포인트를 그대로 둘 필요가 있나 싶었다.

그래서 과감히 부동산과 주식에 25만 포인트, 현금으로 25억을 투자한 것이다.

-----------------------------

주식까지 투자가 끝나자 벌써 5시였다. 현수는 오늘 만나기로 되어 있던 사지희에게 전화를 걸려 했다. 그런데 되레 그녀가 그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왔다.

“네. 지희씨.”

현수는 바로 그 전화를 받았다.

-혹시 지금 막 저한테 전화하려 했죠?

“네. 5시니까요.”

-근데 미안해서 어쩌죠?

“왜요?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네. 아빠가 무슨 바람인지 오늘 저와 같이 저녁을 먹겠다고 하시네요. 아마 제주도 갔다 오면서 저 주려고 뭘 사온 모양인데 그걸 주려고 저녁 같이 먹자고 하는 거 같아요.

“좋겠네요.”

현수가 부럽다는 듯 말했다.

-네?

“그런 선물을 줄 아빠가 있어서 말이에요.

현수는 아빠가 없었다. 엄마는 있는데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사는지 알 수 없었고 말이다. 사지희는 그런 현수의 개인 사정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 투정을 부렸다.

-좋긴 뭐가 좋아요. 보나마나 또 인형일 텐데. 휴우. 제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도 인형 따윌 좋아할 거라 생각하시는지....... 암튼 미안해요. 내일은 제가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 좀 그렇고 모레 주말에 연락 주실래요?

“그건 제가 좀 곤란하겠는데요?”

-왜요?

“주말엔 제가 약속이 잡혀 있어서요. 친구랑 바다 보러 가기로 했거든요.”

현수는 사지희가 무슨 약속인지 묻기 전에 먼저 선수를 쳐서 얘기를 했다.

-바다요? 아아! 부럽다. 나도 보고 싶은데. 저도 따라 가면 안 돼요?

“당일치기라 새벽 5시에 출발 할 건데 그래도 가실래요?”

현수는 거짓말을 했다. 당일치기는 무슨. 내일 9시쯤 혜미랑 같이 느긋하게 서해바다로 출발해서 하루 자고 그 다음 날 서울로 올 계획이었다. 하지만 사지희에게 여자랑 같이 바다 보러 가서 다음 날 온다고 사실 대로 얘기할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어휴. 그럼 안 되겠다. 아빠 아시면 큰일 나니까요. 그럼 주말 동안은 못 보겠네요. 월요일에 연락 주세요.

“네. 그럼 다음 주 월요일 오후 5시에 전화 할게요.”

-꼭 전화주세요. 안 그럼 제가 전화할 거예요.

“하하하. 알겠습니다. 네. 그럼 들어가세요.”

현수는 사지희와 통화를 끝내고 증권사를 빠져 나와서 주차해 둔 차로 향했다. 현수가 차를 타고 자취방으로 가는 사이 해가 졌다.

자취방이 있는 주택가 근처에 차를 댄 후 현수는 자취방 주인을 찾아갔다.

“뭐? 내일 당장 방을 빼겠다고.”

“네. 그렇게 됐습니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이런 식으로 불쑥 찾아와서 방 빼겠다고 하면......”

주인은 제법 화가 난 기색이었다. 하지만 현수가 2달치 방값을 주고 나가겠다고 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웃으며 잘 가라고 했다.

현수는 자취방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 일찍 짐을 챙겨서 어제 구입한 강남의 원룸으로 향했다.

짐이래야 옷가지들과 책이었는데 그의 차에 한 차 싣자 딱 맞았다. 현수는 그 짐을 원룸 안에 다 넣고 뒷정리는 뒤에 하기로 하고 일단 학교로 향했다.

-----------------------------

차가 있다 보니 기동력에선 문제가 없어 좋았다. 현수는 이명신 감독이 말한 10시에 딱 맞춰 축구장에 도착했다. 그로부터 몇 분 뒤 이명신 감독이 나타났다.

“자. 다들 왔나?”

“네에!”

축구부원들이 일제히 큰 소리로 외치자 이명신 감독이 주장인 이기찬을 보고 말했다.

“하던 대로 몸 풀고 드리블, 패싱 훈련 후에 개별적으로 포지션별 훈련 시켜.”

보아하니 오늘 이길로 이명신 감독이 다시 축구장에 나타날 일은 없을 거 같았다. 그래서 현수는 그가 체육관으로 갈 때 그 뒤를 따라갔다.

“감독님!”

현수가 그를 부르자 이명신 감독이 체육관 앞에서 멈춰 섰다. 그가 뒤돌아서 누가 자신을 불렀는지 확인하고 웃는 얼굴로 말했다.

“어. 그래. 현수야.”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뭔데?”

“아무래도 다음 주에 훈련 참가가 어려울 거 같습니다.”

“뭐?”

순간 이명신 감독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너 설마 프로팀과 계약이라도 하려는 거냐?”

이명신 감독이 우려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현수는 바로 고개를 내저었다.

“그건 아닙니다. 집안에 일이 좀 있어서 그렇습니다. 다음 주엔 꼭 훈련에 복귀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그래?”

이명신 감독은 현수가 말한 그 집안일이란 게 뭔지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런 거까지 캐묻다가 현수가 싫어하면 안 그래도 사이도 좋지 않은 데 그와의 관계가 더 나빠질 수도 있는 문제였다.

그래도 그가 당장 우려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반드시 묻고 넘어갈 필요가 있었다.

“혹시 U리그나 FA컵에 뛰는 데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니겠지?”

이명신은 그 뒤의 추계 대학 축구 연맹전이나 전국체전 참가까진 바라지 않았다. 현수가 딱 U리그와 FA컵만 뛰어 주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물론 두 대회 모두 준결승 이상 올라가는 소정의 성과를 내야 할 테지만 말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