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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목은 비 주전팀의 센터백에게 밀착마크 당하고 있었다. 그때 현수가 손을 등 뒤로 숨겼다. 그걸 본 나진목이 비 주전팀의 센터백을 어깨로 밀어내고는 옆으로 홱 돌아들어갔다.
“앗!”
순간 나진목을 놓친 비 주전팀 센터백이 다급한 비명성과 함께 몸을 틀어 나진목을 쫓았다. 페인팅으로 비 주전팀 센터백을 벗겨낸 나진목의 머리 위에서 정확히 공이 떨어져 내렸다.
‘좋았어!’
그걸 보고 나진목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오전에 현수가 알려 준 신호대로 자신이 돌아들어갈 때 그가 수비진의 업사이드 라인을 무너트리는 절묘한 패스를 올려 준 것이다.
팍! 툭!
헤딩하기 딱 좋게 바운드 된 공을 나진목은 이마로 툭 쳐 넣고 앞으로 죽어라 내달렸다.
나진목은 이내 페널티에어리어를 넘어섰다. 그 뒤에서 악착같이 뒤 쫓아왔고 앞에서는 골키퍼가 달려 나왔다.
나진목은 자신을 향해 몸을 날리는 골키퍼의 겨드랑이 사이로 공을 찼다. 그리고 폴짝 뛰어 골키퍼와의 충돌을 피했다.
나진목의 슛은 골키퍼를 스쳐 지나서 그대로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이야아아!”
골을 넣은 나진목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손쉽게 첫 골이 터지자 주전팀 선수들도 다들 기뻐했다.
반면 한 방을 먹은 비 주전팀 선수들의 얼굴은 싸늘하게 굳었다.
“자자. 한골 먹었으니 한골 넣자. 공격수들 분발하고. 파이팅!”
비 주전팀의 중앙 미드필더 진성욱이 분위기를 바꾸려 했지만 그게 쉽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주전 선수들에 비해 비 주전 선수들은 뭔가 어두운 구석이 있었고 그게 한 골을 먹자 분위기가 더 암울해 진 것이다.
이후 시합은 다시 미드필드에서 팽팽하게 기 싸움이 전개 되었다. 나름 중앙에서 진성욱이 분전해 준 탓이었다.
비 주전팀의 중앙 미드필더 진성욱은 어떡하든 공격을 활로를 찾으려 했다. 하지만 그러려고 하면 현수가 나타나서 꼭 방해를 했다.
1대 1로 붙으면 현수에게 항상 밀리는 진성욱였다. 이상하게 현수만 맞닥트리면 진성욱은 공을 간수하지 못하고 뺏기기 일쑤였다.
“젠장...”
그래서 진성욱은 현수가 나타나면 바로 옆으로 공을 패스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비 주전팀의 공격 루트가 너무 단조로워져서 제대로 된 찬스를 만들지 못했다. 그러면서 시간을 흘렀고 만회골을 넣지 못한 비 주전팀이 초조해 하다가 실수가 잦아졌다.
턱!
그러던 차에 현수가 패스 경로를 꿰뚫고 비 주전팀 패스를 끊었다. 현수는 오른쪽 전방 공격수인 고동찬에게 바로 한 손을 들어 보였다. 그걸 보고 고동찬이 터치라인을 따라 냅다 뛰기 시작했다.
현수는 그런 고동찬을 향해 길게 패스를 넣어 주었다. 그리고는 센터서클에서 하프라인을 넘어 곧장 전방으로 내달렸다.
현수가 찬 공은 달리던 고동찬의 왼발에 딱 터치 되었다. 그 공을 잡은 고동찬은 바로 앞으로 툭 차놓고 터치라인을 따라 내달렸다.
“붙어!”
비 주전팀의 센터백이 측면 미드필더에게 소리쳤고 비 주전 측 측면 미드필더가 고동찬을 악착같이 쫓았다.
주력이 좋은 고동찬은 측면 미드필더보다 한 걸음 앞선 채 골에어리어 쪽으로 크로스를 올렸다.
페널티에어리어의 비 주전팀의 센터백은 힐끗 뒤를 돌아보았다. 골에어리어에 상대 공격수는 없었다. 크로스 된 공은 골키퍼가 충분히 잡을 수 있었다.
스윽!
그때 누가 비 주전팀의 센터백 옆을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헉!”
비 주전팀 센터백이 놀라 고개를 돌릴 때 누군가가 붕 허공으로 떠올라서는 크로스 된 공을 이마에 정확히 맞췄다.
출렁!
공은 텅 빈 골대 안으로 들어가 골 망을 갈랐다. 공을 잡으려 뛰어 올랐던 골키퍼는 점프한 그 누군가와 겹치며 허공에다 헛손질만 한 꼴이었다.
“강현수!”
그 누군가는 바로 현수이었다.
“대체 언제....”
2선의 현수가 어느 새 골에어리어까지 달려와서 헤딩으로 골을 넣은 것이다. 공격수만 막고 있던 수비들이 2선에서 뛰어 온 현수를 놓쳐 버린 결과였다.
현수는 현재 연신대 공격수들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다. 지금 같은 청백전에서야 저들이 훨훨 날고 있지만 프로팀의 안정 된 수비 진영에서는 빌빌 거릴 게 분명했다. 그래서 특단의 조치를 내린 게 바로 자신이 공격 빌드 업에 가담하는 것이었다.
지금처럼 역습 찬스에서 아무도 예상치 못한 기습적인 침투와 동시에 자신의 능력을 한껏 발휘해서 기어코 골을 집어넣는 것 말이다.
삐이익!
그때 이명신이 청백 시합의 전반전의 끝을 알리는 휘슬을 불었다.
이명신은 청백전을 짧게 20분 씩 하프 타임 10분으로 경기를 치렀다. 그 정도만 뛰어도 팀워크를 다지는 데는 충분하다 여겼던 것이다. 대신 시험 전날 전까지 매일 청백전을 시켰다. 경기 시간이 짧은 대신 자주 시합을 해서 팀워크 뿐 아니라 경기 감각까지 계속 유지시키기 위해서 말이다.
전반전에 주전팀이 2골을 넣자 이명신은 싱글벙글 웃었다. 역시 4-4-2 전술의 핵은 중앙 미드필더였다.
“현수야. 잘했는데 네가 너무 자주 올라가는 거 같더라. 후반전에는 수비 위주의 안정적인 플레이를 기대하마. 무슨 말인지 알지?”
더 이상 공격 욕심 내지 말고 수비에 집중하란 소리였다. 2골 차를 지키는 게 이명신 감독의 작전인 모양이었다.
이명신 감독은 현수와 사이가 좋다는 걸 빼고 나면 감독의 자질 면에서는 현수도 그다지 좋은 점수를 주지 못했다. 작전을 잘 세우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선수기용을 잘하는 것도 아니었다.
어떻게 연신대 감독이 됐는지 모르지만 딱 고등학교 팀이나 맡으면 될 정도의 실력 밖에 되지 않았다.
‘저러니 내가 일본으로 진출하자 바로 잘렸지.’
그래도 다른 사람은 몰라도 현수까지 그의 무능함을 탓하긴 그랬다. 어째든 그에게만큼 이명신 감독이 헌신적으로 잘해 준 건 사실이니 말이다.
10분간의 휴식 후 이명신 감독이 그라운드로 다시 선수들을 소집했다. 주전과 비 주전 선수들이 위치를 바꾼 체 진영에 포진하자 곧바로 후반전이 시작 되었다. 후반전도 전반전보다 더 지루하게 경기가 진행 되었다.
2골 차로 앞선 주전팀은 느긋하게 볼을 돌렸고 이기고자 하는 의욕이 없는 비 주전팀은 대충 뛰었다. 그런 가운데 현수는 제 역할을 다 했다.
턱!
“헉!”
중간에서 비 주전팀 윙어의 공을 커트한 현수가 힐끗 전방을 쳐다보고는 그들의 업사이드 라인을 한 방에 무너트리는 킬 패스를 주전팀 공격수 나진목에게 찔러 넣어 주었다.
“좋았어!”
파팟!
나진목은 그대로 그 공을 쫓아 뛰었다. 하지만 눈치 빠른 비 주전팀 골키퍼가 뛰어나와서 먼저 공을 걷어냈다.
“에잇!”
공격수가 살짝 공을 방향만 틀었어도 골키퍼를 제칠 수 있었는데 역시 공격수의 능력 부족이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아깝다.”
그걸 보고 이명신이 손바닥으로 자신의 무릎을 탁 쳤다.
작년만 하더라도 연신대에는 김창수란 걸출한 공격수가 있었다. 그는 사실 현수의 덕을 가장 많이 본 선수였다. 현수가 넣어 주는 기막힌 킬 패스를 받아서 넣은 골만 20골이 넘었으니 말이다.
덕분에 그는 작년 말에 포항에 가장 먼저 우선 지명을 받았고 올해 바로 프로 무대에 데뷔를 했다. 하지만 K리그 1부 소속 포항 스틸스에서는 현수처럼 그에게 정확하게 킬 패스를 찔러 넣어 주는 선수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두 경기 선발 출전 했다가 백업 자원으로 밀려나더니 요즘은 포항 경기에 교체 멤버 명단에도 그의 이름이 보이지 않았다.
들리는 소문에는 포항 2군으로 내려갔다는 얘기도 있었다.
어째든 현수가 미드필드에서 많이 뛰어주자 공격진의 공격 루트가 훨씬 넓어지고 그 움직임도 덩달아 빨라지고 있었다.
그들이 어디로 움직이든 중앙 미드필더 현수가 정확한 패스를 해 줄 거라 믿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움직임이었다. 그만 큼 현수에 대한 연신대 공격수들에게 신뢰를 거의 절대적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현수야. 나는 너만 믿는다.”
이명신은 심판 보는 건 뒷전이고 팔짱을 낀 체 현수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야. 현수 못 올라오게 막아.”
현수는 공격진에 정확한 패스 외에도 직접 측면을 뚫고 들어가서 센터링을 올렸다.
“하아! 그걸 못 넣다니.....”
하지만 공격수들이 번번이 찬스를 살리지 못하자 답답한 생각이 들었다. 공격수들의 움직임까지 다 예측해서 공을 올렸는데 그걸 골로 연결시키지 못하는 건 순전히 공격수들의 골 결정력이 떨어져서였다.
‘이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마찬가지로군. 차라리 내가 넣고 말지.’
전반에 한골 넣어서가 아니라 현수는 자신이 있었다. 현재 자신의 능력이라면 얼마든지 골을 넣을 수 있다는 확신이 그에게 있었던 것이다.
현수가 그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청백전도 시간이 흘러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이명신 감독은 현수에게 공격하지 말라고 했지만 이제 곧 시합도 끝나가니 이쯤에서 움직인다고 해서 뭐라고 하진 않을 거 같았다.
청백전이 주전팀이 2대 0으로 이기고 있는 가운데 끝날 공산이 높아진 가운데 골키퍼에게서 공을 받은 센터백 이기찬이 현수를 향해 전진 패스를 넣었다.
파팟!
현수는 바로 그 공을 몰고 하프 라인을 넘어서 좌측 측면을 빠르게 돌파해 들어갔다.
“잡아!”
그때 비 주전팀 미드필더와 수비수가 현수를 가로 막았는데 현수는 그 둘 사이로 공을 밀어 넣었다. 그러자 서로를 의식하고 있던 미드필더와 수비수는 서로 미루다 그 공을 놓쳤고 현수가 바로 그들 사이를 뚫고 나갔다.
“히익!”
수비벽이 현수에 의해 맥없이 뚫리자 비 주전팀의 센터백이 기겁하며 현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뒤쪽으로 수비들이 공격수들의 진로를 가로 막았다. 현수의 패스 경로를 미리 차단한 것이다. 하지만 현수는 공격수에게 패스를 하지 않고 한 템포 빨리 왼발로 공을 감아 찼다.
공은 우측 골포스트 구석으로 휘어져 들어갔는데 그걸 보고 골키퍼가 반응하며 우측으로 몸을 날렸다.
공은 살짝 골키퍼의 손끝을 스치고는 그대로 골대 안 구석 그물을 갈랐다.
철썩!
“와아아아!”
후반전 내내 침묵했던 골이 드디어 터졌다. 주전팀 동료들이 환호성을 내지르며 현수에게 뛰어와서 그를 얼싸 안았다. 심판을 맡고 있던 이명신 감독도 감탄하며 박수를 치고 크게 웃었다.
“개인 기량까지..... 현수 저 녀석 완전 물이 올랐군. 물이 올랐어. 하하하하.”
그리고 호각을 입으로 가져갔다.
삐익!
그렇게 청백전이 모두 끝났다. 현수들은 주전 멤버들과 한데 어울려서 체육관쪽으로 향했다. 그 뒤 비 주전 멤버들과 나머지 축구부원들이 그라운드 뒷정리를 하고 있을 때 이명신 감독은 한 손으로 턱을 괸 체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현수는 확실히 미드필더로만 쓰기엔 아깝긴 해. 골 결정력이 저렇게 뛰어난데 말이야. 흐음. 현수를 CM(중앙 미드필더)과 CAM(중앙 공격형 미드필더)에서 스트라이커로도 활용할 수 있다면야 더할 나위가 없겠는데 말이야.”
강현수에 대한 이명신 감독의 욕심은 어째 끝도 없을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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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기말 고사를 끝으로 연신대는 오늘부터 방학이었다. 그런데 언론 홍보 영상학과 3학년 구은하는 1학기 때 방송국 견학으로 인해 빼 먹은 리포트를 제출하기 위해 오후에 잠깐 학교에 들렀다.
엄마가 위험하다며 가지 말라고 했지만 구은하는 학교 가는 길에는 사람이 많으니 괜찮을 거라며 결국 학교에 갔다. 그럼 집을 지키고 있던 경호원을 데려 가라고 했는데 그럼 집은 누가 지키냐며 기어이 혼자 집을 나섰다.
“너도 참 징하다. 견학으로 인해 리포트 제출을 하지 못한 학생들에겐 일괄적으로 C+를 준다고 교수님께서 얘기하셨잖니.”
“그래도요. 교수님께 꼭 제출해 주세요.”
“하아. 알았다.”
구은하가 건네는 리포트를 받으며 조교 언니가 혀를 내둘렀다. 구은하는 그 C+가 불만이라 이렇게 리포트를 제출 한 것이다.
구은하의 리포트는 딱 봐도 잘 작성 되었기에 A는 무난히 받을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래봐야 전체적으로 봐서 리포트 하나가 학점에 끼치는 영향은 적었다.
물론 구은하와 혹시 학점이 똑 같은 학생이 있다면 구은하가 살짝 변경된 학점으로 인해 그 학생보다 우선적으로 장학금은 받게 될 터였다. 하지만 언론 홍보 영상학과는 인기 학과로 뛰어난 인재들이 많았다.
구은하도 그런 우수한 인재 중 한 명이지만 성적이 학과 톱(Top)은 아니었다. 학과 사무실에 리포트를 제출한 뒤 구은하가 인문대를 막 빠져 나올 때였다.
“은하야!”
같은 과 친구 이재은이 그녀를 발견하고 달려왔다.
“방학인데 학교는 웬일이야?”
“학과 사무실에 볼일이 있어서. 그런데 너는?”
“나야 동아리 때문에 학교 왔지. 내일 모레 축구부 시합 있잖아.”
이재은은 연신대 응원단의 정식 단원이었다.
“축구부?”
구은하는 축구부 하니까 자신을 축구 선수라고 했던 강현수가 바로 생각났다.
“왜? 우리 연신대 퀸카께서 축구 선수에게 관심이라도 있으신가? 어떻게 내가 소개라도 시켜 줘?”
이재은은 반 농담으로 구은하에게 말했다. 그런데 구은하는 그 말에 귀가 솔깃했다.
“응! 나 사실 축구부 선수 중에 알아보고 싶은 사람이 있어.”
“뭐?”
구은하는 놀란 이재은에게 다가가서 그녀의 팔짱을 꼈다.
“가보자.”
“가긴 어딜 가?”
“축구부 선수들이 있는데.”
“그, 그야 지금 축구장에 있겠지.”
“그러니까 같이 가자고.”
이재은은 구은하에게 등 떠밀려서 졸지에 축구장으로 가야했다. 땡볕에서 운동하는 남친을 보는 게 싫어서 축구하는 남친을 차고 농구하는 남친으로 고무신을 바꿔 신은 이재은이었다.
‘거기 가면 진짜 안 되는데......’
이재은은 전 남친인 축구 선수가 그녀를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사실 조금 궁금하긴 했다. 사실 그녀는 전 남친인 축구 선수에게 아직 미련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