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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쓰는 미드필더-57화 (57/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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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는 이내 뒤돌아서 큰 길 쪽으로 휑하니 걸어 나갔다. 그러다 힐끗 뒤를 돌아보니 두 자매가 집 안에 들어가고 없었다. 그때 현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짜 날 좋아하나?”

구은하가 오늘 현수에게 보여 준 반응은 바로 관심이었다. 관심이란 누굴 좋아하지 않고서는 결코 보여 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이내 현수는 머리를 내저었다.

“말도 안 돼. 나랑 퀸카가 사귄다고?”

아마도 뭇 연신대 남자들이 현수를 잡아 죽이려 들 터였다. 그만큼 연신대 퀸카인 구은하는 연신대 남자들에겐 여신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설혹 구은하가 자신에게 관심이 있어도 현수가 싫었다. 현수도 자신의 분수는 알았다. 괜히 뱁새가 황새 쫓다 가랑이가 찢어 질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현수는 이내 그 생각은 지우고 버스 정류장 쪽으로 걸어갔다. 그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누구지?”

확인하니 어제 만났던 사지희였다. 현수는 별 생각 없이 그녀의 전화를 받았다.

“네. 지희씨.”

-뭐하세요?

“누구 좀 만나고 자취방으로 가는 중입니다.”

-누구요?

“아는 동생이요. 근데 무슨 일로.....”

-저.....

한참 뜸을 들이던 사지희가 현수에게 불쑥 물었다.

-오늘 왜 저에게 전화 안 하셨어요?

“네?”

현수는 자신이 오늘 그녀에게 전화하기로 어제 말한 적이 있는지 생각해 봤다. 하지만 그런 적은 없었다. 그때 사지희가 핵폭탄 급 발언을 했다.

-우리 이제 사귀는 거 아니에요?

“..........”

너무 황당해선지 현수가 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때 현수의 머릿속에 시스템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띠링! 사지희가 당신과 운명적인 사랑을 선택하였습니다. 이 사랑은 아주 위험한 모험이 될 것입니다. 이에 꽤 많은 의뢰자들께서 당신의 선택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사지희의 사랑을 받아 주시겠습니까? Y/N]

‘위험한 모험이라고?’

당연히 현수는 사랑에 목숨 거는 순정적인 남자랑 거리가 멀었다. 지극히 자기중심적이고 육욕적인 사랑이었다. 그러니까 진실한 사랑 운운하는 걸 현수는 딱 질색했다.

‘노우(No)!’

[..............]

현수의 거절에 시스템이 조용했다. 현수는 실제로도 사지희에게 자신과의 관계를 명확히 해 둘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그녀에게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피력했다.

“지희씨. 어제 저의 어떤 행동이 당신에게 그런 오해를 불러 오게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저는 지희씨와 사귈 생각이 없습니다.”

-...........

“죄송합니다.”

현수의 거절에 핸드폰 너머에서 훌쩍거리는 소리와 오열하는 소리가 덩달아 울리더니 이내 전화가 끊겼다.

“하아!”

그녀를 거부한 현수도 그다지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하지만 자신은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게 사실이고 그 사실을 그녀에게 알린 것뿐이었다. 그걸 어떻게 받아드릴 지는 순전히 그녀 몫이고 말이다.

그때 현수 앞으로 그를 자취방으로 태워다 줄 버스가 도착했다. 현수는 그 버스에 올랐고 이내 출발했다. 이때 현수는 알지 못했다. 그가 거부한 사지희로 인해 그의 앞날이 영 순탄치 않게 변하기 시작한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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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가 예상한 대로 백성조 역시 그리 호락호락한 성격은 아니었다. 자신이 당한 건 반드시 되갚아 주어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성격이었던 것이다.

백성조는 인맥이 상당히 넓고 또 많았다. 그리고 그 중 공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높은 지위에 있는 분도 있었다. 백성조는 바로 그 분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즉각 반응이 있었다.

서울 지검의 한 검사가 직접 수사관들과 경찰을 대동하고 배우 장석준의 집을 압수수색한 것이다.

압수수색에 필요한 게 법원의 영장인데 그것 까지 일사천리로 나왔으니 말 다했다고 보면 됐다.

수색 결과 장석준의 집에서 상당량의 마약이 나왔고 이때 검사가 장석준이 현재 있는 ‘H’백화점에 벌써 대기 중이던 형사들에게 전화를 넣었다.

“물건 확보했으니까 긴급 체포 하세요.”

검사의 전화를 받은 형사들이 우르르 백화점 푸드 코트 중 한 곳인 음식점으로 들어갈 때 장석준은 뒤늦게 자신의 집이 경찰에 의해 털린 걸 알게 되었다.

“씨발.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집에는 자신이 쓰기 위해 몰래 숨겨 둔 200g 가량의 필로폰이 있었다. 그게 경찰에 발각 되었다면 자신은 끝장이었다.

“근데 이 새끼들은 왜 아직 안 오는 거야?”

조급해진 장석준이 자신을 지켜 주라고 마약 조직에서 보낸 조직원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의 전화를 받지 못했다.

백성조가 현수와 구하나와 같이 커피 전문점에 들어갔을 때 잠깐 화장실을 다녀왔었다. 그때 그가 경찰에 연락을 취해서 그들을 현행 폭행 범으로 연행하게 조치를 취해 둔 것이다. 그들은 아미 지금 경찰 유치장에 얌전히 들어가 있을 터였다.

그때 갑자기 밖이 시끄러워졌다. 그리고 그가 있던 VIP룸의 문이 열리며 형사들이 등장했다.

“장석준씨. 당신을 마약 소지 혐의 및 살인 교사 혐의로 긴급 체포합니다.”

“자, 잠깐만. 변호사에게 연락 좀 합시다.”

장석준은 재빨리 잔머리를 굴렸다. 그는 자신의 변호사가 아닌 마약 조직에다 전화를 걸었다.

“갑자기 형사들이 나타나서 나보고 마약 소지와 살인 교사로 체포한다는 데 어쩌면 좋을까요? 네. 네. 알겠습니다. 그럼 경찰서에서 보도록 하죠.”

장석준은 배우답게 진짜 변호사랑 통화하는 것처럼 멋지게 연기를 하면서 진즉 자신이 잡혀 가는 걸 마약 조직에 그런 식으로 먼저 알렸다.

그가 아는 마약 조직은 정계에도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이대로 경찰서에 가더라도 그들이 힘을 써 주면 금방 나올 수도 있는 문제였고 말이다.

그렇게 통화 후 장석준의 두 손에 수갑이 채워졌고 곧장 경찰서로 연행이 되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경찰서 앞에 기자들 수십 명이 포진하고 있었다.

“장석준이다!”

장석준은 형사들이 그 앞에 나타났을 때에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뒤로 믿는 구석이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개떼처럼 몰려오는 기자들을 보고서는 얼굴이 절망에 물들었다.

‘씨발. 좆 됐다.’

장석준은 화려한 자신의 연기 인생도 오늘 까지란 걸 직감했다. 물론 기자들에게 장석준이 마약 소지와 살인 교사 혐의로 긴급 체포 될 거란 걸 언론에 알린 건 백성조의 작품이었다.

국내 최대 연예 기획사의 실세인 백성조였다. 기사들을 동원하는 건 그에게 일도 아니었다.

이로써 백성조의 복수도 끝이 났다. 하지만 그건 표면적 일뿐 이었다. 진짜 무서운 자들이 곧 백성조의 목을 옭죄어 올 거란 걸 이때 백성조는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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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가 자취방에 도착하자 시간이 11시가 다 되어 있었다. 현수는 대충 씻고 잠을 잤고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가볍게 동네 세 바퀴를 뛰었다.

“후욱후욱!”

체력지수를 끌어올리기 전에는 동네 한 바퀴만 돌아도 숨이 거칠었는데 지금은 세 바퀴를 뛰어도 전혀 지친 기색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오히려 적당히 몸이 달아올라 기분이 좋은 현수였다.

현수는 땀에 젖은 트레이닝복을 벗고 씻은 뒤 새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고 학교로 갔다.

어제보다 한 시간 빠른 9시에 축구장에 선수들이 집합하자 그 앞에 감독 이명신이 나타났다.

“어제 말했다시피 한 시간 뒤에 한서대와 연습 시합을 할 것이다. 전반전은 주전 멤버들이 뛰고 후반전부터 포지션별로 백업 멤버들이 투입 된다. 특히 백업 멤버들은 당일 컨디션이 나쁜 주전 멤버 대신에 선발 출장을 할 수도 있고 또 교체해서 들어가 뛸 수도 있는 만큼 제대로 된 기량을 선보여 주기 바란다. 내가 열심히 노력한 선수에게 반드시 기회를 주는 감독이란 건 너희들도 잘 알 것이다. 능력만 된다면 백업도 내일 당장 선발 출장을 보장해 줄 수 있다.”

이명신의 말처럼 그는 다른 것은 보지 않았다. 오로지 선수들의 능력만 보고 그 선수를 기용했고 실력이 확실히 향상 된 선수에겐 반드시 출장 기회를 주었다. 요즘은 윤성찬 때문에 그의 그런 공정한 이미지가 많이 훼손 되었지만 말이다.

현수도 아마 그런 점에서 이명신을 좋아 한 것 같았다. 현수는 초등학교 다닐 때 고아원에 보내졌다. 그리고 중학교와 고등학교, 대학에 입학 할 때까지 줄곧 고아로 살아왔다.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혼자되신 어머니가 그와 살다 결국 그를 버리고 떠나면서 그는 고아 신세가 되었다.

고아인 그는 징병검사에서 군 면제 판정을 받았다. 그거 하나는 고아로 살면서 그의 삶에서 얻어낸 유일한 행운이었다고나 할까?

어쨌든 고아인 그에게 세상은 냉담했다. 특히 축구를 시작했을 때 다른 선수들과 차별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 중에서 현수를 가장 마음을 서글프게 만든 건 바로 감독이었다.

그가 다닌 초, 중, 고등학교 축구부 감독은 다들 돈을 밝혔다. 하지만 현수는 돈이 없었기에 대신 죽어라 뛰었다.

그 결과 그가 없으면 제대로 된 경기를 할 수 없었기에 감독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현수를 계속 기용했고, 오로지 축구 실력 하나만으로 그는 체육특기생으로 연신대에 입학 할 수 있었다.

그런 현수에게 이명신 감독은 처음으로 돈을 밝히지 않는 감독이었다. 비록 그 능력은 떨어지지만 그것만으로도 현수는 그가 좋았다. 하지만 지금은 윤성찬의 문제로 그와의 관계도 끝장이 났지만 말이다.

연신대가 연습 시합을 대비해 몸 풀기 운동을 시작하고 10여분 뒤 한서대 축구부원들을 실은 한서대학교 버스가 축구장 옆에 도착했다.

“아이고. 이감독!”

“아이고. 신감독!”

친구 사이인 두 감독이 반갑게 악수를 한 후 가볍게 포옹까지 했다. 2승 5패로 한서대학은 이틀 전 U리그 본선 탈락이 확정 되었다. FA컵 역시 일찌감치 예산 탈락했고 말이다.

그렇다고 팀이 훈련을 하지 않을 순 없는 노릇이니 이명신 감독의 연습 시합 요청을 한서대의 신교용 감독이 흔쾌히 수락한 것이다.

이명신과 신교용은 같은 대학에서 선수 생활을 했고 대표 팀에서도 같이 호흡을 맞췄던 사이로 서로 얼굴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정도로 친한 사이였다.

“FA컵에서 대전을 꺾었다며? 대단해.”

“뭘. 실력이 되다보니 이긴 거지.”

“어이그. 이 뻔뻔한 놈아. 내가 무슨 칭찬을 못해요. 요즘 현수가 펄펄 날아다닌다며?”

“그 소린 어디서 들었냐?”

“벌써 입소문 다 났다. 대전에서 곧 스카우터를 너희 학교로 보낼 거라던데. 선수 단속은 하고 있는 거야?”

“당연하지.”

대답은 시원하게 했지만 이명신은 마음 한켠이 켕겼다. 요즘 현수와 사이가 극도로 나쁜 게 걸리지 않을 수 없었다.

대학에서 선수들은 언제든지 프로로 넘어 갈 수 있었다. 당연히 그 정도 실력이 되어야 가능한 얘기겠지만 말이다.

이럴 경우 팀 내 핵심선수가 빠져 나가게 됨으로 인해 팀의 전력이 확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감독은 그 핵심 선수가 빠져 나가는 걸 최대한 막아야 했다.

연신대 축구부도 마찬가지였다. 현수가 덜컥 대전에 스카우트 되어 팀을 떠나기라도 해 봐라 FA컵 16강과 U리그 본선에서 광속 탈락할 건 자명한 일이었다.

‘어떡하든 현수가 올해까지 뛰고 프로로 넘어가게 해야 해.’

하지만 문제는 현수와 그의 관계가 지금 너무 좋지 않다는 점이었다. 현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돌리게 하려면 눈엣가시 같은 놈을 빼내야 하는 게 그 가시가 너무 깊게 박혀서 도통 빠질 생각을 하지 않으니 그게 문제였다.

‘윤성찬 저놈 때문에 내가 피가 마른다. 말라.’

교무처장에겐 또 무슨 양념을 쳐 놓았는지 오늘 아침에 교무처장이 녀석의 이름을 거론하며 주전으로 뛰게 해 주라며 슬쩍 압력까지 넣었다. 그러니 더 윤성찬을 축구부에서 잘라내기 어렵게 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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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는 몸을 풀다 계속 뒤통수가 따가워서 돌아보니 한서대 선수 몇 명이 그를 쏘아보고 있는 걸 봤다.

U리그 예선전에서 수도권에 속한 한서대는 연신대와 예선 시합을 치렀다. 그 결과 2대 0으로 연신대가 이겼는데 현수가 1골 1어시스트를 했다.

그때 한서대의 허리진은 현수의 미드필더 라인에 맥없이 무너졌었다. 그 때문인지 한서대 미드필더들이 전부 현수를 갈아 마실 기세로 그를 쬐려보고 있었다. 꼭 저런 밴댕이 소갈딱지 같은 성격의 선수들이 있었다. 결국 자신들의 실력이 떨어져서 진 건 모르고 상대 선수를 시기 질투 하는 녀석들 말이다.

‘오늘 좀 힘들겠는데.’

문제는 저런 녀석들이 그라운드에 들어서면 흉기로 변한다는 점이었다. 연습 시합이지만 딱 봐도 녀석들은 오늘 거친 플레이 일변도로 나올 게 확실했다.

‘어쩐다?’

현수는 그냥 컨디션이 나쁘다며 이명신 감독에게 오늘 시합에서 자신을 빼달라고 말할까 하다가 그만 뒀다.

‘내가 여기서 먼저 굽히고 들어가면 그 인간 또 기고만장해 하겠지. 그래. 어차피 내일 모레 시합에서도 고구려대 녀석들이 거칠게 나올 게 뻔하니까 그 예행연습이라 생각하고 뛰자. 다치면 마법으로 고치면 되니. 뭐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신체를 강화하는 방법도 있고.’

현수는 예전에 그가 아니었다. 선수들에게 있어 가장 두려운 게 있다면 바로 부상이다. 하지만 현수에겐 그 부상을 치료할 수 있는 마법도 있었고 애초에 부상을 안 당할 수 있는 방책도 있었다. 하지만 역시 사람일은 모르는 법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현수는 최대한 오늘 연습 시합에서 몸을 사리고 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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