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A컵 (본선) -->
사지희와 헤어진 현수는 큰길가로 가서 택시를 잡았다. 12시가 넘은 관계로 버스와 지하철 모두 끊긴 터라 대중교통을 이용할 순 없었다.
“이거 차를 사던지 해야지.”
전에 일본 구단과 계약하고 J1리그에서 뛸 때 현수는 가장 먼저 자동차부터 구입했었다. 작은 경차였는데 그때부터 뚜벅이 신세는 쫑 냈던 현수였다.
한데 지금 이게 뭔가? 일본에 안 간 건 분명 잘한 일인데 신세가 그다지 좋아 진 것은 없었다.
물론 시스템의 포인트를 현금화 하면 차는 얼마든지 구입이 가능했다. 하지만 포인트로 차를 산다는 건 좀 아까웠다. 아직 그가 구입해야 할 시스템의 능력과 아이템은 많고 그걸 구입하는 데 필요한 포인트를 획득하는 건 녹록치 않으니 말이다.
“택시!”
현수가 소리치며 손을 흔들어 대자 그제야 택시 한 대가 그 앞에 정차했다. 현수는 바로 뒷좌석에 올라탔다. 자취방이 있는 동네를 말하자 택시가 이내 출발했다. 그때 막 한통의 문자가 날아왔다. 확인하니 사지희였다.
[조심해서 들어가시고 시합 끝나면 꼭 연락 주세요.]
현수는 답장으로 ‘네. 꼭 연락드리겠습니다. 잘 자세요’ 라고 보낸 뒤 내친 김에 친구인 병민에게도 문자를 보냈다. 의미심장하게 ‘잘해 봐.’라고 말이다. 그랬더니 5분쯤 뒤 녀석이 답장을 보내왔다.
[고맙다.]
그리고 첨부 사진이 메일로 들어왔다.
“호오! 이 자식 봐라?”
사진은 꽐라가 된 혜선이 병민의 어깨에 기대 있는 장면이었다. 그 뒤쪽 배경으로 화려한 네온사인이 있었는데 모텔 간판이었다. 현수는 그의 친구 병민이 생각보다 영악한 놈이란 걸 오늘 알게 되었다.
혜선과 술을 마셔 될 때는 몰랐는데 그때부터 목적을 가지고 혜선에게 술을 더 많이 먹인 것이다. 물론 자신은 무슨 수를 써서 술을 안 마시는 쪽으로 연기를 했을 테고 말이다.
“음흉한 자식.”
현수는 혜선 같이 미인과 오늘 밤 재미를 볼 병민을 생각하니 부럽기도 하고 또 친구라면서 녀석에 대해 정작 자신이 아는 게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같이 다녔지만 축구하고 간식 사먹고 집에 가는 거 말고 녀석과 진지하게 얘기해 본 적도 없군.”
그렇게 따지면 병민은 친구라기보다 축구 동료일 뿐이었다. 생각해 보니 현수에게 제대로 된 친구는.... 없었다. 그 동안 쭉 축구만 하고 살아 온 삶이었다. 재미 하나도 없는.
“이제 부터라도 친구 만들면 되지 뭐.”
현수는 앞으로 다방면으로 다가 친구를 여러 명 사귀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그 친구가 여친 위주가 될 가능성이 높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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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가 자취방이 있는 동네에 거의 도착할 무렵 현수의 머릿속에 시스템의 목소리가 울렸다.
[축하합니다. 돌발 퀘스트를 완수하셨습니다. 그에 따른 성공 포인트를 지급합니다.]
[띠링! 20,000포인트 획득. 남은 포인트 362,090]
“오오!”
2만 포인트면 퀘스트 성공 보수로는 그야 말로 꿀이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문세광의 함정을 극복해 내면서 그에게 제대로 복수를 한 당신에게 추가 포인트가 지급 됩니다.]
[띠링! 10,000포인트 획득. 남은 포인트 372,090]
추가 만 포인트 지급에 현수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번졌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보상이 또 있었다.
[당신의 축구 후원자께서 내일 시합을 위해 여자와의 관계를 참아 낸 당신의 인내력에 경의를 표하며 특별 보상 포인트를 지급합니다.]
‘그렇지.’
현수의 축구 후원자는 포인트에 결코 인색하지 않았다. 그래서 현수도 절로 기대가 됐다.
[띠링! 30,000포인트 획득. 남은 포인트 402,090]
‘나이스! 3만 포인트라니.’
“푸하하하하!”
현수는 너무 기분이 좋아서 실없이 웃었고 택시 기사가 백미러로 그런 현수를 이상한 눈으로 힐끗거리며 쳐다보았다.
잠시 뒤 현수는 상기 된 얼굴로 택시에서 내렸다. 자취방이 있는 주택까지 가도 되는 데 그냥 근처 큰길가에서 택시 기사에게 내려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택시 기사가 20,500원 나온 택시비에서 500원을 깎아줬다.
현수는 자취방으로 터덜터덜 걸어가며 혼자 중얼 거렸다.
“돌발 퀘스트의 성공 포인트와 추가 포인트, 특별 보상 포인트까지 합쳐서 6만 포인트를 획득했군. 6만 포인트면..... 5가지 3서클 마법을 구입할 수 있겠어.”
현수는 슬립(Sleep) 마법을 구입하면서 3서클 마법을 자세히 보게 되었고 그 중 그에게 꼭 필요하다 생각되는 마법을 머리에 기억해 두었다. 현수는 그 중 5가지를 지금 바로 구입할 생각이었다.
“어디 보자.”
현수가 시스템을 머릿속에 떠올리자 그의 눈앞에 상태창이 떴다.
[스테이터스]
이름: 강현수 (남, 22살)
칭호: 스위트 가이(Sweet guy)→ 호감도: 62/100, 성적 매력: 74/100
체력: 80/100
내공: 초급
격투기: 도장 챔피언, 시도배 챔피언, 유도 1단
인지능력: 50/100
학습능력: 70/100
행운지수: 40/100
이성과의 친화력: 80/100
마법: 3서클
보유 마법
1서클- 록, 라이트닝 애로우, 다크실드, 네크로 그리스
2서클- 라이트닝 쇼크, 포커스 퓨플
3서클- 아이스 포그, 에어로 봄, 라이트닝 웨이브, 체인 라이트닝, 블러드 스웰, 무스트, 홀리큐어, 리커버리, 슬립(Sleep)
인벤토리: 카멜레온 축구복, 날쌘 돌이 축구화, 불끈 반지, 신비의 물약(1회용)
보유 쿠폰: 아이템 20% 할인쿠폰, 게임 단기 무료이용 쿠폰
현수는 눈앞에 뜬 상태 창에서 마법을 손가락 끝으로 터치했다. 그러자 바로 마법 창이 떴다.
[마법]
1. 마나 서클
2. 백 마법
3. 흑마법
4. 특수 마법(신성 마법, 보조 마법, 언능 마법, 융합 마법 등등)
현수는 백 마법을 클릭했고 3서클 마법 창을 열었다.
3. 3서클 마법: 파이어 웨이브(Fire Wave), 프로즌 웨이브(Frozen Wave), 윈드 피스트(Wind Fist), 체인 라이트닝(Chain Lightning), 캔슬레이션(Cancellation), 메모라이즈(Memorize), 헤이스트(Haste), 일루젼(Illusion), 블라인드(Blind) .............
메시지(Message), 바인드(Bind), 슬립(Sleep), 스킨스톤(Stone skin), 스트렝스(strength), 슬로우(slow), 홀드(Hold), 샤프니스(sharpness) 이글아이(eagle eye) .............
그 중 현수는 앞서 봐 둔 마법 중 5가지를 골라냈다. 그리고 차례로 그 마법을 구입했다.
[일루젼(Illusion)- 3서클]
환상계 마법, 마법대상에게 환상을 보여 준다. 획득 포인트 +12,000
[띠링! 12,000포인트 결제. 남은 포인트 390,090]
[언락(Unlock)- 3서클]
기타계 마법, 잠긴 건 전부 풀어낸다. 획득 포인트 +12,000
[띠링! 12,000포인트 결제. 남은 포인트 378,090]
[사일런스(Silence)- 3서클]
기타계마법, 마법대상을 침묵하게 만든다. 획득 포인트 +12,000
[띠링! 12,000포인트 결제. 남은 포인트 366,090]
[홀드(Hold)- 3서클]
중력계마법, 마법대상을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획득 포인트 +12,000
[띠링! 12,000포인트 결제. 남은 포인트 354,090]
[스킨스톤(Stone skin)- 3서클]
물질계마법, 마법대상의 피부를 돌처럼 딱딱하게 한다. 획득 포인트 +12,000
[띠링! 12,000포인트 결제. 남은 포인트 342,090]
3서클 마법을 구입 할 때마다 포인트가 줄어 나갔지만 현수가 생각키에 꼭 필요한 마법들이라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먼저 일루젼(Illusion)의 경우는 일상에서 뿐 아니라 축구에서도 이용할 수 있는 마법이었다.
드리블 돌파 할 때나 상대 공격수에게 다른 환상을 보여줘서 공을 빼앗는 등으로 말이다.
그 다음 언락(Unlock)은 잠긴 문을 여는 데 딱 좋았고 사일런스(Silence)와 홀드(Hold)는 싸울 때 상대의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게 하고 또 상대를 잠깐 묶어 둘 때 필요했다. 마지막으로 스킨스톤(Stone skin)은 싸울 때 몸을 보호할 뿐 아니라 축구에서 거친 플레이를 하는 상대에 대비해서 써 먹기 유용한 마법이었다.
그렇게 5가지 마법을 구입하고 나서 현수는 먹지 않아도 배부르다는 말이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소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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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가 자기 자취방에 도착해서 씻고 나자 벌써 새벽 1시였다. 현수는 서둘러 이부자리를 펴고 누웠다. 피곤했던지 눈을 감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현수는 깊게 잠에 빠져 들었다.
다음 날 아침 현수는 8시에 깨어서 아침으로 어제 저녁에 먹으려 했던 라면을 끓여 먹었다.
아침부터 라면을 먹어서 그런지 속이 부글거렸지만 현수는 자신의 튼튼한 위장을 믿고 짐 가방을 챙겼다.
오늘 내일 갈아입을 속옷과 양말, 편하게 입을 옷가지들로 간단히 짐 가방을 싼 현수는 자취방을 나섰다. 버스를 타고 학교에 도착해서 축구장으로 갔는데 벌써 와 있는 선수들이 있었다.
시간을 보니 9시 45분이었다. 10시까지는 아직 15분이 남은 상황. 현수는 체육관에 들어가서 그곳 커피 자판기에서 커피 한잔을 빼들고 축구장으로 향했다. 그때였다.
“현수야!”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와서 고개를 돌려보니 윤성찬이 웃으며 그에게 다가왔다. 그런데 녀석의 어깨에 짐 가방을 메고 있었다.
“너 어디 가냐?”
현수의 물음에 녀석이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나도 대전 가.”
“뭐?”
현수는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윤성찬을 쳐다보았다. 윤성찬을 그런 현수를 보고 계속 웃으며 그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윤성찬이 대전에 간다는 건 그가 23명의 엔트리에 들어갔단 소리였다. 그 결정은 오직 한 사람 이명신 감독이 하는 것이고 말이다.
“내가 윤성찬은 넣지 말라고 했을 텐데......”
이명신 감독은 이에 대해 현수에게 꼭 해명을 해야 할 터였다. 그렇지 않으면 현수와 그 사이의 신뢰가 깨질 수도 있는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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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신 감독은 학교 버스와 같이 나타났다. 그는 23명 엔트리 명단에 들어간 선수들을 버스에 태웠다. 현수는 윤성찬이 버스에 탈 때 이명신을 똑바로 쏘아보았다. 그런데 이명신이 슬그머니 그 눈길을 피했다. 그리고 현수가 버스에 탈 때 그는 윤성찬이 합류하게 된 이유에 대해 현수에게 아무 말도 없었다.
‘이거 봐라?’
순간 현수는 이명신 감독과 자신의 관계도 이제 슬슬 정리할 때가 됐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선수들이 다 타자 학교 버스는 대전을 향해 출발했다. 45인승에 선수는 23인이 타다 보니 자리는 넉넉했다.
현수도 옆자리를 비우고 편하게 이동했다. 2시간 쯤 뒤 대전 시내 한 여관에서 버스가 멈춰 섰다. 버스에서 내린 선수들은 그 여관을 숙소로 짐을 풀고 여관 옆에 딸린 식당으로 우르르 몰려가서 점심을 해결했다.
그 뒤 한 시간 쯤 휴식을 취한 뒤 다시 선수들은 대기 중이던 학교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곧장 대전 시티즌의 홈구장인 대전 월드컵 경기장으로 향했다. 경기장에 도착하자 이명신 감독이 선수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살살 뛰어라. 괜한 몸싸움 같은 것도 하지 말고. 알았지?”
“네!”
중요한 시합이 있기 전날 가볍게 하는 훈련은 항상 조심스럽게 이뤄진다. 몸이 재산인 선수들이 경기 다음으로 부상을 많이 당하는 게 바로 훈련 때이기 때문이다.
현수도 그라운드에서 뛰었지만 공은 전방과 좌우로 향했지 뒤쪽 수비수 쪽으로는 차지 않았다. 수비수로 버젓이 뛰고 있는 윤성찬에 대한 불만을 그대로 표출한 것이다.
이명신 감독도 그걸 눈치 채고 현수를 따로 불렀다.
“현수야. 뒤로도 패스 좀 해라.”
“네.”
현수가 시큰둥하니 대답했다. 그리고 돌아가서는 원래 하던 대로 전방과 좌우로만 공을 찼다.
“저 새끼가....”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는 현수가 이명신 감독도 당연히 탐탁지 않았다. 하지만 현수가 없으면 연신대는 실속이라곤 하나 없는 빈 수레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가볍게 몸 푸는 패싱 훈련을 끝내고 이명신은 세트피스 상황에서의 공격과 수비 훈련을 실시했다.
내일 시합은 FA컵 본선 진출을 하느냐 마느냐가 걸려 있는 중요한 경기였다. 때문에 반칙도 많이 할 것이도 또 많이 당할 터였다. 즉 데드볼 상황이 많이 생기게 될 것이기 때문에 이명신은 선수들에게 그때를 대비한 훈련을 시키고자 한 것이다.
키커는 당연히 팀내 킥력이 가장 정확한 현수였다. 그런데 현수가 윤성찬이 수비 보는 쪽으로는 일체 공을 차지 않았다. 그렇다보니 현수가 올려 주는 센터링은 한쪽으로 치우쳤고 공의 방향도 단조로웠다. 때문에 전혀 위협적이지 않아서 공수 모든 상황에서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현수의 그런 플레이가 이명신 감독은 당연히 불만스러웠고 훈련이 끝난 뒤 둘은 서로 말도 섞지 않았다.
팀의 주축 선수인 현수와 감독 사이에 냉기가 감돌자 자연 팀 분위기도 살얼음판 같았다.
그 이유가 윤성찬 때문인 줄 아는 연신대 선수들은 당연히 윤성찬을 보는 게 탐탁찮았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강물을 흐려 놓는다고 말이야.”
“어떻게 어제 정해진 엔트리가 하룻밤 사이 바뀐다냐?”
“그러게. 뭔 빽이 있었겠지. 아님 돈이 많거나.”
“쳇! 이거 빽이나 돈 없는 사람 어디 살겠나.”
하지만 보란 듯 이명신 감독이 윤성찬을 감싸고돌았다.
“성찬이가 요즘 컨디션도 좋고 개인 기량도 많이 늘었다. 그래서 교체 된 거니까 그런 줄 알고 엉뚱한 소리들 더는 하지 마라. 참 그리고 내일 왼쪽 수비는 장철우 말고 윤성찬이 뛴다.”
이명신 감독은 끝에 누구 들으라는 듯 일부러 큰소리로 말했다. 그 소리를 듣고 현수는 코웃음을 쳤다.
“흥!”
‘어디 해보자고.’
현수는 내일 시합에서 얼마든지 윤성찬을 물 먹일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윤성찬을 선택한 이명신 감독에게 보여 줄 생각이었다.
그가 얼마나 어리석은 선택을 했고 그것이 어떤 파장을 가져 올지 말이다. 더불어 강현수 없인 그가 이룰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단 것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