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믿고 쓰는 미드필더-61화 (61/712)

<-- 라이벌전 -->

오후 2시에 체육관 회의실에 축구부 선수들이 전부 집합했다. 그 자리에 나타난 이명신 감독이 제일 먼저 물은 건 현수의 부상 여부였다.

“현수야. 다리는 어때?”

“멀쩡합니다.”

“다행이다. 자. 그럼 모레 있을 고구려대와의 U리그 예선 마지막 시합에 대한 전술 교육을 시작하도록 하겠다. 너희들도 고구려대와 경기를 해봐서 알겠지만 고구려대는 3-4-3 전술을 쓴다. 쓰리백이지만 수비가 아주 견고한데 그 핵심에 바로 3학년 센터백 조재훈이 있고 그 좌우 풀백 김호균과 주민상이다. 셋 다 빠른 발과 탄탄한 체격을 지니고 있어서 그 셋을 가리켜 고구려 통곡의 벽이라고 부른다는 건 너희도 잘 알 것이고.......... 골키퍼 강철호도 요즘 컨디션이 좋은지 4경기 무실점을 기록하고 있다니까 유의할 필요가 있겠지. 쓰리 백으로 미드필더가 늘어났으니 당연히 허리가 두텁겠지? 특히 중앙의 두 미드필더를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이명신이 언급하는 고구려대에 대한 정보는 연신대 선수들도 익히 다 아는 바였다. 그건 고구려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연신대는 고구려대 선수들의 특징과 장단점을 훤히 알고 있었고 그건 고구려대학도 마찬가지였다. 달리 두 대학이 라이벌이 아닌 것이다.

두 대학 간 축구 시합의 최대 쟁점은 바로 창과 방패의 싸움이었다. 연신대가 창으로 공격적인 축구를, 고구려대가 방패로 방어 후 역습 전술을 사용했다.

연신대의 공격의 선봉장은 두 말 할 것 없이 강현수였고 고구려 대의 수비의 핵심은 조재훈이었다.

그 둘의 그날 컨디션에 따라서 승패가 좌우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 둘이 팀에 미치는 영향력은 컸다. 이명신은 나름 공부를 해 왔는지 그럴 듯하게 전술 교육을 했다.

“......압박이 필요하다. 현대축구의 압박은 어떻게 하면 볼을 빼앗긴 직후 상대를 더욱 빠르고 강력하게 압박할 수 있을까 라는 차원을 넘어서 경기 흐름 및 상대 팀의 스타일에 따라 어느 지역에서부터 압박을 시작해야 하는 가 라는 측면에 더욱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즉, 현대축구에서 각 팀은 경기의 흐름 및 상황을 고려하여 전체적인 라인의 높낮이를 조절하고.....................”

현수는 평소에 안하던 짓을 하는 이명신을 보고 나오려는 하품을 억지로 참았다. 그건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다들 몰려오는 졸음을 억지로 참으며 눈은 뜨고 있지만 이명신의 떠드는 말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있었다.

숙적 고구려 대와의 일전은 사실 전술 같은 게 필요 없었다. 두 팀의 전력은 엇비슷했기 때문에 당일 선수들의 컨디션과 운이 승패를 가늠하게 될 터였다.

“.............. 이러한 수비 전술에 많은 비중을 둘 경우 최후방 라인의 배후에 넓은 공간이 발생하여 상대 역습에 위협당할 가능성이 높아질 뿐 아니라, 볼을 지속적으로 쫓아야 하는 선수들 개개인의 체력소모 또한 필연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최근에는 오프사이드 규정의 완화 및 경기 일정이 많아지는 등의 문제들이 맞물려 대부분의 팀들이 지속적으로 상대 진영에서부터 압박하기보다는 경기 흐름에 따라 간헐적으로 이러한 수비법을 활용하는 빈도가 높아지고 있는 추세로..............”

이명신이 불러주는 자장가에 결국 현수부터 시작해서 졸기 시작했고 그 병이 전염 되면서 선수들이 차례차례 졸기 시작했다.

쾅!

“이 새끼들이..... 다들 축구장에 집합!”

잔뜩 화난 이명신의 외침에 잠자다 깬 선수들이 우르르 축구장으로 뛰어갔고 오리걸음으로 축구장을 돌았다. 하지만 다들 얼굴은 밝았다.

“감독한테 전술 교육 받느니 차라리 이게 더 낫다.”

“그렇지? 왜 안하던 짓을 하고 난리람.”

“그러게.”

선수들이 투덜거리며 오리걸음으로 축구장 주위를 돌 때 현수는 열외 되어 그라운드 밖에서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있었다.

“아아아함!”

이명신이 제아무리 화가 나도 팀의 주축 멤버인 현수가 다쳤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다른 선수들과 같이 기합을 받게 할 순 없었으니 말이다.

다른 선수들도 오리걸음으로 축구장을 반 바퀴쯤 돌자 다들 일어나게 했다. 괜히 더 시켰다가 다리가 뭉쳐서 모레 시합에 제대로 뛰지 못하면 안 되니 말이다. 결국 그렇게 이명신 감독이 나름 심혈을 기울여서 준비한 전술교육은 엉망으로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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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술 교육이 한 시간 빨리 끝나면서 4시에 훈련이 끝난 현수는 혜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혜미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

혜미는 공부할 때 워낙 집중해서 하는 편이기 때문에 핸드폰을 꺼두었다. 아마 현수의 훈련이 5시에 끝나는 걸아는 그녀가 그때까지 핸드폰을 꺼 둔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5시까지 현수는 한 시간 동안 할 일이 없어졌다.

“뭐하지?”

고민하던 현수는 학교 앞 PC방에 가서 게임이나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교정을 나섰다.

“강현수!”

그때 누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현수가 그 소리 난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검은 정장에 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그를 향해 한 손을 들어 보였다.

‘저자는.....’

사지희의 보디가드 양동호였다. 현수가 그 주위를 살폈는데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가 먼저 움직이고 현수도 그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둘은 연신대 정문 한 가운데에서 마주쳤다.

“무슨 일이죠?”

현수가 먼저 묻자 양동호가 바로 대답했다.

“잠깐 나하고 얘기 좀 할 수 있나?”

“그러죠. 이쪽으로....”

현수는 연신대 정문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커피 전문점으로 양동호를 데려갔다. 현수가 커피를 주문하려 하자 양동호가 만류했다.

“학생이 뭔 돈이 있다고. 내가 사지. 뭐 마실 텐가?”

“그냥 아메리카노 마시죠.”

“아메리카노 2잔주시오.”

양동호가 지갑을 꺼내서 현금으로 계산을 하고 각자 아메리카노 한잔씩 들고 비어 있는 자리에 앉았다.

“나도 돌려서 말하는 성격이 아니니 바로 얘기 하겠다.”

“그러시죠.”

“지희와 사귀지 않겠다고 했다면서?”

“문세광. 그 인간 때문에 어떻게 엮이게 되었지만 지희씨와 전 맞지 않습니다.”

현수의 그 말에 양동호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문제는 지희야. 그 얘가 받은 충격이 너무 큰 거 같아. 요 며칠 밥도 안 먹고 방에서 나오지도 않아.”

“하아. 그건 그녀가 아파하고 고민하며 이겨 나가야 할 문제인거 같은데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문제는 그걸 가만 지켜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거지.”

“네?”

“사지희 아버지 말이야. 내게는 보스가 되는 그 양반이 이 사실을 알면....... 자넬 그냥 두지 않을 걸세.”

양동호의 얼굴 표정은 제법 심각했다. 현수는 무공 고수라는 양동호를 꺾었다. 그런데도 양동호는 지금 현수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 말인즉 사지희의 아버지가 현수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강하거나 무서운 사람이란 소리였다.

“내일 보스가 제주도에서 돌아온다. 그때 이 사실을 알면.......”

“그래서 제가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상대는 순전히 호의로 현수를 찾아 왔다. 그렇다면 그의 도움을 받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글쎄..... 가장 좋은 방법은 지희를 잘 설득하는 거겠지.”

“설득이요?”

“일단 그 애에게 전화를 하게. 그리고 다시 만나자고 하면 여린 그 애 성격에 자네를 용서해 줄 거야. 그 다음 천천히 그 아이에게 자네 사정을 얘기하고..... 그렇게 좋게 끝내는 게 최선이지 싶은 데.”

“만약 이대로 두면 어떻게 될까요?”

“보스가 내일 당장 자네 앞에 나타날 거야.”

“제가 그쪽 보스랑 싸우겠다면.....”

양동호가 바로 고개를 내저었다.

“넌 보스의 상대가 아니야.”

양동호의 말은 단호했다. 즉 사지희의 아버지가 양동호보다 훨씬 강하다는 소리였다.

“그는 자기 사람이 아닌 자가 강한 꼴은 절대 못 본다. 아마도 네가 내공을 가진 걸 알면..... 널 죽일 거다.”

양동호도 힘겹게 이긴 현수였다. 그런 양동호보다 사지희의 아버지가 훨씬 강하다면 현수도 그의 상대가 되지 못할 터였다. 물론 현수에겐 마법이 있었다. 하지만 사지희의 아버지가 진짜 강하다면 마법이 있다고 해도 질 수 있었다.

양동호가 말했다. 그가 현수를 죽일 거라고. 즉 현수가 사지희의 아버지에게 진다는 건 곧 그가 죽는단 소리였다.

현수는 현재 자신이 보유한 포인트를 전부 내공과 무공에 쏟아 붓는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었다.

양동호가 제시한 대책대로 현수가 사지희를 설득하면 될 일이니 말이다. 하지만 사지희의 아버지란 자가 대체 얼마나 강한지는 한 번 알아보고 싶은 생각은 있었다.

‘아서라. 그러다 죽을 수도 있어.’

현수는 당장은 아니지만 서서히 내공과 무공의 수준을 끌어 올릴 필요성을 느꼈다. 물론 마법도 3서클에 머물 것이 아니라 4서클로 업그레이드 시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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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는 말 나온 김에 곧장 사지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그녀는 현수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러자 양동호가 말했다.

“한 번 더 해 보게.”

그래서 시킨 대로 한 번 더 전화를 하자 그제야 사지희가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죠?

사지희의 목소리가 제법 싸늘했다. 하지만 현수는 차분하게 그녀에게 말했다.

“지희씨. 제가 요 며칠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제가 너무 한 거 같아서 전화 드렸습니다.”

-너무 하다뇨?

“지희씨의 마음을 너무 몰라 준 게 아닌 가해서요. 제 나름대로 그렇게 단호하게 얘기하는 게 지희씨에게도 더 나을 거라 생각해서 그렇게 했는데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닌 거 같더라고요. 그리고 저도 사실 지희씨가 싫어서 그런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그, 그래서요?

“지희씨가 절 용서해 주신다면 우리 만나보도록 하죠.”

-...........

“싫으시면 싫다고 하셔도 됩니다.”

-아, 아뇨. 전...... 좋아요.

양동호의 말 대로였다. 마음이 여린 사지희는 현수를 쉽게 용서했다. 그 만큼 그녀 마음속에 현수에 대한 사랑이 크게 자리 잡고 있단 뜻이라서 현수는 오히려 마음이 착잡했다.

어째든 결론이 나 있는 만남이었다. 헤어져야 한다는.

그래도 만나지 않으면 안 되기에 만나기는 하겠지만 왠지 그녀에게 미안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현수도 좋아서 이러는 게 아니었다. 살기 위해 이럴 수밖에 없었다.

현수는 모레 시합이 있어 당장 만나긴 어렵다며 사지희에게 양해를 구하고 난 뒤, 고구려대와 U리그 예선 마지막 경기가 끝나고 다시 연락하겠다고 했다.

-네. 그럼 그때 전화 주세요.

현수가 그렇게 사지희와 통화를 끝내기 무섭게 양동호의 핸드폰이 울렸다.

“응. 그래. 알았다.”

전화를 끊으며 양동호가 현수에게 말했다.

“지희가 배고프다고 먹을 거 사오라는 군. 이만 가 봐야겠네.”

양동호가 돌아서다 이어 말했다.

“보스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한 사람 뿐이네. 그분이 누군지는 자네도 알거야.”

그 말 후 양동호는 뒤돌아서 휑하니 사라졌다.

“그 분?”

순간 현수의 뇌리에 떠오른 인물이 있었다. 시스템이 현수에게 의뢰한 장기 퀘스트의 주인공. 바로 양동호의 스승인 무오 선사!

‘아무래도 빠른 시일 내에 시간 내서 강원도 태백산을 한 번 다녀와야겠군.’

현수가 잠시 넋 놓고 생각에 빠져 있을 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현수는 김혜미의 전화인가 확인해 봤더니 Sj엔터테이먼트 기획실장 백성조에게 걸려 온 전화였다.

“네. 선배님.”

-어. 그래. 현수야. 너 미숙이랑 친하다며?

“네. 뭐.....”

-시간 괜찮으면 오늘 저녁에 미숙이랑 같이 볼까 하는데 어때?

“오늘이요?”

-왜 시간 안 돼?

오늘은 김혜미와 선약이 있지 않은가?

“네. 약속이 있어서요.”

-그럼 내일은?

“죄송한데 제가 모레 중요한 시합이 잡혀 있어서요.”

-그럼 모레 보도록 하지.

백성조도 참 질겼다. 딱 봐도 아직 현수를 영입하는 걸 포기하지 않은 듯 했다. Sj엔터테이먼트 같은 대형 연예 기획사의 기획실장이라면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쁠 텐데 말이다. 자신한테 무슨 매력이 있다고 이러는 지 이해가 잘 안 됐다.

“네. 그러죠.”

하지만 그 성의를 봐서 현수는 모레 저녁에 백성조와 이미숙을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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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조와 통화를 끝내고 나자 진짜 김혜미에게 전화가 왔다.

-전화 했었네?

“어. 훈련이 좀 일찍 끝나서.”

-그래? 지금 어딘데?

“학교 정문 앞.”

-10분만 기다려 갈 테니까.

통화를 끝내고 정확히 10분 만에 김혜미가 현수 앞에 나타났다.

“가자.”

김혜미는 현수를 데리고 자신의 오피스텔로 향했다. 하지만 바로 오피스텔로 들어가지 않고 재래시장으로 갔다.

“또?”

“왜 싫어?”

“아니.”

현수는 쪼르르 김혜미를 따라 시장으로 향했다. 김혜미는 오피스텔 옆에 대형 마트가 있음에도 10여분은 족히 더 걸어 들어가야 있는 재래시장에서 장보는 걸 좋아했다.

그녀 말에 따르면 어린 시절 그녀는 지방에서 살았는데 그때 할머니랑 자주 장을 보러 다녔다고 했다.

그 때문인지 이렇게 재래시장을 찾으면 할머니와의 추억이 떠올라 좋다며 해맑게 웃었다.

현수도 어릴 때 엄마, 아빠랑 같이 시장을 찾은 기억이 있었다.

‘그때 참 행복했었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사고로 돌아가시면서 그 행복은 산산이 깨지고 말았다. 그래서인지 현수는 이 당시만 해도 결혼에 관해 상당히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 생각은 진짜 사랑하게 된 그의 아내, 그 악녀를 만나면서 거짓말처럼 사라졌지만 말이다.

‘혜미라면.....’

현수는 문득 김혜미와 가정을 꾸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김혜미라면 누구보다 현수를 잘 이해했고 무엇보다 육체적인 궁합도 환상적이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의 아내를 비롯해서 그를 거쳐 갔던 모든 여자들 중 현수와 가장 속궁합이 잘 맞은 건 김혜미였다. 하지만 현수는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혜미가 현수를 잘 알 듯 현수도 혜미를 잘 알았다. 그녀는 한 번 아닌 건 절대 아니었다.

‘그래. 나는 혜미의 섹파(섹스 파트너)일 뿐이야.’

요즘 들어 무슨 심경의 변화가 일어선지 혜미가 부쩍 현수를 신경 썼다. 하지만 그뿐이다. 현수가 프러포즈를 한다면 그녀는 한 걸음 뒤로 물러 설 터였다. 그게 현수가 아는 김혜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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