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이벌전 -->
고구려대의 측면 윙어 장국영이 어깨를 축 늘어트린 체 벤치로 와서 김창수 감독에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그런 장국영의 어깨를 다독이며 김창수 감독이 말했다.
“네가 왜 죄송해? 넌 최선을 다해서 뛰었다. 단지 상대가 너보다 더 빨랐을 뿐이다. 부상만 아니었더라면..... 뭐 괜찮아. 측면을 더 두텁게 하면 돼.”
김창수 감독은 괜찮다고 했지만 그로 인해 측면에 미드필더를 더 보강함으로서 공격이 더 무뎌질 수밖에 없었다.
전반전에만 벌써 3점차로 벌어진 상황에서 후반전에는 더 공격일변으로 밀고 나가야 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암담한 김창수 감독이었다. 그렇다고 절망할 정도는 아니었다.
대학 축구는 몰랐다. 프로와 달리 아직 아마추어인 선수들은 기복이 큰 법이니까. 그래서 3점이 아니라 5점차로 앞서 가다가고 판을 흔들면 얼마든지 역전도 가능했다.
“연신대 놈들에게 진짜 악바리 근성이 뭔지 제대로 보여 주자고.”
김창수 감독의 말에 고구려대 선수들의 표정이 다들 비장하게 변했다. 이때 바로 옆 연신대 벤치는 그야말로 화기애애했다. 그만큼 3점차 리드는 컸다. 그때 벤치 선수 중 한 명이 이명신 감독에게 아부조로 말했다.
“감독님. 후반전에는 살짝 변화를 좀 둬 보는 게 어떨까요?”
“변화?”
“네. 선수 교체를 통해서 말입니다.”
“선수 교체라....”
그 말에 벤치에 대기 중인 선수들의 눈빛이 초롱초롱 빛났다. 이명신 감독은 마음이 살짝 흔들렸다. U리그 본선 진출을 확정 짓는 중요한 시합이긴 하지만 전반에 이렇게까지 앞서 갈 줄 몰랐다.
‘어쩐다?’
출전하고 싶어 안달이 난 벤치 선수들을 이명신 감독은 그냥 모른 척 할 수가 없었다. 그 중에서 특히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윤성찬은 그에게 부담감을 팍팍 주었다. 가는게 있으면 오는 것도 있어야 하지 않느냐? 뭐 이런 식의.
‘에이. 모르겠다. 어차피 3골이나 앞서 있으니. 3명 정도 교체해도 주축 선수는 그대로 두면 전력에 큰 문제는 없을 테니까.’
U리그 예선전은 경기 중 3명의 교체가 가능했다. 이명신은 후반에 바로 3명의 선수를 다 교체 하려 한 것이다.
“까짓것 그러자.”
이명신은 너무 자만해서 해선 안 될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말았다. 그것도 현수에게 선수 교체에 대한 의견도 물어보지 않고 말이다. 가장 최악은 그 3명의 교체 선수 중에 윤성찬도 끼어 있었단 점이었다.
선수 교체로 가닥을 잡은 이명신 감독은 바로 교체 선수를 발표했다.
“포워드 나진목 대신에 박민철이를 투입하고 좌측 미드필더 김석진을 빼고 문일수, 그리고 왼쪽 수비수에 장철우 대신 윤성찬이 뛴다.”
현수는 윤성찬과는 같이 시합을 뛰고 싶어 하지 않았다. 절대로. 그런데 그런 녀석이 교체되다니!
이명신 감독이 선수 교체를 단행하자 현수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 현수는 굳은 얼굴로 힐끗 이명신 감독을 쳐 다 본 후 입을 꾹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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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신 감독은 후반전이 시작되기 전에 현수에게 수비 위주로 안정적인 플레이를 해 줄 것을 요구했다. 현수는 알았다며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라운드로 가서 자기 자리를 잡았다.
잠시 뒤 고구려대의 선축으로 후반전이 시작 되었다. 전반전과 달리 현수는 자기 자리를 고수하며 수비형 미드필더로 돌변했다.
그런 가운데 예상대로 고구려대는 전반에 벌어진 3골 차를 극복하기 위해 공격일변으로 나왔다.
특히 현수가 움직이지 않는 걸 본 김창수 감독은 측면 윙어인 장국영에게 중앙 미드필더를 맡겨서 고구려대의 공격을 진두지휘하게 만들었다.
반면 세 명의 선수를 한꺼번에 교체한 연신대는 초반부터 삐걱거렸다. 갑자기 좌우 미드필더들이 측면 미드필더에게 넣어 주는 패스 타이밍이 맞지 않아서 공이 커트 당했고 그 공은 바로 장국영에게 전달되었다.
장국영은 바로 측면으로 돌아 들어가는 윙어에게 그 공을 넣어 주었고 그 윙어는 살짝 공을 전방으로 차 놓고는 빠르게 터치라인을 따라 내달렸다.
그 윙어를 연신대의 측면 미드필더가 따라 붙었고 중앙으로 파고 들어오는 하재봉은 교체해 들어 온 연신대 수비수 윤성찬이 마크했다.
툭!
그때 윙어의 발끝을 떠난 공이 윤성찬의 머리를 넘어서 하재봉에게로 이어졌다. 살짝 부정확한 그 패스를 하재봉이 잘 트래핑 한 후 반 템포 빨리 그라운드에 공을 찍어 찼다.
그러자 바운드 된 공이 튀어 골대로 향했는데 골키퍼가 다급히 손을 뻗었지만 그 보다 공이 먼저 골대로 들어 가 버렸다.
“나이스!”
추격 골을 터트린 하재봉이 불끈 주먹을 쥐고는 골대 안으로 뛰어 들어가서는 그 공을 챙겨들고 센터서클로 뛰어갔다.
현수도 하재봉을 마크한 윤성찬이 너무 무기력하고 그를 놓치자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아니 윤성찬 근처에 공이 가면 현수는 움직이지 않았다. 윤성찬에게 너 혼자 알아서 해결하라고 내버려 둔 것이다.
“현수야! 하재봉을 그냥 두면 어떡하니? 네가 막아줘야지?”
벤치에서 이명신이 소리쳤다. 현수는 그 말에 이명신에게 대꾸도 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버렸다. 순간 이명신은 뭔가 심상치 않다. 아니 잘못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설, 설마.....”
현수는 윤성찬과 같이 뛰는 걸 원치 않았다. 그런데 지금 자신은 현수가 뛰는 그라운드에 윤성찬을 넣었고 말이다. 그제야 이명신은 자신이 지금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하지만 설마 했다.
현수가 아무리 윤성찬이 싫다 하더라도 경기를 말아 먹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 생각이 잘못 되었다는 건 금방 알 수 있었다.
고구려대의 스트라이커 하재봉은 금방 연신대의 큰 구멍을 알아냈다. 그걸 안 이상 가만있으면 그게 이상 한 법. 하재봉은 자신에게 공을 달라고 손을 흔들었다. 그런데 그가 있는 위치가 왼쪽 측면이었다.
공은 즉시 하재봉에게 패스 되었다. 하지만 재미있는 건 전반 내내 그에게 가는 공은 다 끊어 놓던 강현수가 왼쪽 측면에 있으면 움직이지 않았다.
하재봉은 좋다고 그 공을 받아서 측면을 뚫고 들어갔다.
“헉!”
후반에 교체 된 연신대의 왼쪽 수비수는 그야말로 허당이었다. 순식간에 개인기로 그 녀석을 농락한 하재봉이 왼쪽 측면을 뚫고 페널티에어리어로 침투해 들어갔다.
“막아!”
연신대의 센터백 이기찬이 그를 막아섰지만 하재봉이 전매특허인 반 박자 빠른 슛이 터졌다.
슈아아앙!
출렁!
연신대 골키퍼가 몸을 날렸지만 공이 워낙 기막히게 골키퍼가 막기 힘든 사각지대로 날아갔기 때문에 그대로 골망을 갈랐다.
“쉽군!”
골을 터트린 하재봉은 이제 뛰어가 골대 안에 있던 공도 들고 나오지 않았다. 강현수가 뛰지 않는 연신대는 3골이 아니라 5골이라도 더 넣을 자신이 있는 하재봉이었다.
“맙소사!”
후반전이 시작 되고 채 5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내리 2골을 내어 준 연신대 벤치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허무하게 2번째 골이 터지자 이명신은 자신의 머리를 움켜쥐고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는지 자책을 했다. 그리고 터치라인으로 달려가서 현수에게 소리쳤다.
“현수야. 대체 왜 이러니? 제발 좀 제대로 뛰어라.”
하지만 현수는 이명신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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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어 5대 4!
이제 한골 차였다. 이명신은 이대로라면 역전 패 할 게 자명한 터라 똥줄이 타기 시작했다. 생각 같아서는 재앙과 같은 윤성찬을 빼버리고 싶었지만 더 이상 교체를 할 수가 없었다. 이명신이 할 수 있는 건 현수에게 애원하는 것뿐이었다.
“현수야. 제발 이러지 마라. 내가 잘못 했다. 다음부턴 이런 일 없도록 할게. 응? 그러니까 제발 좀 뛰어주라.”
하지만 현수는 여전히 이명신 감독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연신대는 그야말로 초상집 분위기로 변했고 반면 고구려대의 김창수 감독은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그리고 속으로 이명신을 욕했다.
‘저런 병신 새끼.’
팀에서 선수와 감독의 반목은 곧 자멸이었다. 그건 축구에서 더했다. 그것도 팀을 이끄는 주축 선수와 감독 사이가 틀어지면 절대 그 팀은 이길 수 없었다. 지금 연신대 처럼 말이다.
‘대체 강현수에게 뭔 짓을 저지른 거야? 저렇게 소극적으로 뛰는 걸 보니 완전 사이가 벌어졌군.’
김창수 감독도 눈치 차릴 만큼 감독인 이명신과 선수 강현수 사이가 좋지 않아 보였다. 그 사이 다른 선수들은 그들 눈치를 보느라 또 제대로 뛰지 못하고 있고 말이다.
무엇보다 죽어나는 건 교체해 들어간 윤성찬이었다.
‘씨팔. 이럴 줄 알았으면 가만있을 걸.....’
워낙 중요한 시합이다 보니 자기 경력에 도움이 될 거 같아서 뛰겠다고 이명신 감독에게 눈짓을 보냈는데 자기로 인해 팀이 역전패하게 생겼으니 역적도 이런 역적이 또 없었다.
이대로 진다면 아무리 뻔뻔한 윤성찬이라도 더 이상 축구부원 생활을 하긴 힘들었다.
‘강현수! 저 놈이 이렇게까지 나올 줄이야.....’
윤성찬이 있는 쪽으로 공이 가면 현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강현수가 뛰지 않는 연신대는 전력의 50%가 떨어져 나간 것과 같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윤성찬이었다.
“씨팔! 또냐!”
골을 먹은 연신대에서 킥 오프를 했는데 언제 또 골을 빼앗겼는지 하재봉이 측면으로 공을 몰고 들어왔다. 그걸 본 윤성찬은 눈앞이 깜깜했다.
“에이. 나도 모르겠다.”
윤성찬은 하재봉을 막기 위해 달려 나갔다.
휙!
하지만 하재봉의 간단한 제스처에 속아서 그를 놓쳤다. 하재봉은 축구 드리블 연습할 때 세워 놓은 트레이닝 콘을 지나가듯 유연하게 하재봉을 제치고 페널티에어리어 안으로 침투해 들어갔다.
하지만 이번엔 연신대 수비수들도 대비를 하고 있어서 두 명이 하재봉을 마크했다. 하지만 고구려대의 공격은 하재봉만 하는 건 아니었다.
파앗!
하재봉이 옆으로 공을 넘겼고 그 공을 기다리고 있던 장국영이 뛰어들어서 때렸다.
뻥!
슈아앙!
빨랫줄처럼 뻗어 나간 공은 그대로 골망을 갈랐다. 그 슈팅을 연신대 골키퍼 방주혁은 막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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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어 5대 5!
우려했던 게 현실이 되었다. 연신대 이명신 감독은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이어 그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지더니 터치라인으로 가서 버럭 소리쳤다.
“강현수! 이대로 지면 내가 가만있을 거 같아? 내 감독직을 두고 널 축구계에서 매장 시켜 버리고 말테다.”
이명신 감독의 그 말에도 현수는 이명신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웃기시네. 지가 뭐라고 날 매장 시켜. 뭐 국내 축구계에서야 그럴 수 있을지 모르지. 제 인맥을 총동원한다면..... 그러면 해외로 진출해 버리면 뭐.’
이명신 감독의 협박에도 현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이명신 감독도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자신의 힘으로 잘나가는 축구 선수를 매장 시키긴 어려웠다.
현수야 내일이라도 당장 학교에 나오지 않고 프로로 진출해 버리면 그만이었다.
‘내가 미쳤지.’
잘 달래도 모자랄 판에 그놈의 성질머리 때문에 버럭 현수에게 소리를 쳐 놓고 이명신은 또 후회를 했다. 하지만 시간은 이명신 감독의 편이 아니었다. 그리고 상대 팀도 자멸해 버린 연신대를 그냥 두고 보진 않았다.
고구려대는 승기를 잡자 파상적으로 공격을 펼쳤다. 뻥 뚫려 있는 구멍을 통해서 말이다.
“저리 비켜!”
연신대 수비수들이 아예 윤성찬을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대했다. 그가 있어봐야 또 돌파 당할게 뻔 하니 우측 수비수 이도영과 센터백 이기찬이 그 자리까지 같이 맡아서 수비에 나선 것이다.
“막아!”
연신대 수비수들의 육탄 방어로 겨우 고구려대의 공격을 겨우 막아 내고 있을 때 현수는 중앙 미드필더 자리에서 꼼짝도 않고 있었다.
바로 그때 웬 여자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그라운드에 울려퍼졌다.
“강현수! 빨리 안 뛰어!”
그 소리가 난 쪽으로 현수가 고개를 돌리자 김혜미가 두 손을 허리에 올린 체 잔뜩 화난 얼굴로 서 있었다. 그걸 본 현수는 자기도 모르게 뒤돌아서 뛰었다.
촤아악!
그리고 그림 같은 슬라이딩 태클로 고구려대 선수에게서 공을 커트해 냈다.
“뛰어!”
또 이어진 혜미의 목소리에 현수는 몸을 돌려서 공을 드리블해서 달리기 시작했다. 현수는 그렇게 정신없이 공을 몰고 앞으로 내달렸다.
그런 그의 앞에 고구려대 선수가 가로 막으면 바로 카멜레온 축구복에 장착 된 드리블 스킬을 사용했다.
‘인사이드 드리블!’
휙!
고구려대 선수가 눈 깜짝 할 사이 현수가 그 옆을 스쳐 지나갔다. 물론 공은 현수의 발에 있었고 말이다.
투툭!
현수는 그 공을 앞으로 차 놓고 또 다시 뛰기 시작했다. 이번엔 고구려대 선수 둘이 현수를 막아섰다.
‘라보나 페이크(Ravona fake)!’
현수의 현란한 드리블에 이은 페인팅 동작에 고구려대 선수 둘이 농락당하고 젖혀졌다. 현수는 그 둘을 돌파하고 페널티에어리어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한 명 더 제쳐냈다.
‘마르세유 턴!’
그 다음 골대를 향해 대포 슛을 때렸다. 골키퍼가 있었지만 과감히 한 가운데로 찼다.
뻥!
슈아앙!
현수의 대포 슛을 고구려대 골키퍼가 막으려 팔을 뻗었을 때 그 공은 벌써 골키퍼의 얼굴 앞에 와 있었다.
고구려대 골키퍼는 놀라 질끈 두 눈을 감았고 공이 골키퍼의 귀를 스치고 골망을 갈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