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귀 시스템 -->
다시 스타빅스가 입점한 건물 앞으로 나오자 현수가 혜미에게 물었다.
“이제 뭐할 거야?”
갑자기 혜미가 현수를 모텔로 끌고 온 탓에 영화 볼 타이밍을 놓친 상황이었다.
“골치 아픈 일이 해결 되었으니까 이제부터 공부해야지.”
골치 아픈 일이란 스토커 최지만을 말함이리라.
“공부?”
현수에게 공부는 그야말로 생뚱맞은 소리였다.
“얘가? 너 대학생 맞아? 모레부터 기말고사가 시작 되잖아?”
특기생으로 연신대에 입학한 후 현수는 공부란 걸 한 기억이 별로 없었다.
학생이니 당연히 시험은 봤다. 하지만 시험지에 이름만 쓰고 나왔다. 그래도 C학점은 받았으니까.
“아! 그런가?”
예전 현수는 오늘 일본 J리그 가시마 앤틀러스와 계약을 하고 대학 측에 자퇴서를 제출 했었다. 그러니 기말고사를 볼 일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모레 시험을 봐야했다. 그때 현수의 뇌리에 포인트 사용처에서 지력(智力)이 떠올랐다.
‘그걸 포인트로 구입하면 머리가 좋아지려나?’
“그럼 나 먼저 간다.”
도서관과는 담을 쌓은 현수가 자신을 따라 도서관에 갈 리 없는 터라 혜미가 손을 흔들며 먼저 갔다.
“그래. 열심히 공부해라.”
그런 혜미에게 가볍게 한 손을 들어 보인 현수는 버스 승강장으로 향했다. 마침 그의 자취방이 있는 연희동으로 가는 버스가 왔다.
그 버스를 타고 자신이 살던 자취방에 간 현수는 먼저 창문부터 열었다.
“어후! 냄새하곤....”
깨끗하고 향긋한 냄새가 나던 혜미의 오피스텔과는 정 반대인 그의 자취방은 더럽게 퀴퀴한 냄새가 가득했다.
그 냄새부터 환기시킨 현수는 방청소를 시작했다. 대략 30분 정도 청소를 하고나자 그나마 사람 살만한 공간이 나왔다.
현수의 자취방은 연희동의 2층 주택 위 옥탑 방이었다. 옥탑 방이란 게 여름엔 사우나요 겨울에는 이글루였다.
그나마 아직 6월이라 살만은 했다. 하지만 여름이 되면 더위를 견디긴 어려웠다.
“그 전에 여길 떠야지.”
유명 에이전트와 잘만 계약하면 살 곳 정도는 그쪽에서 마련해 줄 터였다.
현수의 자취방은 달랑 침대 하나와 책상 하나 밖에 없었다. 이불은 방 한쪽 구석에 개어져 있었고 벽에 옷걸이에는 그의 트레이닝복들이 잔뜩 걸려 있었다.
현수는 그 중에서 그나마 냄새가 나지 않는 트레이닝복으로 옷을 갈아입고는 나머지 트레이닝복들과 오늘 자신이 입었던 옷을 들고 빨래방으로 향했다.
빨래방에서 세탁기를 돌린 후 근처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 하나를 먹고 나서 동네를 돌았다. 그러다 빨래가 다 되자 그걸 챙겨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동네 슈퍼 잠깐 들러서 라면과 파, 그리고 달걀을 구입했다.
그렇게 자취방으로 돌아온 현수는 책상 의자에 앉아서 노트북을 열고 전원을 켰다.
현수는 연신대 스포츠 레저 학과 사이트에 들어갔다. 그러자 학과 게시판에 시험에 대한 정보가 있었다.
“모레 10시에 보는군.”
시험은 모레 2과목 심리 기술 훈련 론, 스포츠 마케팅을 보고 다음 날 나머지 2과목인 레크리에이션 경영 전략, 스포츠 레저 카운슬링을 보게 되어 있었다. 각 과목당 시험 범위를 확인한 현수는 바로 노트북을 덮었다.
그 사이 해가 졌고 현수는 슈퍼에서 사온 라면을 맛있게 끓여 먹었다.
설거지까지 끝낸 현수는 방에 벌러덩 누웠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타임리퍼 시스템을 생각했다. 그러자 그 눈앞에 홀로그램 창이 떴다.
[복싱]
1. 도장 챔피언: 2,000포인트
2. 시도 배 챔피언: 8,000포인트
3. 전국체전 챔피언: 60,000포인트
4. 동양 챔피언: 130,000포인트
5. 세계 챔피언: 200,000포인트
현수가 최지만과 싸우기 전에 급하게 구입했던 시도 배 챔피언이 나오는 복싱 창이었다.
현수는 창을 계속 뒤로 돌렸다. 그러자 최초 창인 포인트 사용처 창이 나왔다.
“어디 볼까?”
[포인트 사용처]
1. 체력(體力)
2. 지력(智力)
3. 행운(幸運)
4. 친화력(親和力)
5. 도구(道具, item)
현수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2번 지력을 쏘아보자 홀로그램 창의 내용이 바로 바뀌었다.
[지력]
1. 지능
2. 초능력
“지력에도 체력처럼 초능력이 있네.”
현수는 흥미 진지한 얼굴로 일단 1번 지능을 선택했다.
[지능]
1. 인지력
2. 학습능력
구체적인 내용과 포인트에 대한 설명이 없자 현수는 다시 1번 인지력을 선택했다.
[인지력]
이름: 강현수
인지능력: 15/100
인지능력 향상: +1 상승 1,000포인트(단 한계치 50까지. 50이상 60까지는 4,000포인트. 60이상 70까지는 10,000포인트. 70이상 80까지는 30,000포인트. 80이상 90까지는 50,000포인트. 90이상 100포인트까지는 70,000포인트 필요)
“15라고?”
자신의 지능이 고작 15란 사실에 강현수는 먼저 한숨이 나왔다.
지능을 100까지 올리려면 엄청난 포인트가 필요했다.
그렇지만 현수에게 지능은 100까지 필요 없었다.
“그래도 15는 좀 심했다. 일단 50까지 올리자.”
지능 50이면 보통 사람 지능쯤 될 테니 현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무엇보다 50까지 지능을 올리는데 포인트가 그리 많이 드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물론 인지능력 +1 향상 하는데 드는 1,000포인트가 결코 적다는 소린 아니다.
현수는 인지능력을 +35 구입했다.
[띠링! 35,000포인트 결제. 남은 포인트 954,050]
인지능력을 향상 시키자 현수의 머리에서 갑자기 환한 빛이 뿜어져 나오다 사라졌다. 그 직후 현수는 평소보다 머리가 맑아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자. 이제 봐 볼까?”
현수는 전공서적 하나를 펼쳤다. 평소라면 하얀 게 종이요 검은 게 글씨였던 책이 술술 읽힐 뿐 아니라 어느 정도 이해도 되었다. 아무래도 인지능력 50이 보통 사람의 지능을 훌쩍 뛰어 넘는 수준인 모양이었다.
“오오!”
현수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계속 책을 보았다. 어느 정도 이해가 되니 이제 책이 수면제가 아닌 지식의 보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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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가 만족할 수준으로 지능을 향상 시킨 현수는 창을 되돌렸다. 그리고 지능에서 학습능력을 클릭했다.
[학습능력]
이름: 강현수
학습능력: 30/100(원래 10이었는데 인지능력이 50까지 향상 되면서 학습 능력 +20 늘어났음)
학습능력 향상: +1 상승 1,000포인트(단 한계치 50까지. 50이상 60까지는 4,000포인트. 60이상 70까지는 10,000포인트. 70이상 80까지는 30,000포인트. 80이상 90까지는 50,000포인트. 90이상 100포인트까지는 70,000포인트 필요. 단, 단기로 학습능력 향상이 가능함. 위 포인트의 1/1,000 )
학습능력도 지급되는 포인트는 인지력과 같았다.
“단기 학습능력 향상?”
현수가 의문을 재기하자 바로 시스템에서 부연 설명이 흘러 나왔다.
[단기 학습능력 향상은 말 그대로 일정 기간 동안 만 학습능력이 향상 되는 걸 말합니다. 보통 인지능력 50을 기준으로 사흘간 그 능력이 발휘 됩니다.]
“사흘이라. 딱 좋군.”
인지능력이 향상 된 현수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그러니까 일단 학습능력도 인지능력처럼 50까지 올린 다음 시험은 단기 학습능력을 사용해서 보면 되겠군. 그런데 단기 학습능력의 60과 70의 차이가 뭐지?”
그 의문에 바로 시스템이 화답했다.
[이해하기 쉽게 설명 드리자면 단기 학습능력이 60일 경우 책을 3번 정독 시 전부 암기가 됩니다. 70은 2번 정독, 80은 1번 정독, 90은 눈으로 그 페이지를 훑으면 기억이 되고 100은 그 책을 만지면 바로 머릿속에 책의 내용이 저장 됩니다.]
그 설명을 듣고 난 현수는 일단 학습능력을 +20 구입했다.
[띠링! 20,000포인트 결제. 남은 포인트 934,050]
그 다음 단기 학습능력 향상으로 학습능력을 +30 더 구입했다.
[띠링! 440,000포인트의 1/1,000인 440포인트 결제. 남은 포인트 933,610]
현수는 단기 학습능력 향상이 생각보다 그리 많이 포인트를 잡아먹지 않자 그냥 단기로 100까지 확 학습능력을 올릴까 생각했다가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야. 티끌모아 태산이라고 아낄 수 있는 포인트는 아껴야지. 그리고 양심상 책은 한 번이라도 보고 시험을 봐도 봐야 하지 않겠어?”
현수는 그 말 후 다시 전공 책을 읽었다. 그러자 읽는 족족 머릿속에 그 내용들이 각인되기 시작했다.
“이야! 신기한데?”
현수는 이왕 시작한 거 모레 치를 시험 과목인 심리 기술 훈련 론과 스포츠 마케팅의 책을 꺼내서 시험 범위부터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그 내용이 이해가 되었고 또 머릿속에 그대로 기억이 되자 현수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책에 흠뻑 빠졌다.
그렇게 두 시간 뒤 심리 기술 훈련 론을 시험 범위까지 모두 다 읽은 현수는 잠깐 화장실을 다녀와서 다시 스포츠 마케팅 책을 잡았다.
스포츠 마케팅 책까지 시험 범위까지 전부 읽은 뒤 현수가 시간을 확인하지 12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이거 모레, 아니지 12시가 넘었으니 내일이네. 내일 시험 칠 과목은 다 공부했으니까 오늘은 편하게 놀아도 되겠군. 아아아함! 일단 자자.”
늘어지게 하품을 한 현수는 이부자리를 펴고 불을 끈 뒤 마음 편하게 누워서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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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현수는 아침 8시 쯤 잠에서 깼지만 딱히 할 일도 없어서 그냥 더 자기로 했다.
쾅! 쾅!
그때 누가 그의 자취방 문을 시끄럽게 두드렸다.
“현수야! 현수야!”
귀에 익은 목소리!
‘문세광!’
현수는 짜증 섞인 얼굴로 그냥 없는 척 이불을 뒤집어썼다.
“너 그 안에 있는 거 다 알아. 빨리 문 열어.”
“에이 씨!”
현수는 녀석이 소란을 피우면 집 주인이 옥탑 방으로 올라올까 싶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벌컥!
현수가 거칠게 방문을 열자 문세광이 또 울먹이는 얼굴로 현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런 문세광을 보고 현수가 쓴 소리와 함께 혀를 찼다.
“사내새끼가 이렇게 쉽게 무릎을 꿇어서야. 쯧쯧쯧.”
현수가 뭐라고 하든 말든 문세광은 아주 필사적이었다.
“현수야! 제발 나 좀 살려 주라.”
최대한 애처로운 눈빛으로 두 손이 발이 되도록 비는 문세광을 보고 현수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왜 나보고 널 살려 달라는데?”
“그, 그건.... 앞으로 내가 너한테 잘할게. 그러니까.....”
“아. 됐고. 잠깐만!”
방으로 다시 들어간 현수는 방 키를 들고 옥탑 방 밖으로 나갔다. 그는 밖에서 방문을 걸어 잠근 뒤 옥탑 방을 나서며 문세광에게 말했다.
“꺼져. 다시는 내 눈 앞에 나타나지 마.”
“현수야!”
그러자 문세광이 다급히 현수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현수는 기가 찬 얼굴로 현수를 내려다보다가 허리를 굽혀서는 문세광의 멱살을 잡아서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살기등등한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며 말했다.
“너 이 새끼 사람 말 못 알아들어? 다시 말하는 데 한 번 더 내 눈에 띠면 그땐 내 손에 죽는다.”
시도 배 챔피언의 위엄 앞에 하얗게 질린 얼굴의 문세광을 보고 현수가 잡고 있던 멱살을 이내 풀어 주었다. 그리곤 뒤도 돌아보지 않고 휑하니 옥탑 방을 빠져 나갔다.
“현수야!”
뒤늦게 문세광이 쫓아왔지만 현수는 큰 길에서 택시를 잡아타고는 문세광을 따돌렸다.
“쓰레기 같은 새끼.....”
아침부터 문세광을 본 것 자체가 짜증스런 현수는 딱히 갈 때도 없어서 일단 택시 기사아저씨에게 연신대로 가자고 했다. 그때 연신대 축구부 주장인 표일석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네. 형.”
골키퍼인 표일석과 현수는 평소에도 형, 동생 할 정도로 사이가 좋았다.
-너 지금 어디야?
“학교 가고 있는데요.”
-빨리 와. 감독님 나오셨어.
그 말 후 표일석이 전화를 끊었다.
“뭐지? 시험 기간 아닌가?”
8년도 넘은 지라 이 당시 축구부에 무슨 일이 있는지 현수는 알 길이 없었다. 현수는 일단 학교에 가서 알아보자고 생각했다.
10분도 되지 않아 학교 정문 앞에 택시가 도착했다. 현수는 택시에서 내리기 무섭게 축구장으로 뛰었다. 축구장에는 연신대 축구부원들이 훈련 중이었다.
그걸 보고 놀란 현수가 라커룸으로 향할 때 주장인 표일석이 그를 불렀다.
“현수야!”
현수가 표일석에게 뛰어가자 그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미안! 너도 우리 과인 줄 알고. 스포츠 레저 학과는 내일과 모레 시험이라며?”
“네. 뭐.....”
그러고 보니 축구부원 중 70%가 체육교육과에 다녔다. 현수는 그 나머지 30%인 스포츠 레저 학과에 다녔고 말이다.
“FA컵이 28일이라서 내가 정신이 좀 없다. 가서 공부해라.”
표일석이 현수의 팔뚝을 툭툭 치고는 골대로 뛰어가는 걸 보고 현수도 막 발걸음을 돌릴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