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이벌전 -->
샤워 후 라커룸에서 옷을 갈아입은 현수는 핸드폰을 확인했다. 그 사이 전화나 문자가 온 건 없었다.
시간을 확인하니 벌써 5시 20분이었다. 현수는 곧장 체육관을 빠져 나가 학교 정문으로 향했다. 구하나와 만나기로 한 신촌까지 걸어갈 생각이었던 것이다. 현수는 구하나와 신촌 ‘H’백화점 앞에서 보기로 했다.
거기까지 연신대 정문에서 걸어서 30분이면 충분했다.
현수는 부지런히 걸었고 6시 10분 전에 ‘H’백화점 앞에 도착했다. 주위를 살피며 보니 구하나를 찾았다. 그녀는 길가에서 웬 3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남자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현수는 곧장 그쪽을 향해 걸어갔다. 그 남자와 얘기 중이던 구하나도 이내 현수를 발견했다.
“오빠!”
구하나가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현수를 향해 손을 흔들었고 그걸 보고 현수도 웃으며 그녀에게 빠르게 다가갔다. 그때 구하나와 얘기 중이던 남자가 현수를 보고 눈빛을 반짝 빛냈다. 그리곤 그에게 바로 자신의 명함을 건넸다.
“저는 Sj엔터테이먼트의 스카우터 백성조라고 합니다.”
“아네.”
현수는 그 명함을 대충 받으며 생각했다.
‘구하나가 Sj엔터테이먼트에서 연습생 생활을 했었지. 그러다 결국 데뷔도 못해보고 대진 기획으로 갔고 거기서 걸 그룹 바이올렛으로 데뷔하게 되고 말이야.’
결국 구하나는 Sj엔터테이먼트에 들어가지만 거기서 데뷔하지는 못한다. 그러니 현수의 눈에 Sj엔터테이먼트의 스카우터가 그다지 반가울리 없었다.
‘뭐야?’
그런 현수를 보고 백성조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Sj엔터테이먼트가 어떤 곳인가? 국내에선 단연 최고라 불릴 수 있는 연예기획사가 아니던가?
그런 곳에서 나온 스카우터라면 다들 반응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눈앞의 여학생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그런데 그 여학생이 오빠라고 부른 남자의 반응은 영 시원찮았다. 그의 명함을 보고 무슨 귀찮은 외판원 대하듯 했던 것이다.
“지금 결정할 건 아니지?”
“응. 뭐....”
구하나는 역시 Sj엔터테이먼트에 혹한 얼굴이었다. 하긴 국내 최고 기획사이니 그럴 만도 했다. 실제로도 구하나는 이런 식으로 Sj엔터테이먼트에 거리 캐스팅되었기도 했고 말이다.
“그럼 집에 가서 가족들과 충분히 상의해 보고 결정 해.”
“그, 그래.”
“이제 저흰 이만 가 봐도 될까요?”
현수가 Sj엔터테이먼트의 스카우터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그러자 백성조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충분히 가족들과 상의하고 나서 연락 주십시오. 그런데 제가 명함을 그쪽에게도 드렸다는 걸 잊지 말아 주셨으면 하는데요.”
“네?”
현수가 그게 무슨 소리냐며 Sj엔터테이먼트의 스카우터를 쳐다보자 백성조가 현수를 보고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쪽, 이거 죄송합니다. 이름이?”
“강현수입니다.”
“네. 현수씨도 저희가 영입했으면 했어요.”
“저를요?”
“네.”
“하지만 저는 노래도 춤도 그다지 재능이.....”
“저희 Sj엔터테이먼트는 가수뿐 아니라 연기자와 모델도 양성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그쪽에서 절 영입해서 연기자나 모델로 키워 주겠단 겁니까?”
“네. 카메라 테스트를 비롯해서 적성 검사를 해 봐야하겠지만 충분히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신선한 마스크입니다.”
연예인이 될 거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현수다 보니 Sj엔터테이먼트의 스카우터의 제안은 사실 꽤나 충격적이었다.
“우와. 그럼 오빠랑 저랑 같이 Sj엔터테이먼트에 들어가는 거예요?”
구하나는 마치 둘 다 Sj엔터테이먼트 소속 연예인이라도 된 듯 들떠서 말했다.
“네. 두 분의 가능성은 본사에서 테스트 해 봐야겠지만 제 눈은 비교적 정확한 편이거든요. 전 확신합니다. 두 분이 저희 회사를 빛내 줄 스타가 될 거란 걸 말입니다.”
스카우터는 말 그대로 쓸 만한 인재를 영입하는 사람이다. 인재를 자기 회사로 데려가기 위해 무슨 립 서비스인들 못하랴.
현수는 눈앞 Sj엔터테이먼트의 스카우터가 그런 부류임을 한눈에 알아 봤지만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는 구하나는 달랐다.
“어머. 내가 스타가 된다니.....”
단단히 스타병에 걸린 것으로 보이는 구하나를 보며 현수의 입에서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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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는 Sj엔터테이먼트의 스카우터에게 생각해 보고 연락드리겠다고 말한 뒤 빨리 구하나를 데리고 그 자리를 뜨려고 했다. 그 스카우터가 갑자기 전화를 받기 전까진 말이다.
Sj엔터테이먼트의 스카우터 백성조는 사실 단순한 스카우터가 아니었다. 그는 올 초부터 Sj엔터테이먼트의 기획실장 자리를 꿰찬 야심만만한 인물이었다.
그는 대한민국의 아이돌과 배우, 모델을 전 세계 시장에 널리 알릴 당찬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 그걸 이루기 위해 새롭고 참신한 인재를 찾고 있었는데 그의 눈에 띠는 인물이 당최 없었다. 그런데 오늘 길거리에서 그의 눈에 딱 꽂힌 남녀를 찾아 낸 것이다.
백성조는 그 둘을 지금 당장이라도 Sj엔터테이먼트로 데려가서 그들을 가능성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런데 그에게는 이미 선약이 있었다.
바로 배우 장석준과 만나기로 한 것이다. 장석준은 현재 소속 된 회사와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하면서 ‘FA대어’로 중대형 연예기획사들에서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백성조는 바로 그 장석준을 Sj엔터테이먼트로 영입할 생각으로 오늘 그와 어렵게 만남의 자리를 만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장석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네. 지금 백화점 앞입니다. 바로 올라가.....죄송합니다. 물론 알죠. 대한민국에서 연기자 장석준을 모르면 간첩 아니겠습니까? 네. 네. 5분 안에 가겠습니다.”
백성조는 통화를 끝내자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소문이 사실인 모양이었다. 장석준이 연기는 잘 할지 모르지만 그 인성은 별로라고 말이다.
“지금 제가 일이 있어서 바로 가 봐야 합니다. 잘 생각해 보시고 꼭 연락 주십시오.”
백성조가 그 말을 눈앞의 남녀에게 하고 막 몸을 돌리려 할 때였다.
“지금 배우 장석준을 만나러 가시는 겁니까?”
갑자기 백성조가 영입 의사를 내 비쳤던 남녀 중 남자가 백성조에게 물었다.
“네. 그런데요?”
“혹시 지금 그를 영입하려고 만나시려는 거라면 그러지 마십시오.”
“네?”
“그는 마약중독잡니다.”
“뭐, 뭐라고요?”
현수는 2007년 연말에 일어난 대형 마약 스캔들이 생각났다. 정재계인사는 물론 연예인들까지 다수 개입 된 그 스캔들은 워낙 시끄러웠기에 일본에서 활약하던 현수도 알 정도였다. 그 마약 스캔들에 가장 제일 먼저 이름이 거론 된 것이 바로 배우 장석준이었기에 현수도 그건 확실히 알았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 말 후 남녀는 백성조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백성조는 일단 백화점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회사에 연락을 넣었다.
“장석준이 마약에 손대고 있단 얘기가 있던데 알아 봐.”
연예계의 추문은 확인해 보면 금방 알 수 있었다. 그 연예인의 측근들을 추적해 들어가다 보면 진실을 알아 낼 수 있으니 말이다.
장석준도 매니저를 여럿 갈아치웠다. 그 매니저들에게 연락을 해보면 강현수란 남자가 한 말이 사실인지 아니면 잘못 알고 있는 건지 금방 알 수 있을 터였다.
백성조는 그 진실 여부를 알아내는 데 제법 시간이 걸릴 줄 알았다. 하지만 9층에 위치한 백화점 푸드 코트에 들어섰을 때 벌써 회사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실장님. 그 말 사실인 거 같습니다.
“허어!”
백성조는 기가 찼다. 생각 같아서는 장석준을 만나지 않고 이대로 돌아가 버리고 싶었지만 그를 먼저 보자고 한 것이 자신이니 일단 예의상 그가 말한 가게로 향했다.
그 가게는 장석준의 친형이 하는 가게로 그 가게 안의 특실에서 장석준이 백성조를 기다리고 있었다.
“5분 만에 온다더니 7분이나 지났군요.”
백성조가 그 안에 들어서자 장석준이 싸늘하게 말했다. 보통 이런 식으로 말하면 허리부터 굽히고 들어와야 정상인데 백성조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는지 허리를 곧게 편 체 장석준에게 말했다.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많다보니..... 앉아도 되죠?”
백성조는 장석준이 앉으라는 말도 하지 않았는데 알아서 그 맞은편에 앉았다. 그런 백성조를 장석준이 황당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지금 뭐하자는 겁니까?”
장석준이 불쾌한 어조로 백성조를 쏘아보며 얘기했다. 하지만 백성조는 그런 장석준의 말은 전혀 개의치 않은 듯 자기 할 말을 했다.
“우선 저희 Sj엔터테이먼트에서 장석준씨를 영입할 의사가 전혀 없음을 이 자리에서 밝힙니다.”
“뭐, 뭐라고요?”
“저희가 겉만 보고 속을 보지 못한 점에 대해선 통렬하게 자기반성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 후 백성조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곧장 그곳을 빠져 나왔다.
“저런 미친.......”
뒤쪽에서 장석준의 다양한 욕설이 들려 왔지만 백성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장 그 가게를 나왔다. 그런 그의 뇌리에 장석준에 대해 경고의 말을 해 준 강현수의 얼굴이 계속 떠올랐다.
‘뭔가 묘한 매력이 있단 말이야.’
여학생은 몰라도 강현수란 그 남자에게 백성조는 촉이 왔다. 뭔가 대형 사고를 칠 인물이 될 거란 느낌이 아주 강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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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나는 현수를 데리고 근처 재래시장 갔다.
“저기에요.”
그녀는 현수를 그곳 먹자골목으로 끌고 들어갔다.
“여기서 먹어야 싸고 푸짐하게 먹을 수 있어요.”
현수는 굳이 이런 곳이 아니라도 충분히 돈이 있었기에 분위기 있는 곳으로 구하나를 데려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구하나는 현수가 돈이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골목 안 단골 가게로 들어가더니 떡하니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오빠. 빨리 와서 앉아요. 이모! 여기 순대 떡볶이 2인분요. 그리고 사이다 1병도요.”
현수가 자리 앉기 무섭게 구하나가 주문부터 해버렸다.
“일단 그것부터 먹고 메인 메뉴를 시켜요.”
“메인 메뉴?”
“네. 여기 잡채밥이 끝내 주거든요.”
구하나가 주문하기 무섭게 순대가 떡볶이가 나왔는데 그 양이 제법 되어 보였다.
“먹어요.”
현수는 설마 했다. 구하나는 그 순대와 떡볶이를 금방 해치웠다. 현수는 몇 개먹지도 못했는데 말이다.
“이모. 우리 잡채밥 두 개 주세요. 아! 하나는 곱빼기로요.”
현수가 주문한 구하나에게 말했다.
“하나야. 오빤 곱빼기 안 먹어도 되는데.”
“네? 그건 제건데요.”
구하나는 딱 봐도 마른 것이 40kg이 될까 말까한 체형이었다. 그런데 저런 엄청난 먹성이라니. 그러고 보니 그녀 집에서 같이 식사를 했을 때 그녀가 먼저 수저를 내려놓은 걸 본적이 없었다.
현수가 구하나의 먹성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을 때 그의 머릿속에 시스템의 음성이 울려왔다.
[띠링! 돌발 퀘스트. Sj엔터테이먼트의 실세 백성조 실장이 당신을 주목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와 친분을 쌓으세요.]
‘뭐?’
현수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이게 무슨 개뼈다귀 같은 소리야?’
자신은 축구선수였다. 그런 그가 뭣 때문에 연예 기획사의 실세와 친분을 쌓는단 말인가? 그 의문에 바로 시스템이 답 해 왔다.
[의뢰인께서는 이왕 당신이 백성조와 안면을 텄으니 친한 사이로 발전해서 그를 통해 Sj엔터테이먼트 소속 걸 그룹 멤버들을 비롯해서 여자 연기자들과 만나기를 희망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나로 하여금 여자 연예인들을 만나게 해서 의뢰자가 나름 대리 만족이라도 느끼겠다 이건가?’
[그런 의도인 건 맞습니다. 참고로 돌발 퀘스트인 만큼 빠른 시간에 의뢰를 완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팁이 있는데 들으시겠습니까?]
‘뭔데?’
현수가 수락하자 시스템이 바로 말했다.
[이번 의뢰자께서 거신 성공 포인트가 제법 큽니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현수가 중얼거렸다.
“그럼 당연히 해야지.”
“네? 오빠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아, 아니. 별 말 아니야.”
그때 가게 아주머니가 잡채밥 두 개를 들고 나타났다. 그걸 본 순간 구하나는 좀 전 현수가 중얼거린 소리 따윈 까맣게 잊어 버렸다.
“후루룹.... 쩝쩝쩝.....”
접시에 수북이 쌓인 잡채들이 점점 사라져 가더니 이내 바닥을 드러냈다. 구하나는 그걸 다 먹고 사이다까지 원샷한 뒤 말했다.
“이제 좀 배가 찼네. 오빠. 우리 후식 먹으러 가요.”
구하나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걸 보고 현수는 반도 먹지 못한 잡채를 두고 일어나야만 했다. 그녀에게 계산 까지 시킬 순 없는 노릇이었으니 말이다. 다행히 구하나는 계산까지 자기가 살 생각은 없었던 모양이었다.
현수는 저렴한 음식 값을 계산하고 그 가게를 나섰다.
“저쪽으로 가요.”
그런 그의 팔에 구하나가 다정하게 팔짱을 끼며 말했다. 웬만해서 얼굴 붉힌 적이 없는 현수지만 미래에 그가 좋아했던 걸 그룹 멤버가 팔짱을 끼자 두 볼이 불그스름해졌다.
구하나는 현수를 붕어빵 아이스크림을 파는 곳으로 끌고 갔다. 거기서 안에 아이스크림이 들어 있는 붕어빵을 하나씩 챙겨 들고 시장을 나선 두 사람은 지름길은 골목길을 통해 큰 길로 나가려 했다.
“아아악!”
그때 막다른 골목 안쪽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현수가 힐끗 그쪽을 쳐다보자 눈에 익은 남자가 덩치 좋은 남자 세 명에게 일방적으로 구타를 당하고 있었다.
“어? 저 사람은.....”
현수 옆의 구하나도 그 사람을 바로 알아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