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수 -->
현수는 사지희에게서 전화가 걸려오자 ‘아차’ 싶었다. 그녀에게 시합 끝나고 전화하기로 한 게 그제야 떠올랐던 것이다.
현수는 안 그래도 생리를 시작하며 예민해진 혜미가 들을까 싶어 오피스텔 한쪽 구석으로 가서 사지희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네. 지희씨.”
-현수씨! 축하 드려요. 축구 이기셨더군요.
“아네. 고맙습니다. 그런데 그건 어떻게 아셨어요?”
중계 한 경기도 아니었다. 서울에서 한 경기도 아니고 대전에서 치른 경기였다. 신문에 나도 내일 자 신문에 경기 결과가 나갈 텐데 사지희가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현수는 궁금했다.
-대전에 아시는 분이 계셔서 알 수 있었어요. 그런데 어디세요?
사지희는 현수가 연락하면 자기가 그가 있는 곳으로 오겠다고 했었다.
“저는 지금 학교에 있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지금 연신대 쪽으로 갈게요.
현수는 학교 앞에서 사지희와 만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때 화장실에서 혜미가 나왔다. 한손을 배에 올린 혜미의 얼굴은 잔뜩 찌푸린 상태였다.
현수는 그녀 눈치를 보다 그녀가 침대 쪽으로 가자 후다닥 화장실에 들어가서 대충 몸을 씻고 나왔다. 그리고 그 사이 세탁기 안에 건조까지 된 옷들을 꺼내서 속옷과 겉옷을 대충 챙겨 입고 나머지 옷들은 짐 가방에 우겨 넣은 뒤 혜미에게 말했다.
“혜미야. 나 그만 가 볼게.”
“그래.”
혜미가 쌀쌀맞게 대답했다. 이럴 땐 튀는 게 상책이었다. 현수는 곧바로 오피스텔을 나와서 털레털레 학교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면서 머릿속에 시스템을 떠올렸다.
[스테이터스]
이름: 강현수 (남, 22살)
칭호: 스위트 가이(Sweet guy)→ 호감도: 63/100, 성적 매력: 74/100
체력: 78/100
내공: 초급
격투기: 도장 챔피언, 시도배 챔피언, 유도 1단
인지능력: 50/100
학습능력: 70/100
행운지수: 40/100
이성과의 친화력: 81/100
마법: 3서클
보유 마법
1서클- 록, 라이트닝 애로우, 다크실드, 네크로 그리스
2서클- 라이트닝 쇼크, 포커스 퓨플
3서클- 아이스 포그, 에어로 봄, 라이트닝 웨이브, 체인 라이트닝, 블러드 스웰, 무스트, 홀리큐어, 리커버리, 슬립(Sleep), 일루젼(Illusion), 언락(Unlock), 사일런스(Silence), 홀드(Hold), 스킨스톤(Stone skin)
인벤토리: 불끈 반지, 신비의 물약(1회용)
보유 쿠폰: 아이템 20% 할인쿠폰, 게임 단기 무료이용 쿠폰
체력은 78로 회복 중에 있었고 이성과의 친화력이 80에서 81로 +1 상승해 있었다.
[띠링! 당신이 아는 여자들이 최근 당신께 더 친근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친화력이 +1 상승했습니다.]
생각과 동시에 시스템이 바로 설명을 해 주었다. 이럴 때 빠르면서 오늘 경기 끝나고 퀘스트 보상은 왜 그리 늦게 해 줬는지 묻고 싶었다.
[...........]
“역시.....”
예상대로 시스템은 그 물음에 침묵했다. 현수는 그제 구입한 3서클의 마법을 다시 한 번 살폈다. 오늘 저 마법 중 두 가지를 유용하게 써 먹었다. 그 덕분에 귀찮았던 윤성찬도 전반 초반에 교체 시켜 버릴 수 있었고 경기 끝나기 전 김신현의 슈팅도 막아 낼 수 있었다.
“후후후. 이런 걸 두고 선견지명이란 거지.”
만약 현수가 그제 그 다섯 가지 마법을 구입하지 않았다면 오늘 경기 결과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그 만큼 연신대의 전력으로 K리그 클래식 중위권의 대전 시티즌은 잡는 건 어려웠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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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경험을 한 혜선은 주말 동안 자신의 오피스텔 안에서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가지 않았다.
송태섭이란 클럽 아레나의 책임자에게 된통 당한 뒤 혜선은 병원 치료를 받으며 치를 떨었다. 병원에선 의사가 이상야릇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
“남자 친구가 좀 크신가 봐요?”
“네. 뭐....”
혜선은 그곳이 찢어진 곳을 꿰매고 나서 병원을 나섰다. 집으로 가는 중에 마취가 풀린 탓에 아파 죽을 뻔한 그녀는 송태섭이란 남자는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병원에 갔다 오피스텔에 들어간 뒤 그녀는 아예 핸드폰 배터리를 빼 두었다.
“어디 맨날 전화해 봐라. 내가 받나. 그나저나 번호는 바꾸는 게 좋겠지?”
혜선은 내일 당장 자신이 산 핸드폰 매장으로 가서 번호를 바꾸기로 했다.
“그나저나 점심엔 뭐 먹지?”
중국 음식도 한 그릇은 배달이 되지 않기에 혜선은 고심 끝에 그녀가 사는 오피스텔 맞은 편 돈가스 전문점에 가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편한 복장으로 지갑만 챙겨 든 그녀가 막 오피스텔을 나가 횡단보도 앞에 섰을 때였다. 웬 시커먼 국산 승용차가 횡단보도 한 가운데 떡 하니 차를 세웠다. 그리고 그 안에서 건장한 남자들이 우르르 내렸는데 그 중에 그녀도 아는 얼굴이 있었다.
“당, 당신은......”
혜선은 덜덜 몸을 떨다 홱 뒤돌아서 자신의 오피스텔로 도망쳤다. 하지만 여자인 그녀가 뛰어봐야 얼마나 달아나겠는가? 오피스텔 입구 앞에서 건장한 남자들에게 잡힌 그녀가 한 남자 앞에 끌려 갔다.
“여어. 오랜 만이야.”
송태섭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만나서 반가운 듯 혜선을 향해 손을 들어 보였다. 하지만 혜선은 그가 하나도 반갑지 않았다.
“이게 무슨 짓이에요?”
혜선이 버럭 소리쳤다. 마치 누가 들으라는 듯 말이다. 그녀는 주위 사람들이 이 모습을 보고 경찰에 연락해 주길 바랐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생각은 건장한 남자들의 다음 반응에 바로 물거품이 되었다.
차차차착!
건장한 남자들이 호주머니에서 잭나이프를 꺼냈고 거기서 시퍼런 칼날이 튀어 나오자 그걸 본 주위 사람들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했다. 그때 건장한 남자들 중 제일 험악하게 생긴 남자 둘이 나서서 소리쳤다.
“뱃대지에 칼 꼬피고 시프모 경찰에 전화 해 봐라.”
“그냥 가던 길 가쇼잉.”
그 말을 듣고 난 주위 사람들은 잔뜩 겁에 질려 달아나기 급급했다. 오피스텔의 경비 아저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휑하니 지하로 들어 가버렸다. 그 모습을 보고 기가 확 꺾인 혜선이 송태섭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왜, 왜 이러세요?”
“왜 이러는지는 네가 더 잘 알 텐데? 왜 내 전화 씹었어?”
“배, 배터리를 빼 놔서 전화가 왔는지도 몰랐어요.”
“그 새끼 불러 내.”
“네?”
송태섭이 여기까지 온 건 혜선을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 강현수란 놈 말이야.”
“현수씨요?”
“그래. 그 새끼 네가 불러내라고.”
“하, 하지만 저한테는 그 사람 연락처가....”
“네 친구 있잖아. 사지희라는.”
송태섭은 강현수의 친구라는 그 병민이란 놈을 족쳐서 강현수가 사는 곳의 주소와 녀석의 핸드폰 번호를 알아냈었다. 그런데 그 주소지에 가보니 그 놈이 거기 사는 건 맞는데 어제 오늘 녀석은 집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수하 녀석들이 밤새 그 집 주위를 지켰으니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전화를 걸었더니 다른 번호였다. 그 병민이란 놈이 엉터리 전화번호를 가르쳐 준 것이다.
화난 송태섭은 그래서 혜선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그녀도 전화를 받지 않자 그녀에 대해 수소문을 했고 클럽 빠순이로 워낙 유명했던 그녀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알았어요. 지희 한데 전화해 볼게요.”
혜선은 사지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녀는 혜선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빌어먹을. 친구 맞아?”
“죄, 죄송해요.”
송태섭은 자기 수하들을 작살 내 놓은 대학교에 다니는 축구 선수 하나를 어쩌지 못해서 이러고 있는 자신이 한심했다.
“가만. 그 새끼 축구 선수랬지?”
“네. 연신대 축구선수에요.”
“그럼 연신대 찾아가면 되겠네.”
그놈 찾을 방법을 찾아 낸 송태섭이 그제야 웃으며 혜선에게 말했다.
“넌 따라 와.”
“아, 안 돼요. 싫어요. 못 따라가.”
그녀가 강하게 거부하자 주위 잭나이프를 든 조폭들이 그녀를 에워쌌다.
“제발..... 진짜 안 돼요. 그 때문에 병원도 다녀왔다고요. 오빠들..... 살려 주세요. 네?”
혜선의 애원하는 소리가 들리고 잠시 뒤 그녀는 의식을 잃은 체 한 조폭의 어깨에 걸쳐진 체 그들이 타고 온 시커먼 차에 짐짝처럼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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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에게 전화 오기를 기다리며 외출 준비를 다 끝내 놓고 언제든 나갈 준비를 해 놓고 있었던 사지희였다. 현수에게 전화를 걸고 통화를 끝낸 그녀가 다급히 양동호를 보고 말했다.
“오빠. 빨리 가요.”
그녀가 거실을 가로 질러 현관으로 나가자 양동호가 바로 그녀를 따라 움직였다. 그녀가 집 밖으로 나가자 승용차 두 대가 대기 중이었다.
한 대는 사지희가 탈 차고 다른 한 대는 그녀를 경호할 인원이 탈 차였다. 그때 양동호가 사지희가 탈 차의 운전석으로 가서 차창을 두드렸다. 그러자 그 차의 운전자가 차창을 내리자 양동호가 말했다.
“내려.”
“네?”
“내리라고. 내가 운전한다.”
그 말에 운전자가 차에서 내리자 양동호가 뒤쪽 경호 차량의 인원들에게 말했다.
“너희도 여기 남아.”
“네?”
양동호의 수하들이자 사지희의 경호원들인 그들이 놀란 얼굴로 양동호를 쳐다보았다.
“이건 명령이다.”
양동호의 그 수하들이 바로 머리를 숙이며 복종을 표시했다. 저들은 양동호의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저들 입에서 이 일이 밖으로 새어 나가는 일은 없을 터였다.
“타라.”
양동호의 말에 사지희가 생긋 웃으며 뒤 좌석에 탔고 그걸 보고 양동호가 운전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양동호는 사지희가 뒤에서 벨트를 착용하는 걸 보고 차를 몰고 연신대로 향했다.
그들이 탄 차는 20분 쯤 뒤 연세대 정문 앞에 도착했다.
“저기 있어요.”
사지희는 귀신 같이 현수를 찾아냈다. 그녀는 곧장 차에서 내려서 현수가 있는 쪽으로 쪼르르 뛰어갔다. 양동호는 차를 정차 시켜 두고 지희 뒤를 따라 움직였다.
“현수씨!”
사지희가 현수를 불렀고 그녀를 발견한 현수가 웃으며 그녀를 향해 움직였다. 두 사람은 연신대 정문 한 가운데에서 마주쳤다.
“빨리 오셨네요.”
“집이 요 근처에 있거든요.”
사실 평창동에서 연신대 까지는 도보로 15분 거리다. 그런데 차로 움직이면 20분이나 걸린다. 도로도 막히고 신호도 많아서 그렇다. 그때 현수의 시선이 사지희 뒤로 향했다.
그제 밤 클럽 아레나의 룸 안에서 문짝을 뜯어 버리고 안으로 난입해 들어 온 그 남자였다.
그런데 그 주위에 다른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혼자 왔다.”
그가 현수를 보고 말했다. 현수가 그 주위를 살피는 걸 간파한 모양이었다.
‘예사 사람이 아니다.’
현수는 그에게서 한 자루 잘 벼려진 칼을 보는 것 같았다.
“여기 계속 있을 건가?”
그가 현수를 보고 물었다.
“우리 저녁 먹고 영화 봐요.”
사지희가 현수를 보고 불쑥 말했다. 현수는 사실 아무 생각 없이 사지희를 만나러 나온 터였다. 그에 비해 사지희는 어제부터 지금까지 현수를 만나면 뭘 할지 생각하고 있었다.
현수는 저녁은 몰라도 영화는 그다지 사지희와 같이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날카로운 예기가 그를 짓눌러 오자 어쩔 수 없이 대답했다.
“그, 그러죠.”
대답을 하면서 현수는 그 남자를 쳐다보았다. 현수가 대답함과 동시에 그를 짓누르는 기운도 사라졌다. 현수는 그게 저 남자가 자신에게 내뿜은 살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 남자..... 강하다.’
그제 밤에는 주위에 여러 사람이 있어서 몰랐지만 지금 그와 마주하고 있으니 알 거 같았다. 그때 시스템에서 반응이 왔다.
[띠링! 돌발 퀘스트! 내공 고수 양동호로부터 인정을 받아라. 양동호는 대한민국에 몇 되지 않는 내공 소유자입니다. 그에게 인정을 받는다면 더 높은 수준의 고수와 연결 될 수 있습니다.]
‘내공?’
순간 현수의 머릿속에 무협이 떠올랐다. 무협은 구비문학(口碑文學)으로 그 완성이 현대에 이루어진 무협은 설화나 민담을 통해 전해지던 이야기를 소설화한 것이다.
무림(武林)의 비사(秘事)를 직접, 간접 경험하거나 전해들은 이들이 옛날이야기를 풀어놓듯이 후손들에게 전하여 온 것을, 현대에 문화(소설, 영화 등)로 완성한 것이 무협이다.
그러니까 무협은 허구다. 그런데 내공이라니? 이런 황당할 노릇이 있나?
[실제 내공은 존재 합니다. 익힐 수 있는 사람이 드물고 제대로 된 내공심법이 거의 다 소실되고 남아 있지 않을 뿐입니다.]
하긴 그러고 보니 시스템에도 내공이 있고 무공이 있지 않은가? 그뿐인가? 마법은 또 어떻고?
현수는 자기 이외에 시스템에서나 나오는 능력을 가진 사람의 등장에 살짝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그런 내공 고수에게 인정을 받으란 건 무슨 뜻이지? 게다가 더 높은 수준의 고수라니?’
[띠링! 말 그대로 양동호에게 무공으로 인정을 받으란 소립니다. 여기서 무공은 무술과 다릅니다. 무술은 물리력을 사용하는 기술을 가리키며 어느 정도 익히면 사용할 수 있는 운동기술을 가리키지만 무공은 상상으로만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는 것으로서 물리력과 비 물리력 모두를 사용합니다. 즉 무공은 장풍이나 경공, 전음 등의 비 물리력을 포함한 무술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렇게 양동호에게 인정을 받으면 그의 사형과 그에게 무공을 전수한 사승을 만날 수 있게 됩니다.]
‘뭐? 무공으로 인정을 받아?’
한마디로 포인트를 사용해서 내공을 익히고 무공을 구입하란 소리였다. 이건 퀘스트가 아니라 시스템이 현수에게 포인트를 강매하고 있었다.
현수는 이 시스템의 의도하는 게 뭔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대체 시스템이 그에게 원하는 게 뭐란 말인가?
현수가 시스템의 얘기에 빠져 멍하게 있을 때 사지희가 그에게 다가와서 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
“현수씨. 가요.”
“네? 아네. 가시죠.”
현수는 사지희와 같이 그들이 타고 온 승용차로 향했다. 그 남자는 현수와 사지희가 차에 타는 걸 확인하고 운전석에 올랐다.
“오빠. 우리 신촌 영화 하우스로 가요.”
사지희의 말에 그 남자가 묵묵히 차를 근처 신촌 방향으로 향해 몰았다.
“그 맞은편에 복합 쇼핑 몰이 있는 데 그곳 씨푸드 전문점에 음식이 괜찮거든요. 거기서 저녁을 먹고 나서..............”
가는 동안 사지희가 쉬지 않고 말을 했지만 그 말이 현수는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직 앞에 앉아서 차를 운전하는 양동호에게 쏠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