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믿고 쓰는 미드필더-29화 (29/712)

<-- FA컵 (본선) -->

전반전이 채 절반도 흐르지 않은 상황에서 내리 두 골을 내어준 용성대는 기세가 죽을 만도 하건만 그래도 꾸역꾸역 공격에 열을 올렸다. 하긴 아직 선수들의 체력이 남아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으악! 안 돼!”

출렁!

하지만 무모한 공격은 기습에 취약했다. 연신대의 수비진에서 차단한 공이 그라운드 사령관 현수에게 즉각 넘어 왔고 현수가 바로 연신대의 왼쪽 전방 공격수 나진목에게 킬 패스를 넣어 주었다.

골키퍼와 1대 1 상황에서 나진목은 드디어 공격수로서 제몫을 해냈다. 침착하게 골키퍼 가랑이 사이로 강하게 땅볼을 찼고 그 공이 골망을 가른 것이다.

“우아아아아!”

골을 넣은 나진목은 연신대 벤치로 달려가서는 이명신 감독과 같이 오두방정을 떨어댔다. 그런 그들을 보고 용성대 유태식 감독은 기가 차서 헛웃음을 지으며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세 골 째를 허용한 용성대는 그제야 기세가 확 꺾였다. 하지만 여전히 공격 위주로 강하게 연신대 진영을 압박을 해 오는 건 마찬가지였다.

하긴 아직 전반전도 끝나지 않았는데 경기를 포기하는 건 전통과 패기를 자랑하는 용성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2선에서부터 빌드 업 되어 시작 된 한 번의 패스 미스가 다시금 뼈아픈 결과를 낳게 하고 말았다.

언제 또 기어 올라갔는지 강현수가 용성대 진영의 패스 루트를 차단하더니 그 볼을 가로 채서는 우측에서 돌아들어가는 연신대 오른쪽 전방 공격수 고동찬에게 패스를 했다. 그리고 그 패스를 받은 고동찬이 미친 척 중거리 슛을 때렸는데 그게 또 절묘하게 크로스바를 맞추고 골대 안으로 튕겨 들어가 버린 것이다.

“으아아아아!”

어디서 배워도 나쁜 것만 골라 배웠는지 골을 넣은 고동찬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연신대 벤치도 뛰어갔다. 그리곤 이명신 감독과 얼싸 안고 지랄 방정을 떨다가 결국 주심으로부터 주의를 받았다.

4대 0!

압도적인 스코어로 결국 연습 시합의 전반전이 끝났다. 벤치로 돌아오는 연신대 축구부 선수들의 얼굴은 밝았지만 용성대 선수들의 얼굴은 다들 흙빛이었다.

하프 타임 동안 이명신은 배가 고픈 선수들에게 특별히 자비를 들여서 사오게 한 초코바를 건넸다.

“자자. 어서 먹어라.”

현수에겐 초코바 두 개와 함께 이온 음료가 주어졌다. 역시 특별 대우였다.

체력이 90으로 펄펄 날아다녔던 현수는 벤치에 돌아오자 살짝 허기가 졌다. 그래서 초코바 두 개를 금세 먹어치우고 이온 음료를 들이켰다. 그러자 허기도 바로 가셨다.

현수는 자신의 현재 체력 상태를 확인하고 싶었다. 동시에 그의 눈앞에 홀로그램 창이 떡하니 떴다.

[스테이터스]

이름: 강현수 (남, 22살)

칭호: 스위트 가이(Sweet guy)→ 호감도: 62/100, 성적 매력: 74/100

체력: 87/100(날쌘 돌이 축구화 착용으로 체력 +10 상승)

내공: 초급

격투기: 도장 챔피언, 시도배 챔피언, 유도 1단

인지능력: 50/100

학습능력: 70/100

행운지수: 40/100

이성과의 친화력: 80/100

마법: 3서클

보유 마법

1서클- 록, 라이트닝 애로우, 다크실드, 네크로 그리스

2서클- 라이트닝 쇼크, 포커스 퓨플

3서클- 아이스 포그, 에어로 봄, 라이트닝 웨이브, 체인 라이트닝, 블러드 스웰, 무스트, 홀리큐어, 리커버리

인벤토리: 불끈 반지, 신비의 물약(1회용)

보유 쿠폰: 아이템 20% 할인쿠폰, 게임 단기 무료이용 쿠폰

현수가 바로 체력부터 확인했다.

‘87이라. 역시 -3 떨어졌군.’

그리고 그의 눈에 인벤토리에 들어 있는 신비의 물약이 보였다. 하지만 고작 연습 시합에 불과한 데 1회용인 그걸 지금 쓰기엔 너무 아까웠다.

무엇보다 체력 87만 해도 아직 그라운드에서 펄펄 날아다닐 정도는 됐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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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가 잠시 넋 나간 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그의 머릿속에 갑자기 시스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띠링! 후원자께서 용성대와의 연습 시합에서 당신이 보여 준 활약상에 감격해서 장려 포인트를 지급합니다.]

이제 시스템에서 조차 대 놓고 현수의 의뢰자를 후원자로 부르고 있었다. 어째든 현수로써는 장려 포인트가 지급 된다는 말에 이게 웬 떡이냐 싶어 얼굴에 희색을 띠었다.

[띠링! 축구 장려 20,000 포인트 지급. 남은 포인트 354,190]

“2만 포인트나? 그것도 전반전 뛴 건데?”

어제 청백전에 비해 2배의 포인트가 지급 되었다. 즉 후원자가 청백전보다 용성대와의 연습 시합을 훨씬 더 비중 있다고 본 거 같았다.

[전반에 2골 2어시스트로 팀 내 홀로 맹활약한 당신에게 후원자께서 기특해 하시며 시원하게 장려 포인트를 쏘셨습니다.]

“역시.....”

2만 포인트면 카멜레온 축구복에 새로이 저급 스킬 2개나 고급 스킬 1개를 장착할 수 있었다. 그러니 현수의 입에 귀에 걸릴 밖에. 그런 현수에게 시스템이 말했다.

[후원자께서 후반전에도 멋진 활약을 기대한다고 전해 달라 십니다.]

“당연하지. 후원자님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모습 보여 드리겠다고 전해 줘.”

후원자는 이제 현수에게 갑(甲)이었다. 그런 갑을 위해 현수는 기꺼이 꼬리를 흔들 각오가 되어 있었다.

‘포인트만 팍팍 줘보라고. 그럼 메시나 호날두도 울고 갈 멋진 플레이를 선보여 줄 테니까.’

확실한 동기 부여가 된 것일까? 현수의 두 눈에서 투지가 활활 불 타 올랐다. 이때 용성대 벤치는 그야 말로 초상 치르는 것 같았다.

“너희들이 못한 게 아니다. 우리가 연신대의 4번을 몰라서 생긴 참극일 뿐이니까 너무 자책들 할 거 없다. 그리고 후반에는 재훈이 네가 4번 마크해라. 희석이 네가 대신 센터백 보고 현태는 뺀다.”

용성대 유태식 감독은 과감히 공격의 핵인 스트라이커를 빼고 과감히 센터백인 조재훈에게 강현수를 전담 마크케 했다. 조재훈의 빈자리에는 백업 센터백인 이희석을 넣고 말이다. 하지만 감독의 그 말을 들은 센터백 조재훈이 바로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저 혼자서 그 괴물을 막는 다는 건..... 자신 없습니다.”

조재훈 뿐 아니라 현수와 부딪쳐 본 용성대 선수들 모두 주눅 든 얼굴을 하고 있었다. 평소의 유태식 감독 같았으면 패배주의에 물들어 있다며 선수들에게 버럭 화를 냈을 터였다.

대학생의 패기가 어디로 다 사라졌냐며 말이다. 하지만 그 역시 이번엔 선수들이 이해가 되었다. 그래서 화내는 대신 선수들을 다독였다.

“그래도 우리 팀 내에서 저 놈을 상대할 수 있는 건 재훈이 너뿐이다. 네가 해 보고 안 되면 미드필더에서 한 명 더 지원해 주마.”

감독이 이렇게까지 얘기하니 조재훈도 어쩔 수가 없었다.

“네. 그럼 맡아 보겠습니다.”

“그래. 고맙다.”

후반전에도 괴물이 날 뛰면 어떻게 막을 대책이 없었다. 그라운드의 ‘약은 여우’라는 유태식 감독도 대인 마크 이외에 강현수를 저지할 마땅한 대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넘사벽이야.’

유태식 감독이 생각해도 연신대 4번 중앙 미드필더 강현수의 실력은 대학 선수의 수준을 월등히 넘어 있었다.

프로? 당장 어느 프로 팀에 들어가도 주전 이상의 활약을 펼칠 녀석이었다.

‘저런 녀석이 왜 아직 국내에 있는 거지?’

저 정도 실력이면 해외로 진출해도 무리가 아니었다. 아니 유망주로 언론에 거론 되고 있어야 정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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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대가 현수에 대한 대책을 세우고 후반을 준비할 때 연신대 벤치는 느긋했다. 특히 이명신 감독은 아무 생각이 없었다.

있다면 한 가지. 현수를 챙기는 거. 그건 절대 빼먹지 않았다.

“현수야. 후반에는 좀 살살 뛰도록 해라. 모레 FA컵 있는 거 알지?”

“네. 제가 알아서 페이스 조절해 가며 뛸 테니까 걱정 마세요.”

“그래. 나야 너만 믿고 있으니까. 알지?”

“네.”

무능한 감독이지만 자신을 저렇게 철썩 같이 믿고 있으니 어쩌겠는가? 그가 끌어 줘야지. 하지만 언제고 자신에 대한 저 믿음이 깨진다면 현수도 미련 없이 그와 관계를 청산할 터였다. 어차피 이명신 감독에 대한 신뢰 관계는 그 정도가 다였다.

그렇게 꿀 같았던 하프타임 15분간의 휴식이 끝났다. 후반전은 연신대의 킥 오프 시작 되었기에 공이 바로 현수에게 넘어왔다. 현수는 후반전이 시작 되자 경기의 완급을 조절했다.

“한 바퀴 돌려.”

현수의 지시에 미드필더들이 자기들 끼리 공을 주고받다가 뒤쪽 수비수에게도 공을 패스했다. 그 공은 다시 현수에게 돌아왔는데 현수는 그렇게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경기 템포를 떨어트렸다.

스코어 4대 0!

아쉬울 게 전혀 없는 연신대 였으니 말이다. 반면 그걸 본 용성대 선수들의 얼굴이 점차 일그러졌다. 빨리 한 골이라도 만회해야 하는 용성대 입장에서 보란 듯 자기 진영에서 공을 돌리는 연신대 선수들이 보기 좋을 리 없었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용성대 공격 자원과 그 밑 허리 라인이 연신대 진영으로 슬금슬금 올라가기 시작했다.

파파파팟!

그때 현수가 갑자기 공을 치고 빠르게 하프라인을 넘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용성대 진영에서 한 선수가 뛰어나와 현수에게 달려들었다.

그 기세가 어찌나 대단한지 그걸 보고 현수도 흠칫 놀라며 공을 뒤로 뺐다. 그러자 현수 옆에 다가선 그 선수가 그 옆에 착 달라붙었다. 현수에 대한 대인 밀착 마크가 시작 된 것이다.

“뭐하는 거야?”

현수가 자신을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는 그 선수에게 묻자 그 선수가 싸늘하게 말했다.

“넌 내가 잡는다.”

현수는 후반전이 시작 되자 용성대의 센터백인 조재훈이 그를 전담 마크하는 걸 보고 힐끗 용성대 벤치를 쳐다보았다. 순간 현수와 용성대 감독인 유태식 감독이 눈이 마주쳤다.

“눈치 빠른 양반이네. 하지만.....”

현수는 그렇게 중얼 거리고는 조재훈을 달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태식 감독의 이런 대인 마크는 현수의 움직임을 막을 수는 있을지 몰랐다. 하지만 이는 다른 연신대 선수들을 무시한 처사였다.

축구는 혼자 잘한다고 이길 수 있는 경기가 아니다. 물론 현수 같이 걸출한 중앙 미드필더가 허리를 장악하고 특출한 플레이 메이킹 능력으로 팀을 이끌고 있는 건 맞지만 나머지 10명의 선수들도 열심히 뛰었기에 FA컵 예선을 통과해서 본선 진출을 두고 모레 프로팀과 결전을 앞두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증명하듯 현수가 마크맨을 달고 다닐 동안 연신대는 수적인 우세로 강하게 용성대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패스! 패스!”

“사람 잡아!”

“밀리지 마.”

“뚫어!”

용성대는 미드필더진과 수비진을 전부 밑으로 내려서 연신대의 공세를 막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조재훈을 대신해서 교체 되어 들어 온 용성대 센터백이 거친 태클로 반칙을 했고 연신대에 프리킥 찬스가 주어졌다.

역시 그 동안 빼어난 수비력으로 용성대 철벽 수비 라인의 중심 역할을 했던 조재훈의 난 자리가 확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키커로 당연히 현수가 나섰다. 현재 연신대의 모든 킥은 현수가 맡았다. 프리킥이던 코너킥이든 심지어 페널티킥까지도 다 말이다.

“여기!”

“네.”

현수는 주심이 지정해 준 위치에 공을 갖다 놓으면서 주위를 살폈다. 위치는 페널티에어리어 박스에서 왼편으로 5미터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직접 프리킥을 차기엔 각이 없었기에 연신대 선수들이 페널티에어리어 안에서 일렬로 늘어섰고 그 사이 사이에 용성대 선수들이 끼어들며 연신대 선수들의 팔과 유니폼을 붙잡아댔다.

현수가 공을 차기도 전에 양 진영 선수들의 자리싸움이 장난이 아니었다.

삐이익!

주심의 휘슬이 울리고 현수가 한 팔을 머리 위로 높게 들어 올렸다. 약속된 플레이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때 현수는 연신대의 공격수 고동찬과 눈짓을 주고받고 있었다.

현수가 막 움직일 때 그를 보고 살짝 고개를 까닥 거렸다. 즉 그에게 공을 보내겠단 신호였다.

“비켜!”

그걸 확인한 고동찬이 자기 앞을 막고 있던 용성대 수비수를 밀쳐 내며 공간을 확보했다.

순간 그 뒤의 용성대 수비수가 고동찬의 팔을 잡았지만 고동찬이 그걸 뿌리치고 끝까지 자기 자리를 지켜 냈다.

현수는 고동찬이 용성대 수비수와 몸싸움을 하면서 자기 자리를 끝까지 고수하는 걸 보고 그쪽을 향해 공을 찼다. 이때 현수는 카멜레온 축구복에 기본 장착 되어 있던 타킷 적중 프리킥 스킬을 사용했다.

공은 현수가 지정한 공격수 고동찬에게 정확히 날아갔고 어쩐 일인지 점프 타이밍도 절묘하게 고동찬의 몸이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공이 고동찬의 머리에 맞는 순간 그가 고개를 골대 쪽으로 틀었고 공은 골포스트와 크로스바 사이 사각지대로 날아갔다.

골키퍼가 막을 수 없는 위치라 용성대 골키퍼는 그냥 제자리에 서 있었고 골대 사이드에 서 있던 수비수가 폴짝 뛰면서 어떻게든 머리로 그 공을 걷어 내 보려 했지만 공이 더 빨랐다.

출렁!

그야 말로 교과서 적인 헤딩골이 터졌다. 빠르고 간결한 킥을 공격수가 상대 수비수와의 거친 몸싸움을 이겨 내고 점프를 했고 절묘한 타이밍에 공을 머리에 갖다 대면서 방향을 틀었고 그게 또 골키퍼가 보고도 막지 못할 골대 사각지대로 날아 들어간 것이다.

“우와아아아아!”

골을 터트린 고동찬이 괴성을 내지르며 또 다시 연신대 벤치로 달려갔다. 그리고 이명신 감독과 포옹을 하더니 또 다시 해괴한 세레머니를 벌였는데 그걸 보고 현수도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 유별난 연신대 벤치의 호들갑이 결국 화근이었다. 옆에 있던 용성대 벤치에서 그걸 두고 몇 마디 했는데 그걸 연신대 벤치에서 맞받으면서 벤치 클리어링이 벌어질 뻔했다. 무슨 야구도 아니고 말이다.

어째든 두 감독이 나서서 싸움까진 벌어지지 않았지만 결국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주심이 연신대 벤치에 옐로카드를 꺼내 들었다.

“경기도 큰 스코어로 이기고 있으면서 제발 자중 좀 해 주세요.”

주심의 그 말에 막상 대꾸할 말이 없었던 이명신 감독은 그냥 입을 꾹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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