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A컵 (본선) -->
“자자. 조금만 더 뛰자. 저녁에 고기 쏜다.”
용성대 유태식 감독이 겨우 선수들을 달래서 경기는 재개 되었지만 용성대 선수들은 제대로 뛰지 못했다. 그걸 의식한 듯 연신대 선수들도 더는 무리하게 공격을 하지 않고 패스 위주로 시간을 죽였다.
경기 분위기가 이대로 끝내는 쪽으로 흐르자 현수도 더 무리해서 공격적인 경기 운영을 할 수는 없었다.
앞서 말했지만 축구는 혼자 하는 경기가 아니므로 현수는 더 많은 골을 넣고 싶었지만 팀 전체 의중을 무시할 순 없었다.
대신 자신이 밑으로 쳐지고 그 밑에 있던 중앙 수비형 미드필더인 조용식을 위로 올려 중앙 미드필더를 자리를 소화하게 한 후 자신은 후방에서 카멜레온 축구복에 장착할만한 스킬들이 뭐가 있는지 살폈다.
[마법 아이템- 카멜레온 축구복(스킬 장착형)]
축구 기술이 장착 가능한 아이템이다.
1. 장착 스킬: 인사이드 드리블, 라보나 페이크(Ravona fake), 대포 슛, 타킷 적중 프리킥, 공만 살짝 터치 태클, 바나나 킥, 타깃 맨 센터링, 타깃 맨 크로스
2. 유료 스킬(프리미엄): 언제든 구매 가능.
V자 드리블(+10,000), 백숏(+10,000), 펜텀 드리블(+10,000), 시저스 킥(+20,000), 마르세유턴(+10,000), 힐스냅(+10,000), 스텝오브콤보(+20,000), Farfusio(+20,000)............... 무 회전 슛(+20,000), 불꽃 슛(+10,000), 뒤에 눈 달린 힐 킥(+10,000), 정확한 발리킥(+10,000).......정확한 땅볼 크로스(+10,000), 감각적인 뒷공간 패스(+10,000), 정확한 얼리 크로스(+20,000), 원 바운드 헤딩(+10,000), 사각지대 헤딩(+20,000)......... 순식간에 공 뺏기(+20,000), 패스 가로채기 태클(+10,000), 파워 태클(+10,000), 태클로 공만 쏙 빼내기(+20,000) ....................
현수가 스킬을 구입하고 나면 그 빈자리는 또 다른 쓸 만한 스킬이 메웠다.
“드리블 몇 가지와 무 회전 슛, 그리고 감각적인 뒷공간 패스, 정확한 얼리 크로스는 구입했으면 좋겠는데.....”
현수가 축구 스킬 쇼핑 삼매경에 빠져 있을 때 주심이 길게 호루라기를 불었다.
삐이이익!
양 팀 모두 경기를 더 지속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관계로 주심은 추가 시간 없이 후반전 45분이 끝나자 바로 경기를 끝냈다.
용성대 유태식 감독은 주심의 휘슬 소리에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 쉬고는 상대 벤치로 향했다.
“축하합니다.”
“하하하. 고맙습니다.”
“FA컵과 U리그에서 모두 좋은 성적 올리시기 바랍니다.”
웬일로 유태식 감독이 그에게 덕담을 건네자 이명신은 기분이 좋았다. 그런 이명신에게 유태식 감독이 유들유들하게 웃으며 말했다.
“4번 강현수? 저런 선수 데리고 FA컵과 U리그 중 하나는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려야죠. 안 그럼 감독 옷 벗어야지. 안 그렇습니까?”
분명 자신을 비꼬고 비하 한 말인데 뭐라 딱히 화내기 그런 상황이라 이명신은 얼굴 표정을 굳힌 체 대꾸했다.
“그, 그렇죠. 뭐.”
“올 추계 대학축구 연맹전이 기대 되는군요. 저 친구 때문에 아마 축구계가 발칵 뒤집어 질 테니까요.”
의미심장한 그 말 후 유태식 감독은 자기 벤치로 돌아갔다. 그 사이 짐들을 챙긴 패잔병, 용성대 선수들을 이끌고 패장 유태식 감독은 쓸쓸히 전장인 연신대 축구장을 빠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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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대와의 연습 시합이 끝나고 뒷정리를 하고 나자 축구장 주위가 어스름하니 어두워졌다.
이명신 감독은 연신대 선수들을 다 모이자 그들 앞에서 말했다.
“오늘 정말 잘 뛰어줬다. 모레 있을 FA컵에서도 오늘 만큼만 뛰어 준다면 16강 진출은 무난할 것이다. 오늘 훈련은 여기까지하고 다들 집으로 돌아가서 푹 쉬고 내일 10시까지 여기로 오면 된다. 알다시피 내일 우린 대전으로 간다. 그곳에 숙소를 정하는 대로 대전 시티즌의 홈구장인 대전 월드컵 경기장으로 이동해서 그라운드 적응 훈련을 실시하도록 할 것이다. 이상.”
자신의 말을 끝낸 이명신이 먼저 자리를 뜨자 선수들도 이내 해산했다. 체육관에 위치한 축구부실로 향한 이명신은 입고 있던 저지를 벗고 출근할 때 입은 청바지에 티셔츠로 옷을 갈아입은 뒤 축구부실을 나섰다.
그는 체육관 앞 주차장에 주차 되어 있던 자신의 SUV자동차를 타고 곧장 집으로 향했다.
오늘따라 차가 밀리지 않아서 평소보다 20분은 빨리 집에 도착한 그가 현관에 들어섰을 때였다.
“이게 뭐야?”
현관 앞에 종이 가방이 일렬로 쫙 늘어서 있었는데 이명신은 그게 쇼핑 가방이며 그 가방의 디자인이 눈에 익었다.
“이건....”
이명신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럴 것이 자기 아내가 또 지름신이 걸렸는지 ‘모’ 백화점에서 거하게 쇼핑을 한 것이다.
“어머! 당신 왔어요. 오늘은 일찍 왔네?”
그의 아내가 평소완 다르게 그를 보고 화사하게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대체 이게 다 뭐냐니까?”
이명신이 버럭 화를 내며 묻자 그의 아내가 의아한 얼굴로 그에게 되물었다.
“뭐긴요. 당신이 보내 준 상품권으로 오늘 쇼핑 다녀 온 거죠.”
“뭐? 내가 보내 준 상품권?”
이게 무슨 자다 봉창 두드리는 소리란 말인가?
“네. 당신네 축구부원이 와서 저한테 상품권을 주면서 쇼핑 잘하라고 했는데. 당신이 보낸 거 아니에요?”
“축구부원 누구?”
“이름이.....아! 윤성찬이요.”
“성찬이!”
이명신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윤성찬이면 현수와 제법 친한 녀석이었다. 그런데 둘 사이 무슨 문제가 있는지 최근 현수가 성찬이를 주전에서 빼달라고 했다.
누구 말인데 안 들을까? 이명신은 바로 윤성찬을 주전에서 빼고 아예 교체 명단에서도 빼버렸다. 그랬더니 이런 일이 벌어졌다.
“윤성찬 이 새끼가.....”
아무래도 자신이 주전으로 뛰려고 수작을 부린 거 같았다.
“대체 얼마나 받은 거야?”
“그, 그게.....”
이명신의 표정만 봐도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걸 눈치 챈 그의 아내가 쭈뼛거리며 대답을 주저했다. 보아하니 아내가 받은 상품권 금액이 꽤 되는 모양이었다. 윤성찬이 이런 짓을 벌인 이유는 대충 짐작이 갔다.
‘주전으로 뛰고 싶단 거겠지.’
하지만 돈을 받고 선수를 주전으로 기용할 정도로 이명신은 타락하진 않았다.
“빨리 가서 환불 해와.”
이명신의 그 말에 그의 아내의 얼굴이 갑자기 사납게 변했다.
“싫어. 이거 환불하느니 당신하고 이혼하고 말지.”
“뭐?”
이거 잘하면 한 가정이 깨지게 생겼다. 아니 사실 생각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아내와 이혼하고 싶었다. 아무리 쇼핑이 좋아도 그렇지. 남편의 제자가 건넨 상품권을 남편에게 확인도 안하고 냉큼 받아서 백화점으로 달려가 쇼핑을 하고 온 여자를 더 데리고 살아 봐야 미래가 암울했다. 하지만 자식이 원수라고 그들이 갈라지면 아이들이 겪게 될 충격 때문에 이명신은 꾹 참고 살고 있었다.
‘그래. 딱 십년이다. 그때 자식들 다 대학 들어갔을 때니까 그때 쿨하게 헤어지자.’
이명신이 겨우 끓어오르는 화를 참고 있을 때 가관으로 그의 아내가 그를 향해 앙칼지게 소리쳤다.
“쪽팔리게 어떻게 환불해. 난 그렇게 못해. 아니. 안 해.”
그의 아내도 제법 단호했다. 이명신은 일단 그의 아내부터 진정시켰다. 그리고 윤성찬이 대체 그의 아내에게 얼마치의 백화점 상품권을 건네 줬는지부터 알아냈다.
“뭐 천!”
더 놀라운 건 그의 허영덩어리 아내가 그 천만 원치 상품권을 백화점에 가서 오늘 거의 다 썼단 사실이었다.
“젠장!”
그의 연봉이 4천만 원 정도다. 연봉의 1/4 을 어떻게 당장 토해 낸단 말인가? 그렇다고 또 대출을 낼 수도 없고...... 결론은 이미 나 있었다.
“그래. 이번 만이다.”
이명신은 곧장 윤성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내일 대전에 갈 때 윤성찬도 같이 가게 되었단 사실을 그에게 알렸다. 윤성찬이 아주 기뻐했다. 그리고 상품권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현수가 좀 걸리긴 하지만 선수기용은 감독인 내 고유 권한이니까.”
일단은 교체 멤버로 윤성찬을 포함 시켰다가 눈치껏 후반에 뛰게 해 주면 될 터였다. 이 결정이 후일 그의 삶의 전부인 축구인생을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들 줄 그는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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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이 끝나고 학교를 나선 현수는 버스 정류장에서 하숙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는 만원이었지만 재수가 좋아서 마침 그가 자리 잡고 서 있던 맞은 편 자리가 비었다. 현수는 기분 좋게 그 자리에 앉았다. 그때 그의 머릿속을 울리며 시스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띠링! 용성대와의 연습 시합에서 당신이 속한 연신대가 월등한 기량 차이를 보이며 압도적인 스코어로 승리 하였습니다. 이에 크게 기여한 당신에게 후원자께서 축구 장려 포인트를 지급합니다.]
[띠링! 축구 장려 20,000 포인트 지급. 남은 포인트 354,190]
‘2만 포인트! 아아! 아쉽다.’
현수는 그 보다 더 높은 포인트를 후원자가 축구 장려 포인트로 지급할 줄 알았다.
‘아무래도 끝에 경기 흐름이 좋지 않았던 게 문제였나 보군.’
연습시합 후반 끝에는 용성대가 거의 자포자기한 상태였기에 제대로 경기가 이뤄지지 않았다. 그건 현수도 인정하는 바였다.
뭐 아쉽긴 하지만 2만 포인트가 어딘가? 현수는 후원자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해 달라며 시스템에게 부탁을 하고는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바깥 정경에 넋이 나가 있는 사이 버스가 현수가 사는 동네에 다와 갔다.
그가 자취방 근방의 버스 정류장에 내렸을 때 사위가 어둑했다. 현수는 자취방으로 가는 도중 단골 슈퍼에 들러서 라면과 참치 캔, 그리고 계란을 샀다.
“하아. 어제까지 좋았는데.....”
그제와 어제, 그리고 오늘 아침까지 현수는 구하나의 집에서 제대로 된 집 밥을 얻어먹었다. 그런데 한 나절 지났을 뿐인데 또 라면으로 끼니를 때워야 하는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자취방에 들어서자 이틀 비웠다고 방 안에 냉기가 감돌았다. 현수는 일단 저녁부터 먹기 위해서 빈 냄비에 생수물을 부었다. 그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누구지?”
바로 확인하니 친구 정병민이었다. 정병민은 중학교와 고등학교 때까지 현수와 같이 축구 선수 생활을 했던 친한 친구였다. 하지만 병민이는 고등학교 2학년때 크게 부상을 당해 축구를 그만 뒀고 그 뒤 악착같이 공부를 해서 당당히 일류대학에 진학을 했다. 그런데 그 대학이 하필 연신대와는 숙적 관계에 있는 고구려 대였다.
“어. 병민아.”
현수가 반갑게 병민의 전화를 받았다.
병민은 3년 뒤 교통사고로 죽는다. 현수가 일본에서 돌아온 날이라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이날 현수는 공항에서 곧장 장례식장으로 갔었다. 따라서 병민과 현수는 미래에 어떤 은원 관계도 없었다.
-야. 방학도 했는데 한잔 해야지.
반가운 친구의 목소리에 현수는 가슴이 뭉클했다. 현수가 일본으로 떠났다면 영영 듣지 못했을 친구의 목소리였다.
일본 진출 후 현수와 병민은 연락이 끊겼다. 현수는 일본 J리그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적응 후에 바뀐 그의 핸드폰에 병민의 연락처가 지워져 있었다. 그때 현수는 한국에 가면 병민을 만나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국에 오기까지 3년이나 걸릴 줄이야.
“한 잔은 개뿔. 나 내일 FA컵 26강전 치르러 대전 가거든.”
-뭐야? 탈락 안 했어?
“우리가 너희 학교 같은 줄 알아?”
고구려대는 FA컵 예선전에서 벌써 탈락한 상태였다.
-지랄. 운 좋게 예선 올라갔다고 유세 떨긴. 술이 안 되면 밥이라도 먹자. 어째든 얼굴은 봐야지.
“그래.”
병민의 만나자는 말에 모레 당장 중요한 시합이 있는 현수가 흔쾌히 만나자고 했다. 그 만큼 현수는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는 병민이 보고 싶었던 것이다.
“어디서 만날래?”
-.... 홍대에서 보자.
“홍대? 거긴 강남이잖아?”
강남하면 클럽이고 유흥의 온상지가 아니던가? 밥이나 같이 먹자는 놈이 웬 강남?
현수는 뭔가 이상했지만 홍대 주위에도 맛집은 있으니까 그러려니 하고 홍대 앞에서 만나기로 하고 통화를 끝냈다.
“에이.....”
현수는 빈 냄비에 부은 생수물을 다시 생수통에 따라 넣고는 옷을 갈아입었다. 그래도 강남에 가는데 이렇게 후줄근한 모습으로 갈 순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깔삼하게 차려 입자 그제야 좀 노는 대학생 같아 보였다.
현수는 자취방 문을 잠그고 밖으로 나갔다. 버스 정류장에서 몇 분 기다리지 않아 강남 홍대로 가는 버스가 왔고 그걸 탔다.
30여분 뒤 버스가 홍대 앞에서 멈춰 섰고 현수는 그 버스에서 내렸다. 현수는 곧 홍대 입구 앞에 서 있는 정병민을 발견했다.
“병민아!”
그에게 다가간 현수가 눈물을 글썽이며 그를 안았다.
“어어어이. 이거 왜 이래? 나 동성은 관심 없거든. 빨리 떨어져라.”
병민이 현수를 뿌리치기 전까지 현수는 계속 병민을 끌어안고 있었다.
“징한 새끼.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어디 나를 노려?”
의심스런 눈으로 자신을 보는 병민을 보고 피식 웃던 현수가 그에게 물었다.
“근데 얼마나 대단한 밥을 먹으려고 여기로 날 부른 거냐?”
그 물음에 병민이 잠깐 어색하게 웃더니 현수에게 말했다.
“따라 와.”
병민은 다짜고짜 앞장서서 길을 걸어갔고 현수는 어리둥절해 하면서 그런 병민의 뒤를 쫓아갔다.
병민이 현수를 데리고 간 곳은 일식집 앞이었다. 거긴 대학생이 한 끼 식사를 하러 가기엔 부담스런 곳이었다.
“여기 가자고?”
현수가 일식집을 손짓으로 가리키자 병민이 피식 웃더니 먼저 일식집 안으로 들어갔다.
병민은 현수를 데리고 예약 석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리고 그 예약 된 룸 안에 누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누구지?’
현수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의 그 선객을 자세히 본 순간 그의 얼굴이 벌레 씹은 것처럼 확 구겨졌다.
“문세광!”
‘저 새끼가 왜 여기에.....’
현수는 자기 옆에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서 있는 병민을 보고 이게 대충 어떻게 된 일인지 알 거 같았다.
병민이 현수의 중학교, 고등학교 동창이듯 문세광에게도 그는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그리고 둘 사이는 연락정도는 하고 지내는 사이였고 말이다.
문세광은 현수가 병민과 친하다는 걸 알고 그를 이용해서 자신을 여기로 오게 만든 것이다.
‘어째 저녁 먹으러 홍대로 오랄 때 이상하긴 했어. 하여간 저 새끼 잔머리 하나는.....’
현수는 일단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삭이며 문세광에게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