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A컵 (본선) -->
포항 스틸스 2군은 봄철연맹전에서 일찌감치 예선 탈락을 했고 요즘은 실업선수권 대회에 참가 중이었다. 하지만 그 대회에서도 김창수는 주전 자리를 꿰차지 못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대학리그 득점왕 출신에 인 그가 말이다.
“씨발, 패스를 해 줘야 골을 넣든지 말든지 하지.”
김창수는 연신대에서 강현수가 떠먹여 주는 킬 패스에 익숙하다보니 혼자서 공간을 창출해 내거나 다른 공격수와 티키타카, 즉 짧은 패스로 경기를 풀어 나가는 능력이 부족했다.
그러다보니 시합이 있을 때마다 그는 전방에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았다. 그런 그를 포항 스틸스의 감독과 코치들이 좋아할 리 없었다. 그건 2군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열심히 뛰어다녀도 모자랄 판에 그라운드에서 불평만 늘어놓는 김창수를 보고 포항 스틸스 2군 감독과 코치의 얼굴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저놈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
“그러게요. 아무래도 방출하던지 해야 할 거 같습니다.”
“유망주라고 1차 지명에 데려 왔다더니 제대로 똥 밟았군.”
“그 때문에 감독 교체 설까지 나오고 있답니다. 뭐 프론트에서 황선웅 감독과 연장 계약에 유리한 입장에 서려고 흘린 소문이겠지만 말입니다.”
프로 축구팀에서 신인 하나 영입 잘못했다고 감독을 경질 시키는 일은 절대 없다.
“꼴도 보기 싫으니까 당장 빼.”
“네.”
코치는 이내 김창수를 빼고 다른 공격 자원을 투입 시켰다. 경기도 제대로 뛰지 못했는데 교체까지 당하자 제대로 화가 난 김창수는 라커룸으로 향하며 애꿎은 쓰레기통을 찼다.
퍼엉!
그런데 하필 쓰레기통에 누가 먹다 만 커피 잔을 넣어 둔 모양이었다.
촤악!
김창수가 쓰레기통을 차면서 그 안에 있던 커피가 튀면서 그의 얼굴과 유니폼을 적셨다.
“에이 씨!”
김창수는 씩씩거리며 라커룸 옆 화장실로 뛰어갔다. 그리고 대충 세수하고 유니폼은 벗은 채 라커룸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트레이닝복으로 옷을 막 갈아입었을 때 그의 스마트 폰에 불이 들어왔다.
“누구야?”
확인하니 대학 후배인 윤성찬이었다.
“성찬이 이 새끼가 웬일이지?”
김창수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형! 저 성찬이에요.
녀석이 꽤나 친한 척 반응을 하자 김창수가 괜히 긴장이 됐다. 그럴 것이 윤성찬의 부친이 바로 김창수 아버지가 하시는 영업소를 관리하는 신문사 본사 관리 부장이었던 것이다.
명백한 갑(甲)과 을(乙)!
그 사실을 알게 된 후 김창수는 선배지만 윤성찬 앞에서 왠지 기가 죽었다. 그리고 윤성찬은 그런 김창수에게 가끔 부탁을 했다. 김창수가 들어 줄 만 한 걸로 말이다. 그래서 둘의 관계는 김창수가 프로팀에 들어가기 전까지 아무 문제가 없었다.
“어. 그래. 성찬아. 아버님 잘 계시지?”
-네. 이번에 이사가 되셨어요.
“그, 그래? 축하한다.”
부장 때에도 그 위세가 대단했는데 이제 이사가 됐다니 더 말해 무엇 할까? 김창수 부친의 영업소는 윤성찬 부친의 콧김에도 날아갈 판이었다.
-금천 영업소 실적이 저조해서 곧 폐쇄 조치 취할 거란 거 아시죠?
“뭐?”
금천 영업소는 바로 김창수 부친이 운영하는 영업소였다. 거기가 폐쇄된다면.......
김창수의 집은 망하는 일만 남았다.
-뭐 저희 아버지께서 힘을 쓴다면 얘기는 또 달라지겠지만요.
“원하는 게 뭐냐?”
김창수가 다급히 물었고 그제야 윤성찬이 그에게 전화를 건 진짜 이유를 밝혔다.
“그러니까 나보고 현수를 만나서 널 FA컵 26강전 주전으로 넣으라고 시키라 이거냐?”
-네. 맞습니다. 어려울까요?
“아니. 그 정도 부탁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김창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강현수가 누구던가? 그가 프로 팀에 오기 전 그를 친형처럼 따르던 녀석이 아니던가?
-그럼 빨리 좀 얘기해 주세요. 내일 모레가 시합이라 서요.
“알았다. 내가 지금 바로 현수에게 전화를..... 아니. 내가 직접 거기로 가서 얘기하마.”
시합이 가까울 경우 축구 선수들은 훈련에 집중하느라 보통 전화를 받지 않았다. 강현수도 마찬가지니 지금 전화해도 녀석이 그의 전화를 받지 않을 공산이 컸다. 가장 확실한 건 역시 그가 직접 강현수를 만나 얘기하는 거였다.
‘어쩌지? 에이 씨. 가자.’
어차피 연습 경기도 뛰지 못하는 처지가 아니던가? 여기 더 있을 이유가 없었다. 김창수는 윤성찬과 통화를 끝내자 바로 외출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곤 감독과 코치에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포항 스틸스 2군 훈련장을 빠져 나갔다.
윤성찬은 훈련장 밖에 주차 되어 있던 외제차에 올라탔다. 프로 팀에 들어가면서 장장 60개월 할부로 구입한 차였다.
윤성찬에게는 보물 1호였는데 그 차를 몰고 윤성찬은 자신의 모교인 연신대로 출발했다.
윤성찬이 모교에 도착했을 때 막 축구부의 훈련도 끝난 상태였다.
“선배!”
“어. 성찬아.”
윤성찬이 주차장에서 김창수를 기다리고 있다가 그가 차에서 내리자 쪼르르 달려왔다.
“우와! 차 좋네요.”
“뭐 그리 비싼 차도 아니야.”
척 봐도 1억은 넘어 보이는 차가 비싸지 않다는 김창수를 보고 윤성찬은 속으로 배알이 뒤틀렸지만 그걸 티내진 않았다.
“어서 가요. 현수 씻고 나올 때 됐어요.”
“어. 그래.”
체육관으로 향하는 동안 김창수는 느긋했다. 강현수는 연신대 축구부에 들어왔을 때부터 김창수의 호구였다.
생긴 건 멀쩡한데 순진한 건지 멍청한 건지 김창수의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을 놈이었다.
“저기 나오네요.”
막 강현수가 체육관을 나오는 걸 보고 윤성찬이 한껏 기대어린 눈으로 김창수를 쳐다봤다.
김창수는 나만 믿으라며 곧장 강현수에게로 다가갔다.
“현수야!”
김창수가 환하게 웃으며 강현수를 향해 한 손을 들어 보였다. 그러자 그 소리를 듣고 현수의 시선이 김창수 쪽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순간 현수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저 새끼는.....’
김창수를 발견한 순간 현수의 두 눈에 확 불길이 치솟았다. 그럴 것이 김창수 저 인간은 그의 에이전트인 문세광 만큼이나 나쁜 새끼였기 때문이었다.
김창수는 현수가 J리그에서 국내로 복귀하자 그에게 접근해서는 자신이 차린 스포츠마케팅회사에 투자를 하라고 꼬드겼다.
대학 때부터 이상하게 김창수라면 기가 죽었던 현수는 5억이란 돈을 그 회사에 투자했다. 그러자 그 회사는 성공 가도를 달렸다. 국내 유명 선수들은 다 그 회사의 마케팅을 받았다. 그런데 막상 현수가 투자한 그 회사 주식 배당금을 받으려 할 때 그는 자신이 김창수에게 철저히 이용당했단 걸 알게 되었다.
자신이 투자한 돈이 전부 김창수 명의의 주식으로 등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건 칼만 안 들었지 날강도나 다를 게 없었다. 어처구니가 없었던 현수가 창수에게 따지자 그가 현수에게 한 소리가 가관이었다.
“네가 나한테 5억 준거잖아? 이제 와서 딴소리 하면 안 되지.”
어떤 미친놈이 남에게 5억을 거저 준단 말인가? 알고 보니 그게 다 문세광과 김창수가 짜고 친 한편의 사기극이었다. 문세광이 2억 챙기고 나머지 3억은 김창수가 가져가고 말이다.
놈들에게 현수는 현금 지급기나 다름없었다. 그들이 원하면 언제든 돈을 빼내 갈 수 있는 현금 지급기 말이다.
무엇보다 2015년 현수가 파멸의 길을 걷고 있을 때 녀석이 보여 준 행태를 현수는 결코 잊을 수가 없었다.
“경비 아저씨. 저 거지 새끼 당장 내 쫓지 않고 뭐해요.”
노숙자 신세나 다름없이 변한 현수가 김창수의 회사를 찾아 갔을 때 그가 경비에게 한 소리였다.
‘거지새끼! 너란 놈에게 나란 딱 그런 존재였겠지.’
김창수는 현수의 싸늘한 반응에 자신이 든 손이 무안해 질 지경이었다.
‘저 새끼가.....’
김창수의 웃던 얼굴도 이내 굳었다. 현수는 김창수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에게 살짝 고개만 숙이고는 그 옆을 홱 지나쳤다.
“야! 강현수!”
발근한 김창수가 뒤돌아서 현수의 뒷덜미를 잡아챘다. 옛날 그 앞에서 설설 기던 강현수가 감히 그를 우습게 여긴 것 자체가 김창수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성질대로 손부터 나갔는데 그게 실수였다.
“헉!”
휘리릭!
순간 김창수의 팔이 꺾이고 그의 몸이 허공에 홱 휘돌았다.
철퍽!
그리고 맨땅에 볼썽사납게 널브러졌다. 땅바닥에 메쳐지며 받은 몸에 충격은 그리 크지 않았다. 현수가 그의 팔을 제압하고 업어 칠 때 사정을 봐줘서 살짝 바닥에 매 친 덕분이어다. 하지만 김창수가 받은 정신적인 충격은 엄청났다.
‘어, 어떻게 현수가 나를......’
그는 길바닥에 드러누운 체 한 동안 넋이 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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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는 김창수 근처에 윤성찬이 있는 걸 보고 저 새끼가 왜 자신을 찾아 왔는지 바로 눈치 챘다. 현수는 일단 김창수를 무시할 생각이었다.
‘저런 몰염치한 새끼와는 아예 엮이지 않는 게 최선이야.’
하지만 김창수가 그런 그를 가만 내버려 둘리 없었다. 옛날부터 김창수는 손버릇이 나빴다. 툭하면 후배들의 멱살을 잡고 겁을 줬다. 현수도 그 짓을 참 많이 당했다. 그래서 지금도 보나마나 현수가 그를 무시하면 그의 멱살이나 뒷덜미부터 잡아 챌 게 분명했다.
그럴 때 보기 좋게 김창수를 땅바닥에 메다꽂으면 속이 시원하겠단 생각이 나면서 현수는 시스템을 생각했다.
[스테이터스]
이름: 강현수 (남, 22살)
칭호: 스위트 가이(Sweet guy)→ 호감도: 62/100, 성적 매력: 74/100
체력: 73/100
내공: 초급
격투기: 도장 챔피언, 시도배 챔피언
인지능력: 50/100
학습능력: 70/100(바둑 단기 프로기사 초단 이용 중)
행운지수: 30/100
이성과의 친화력: 80/100
마법: 3서클
보유 마법
1서클- 록, 라이트닝 애로우, 다크실드, 네크로 그리스
2서클- 라이트닝 쇼크, 포커스 퓨플
3서클- 아이스 포그, 에어로 봄, 라이트닝 웨이브, 체인 라이트닝, 블러드 스웰, 무스트, 홀리큐어, 리커버리
인벤토리: 날쌘 돌이 축구화, 불끈 반지
보유 쿠폰: 아이템 20% 할인쿠폰, 게임 단기 무료이용 쿠폰
그러자 현수 눈앞에 상태창이 떡하니 떴다. 현수는 그 창을 지우고 시스템의 맨 처음 화면인 포인터 사용처를 떠올렸다.
[포인트 사용처]
1. 체력(體力)
2. 지력(智力)
3. 행운(幸運)
4. 친화력(親和力)
5. 도구(道具, item)
그리고 체력을 클릭한 후 기본 체력에서 다시 초능력을 선택했다. 초능력에서 무공을 선택하고 이어 맨손 격투기를 선택하자 그제야 눈앞에 유도가 나왔다. 그 유도를 클릭하자 유도 창이 떴다.
[유도]
1단 승급: 1,000포인트
2단 승급: 2,000포인트
3단 승급: 4,000포인트
4단 승급: 8,000포인트
5단 승급: 20,000포인트
6단 승급: 40,000포인트
7단 승급: 50,000포인트
8단 승급: 100,000포인트
9단 승급: 175,000포인트
현수는 1단을 선택했다. 김창수를 메다꽂는 데는 1단 실력으로도 충분했다.
[띠링! 1,000 포인트 결제. 남은 포인트 526,190]
유도 1단의 유단자가 된 현수는 곧장 김창수에게 다가갔고 그를 무시하고 지나치자 녀석이 발끈하며 현수의 뒷덜미를 잡아챘다. 그걸 기다렸던 현수는 순식간에 뒤돌아 녀석의 팔을 잡아 꺾으면서 동시에 유도 기술인 허리 후리기로 녀석을 제대로 맨 땅에 메다꽂았다. 물론 크게 다칠까 손속에 사정을 두긴 했지만.
“한 번만 더 내 몸에 손대면..... 그땐 가만 안 둔다.”
현수가 매서운 눈으로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김창수를 쏘아보았다. 그 눈빛에 김창수는 움찔했다. 하지만 자신이 왜 여기 왔는지 생각이 나자 김창수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현, 현수야. 왜, 대,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김창수가 더듬거리며 현수에게 말했다. 하지만 현수는 여전히 굳은 얼굴로 그를 사납게 노려보고 있었다.
‘씨팔. 답답해 죽겠네. 저 멍청한 새끼가 뭣 때문에 저렇게 화가 나 있는 거야?’
김창수는 한편에서 한심하다는 듯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윤성찬을 발견하고는 다시 용기를 내서 현수에게 말했다.
“현수야. 네가 무슨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이 형하고 얘기 좀 하자.”
“형은 개뿔. 그쪽하고 대화하고 싶은 생각 없으니까 꺼지쇼.”
그 말 후 돌아서는 현수를 보고 김창수가 다급히 그의 팔을 잡으려다 좀 전 땅바닥에 메다 꽂힌 게 생각이 나서 팔을 치우고 후다닥 뛰어서 마주보는 정면에서 현수 앞을 가로 막아섰다.
“현수야. 너 진짜 이럴 거냐? 너하고 나 사이가 어떤 사이냐?”
“어떤 사인데?”
현수가 사납게 물었다.
“뭐?”
“이런 씨팔 새끼. 네 눈에 내가 아직도 네 호구로 보이냐?”
그 말에 김창수는 더 이상 현수가 예전의 그 멍청한 순둥이 녀석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비켜! 새끼야!”
현수가 밀치는 힘에 김창수는 맥없이 뒷걸음질을 쳤다. 마치 바위와 부딪치는 것 같이 현수의 몸은 딴딴했다.
대학 리그에서 왜 상대 선수들이 현수와 부딪치는 걸 두려워했는지 막상 당해 보니 김창수도 알 거 같았다.
현수는 그대로 김창수를 지나쳐서 교문 쪽으로 향했고 그런 그를 김창수는 더 이상 붙잡지 못했다.
“선배!”
그때 윤성찬이 일그러진 얼굴로 쪼르르 그 앞에 뛰어왔다.
“어떻게 된 거예요?”
윤성찬도 대 놓고 그 앞에 성질을 냈다.
“하아!”
김창수의 입에서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내 신세가 왜 이렇게 된 거지?’
되는 일이 하나 없는 김창수였다. 팩 토라져 사라지고 있는 윤성찬을 보아하니 며칠 내로 아버지 영업소도 문을 닫지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