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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탑주의 가짜 아내가 되었습니다-10화 (10/11)

Chapter10

주저하던 카넨이 페리아의 유혹에 저항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넘어가 버렸다. 마음이 급해 옷도 제대로 벗지 못하고 달콤하기 그지없는, 이전에는 매일같이 삼켜 대었던 그녀의 입술을 탐했다.

“페리아.”

정말로 오랜만에 카넨의 입술이 페리아의 입술을 덮었다. 카넨의 지금 심정으로 따진다면 그녀를 마지막으로 품에 안았던 그날로부터 겨우 한두 달이 아니라 적어도 몇 년은 흐른 것 같았다.

페리아를 만나기 위해 매일매일 그녀를 찾아가기는 했어도, 어쩌면 그녀가 자신을 받아 주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된다 해도, 이전까지는 아쉽기는 했지만 그저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조차도 말도 안 되는, 미친 생각이었지.’

이번에 신성제국에 맞서 싸우면서 제 목숨을 구해 준 페리아의 모습을 보고, 그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정말로 트라비안의 말마따나 그녀의 앞에 무릎 꿇고 빌라고 하면 빌 수 있을 것 같았다.

매일매일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아예 페리아의 저택 앞에 진을 치고 있다가 먼발치에서 그녀의 어릿한 인영만 봐도 행복할 것 같았다.

‘그때의 페리아는 정말이지…….’

다시금 생각해 봐도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심장까지 쿵쾅대며 거세게 뜀박질했다. 당시 페리아에게서는 후광이 비치는 듯했었다. 자신이 누군가의 목숨을 구해준 적은 수없이 많았어도 다른 사람이 제 목숨을 구해준 적은 없었다. 게다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정확하게 찾아와 목숨을 구해 주다니.

‘반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지.’

누구에게 물어도 모두 공감할 것이다. 페리아가 얼마나 멋있고, 매력적인 사람인지. 예전에는 트라비안이 제 아내에게 지극정성을 다하는 것을 보고도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지금은 그보다 더한 것도 페리아에게 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가 그전에 말했던 대로 아내를 존경하면서 살아갈 자신이 있었다.

‘페리아가 내게 기회만 준다면.’

그렇게 매력적인 페리아가 제 아래에서, 이전처럼 제 입술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무척 설레었다.

하지만 카넨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속아 마음을 놓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당장은 페리아가 제 몸을 허락했을 수 있어도, 마음을 연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페리아가 저와 몸을 섞는 것을 마음에 들어 했기에, 그녀의 눈에 들 수 있다면 언제든지 페리아의 부름에 응할 의지가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이전처럼 그녀가 자신을 보고 웃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웃는 얼굴로, 제 이름을 부르며, 자신에게 안겨 오던 그때가 그리웠다.

‘지금은… 오히려 외면하지 않으면 다행이니.’

지금 상황으로는 언제든 버려질 수 있었다. 이전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무슨 수를 쓰기는 해야 했다. 물론 제게 허락해 준 페리아를 만족시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아니면 다음에 또 마력이 고갈될 때까지 목숨을 걸어 봐야 하나.’

카넨은 페리아와 입을 맞추면서 그녀의 가슴을 주무르던 손을 아래로 내려 두 허벅지 사이를 벌렸다. 그 틈새로 자신의 다리를 밀어 넣고 어느새 습해진 음부에 손을 대자 페리아가 파드득 튀어 놀랐다.

“그, 그게… 오랜만이라서!”

페리아의 말을 들은 카넨이 짙게 미소 지으며 몸을 움직여 페리아의 다리 사이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녀가 제일 좋아했던 대로 페리아의 양쪽 허벅지를 제 어깨에 올린 뒤 밀부를 길게 핥았다.

“아흑!”

페리아의 예민한 신음 소리가 들려오자 카넨은 제 페니스에서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쿠퍼액이 흘러나오는 것을 느꼈다. 당장이라도 쑤셔 박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지금은 자신을 위한 시간이 아니라, 페리아를 만족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때였다.

카넨은 돋아 오른 음핵을 혀로 굴리며 페리아의 살결을 탐했다. 그의 혀가 음핵을 한 번씩 굴릴 때마다 그의 것인지 페리아의 것인지 모를 액체로 음부가 더욱 흥건해졌다.

“으, 으흣!”

그녀가 만족스러운 신음을 흘리는 것을 듣고 페리아가 이전에 가장 좋아하던 대로 그녀의 밀부에 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당신은 이렇게 하는 것을 제일 좋아하지 않습니까.”

페리아가 가장 느끼는 부분은 제 손가락이 닿지 않는 깊은 곳에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손가락 마디를 살짝 굽혀 질 벽을 긁어내렸다. 그러자 이전과 같이, 어쩌면 이전보다도 격렬하게 그의 손가락을 조여 왔다.

카넨은 페리아에게 자신이 모르는 새로운 습관이 생기지 않은 것 같아 안도했다. 만약에 그런 게 생겼더라면, 누군가에 의해 생긴 것이라면, 그 자식은 이 세상에 어떠한 파편조차 남지 못하게 되었을 것이다.

“흐아! 아……!”

카넨의 집요한 애무 끝에 페리아가 절정에 다다라 음부에서는 하얀 애액이 흘러 내려왔다. 카넨이 기꺼워하며 그것을 핥아 낼 때마다 페리아의 허리가 뒤틀렸다.

그러다 페리아의 하얀 다리가 카넨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페리아가 무어라 말하지 않아도 카넨은 알고 있었다. 이제 넣어도 된다는 허락이라는 것을.

“넣어도 됩니까.”

페리아가 고개를 끄덕이자 카넨이 차마 옷을 벗어 내지도 못하고, 허리춤만 겨우 풀어 헤쳐 바지를 제 무릎까지 내린 뒤에 그녀에게 다가섰다.

그가 제 페니스를 그녀의 음부에 맞춘 뒤 페리아의 허리를 잡아당겼다. 그러자 페리아가 제 두꺼운 허벅다리 위에 올라오며 그의 페니스가 그녀의 안쪽 깊숙이 박혀 들어갔다.

“……!”

“갔습니까?”

단지 삽입만 했을 뿐인데도 페리아가 가볍게 절정에 오르며 카넨의 손목에 제 손톱을 박아 넣었다. 카넨은 무엇이 그리도 기쁜지 자신의 손목에 피가 비치는 것조차 기꺼워했다.

“움직여도 됩니까?”

페리아는 오랜만의 섹스에 떨려 와 두어 번 숨을 내쉬었다.

“네.”

“그럼 사양 않고.”

카넨은 페리아의 허락이 떨어지자 싱긋 미소 지었다. 제가 마음에 둔 여자를 제 품 안에 안고 있을 수 있는데, 그 기회를 허투루 쓸 이유가 없었다.

카넨이 허리를 천천히 움직여 그녀의 안에 박혀 있던 제 페니스를 간당간당한 위치까지 뽑아내었다. 느릿한 움직임에 그의 성기 끝이 질 벽을 긁어내리며 움직이자 페리아의 질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오랜만이라 예민한가 봅니다.”

“…그런 것 같아요.”

“흐음.”

카넨이 생각에 잠긴 듯하더니 곧 그녀의 양쪽 허벅지를 붙잡고 제 페니스를 단숨에 찔러 넣었다. 느긋하게 움직일 것이라 예상했던 페리아는 예상외의 움직임에 신음 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고 바들바들 떨었다.

“제가 배려하는 것은 원하지 않을 것 같아서.”

카넨이 키득키득 웃으며 빠르게 제 것을 그녀의 음부에 찔러 넣었다. 이전에 페리아가 수없이 최고조에 올랐었던 그곳을 집중적으로 찔러 대며 그녀의 절정을 이끌어 냈다.

“아윽! 카넨! 읏! 그만!”

“그만이라니.”

페리아가 정말로 싫어할 때의 반응을 알고 있었기에 카넨은 그녀가 과도한 쾌락에 몸부림치다가 그것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말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몇 번이든 괜찮습니다. 언제든 당신이 만족할 때 가세요.”

“아읏! 시, 싫어, 읏!”

“하아, 저도 싸 버릴 것 같습니다.”

“하으읏! 카넨! 아앗!”

“큭!”

페리아가 제 이름을 부르면서 절정에 오르자 카넨도 참지 못하고 그녀의 안에 사정해 버렸다. 카넨은 이로 인해 자신의 마력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지만, 그것에 신경 쓰지도 못할 만큼 정신적인 충족감이 컸다.

페리아를 안았다는 것, 그녀가 자신으로 인해 절정에 올라갔다는 것 그 모든 것이 그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만족감을 안겨 주었다.

“하아, 하아.”

페리아가 예민하게 그를 느낀 것처럼, 카넨 역시 오랜만의 섹스였기에 그녀의 안쪽에 잔뜩 사정해 버렸다. 그런데 아직도 제 아래에서 열감으로 붉게 달아오른 채 숨을 몰아쉬는 그녀의 모습을 보자 페니스가 다시금 빳빳하게 힘을 받아 단단해졌다.

“자, 잠시만요, 카넨.”

카넨은 기다리라는 그녀의 말에 몸을 숙여 그녀의 앙큼한 유실을 제 입에 담았다. 손으로 주무를 때마다 손가락 사이로 삐져나오는 그녀의 가슴. 그리고 그 사이로 이따금씩 튀어나오는 유두를 손가락 끝이 스칠 때면 또다시 그의 좆을 조여 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카넨이 그녀의 몸을 뒤집어 버렸다. 새하얀 엉덩이 사이로 달큼한 애액을 흘러내리는 그곳에 카넨은 제 것을 단번에 쑤셔 박았다.

“아흑!”

이미 안쪽에는 그와 페리아가 사정한 액체로 가득했기 때문에 거부감 없이 한 번에 들어갔다. 그녀의 허리를 붙들고 제 허리를 흔들자, 카넨의 칠흑같이 어두운 기나긴 머리카락이 그녀의 피부를 스쳤다.

“으읏, 카넨.”

“왜 그러십니까.”

“옷도 안 벗고…….”

“마음이 급해서. 벗길 원합니까?”

카넨은 제 옷을 태워 버리고 싶었지만 마력이 담긴 옷은 다시 만들기가 까다로워 잠시 멈칫했다. 그사이에 페리아가 웃으며 말했다.

“간지럽긴 한데, 오히려 더 좋네요. 배덕감이 느껴져서.”

“배덕감이라. 배덕감을 느끼고 싶습니까?”

카넨이 빠르게 허리 짓 하던 것을 조금씩 천천히 움직였다. 그리고 배덕감이라는 단어를 되뇌었다.

“그러고 보니 이전에 제 집무실 책상에서 할 때도 많이 느꼈었지요.”

“…그, 그래요?”

카넨은 페리아의 뜨끔한 얼굴을 보자 확신했다.

“마차에서 했을 때도 그렇고.”

테라스에서는 사정상 미수에 그쳤지만, 그때도 페리아가 얼마나 기대했었는지 제게도 느껴졌다.

‘어떻게 한다……? 또다시 집무실에 가는 것은 식상하다고 여길 텐데.’

테라스에서 하는 건 다음으로 미룬다고 해도 지금 당장이 문제였다.

마법을 이용해 촉수를 꺼내 볼까 하니 너무 취향을 타서 문제였다. 괜히 말이라도 꺼냈다가 페리아의 취향이 아니라면 단번에 이 기회를 잃게 되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과 함께하기에는 페리아가 말하는 배덕감이 넘치기야 하겠지만 상상만으로도 화가 났다. 페리아의 이런 모습을 다른 사람이 본다니, 말도 안 됐다.

카넨의 고민이 끝나지 않자, 페리아가 천천히 움직이는 그 때문에 감질맛이 났는지 스스로 허리를 흔들어 왔다.

“페리아, 많이 기다렸습니까?”

“조금?”

“어떻게 당신을 기분 좋게 할까 고민했습니다.”

“지금도 충분히 좋은데.”

“조금 더.”

카넨은 우선 달아오른 페리아를 만족시키기 위해 허리를 움직였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애액이 찰박이는 소리가 났다.

“소리 들립니까.”

“흐읏!”

“더 느껴 봐요, 더.”

제 허리를 간지럽히는 카넨의 머리카락, 너무 느껴서 애액이 찰박이는 소리, 누워서 할 때와는 다른 쾌감이 그녀를 자극해 왔다.

“그러고 보니, 잊고 있었군요.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던데.”

“흐윽! 뭐, 뭘요?”

정신 차리지 못하고 있는 페리아의 얼굴을 갑자기 커다란 손이 감쌌다.

“…카넨?”

그녀의 눈앞에 있는 것은 카넨이었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도 카넨이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일단 저것도 접니다.”

페리아의 눈에 헐벗고 있는 카넨이 제 페니스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페리아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의 페니스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카넨은 페리아가 애무하고 있는 것도 저 자신이었지만 괜히 배알이 꼴렸다. 자신이 한 행동임에도. 그래서 이전보다 더욱 거세게 박아 댔다.

퍽. 퍽. 퍽. 퍽.

페리아가 강렬한 쾌락에 손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자 카넨의 분신이 페리아의 입을 벌리고 그 안에 제 좆을 밀어 넣었다.

“빨아.”

입에도, 아래에도 각각 커다란 페니스가 들어차 있다니. 페리아가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었다. 셋이서 하는 것은 그녀의 도덕관념에 조금 어긋나 있긴 하지만 여하튼, 명확히 따지자면 셋이 아니라 둘이 아닌가. 심지어 제 남편이었고.

게다가 반말하는 카넨은 꽤나 오랜만이었다. 이전에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침대 위에서 반말하는 것은 그다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페리아가 제 입에 담긴 페니스를 핥아 올렸다. 귀두를 정성스럽게 핥아 대고 빨아들이자 자신이 알던 카넨과 똑같은 반응을 보이며 그의 허리가 떨려 댔다. 그와는 몸을 섞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페리아는 능숙하게 카넨이 제일 예민하게 반응했던 것을 반복했다.

그러자 그의 분신이 페리아의 작은 머리통을 붙잡고 허리를 거칠게 움직이며 마치 삽입하듯 추삽질을 이어 갔다. 목구멍까지 치고 올라오는 페니스가 버거워 그의 허벅지를 찰싹찰싹 치며 멈출 것을 요구했다.

“페리아, 멈춰야 하는 것이 맞습니까? 평소보다도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후으…….”

페리아는 그의 말에 부정할 수 없었다. 이런 것을 꿈꿔 왔던 적은 맹세코 단 한순간도 없었다. 그런데 막상 경험해 보니 그가 예전에 돌기가 오돌토돌 나 있는 딜도를 넣었을 때보다, 황궁으로 가는 마차 안에서 섹스를 할 때보다 훨씬 흥분되었다.

“지금도, 이렇게나, 느끼면서.”

제가 얼마나 느끼는지는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지나친 쾌락이 버거워 힘이 들면서도 계속되기를 바라는 모순적인 감정이 반복되었다.

“하아, 페리아…….”

페리아의 앞뒤에서 서로 거칠게 자신의 페니스를 박아 대던 카넨과 분신이 거의 동시에 사정했다. 음부에는 미처 담기지 못한 정액이 다리를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고, 입 안에는 페니스와 정액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페리아가 그의 정액을 뱉으려 했지만 분신이 또다시 허리를 천천히 움직이며 제 몸집을 키워 나갔다.

“으웁!”

페리아가 거칠게 쏘아봤지만 분신은 그런 페리아가 귀엽다는 듯 큭큭 웃어 댔다.

“마시면 되잖아.”

“웁!”

“아래로는 내 정액을 다 받았으면서, 왜 입으로는 안 받으려고 해?”

‘입으로 받는 건 똑같아! 하지만 삼키는 건 다른 문제지! 카넨이 사정한 걸 내 몸이 다 흡수하는 건 아니잖아!’

페리아는 답답해 이렇게 외치고 싶었지만, 입 안 가득 들어찬 페니스 때문에 불가능했다.

꿀꺽.

특유의 비릿한 냄새가 날 거라고 생각했던 페리아는 깜짝 놀랐다. 목을 넘길 때 느껴지는 달짝지근한 맛이 자신이 너무나도 좋아하는 디저트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신기했던 페리아는 되레 그의 페니스를 싹싹 핥아 대며 의 정액을 먹어 댔다.

“당신이 좋아하는 맛으로 바꾸기는 했지만, 그래도 너무한 것 아닙니까. 내 거는 그렇게 맛있게 먹지도 않으면서.”

카넨이 페리아의 허리를 잡아끌어 그녀의 입에 있던 분신의 페니스가 빠져 버렸다. 카넨은 그걸로도 만족하지 못했는지 그녀의 몸을 돌려 제 품에 안았다.

침대에 무릎 꿇고 앉은 채로, 제 허벅지 위에 페리아를 올렸다. 물론 제 페니스는 그녀의 음부에, 카넨과 페리아의 사정액이 뒤섞인 것을 비집고 들어가 있었다.

페리아는 고작 그 정도로 지쳤는지 카넨의 목에 팔을 감고 그의 품에 안겨 왔다.

“힘듭니까.”

“괜찮아요.”

이미 붉게 물든 몸으로, 달큰한 체향을 풍기며 제 품에 안겨 있는 페리아라니. 너무나도 만족스러웠다.

단 하나, 페리아의 뒤로 달라붙는 제 분신을 제외하면.

“저리 꺼져.”

하지만 카넨의 분신은 성격마저도 그와 같았는지 말을 더럽게 안 들었다. 그의 말을 듣기는커녕 카넨의 것이 들어차 있는 그녀의 질 안에 제 손가락을 쑤욱 밀어 넣었다. 그 좁은 틈새로, 애액을 윤활유 삼아 깊숙하게.

“하악!”

생각지도 못한 이물감에 페리아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분신은 손목을 움직여 그녀의 질 벽을 조심스럽게 긁어 갔다.

“아흣, 아! 카넨! 아!”

페리아가 계속해서 가벼운 절정에 올랐다. 이런 걸로 느끼는 제 아내라니, 카넨은 그녀가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분신의 손가락이 움직이면서 카넨의 페니스도 자극하고 있었기에 카넨도 개의치 않고 허리를 움직였다.

“으흑! …읏!”

그녀는 신음 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고 이를 앙다문 채로 카넨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그럴수록 흥분한 카넨은 더욱 허리를 거칠게 움직여 댔고, 분신은 카넨의 것이 빠져나갔을 때 제 손가락을 교차해서 밀어 넣으며 더욱 그녀를 못살게 굴었다. 하나였던 손가락은 어느새 두 개가 되었고, 세 개가 되었다.

방 안에 애액이 찰박이는 소리만 나기를 수 분, 카넨의 목덜미에 고개를 묻고 마구 도리질 치던 페리아가 짐승과도 같은 소리를 내지르며 절정에 올랐다

“아, 아흐! 아아!”

카넨은 쾌락의 끝에 선 페리아를 점점 더 내몰았다. 페리아가 도망치려고 발버둥 쳤지만, 커다란 네 개의 손이 그녀를 단단하게 붙잡고 있어 오히려 더욱 그의 품에 안기며 좀 더 깊숙이 좆을 받아 내야 했다.

“큭!”

페리아의 질이 요동치며 그의 좆을 비틀어 버리듯 꽉 조여 대자 결국 카넨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사정하게 되었다. 사정할 것이 남아 있나 싶을 정도로 페리아가 그의 것을 쥐어짜 댔다.

“하아, 하아…….”

방 안에는 두 사람의 숨소리로 가득했다. 페리아는 생전 처음 느껴 보는 쾌락에 미칠 것 같았지만, 결국 이 또한 받아들였다. 그녀가 숨을 몰아쉬자 카넨은 그녀의 이마와 입술, 볼, 그저 그의 눈에 띄는 모든 곳에 입술을 잘게 맞추었다.

이제 잠들기만 하면 될 것 같았던 그 분위기를, 숨조차 쉬지 않는 이가 깨 버렸다.

“비켜, 이제 내 차례야.”

카넨은 당당하게 제 아내를 요구하는 분신 때문에 어이가 없었다. 카넨이 그것을 태워 버리기 위해 그에게 연소 마법을 시전했고, 시전하자마자 페리아의 성력에 막혔다.

“뭐 하는 거예요?”

“없애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사람을 막 죽이는 거예요?”

순간 날아든 힐난의 목소리에 카넨은 위축이 되었다. 게다가 자신 또한 ‘페리아를 죽이겠다’고 말을 했다가 그녀와 떨어져 있는 고생을 하지 않았던가. 물론 지금이야 누군가 페리아에게 생채기라도 내면 그를 오체분시하겠지만 말이다.

“…사람이 아니라, 제 분신입니다. 외모도, 성격도 같은.”

“예전에 나한테도 화염구 날리더니…….”

“그건.”

“실망이에요.”

페리아는 제 성력을 이용해 분신의 화상을 치료해 주려고 했다. 하지만 점점 상처가 벌어져 갔다. 결국 카넨이 한숨을 내쉬고는 마력을 쏟아 분신이라는 이름의 쓰레기의 상처를 치유해 주었다.

“마력으로 만든 결과물은 성력으로 치료할 수 없습니다. 마력으로 보수하는 겁니다.”

“아… 미안해. 아팠겠다.”

“괜찮아, 페리아.”

카넨의 분신은 약아빠진 것도 카넨과 닮았는지 기회는 이때다 하고 페리아를 품에 안고 얼굴을 비볐다. 페리아는 분신의 어깨를 토닥이며 괜찮냐고 물었고, 그것을 보던 카넨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냥 페리아가 없애 버리게 둘걸.’

“내가 아픈 것은 거기가 아니야.”

“그럼?”

분신은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 제 아래를 가리켰다. 터질 것같이 부풀어 오른 귀두 끝에서 쿠퍼액이 맺혀 있다 못해 흐르고 있었다.

“역시 없애면 안 됩니까?”

“…….”

“아까 페리아의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됐는데…….”

홀딱 벗은 채로 저를 애무하다가 저리됐다고 말하니 페리아는 어쩐지 미안했다. 하지만 카넨과 똑같은 얼굴로 말하니 별로 미안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분신은 죄가 없었다. 오히려 새로운 쾌락을 맛보게 해 주지 않았는가.

“그럼 입으로 해 줄까?”

그 달콤한 맛이 기억나기도 했고, 몸이 힘들기도 했다. 하지만 단번에 거절당했다.

“아니.”

“그럼…….”

“잠깐만 넣을게. 아주 잠깐만.”

페리아는 조금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 상태를 보면 곧 나올 것 같기도 했다. 결국 큰맘 먹고 허락하기로 했다.

“알았어.”

“페리아! 싫습니다.”

“왜 싫어요?”

“당신 남편은 저 아닙니까.”

“당신의 분신이 얘잖아요.”

“그래도…….”

실제로 분신이 사정을 할 때 마력이 회복되는 것은 자신이었다. 그리고 분신이 쾌감을 느끼면 정도가 조금 약할 뿐 자신도 똑같이 그 감정을 느꼈다.

“카넨, 질투해요?”

“네. 그럼 안 됩니까?”

페리아가 어이가 없어서 물었는데 카넨은 자기 자신에게 질투를 하고 있다고 당당히 선언했다.

“그러니 하지 마십시오.”

“페리아, 한 입으로 두말할 거야?”

“…으으.”

일단은 저것도 남편인데, 이상하게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 페리아가 고민을 거듭하자, 분신이 해결책을 내주었다.

“그러면 나 혼자 할 테니까, 봐 줘.”

“뭐?”

“너는 나갈래, 카넨?”

“미친 거냐.”

저를 내쫓으려는 분신의 작태가 어이없었다. 글자 그대로 분신이기에 성격마저 저와 똑같았다. 그러니 자신이 나가면 이 방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불 보듯 뻔했기에 카넨은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아쉽네.”

분신은 한 손으로 다 잡히지 않는 페니스를 위아래로 천천히 흔들었다. 하지만 자신이 생각했던 느낌이 아닌지 미간에 잔뜩 주름을 잡고 있었다. 조금 움직이다가 오히려 짜증이 난 분신이 페리아를 불렀다. 목소리만큼은 부드럽게.

“페리아, 좀 도와줄래? 손만 빌려주면 돼.”

죄책감을 느끼고 있던 페리아였기에 흔쾌히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분신은 페리아가 제 페니스를 손에 쥐게 한 뒤, 그녀의 손을 덮고 제 좆을 흔들기 시작했다.

“하아, 하아…….”

이마에는 조금씩 땀이 맺혔다. 페리아를 지켜보던 분신이 붉은 눈동자 가득히 그녀를 담고서는 조용하게 속삭였다.

“페리아, 너무 예뻐. 하아.”

“응?”

“페리아, 사랑스러워.”

“…….”

분명 카넨이 자신의 분신은 자신의 성격과 똑같다고 했었다. 그런데 저보고 예쁘고 사랑스럽다니?

“카넨.”

“…예.”

카넨은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부끄러워하면서 저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있었다.

“혹시 분신이 당신과 생각하는 것도 같나요?”

“아뇨. 아니……. 네. 같습니다.”

“내가 예쁘고 사랑스러워요?”

“…예.”

입을 놀린 것은 분신인데 민망한 것은 카넨이었다.

“페리아, 좋.”

“더 이상은 안 되겠습니다.”

분신으로부터 페리아를 빼앗아 온 카넨이 조금 망설이다가, 나직이 말했다.

“추후에 정식으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런 놈이 있는, 이런 분위기가 아니라.”

“그냥 해도 괜찮은데.”

“제가 안 괜찮아서 그런 겁니다.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저는 분위기를 많이 탄다고.”

“아.”

분명 첫날밤에 그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알겠어요.”

“페리아, 사.”

“한 글자라도 덧붙이면 두 번 다시 공기와 마주할 일은 없을 거야.”

“…이좋게 지내자.”

페리아가 키득키득 웃자 카넨도 마주 웃었다. 하지만 페리아를 빼앗긴 분신은 입을 비죽 내밀며 불만이 있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카넨이 무서워 얌전히 있었지만.

카넨은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제 품에 안긴 페리아를 보며 미소 지었다.

“페리아.”

“네.”

“잘하겠습니다.”

“…….”

“정말로요.”

페리아가 허리를 들어 질 입구에 카넨의 페니스를 맞추었다. 그리고 서서히 내려앉았다.

“나중에. 나중에 이야기하도록 해요.”

페리아는 아직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카넨이 그것에 대한 답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랐다. 그러니 지금 섣불리 답하고 싶지 않았다. 그에 대한 기대는 한 번 실망한 것으로 충분했다. 두 번 실망하고 싶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페리아가 허리를 흔들며 자신이 가장 잘 느끼는 지점을 찾아 움직였다. 그리고 조금씩 허리를 움직이며 점차 고조되는 쾌락을 즐겼다.

그러다 카넨이 그녀의 허리를 붙잡고 자신의 페니스를 짓쳐 올리자 자지러지게 교성을 내지르며 카넨을 끌어안았다.

“아앗! 아, 아읏!”

페리아가 스스로 움직일 때와는 달리 훨씬 강렬한 움직임에 더 큰 쾌락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것은 또다시 질 안쪽에서 느껴지는 이물감 때문에 더욱 심해졌다.

“너어, 또……!”

“목소리가 달라졌잖아. 방금 전보다 더 예쁘게 우는데.”

그거야 질 벽을 그렇게 긁어 대는데 느끼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할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아까 전에 카넨의 페니스만 넣었을 때보다 분신이 같이 넣었을 때 기분이 더 좋기도 했다.

“이런 걸 보면 없애지 않길 잘한 것 같기도 하고.”

음부에 들어가는 손가락이 두 개가 되고 세 개가 되면서 페리아의 교성이 점점 높아졌다.

“하악! 아… 아, 아!”

그러다 그녀가 절정에 오를 때쯤, 질을 가득 메우고 있던 손가락이 쑤욱 빠져나갔다.

“흐으, 읏…….”

카넨이 거칠게 추삽질하며 그녀를 몰아가려고 했지만, 무언가 허전한 느낌이 드는 탓에 절정이 오지 않았다.

“너, 넣어 줘.”

페리아가 자신의 손가락으로 음부를 벌리며 분신에게 보여 주었다. 더 큰 쾌락을 맞이하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런 미친…….”

“아, 으읏!”

페리아가 바들바들 떨면서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있었다. 분신이 손가락이 아닌 제 커다란 페니스를 그녀의 음부에 밀어 넣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카넨의 페니스와 함께 세 개의 손가락이 들고나던 곳이라고는 하나, 그 엄청난 크기의 물건 두 개를 받기에는 무리였다.

“괜찮습니까?”

카넨이 분신을 없애려고 했으나, 자칫 잘못했다가는 그와 연결되어 있는 페리아까지 다칠 수가 있었다.

분신은 저를 노려보는 카넨을 보며 슬며시 웃고는 아주 조금씩,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페리아는 차마 교성도 내지르지 못하고 카넨의 목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정말이지.”

페리아는 현재 상황이 퍽이나 마음에 들었는지 그 어느 때보다 예민하게 움직이며 그들의 것을 먹어치우고 있었다.

“제가 괜한 걱정을 한 겁니까?”

카넨이 피식 웃으며 놀리듯 이야기하자 페리아가 주먹으로 그의 가슴팍을 퍽 내리쳤다.

“윽!”

카넨은 그런 페리아를 위해 사양 않고 움직이기로 했다. 다행히도 분신이 최소한의 눈치는 있었는지 카넨의 움직임에 맞춰 허리 짓을 했다. 카넨의 것이 나오면 분신의 것이 들어가고, 분신의 것이 나오면 다시 카넨의 것이 들어갔다.

그러나 매번 그렇게 잘되는 것만은 아니어서 이따금씩 둘의 물건이 한 번에 페리아의 내부를 찔러 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페리아는 가볍게 가 버리기도 했다.

“하아, 페리아.”

카넨의 낮은 목소리가 앞뒤에서 들려왔다. 단단한 가슴팍에 둘러싸여 있는 것은 새로운 쾌감을 주었다. 게다가 셋이 하는 것은 처음이었던지라, 페리아는 더욱 흥분이 되었다.

그러다 분신이 갑자기 페리아의 한쪽 허벅지를 붙잡아 그녀의 다리를 벌렸다.

“흐으……?”

차마 물어볼 힘도 없어 고개만 슬쩍 뒤로 하려고 했는데, 어느새 그의 가슴팍에 기대게 되었다.

“이제 슬슬 익숙해진 것 같아서.”

분신이 느른하게 웃으며 그의 손으로 벌어진 그녀의 다리 사이에 있는 동그란 음핵을 굴리기 시작했다.

“아읏! 하읏! 아!”

그걸로도 모자라 카넨이 격하게 추삽질을 해 왔다. 클리토리스를 누르는 것만으로도 가 버릴 것 같은데, 제 밑에는 두 개의 좆을 박고 있으니 그녀가 감당할 수 있는 쾌락을 넘어섰다.

결국 오랜만에 몸을 섞는 그녀의 몸이 버티지를 못하고 까무룩 정신을 잃고 말았다.

페리아가 눈을 떴을 때는, 침실에 그녀와 카넨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분신은 어디 갔어요?”

“다시 흡수했습니다.”

“아…….”

조금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셋이서 하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썩 괜찮았기 때문이다. 처음 섹스를 할 때는 아팠어도 그 뒤로는 쾌락만이 남듯이, 셋이서 하는 것에 익숙해지면 나름대로 괜찮아질 것 같았는데.

“…다시 불러야 합니까?”

“고민해 보도록 할게요.”

페리아에게 있어서 섹스도 중요했지만, 이제는 그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를 꺼내려고 했다. 이제껏 그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페리아, 할 말이 있습니다.”

카넨은 아마 지난밤에 분신이 했던 이야기를 이어서 할 것 같았다.

‘페리아, 좋…….’

‘아마도 좋아한다는 말을 하려는 거겠지.’

카넨이 말하기를, 그와 분신은 같은 사고를 공유하고 있다고 했다. 그 탓에 카넨의 마음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해서 조금 마음이 풀어질 뻔했다.

‘하지만 분신이 같은 사고를 공유하는 것 자체가 거짓이면?’

그의 마음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전에도 자신을 죽이려고 했으면서 그렇게 애정을 가진 척 행동했기에 카넨을 믿었던 만큼 그에 대한 불신이 더욱 깊어졌다.

“제가 먼저 말해도 될까요?”

믿을 수도 없는 그의 말을 들어 봤자 기분만 나빠질 것 같았다.

“…예. 말씀하십시오.”

“나중에 또 생각나면 연락할게요.”

“…….”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던 카넨이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지금 페리아는 대놓고 그에게 ‘네 몸이 생각나면 연락하겠다.’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게, 당신의 답인 겁니까.”

“당신도 내게서 마력을 받을 수 있으니 나쁜 이야기는 아닐 거예요.”

페리아는 카넨에게 이혼을 고했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답을 유보했었고, 카넨은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며 페리아의 마음을 돌리려고 했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빨랐던 페리아의 답은 그가 생각했던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페리아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가장 최상의 답이라고 생각했다. 카넨을 믿기에는 또다시 배신당할 위험이 컸다.

‘언제나 발등을 찍는 것은 믿는 도끼지.’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느니, 애초에 믿지 않는 것이 마음이 편했다. 그렇다고 카넨과 완전히 절연을 하자니 그것은 그거대로 아쉬웠다. 소설 속 세계관을 생각해 보면 카넨만큼 잘생기고, 밤일을 잘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물론 쾌락을 찾는 방법이야 여러 가지니, 그에게 목메지 않아도 괜찮았다. 하지만 ‘성녀’라는 입장상 구설수에 휘말리는 일은 사양하고 싶었으니 카넨과 밤을 보내는 것이 가장 안전했다.

카넨은 페리아의 말을 듣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몇 번이나 입을 달싹이다가 한숨을 내쉬는 것이 반복되었다.

“재고해 줄 수는 없는 겁니까?”

“이혼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해서 그런 건데, 별로인가요?”

카넨은 시간을 돌리는 마법을 개발하지 않았던 자신을 탓했다. 대체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수없이 전쟁터를 전전하면서 사람의 목숨을 가볍게 보아 왔기에, 이렇게까지 큰 문제가 될 줄은 몰랐다.

“페리아, 사죄하겠습니다. 저는.”

“이미 그 얘기는 끝난 걸로 알고 있는데요.”

“페리아, 제발.”

“저는 제 의견을 얘기했어요. 생각해 보고 말씀해 주세요.”

페리아가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챙겨 입었다. 혼자서 입는 것이 힘들어 펭귄의 도움을 받을까 하다가, 괜히 이곳에 오래 있으면 불편하기만 할 것 같아 성력을 이용해 간단하게 만들어 입었다. 입고 온 드레스야 공간 이동을 하면서 가져가면 되니까.

“그럼, 가 볼게요.”

“…….”

카넨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페리아는 굳이 그에게서 인사를 받기 위해 기다리는 것도 아닌 것 같아서 곧바로 자신의 저택으로 공간 이동을 했다.

도착한 뒤 드레스를 대강 의자에 걸쳐 두고 침대에 누웠다. 일단 복잡한 머리를 식혀야 했다. 자신에게 매달리는 카넨 때문에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왔다. 그렇게 죽이려고 할 때는 언제고 사죄한다니.

머리도 아파 오는 데다가, 아침 해가 뜨고 난 뒤에야 풋잠을 잔 것이 전부라서 그런지 너무나도 피곤했다. 페리아는 조용히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

그 후로 며칠이나 시간이 흘렀지만 카넨에게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몇 번인가 저택 앞으로 찾아왔다는데 한참을 망설이다가 다시 돌아갔다고 한다. 페리아는 자신이 제안한 것이 서로 이득이 되는 관계라고 생각했는데, 카넨은 꽤나 고민이 되는 모양이었다.

‘오려나. 만약에 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어디 가서 또 카넨 같은 사람을 찾으려나.’

잘생기고도, 속궁합까지 완벽한 그런 사람. 부와 권력은 부족해도 괜찮았다. 내가 충분하게 갖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어딜 가도 자신의 눈에 차는 잘생긴 사람이 없었다.

제 기억 속에 잘생긴 사람은 딱 네 명이 있었다. 카넨, 황제, 트라비안 공작, 대신관.

카넨은 뭐, 이렇게 되어 버렸고. 황제는… 따지고 보면 카넨보다 더 나쁜 놈이었다. 트라비안 공작은 아내밖에 모르는 사람이니까 애초에 없는 사람이나 다름없고, 대신관은 이미 명을 달리했고, 살아 있다고 할지라도 그런 놈과는 말을 섞는 것부터가 싫었다.

그렇다고 속궁합이 좋은 사람을 찾자니 달리 방법이 없었다. 누가 자신과 속궁합이 맞는지 어떻게 찾는단 말인가. 게다가 카넨의 체력과 페니스의 크기, 테크닉을 생각해 보면 더 잘 맞는 사람을 찾을 가능성은 더더욱 내려갔다.

‘마력으로 이것저것 시도하는 게 더 재밌기도 했고.’

이전에 그와 했던 섹스를 떠올리니 다리 사이가 간지러워졌다. 요 며칠 동안 몇 번이나 이랬던 적이 있어서 손장난을 쳐 봤지만, 이전보다 더욱 섹스를 하고 싶을 뿐 해결이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더욱 갈증만 났다.

‘카넨이 다음에 저택으로 오면 잡아 두라고 그럴까.’

아니면 카넨이 예전에 말했던 ‘마을 여자가 잊지 못해서 다시 찾아갔다는 촉수 괴물’의 위치라도 제대로 알아 놓을걸, 하는 후회까지 들었다.

“헤어지기 전에 딜도라도 받아 놓을걸.”

자신이 성력을 끌어모아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든 딜도는 너무 반짝거리는 바람에 차마 자위하는 데 사용하기 부담스러운 모습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성물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렇다고 힘을 빼고 만드니 제가 원하는 형태나 기능, 색감 등 여러 가지가 모자랐다. 몇 번이고 시도하다가 대체 성스러운 힘이라는 ‘성력’으로 뭐 하는 짓인가 싶어서 바로 그만두었었다.

“아니면 내가 먼저 카넨에게 연락해 볼까.”

카넨이 자신의 제안을 별로 좋게 생각하고 있지 않은 것쯤이야 알고 있다. 좋게 생각했더라면 자신이 제안했을 당시에 이미 받아들였겠지. 하지만 일단 겉으로 보기에는 부부인데, 그를 두고 다른 사람을 찾으러 갈 수도 없었다. 심지어 성녀가 남편을 두고 다른 남자를…이라는 소문이 퍼지는 것은 사양하고 싶었다.

그때 문을 두 번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페리아 님, 이제 슬슬 준비하실 시간입니다.”

“벌써 그렇게 됐어? 알겠어.”

오늘도 카넨에게 연락을 할까 말까 고민만 하다가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오늘 페리아가 참여하는 행사는 황실에서 주최하는 사냥 대회였다. 황제로부터 초대장을 받았을 때, 단번에 참석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었다. 황궁에서 일할 때, 근무 시간과 겹쳐 사냥 대회를 구경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어쩌면 오늘 카넨이 오려나? 아냐. 이런 행사에 참여한 적이 없다고 들었어.’

그렇기 때문에 소설 속에서는 등장한 적이 없고, 외전에서는 꽤나 비중 있게 다뤘었다. 트라비안 공작이 사냥 대회에서 크게 활약했기 때문이다.

‘내 눈으로 직접 보면 좋겠다.’

페리아는 기대에 차서 키득키득 웃었다. 그러고는 소설 속 그 장면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볼 생각에 들떠서 치장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사냥 대회가 열리는 서쪽 숲으로 이동했다.

원래는 남쪽 숲에서 일부러 마물의 개체수를 조절해 가며 안전하게 사냥 대회를 열었다. 그런데 현 황제인 바르칸이 서쪽에 마물이 많이 나오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냐며 남쪽 숲의 마물을 소탕한 뒤 마물이 많이 나오는 서쪽으로 일부러 대회 장소를 바꾼 것이다.

‘정말, 황제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실용주의라니까.’

그래서 관람객들은 숲의 초입에 모여앉아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그동안 참가자들은 안쪽으로 들어가 마물을 잡아 온다. 위험한 마물이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숲의 초입과 숲 중간중간에는 궁정 마법사가 자리에 위치해 참가자들의 안전을 챙겼다.

판정 규칙은 제한된 시간이 지난 후에 마물이 얼마나 강한지를 알려 주는 마석의 크기로 점수를 매기는 것이었다. 독특하다면 독특한 점은, 참가자가 ‘잡아 온’ 마물에게서 나온 마석으로 점수를 판정하는 것이 아니라 관람객이 ‘받은’ 마석으로 점수를 판정했다.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자기 자신에게 선물하는 참가자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아내나 약혼녀에게 선물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물론 트라비안 공작이 처음으로 아내를 데려온 이후로는 연전연승, 무패의 신화를 자랑하고 있었고.’

오늘도 당연히 트라비안 공작의 우승을 점쳤다. 그런데 숲의 초입에 도착하자마자 그 트라비안 공작이 자신을 반겼다.

“성녀님, 오셨습니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트라비안 공작님, 안녕하세요. 그보다 기다리고 있었다니, 왜요?”

“안쪽에 제 아내와 함께 편히 계실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두었습니다.”

“아, 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해요.”

“별말씀을.”

트라비안 공작을 따라 가니 사냥 대회가 아니라 티파티를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이질적인 장소가 하나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곳에서 공작 부인이 손을 흔들며 자신에게 인사하고 있었다.

“리첼!”

“페리아, 어서 오세요!”

“언제부터 성녀님과 그렇게 허물없이 친하게 지내게 된 겁니까?”

고작 인사만 했을 뿐인데도 트라비안 공작은 경계하는 눈빛으로 말했다.

“몇 번 다과를 함께 하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성녀님이라면 괜찮겠지요. 그래도 성녀님인데.”

여자들의 우정마저 질투하는 트라비안 공작이라니……. 이 정도면 리첼도 꽤나 피곤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리첼은 얼굴을 발그레하게 붉히며 조용히 웃고 있었다.

‘잘 만났네……. 그래, 트라비안 공작 정도 되는 사람이라면 그래도 멋있긴 하지.’

물론 그가 아내에게 보여 주지 않는, 부하들을 쥐어짜 내고 리첼에게 해가 되는 것들을 제거해 온 방식을 알고 있는 자신에게는 그렇지 않았지만.

“제국의 태양이신 황제 폐하께서 드십니다!”

저 멀리에서 황제의 등장을 알리는 외침이 들려왔다. 곧이어 모습을 드러낸 황제는 자신이 있는 쪽을 보고는 짐짓 놀랐다가 트라비안 공작을 보고 고개를 내저었다.

‘하루 이틀 이러는 게 아닌가 보네.’

슬며시 미소 지었다가, 어디선가 자신을 쳐다보는 느낌이 들어 그쪽을 보았다. 하지만 대신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황제만 있을 뿐, 그 외에 특별한 것은 없었다. 그래도 뭔가 찜찜한 느낌에 주변을 휘휘 둘러보았지만,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뭐야, 기분 나빠.”

“…….”

“왜 그래요, 페리아?”

“어디선가 쳐다보는 기분이 들었는데 뭔지 모르겠어서요.”

리첼이 저를 염려하며 주변을 살펴봤지만 그녀도 이상한 것을 찾지 못했다. 결국 아무런 소득이 없어 수다나 떨자며 애써 떨쳐 냈다. 처음에는 조금 신경이 쓰였지만, 곧 페리아의 기억 속에서 잊혀 갔다. 어차피 무언가 나타났을 때 자신이 이길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 황제의 뒤편에서는 우울함에 물든 카넨이 있었다.

“…기분 나쁘다니.”

“네가 그따위니까 성녀가 기분이 나쁘다고 하는 거다. 멍청한 놈.”

***

입구와 가까운 곳에서 조그마한 마물을 잡은 이들이 하나둘씩 돌아왔다. 그들이 마물의 시체를 가지고 오면 대기하고 있던 제국 기사단이 그 자리에서 그것을 해체해 마석을 꺼낸다. 그리고 꺼낸 마석에 점수를 매긴 후 관람객에게 선물했다.

“그대의 용기에 찬사를.”

이 오글거리는 대사가 핵심이었다. 선물을 받은 사람은 반드시 정해진 감사의 인사와 함께 마석에 대한 보답을 해야 했다. 대부분 보답을 줄 사람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정성을 들여서 수놓은 손수건을 가져왔고, 혹시나 예상치 못한 사람이 제게 선물할 것을 대비해 꽃이나 책갈피를 가지고 오기도 했다. 그렇지 않으면 사교계에서 질타를 받게 되니 어쩔 수 없이 준비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대의 용기에 찬사를 보냅니다.”

처음으로 받은 것은 자작 영애였다. 결혼을 앞두고 있는 약혼자로부터 받은 것이다.

“와아, 제일 먼저 마석을 받은 건 영애군요!”

“그러게요. 처음은 제가 되었지만 결국은 우리 모두가 아는 결말이 나오겠지만요.”

“하하하하.”

관람객들이 하나같이 웃었다. 많은 귀족들이 열심히 마석을 구해 오고, 결국엔 트라비안 공작이 이기는 대회가 될 테니.

“그래도 오늘은 모르지. 변수가 있을지도.”

“변수라니요, 폐하?”

“트라비안 공작에 대항하는 사람이 참가 신청을 하긴 했는데 어떨지 모르겠군.”

“오오, 누구일까요?”

“글쎄, 신청만 했지 이렇다 할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은 아니어서.”

많은 이들이 변경백이 온 것이 아니냐, 영지로 내려가 있던 전 기사단장이 올라온 것은 아니냐, 그런데 그들이 온다고 트라비안 공작을 이길 수 있겠느냐며 열띠게 토론했다. 가만히 기다리기에는 무료했던지라 그들은 즐겁게 새로운 화제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다 새롭게 마석을 가져오는 사람이 있을 때마다 약혼자가 열심히 사냥해서 온 거라 부럽다, 내 약혼자는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다, 내 남편은 참가도 안 하겠다는 것을 억지로 참가시켰다면서 또 신나게 이야기를 나눴다.

페리아는 다들 즐겁게 대화를 한다고 생각하면서 리첼과 조용히 차를 마시고 있었다. 저마다 마석을 하나씩은 받는데 저만 멀뚱멀뚱 앉아 있으려니 기분이 묘했다. 페리아의 앞에는 중간중간 그들이 쉬는 곳에 난입한 마물을 잡아 그것으로부터 빼낸 마석들만 놓여 있었다. 그녀가 성력을 쓸 때마다 리첼이 눈을 반짝이면서 보는 통에, 대부분은 그녀에게 주고 제 앞에는 하나만 놓긴 했다.

그런데 그때, 생각지도 않게 어떤 청년이 제 앞에 와 마석을 건넨 것이다.

“서, 성녀님.”

“네?”

“여신 에트니아를 믿고 있는 사람으로서, 성녀님의 존재가 얼마나 경이로운지 모릅니다. 부디 받아 주시길 바랍니다.”

이십 대 초중반쯤 되었을까, 멀끔하게 생긴 사람이 제 앞에 나타났다. 그의 말을 들어 보건대, 그가 신도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어머, 저분은 칼데안 소백작이잖아요!”

“원래 이런 행사에 참여 안 하시는데!”

페리아가 궁금한 것은 주변에서 알아서 해설을 달아 줬기에 누구냐는 질문은 할 필요가 없었다. 그가 사냥 대회에 참여를 안 한다는 것이 사실인 듯, 마석의 크기가 크지는 않았지만 꽤나 고생한 티가 역력했다.

“그대의 용기에 찬사를 보냅니다.”

제가 직접 나서서 마석을 가져왔으면 웃길 것 같아서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의도야 어찌 되었든 마석을 선물 받아서 기뻤다. 게다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노력해서 가져왔다는 것이 마음을 간질였다.

“보답은…….”

페리아가 보답할 것을 가지고 오지 않아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리첼은 제 남편 것만 챙겨 왔다. 리첼이 답례품을 가져와 봤자 트라비안 공작에게 죄다 빼앗기기 일쑤였고, 트라비안 공작에게 대항하면서까지 리첼에게 선물을 줄 간 큰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괜찮습니다.”

페리아가 곤란해하는 것을 눈치챘는지, 칼데안 소백작이 싱긋 미소 지으며 이야기했다. 그 모습을 보자 괜히 더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아, 칼데안 소백작님. 잠깐 이쪽으로 오시겠어요?”

소백작은 성녀인 페리아가 시키는 대로 움직여 그녀에게 가까이 갔다. 그러자 페리아가 일어나서 그의 이마에 손끝을 댄 뒤, 성력을 살짝 불어 넣었다. 이전부터 연습한 가호였다.

‘전쟁에 나갈 것도 아니고, 이 정도 가호면 괜찮겠지?’

페리아로부터 가호를 받은 칼데안 소백작이 감격에 젖은 듯했다.

“다, 다시 가서 마석을 구해 오겠습니다! 기다려 주십시오!”

소백작은 마치 오늘 대회가 끝나면 다음 대회를 대비해서 검술 훈련이라도 받을 것처럼 말했다. 아무리 봐도 문관 체질인 것 같은데 가서 다치지나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히, 힘내세요. 다치지는 마시구요.”

“예!”

그가 얼굴에 홍조를 띤 채 사라지자 또다시 이런저런 말이 많았다. 이렇게 또 궁정 로맨스가 펼쳐지는 거다, 소백작이 종교에 대한 믿음만으로 그런 것은 아닐 것 같다 등 여러 가지 억측이 난무했다. 그러다 곧 그녀의 앞에 수상쩍은 로브를 입은 사람이 등장했다. 줄곧 황제의 뒤에 서 있던 사람이었다.

“…페리아.”

“무슨 일이에요?”

카넨이었다. 카넨은 이런 행사에 참여를 안 해 왔으니 이번에도 안 올 줄 알았다. 하지만 황제가 말했던 트라비안 공작에 대항할 만한 사람이 카넨 외에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카넨은 마석을 들고 온 것도 아니고, 그저 조용하게 자신의 앞에 온 것이다.

“혹시 이전에 내가 했던 제안의…….”

“아닙니다.”

“그럼요?”

단칼에 아니라고 자르니 아쉬웠다. 서로에 대한 신뢰는 잃었어도 그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에게 답례로 가호를 내리지 마십시오.”

“왜요?”

“…당신은 제 아내이지 않습니까.”

“결혼을 했어도 답례를 주는 경우가 없지는 않아요.”

적을 뿐 없지는 않았다. 심지어 결혼을 했어도 제 정부에게서 선물을 받아 남편보다 정부에게 주는 선물이 더 화려하고 신경 쓴 티가 많이 나기도 했다.

“그래도 제가 싫습니다.”

“질투해요?”

“예.”

오히려 선선히 질투하는 것을 수긍하자 페리아는 조금 당황했다. 그들의 대화를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던 사람들은 카넨에게 저런 모습도 있는지 몰랐다며 신기해했다. 하지만 페리아는 지금의 대화가 그다지 흥미롭지 않았다.

“당신이 왜 질투를 해요? 당신이 왜?”

어차피 곧 이혼할 거잖아. 나 좋아하지도 않잖아. 그냥 신전에 보여 주기 식으로 결혼한 거잖아. 그럼 이제 그 신전에 대한 문제가 끝났으니까 그럴 필요 없는 거 아냐?

“어떻게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내 아내에게 다른 남자들이 접근하는데!”

카넨은 자신의 마음이 닿지 않는 것에 대해 불안감을 느꼈다. 게다가 소백작이라는 놈은 종교의 탈을 뒤집어쓰고 있을 뿐, 분명 페리아를 좋아하는 것같이 보였다. 실제로도 몇몇 귀부인이 소백작이 성녀님을 좋아하는 게 아니냐며 들떠서 얘기하기도 했다.

“지금 나한테 소리 지른 거예요?”

“아, 아니…….”

“소리 질렀잖아요.”

“그, 그게, 너무 화가 나서.”

“화나면 나한테 소리 질러도 돼요?”

“…미안합니다.”

“앞으로는 그러지 마세요.”

“예.”

사람들은 순한 양처럼 행동하는 카넨을 처음 보았다.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마탑주가 미친 자들의 성이라고 불리는 이유 중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마탑주가 미친 사람처럼 행동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마탑주가 카넨이었고.

세상 무서울 것 없이 살던 카넨이 처음으로 무서워하는 존재가 생겼으니, 그것이 바로 제 아내라니 얼마나 아이러니할까.

“…뭐 해요?”

페리아는 이미 대화가 끝났는데도 여전히 제 앞에 서 있는 카넨을 의아하게 여겨 물었다.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마석을 주지 못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그건 당신이 신경 쓸 게 아니에요.”

“왜 제가 신경 쓸 일이 아닙니까. 내가 당신 남편인데.”

“우리가 이런 걸로 신경 쓸 그런 사이는 아니지 않나요?”

“페리아.”

“그만.”

페리아와 카넨의 대화는 쳇바퀴 돌듯 계속 같은 이야기만 반복되고 있었다. 회장의 분위기가 가라앉고 카넨과 성녀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만 광고하는 꼴이 되는 것 같아 황제가 나서서 정리했다.

“대공과 대공비가 따로 대화를 나눠 보는 게 좋을 듯하네.”

“저는 해야 할 말을 다 했으니 괜찮을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한 카넨과의 재회는 이런 것이 아니었다. 이래서야 뜨거운 밤을 보내기도 글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트라비안 공작이 사냥 대회에 나갔던 부분을 재미있게 봐서 기대했는데, 지금의 분위기로 봐서는 구경하기도 힘들 것 같았다. 페리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저택으로 돌아갈까 했다.

“기다리십시오.”

“뭘요?”

“…….”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공간 이동 마법으로 사라졌다.

‘뭐야?’

기다리라고 하니 그냥 가기도 이상했다. 일단 자신은 카넨과의 관계가 지속되기를 바랐으니까.

시간이 갈수록 주변의 귀부인들이 자신을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 정도라면 제가 보고 싶었던 트라비안 공작의 팔불출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기 위해서 참을 수 있었다.

“성녀님.”

“네?”

이번에도 자신이 불리자 페리아는 조금 짜증이 났다. 이럴 때는 가만히 두는 게 정답인데, 뭘 또 옆에서 부르기까지 하는가 싶었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 등장한 사람은 기사였다. 무려 기사단 소속의. 그런 이가 마석을 내밀어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자신이 무심코 짜증을 낸 것에 대해서. 그리고 여신 에트니아를 믿는 사람이 많이 없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직접 자신을 찾아올 정도로 많은가 싶어서.

“저는 여신 에트니아를 믿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래요?! 그러면 왜…….”

기사가 조금 망설이다가 마음의 결정을 내렸는지 또박또박 이야기했다.

“그게 사실은, 제가 곧 전선으로 이동할 예정이라…….”

“아.”

페리아는 그가 저로부터 가호를 받기 위해서 온 것을 눈치챘다. 뭔가 마석이 가호를 받기 위한 대가처럼 된 기분이었지만 그래도 전쟁터로 나선다고 하니 가호를 내려 줄 생각이었다.

“그대의 용기에 찬사를 보냅니다.”

자신의 앞에 무릎 꿇고 간절하게 기도하고 있는 그의 이마에 가호를 내려 주었다. 반짝이는 금색의 성력이 페리아의 손을 맴돌다가 기사의 이마에 닿고, 그를 감싸다가 사라졌다.

“감사합니다!”

“무사히 돌아오길 바랄게요.”

“예!”

기사가 페리아에게 꾸벅 인사하고 다시 숲으로 들어갔다. 이제는 아마 페리아가 아닌 자신이 원래 주고 싶었던 상대에게 줄 마석을 구하러 가는 거겠지.

“이런 일도 있네요.”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요?”

어쩌면 다른 귀부인들이 질투를 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어차피 그녀들은 우승은 트라비안 공작 부인의 몫이지 자신의 몫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순수하게 응원했다.

아니, 오히려 자신의 몫으로 온 마석을 거부하기도 했다.

“이걸 왜 나에게 줘요! 성녀님께 드리고 가호를 받으세요.”

“하, 하지만 나는 당신한테 주고 싶은데.”

“사냥 대회에서 점수를 얻는 것보다 당신이 가호를 받고 무사히 다녀왔으면 좋겠어요.”

“오, 여보…….”

상단을 하고 있는 자작의 부인이 그러했고,

“성녀님, 저희 아들도 이번에 출전을 하는데…….”

“아, 네. 앉으세요.”

출전을 앞둔 자식을 데리고 온 후작 부인이 그러했다.

“그대의 용기에 찬사를 보냅니다.”

“그대의 용기에 찬사를…….”

“그대의 용기에…….

“그대의…….”

“ㄱ…….”

그렇게 페리아의 앞에 수십 개의 마석이 쌓였다. 이쯤 되자 차라리 이걸 신전에서 헌금 받고 하는 걸로 자리를 잡아 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사냥 대회에서 마석을 받는 경험을 한 걸로 충분했는데, 이렇게까지 쌓을 필요는 없었다. 차라리 돈을 받았으면…….

우르르르르르르.

페리아가 가장 충실하게 따르는 3대 욕구인 식욕, 성욕, 물욕 중 물욕에 충실한 생각을 따르고 있을 때, 무언가 쏟아지는 소리가 났다. 마석들이었다.

“오늘은 조금 더 힘을 내야겠습니다. 내 아내가 우승하려면.”

트라비안 공작이었다. 애초에 마석을 빼낼 줄 알고 있으니, 숲 안쪽에 들어가서 마물의 시체를 손질한 후에 마석만 챙겼었다. 그러다가 아내가 보고 싶어져서 온 것이다. 그리고 너무 오래 떨어져 있으면 아내가 걱정할 테니 말이다.

“이제는 아내의 곁에 있으려고 했는데, 다시 가 봐야겠습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요. 이제 대부분 가호를 받은 것 같은데.”

“신경 쓰이는 사람을 발견해서요. 그럼 제 아내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성녀님.”

“…예?”

트라비안 공작이 씨익 웃고는 다시 숲 안쪽으로 들어갔다.

리첼을 잘 부탁한다니? 단순히 말벗으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주변을 살펴보니 우리 쪽에만 궁정 마법사가 없다는 것을 알아챘다.

‘성녀를 호위로 쓰다니. 역시 트라비안 공작…….’

사실 트라비안 공작은 항상 황제에게 가장 실력 좋은 궁정 마법사를 제 아내의 옆에 배치해 달라고 요청해 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제 아내의 옆자리에 성녀를 앉힐 계획으로 그 요청을 하지 않았다.

평소에 하던 요청을 하지 않자 의아하게 여긴 황제가 상황을 파악한 뒤에 아예 그쪽 부분을 맡고 있던 궁정 마법사를 다른 곳으로 옮긴 것이다.

처음에 자신이 왔을 때는 궁정 마법사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한 페리아가 여기까지 추측해 내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황제고 트라비안 공작이고 하여튼 굉장하다니까.’

“페리아, 미안해요. 제 남편이…….”

“아니에요, 리첼. 이미 알고 있었는걸요.”

페리아가 쓰게 웃었다. 달달함이 도가 지나친 부부였다. 나도 분명 결혼을 하기는 했는데 나는 여기서 경비나 서고 있고 이게 무슨 일인가…….

페리아는 또다시 자신을 찾아온 기사에게 가호를 주고 있었다.

“그대의 용기에 찬사를…….”

쾅!

그때, 테이블을 부술 것처럼 큰 소리가 나서 깜짝 놀라 앞을 봤다. 듣도 보도 못한 거대한 마석이 그녀의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이게 뭐야?”

“…페리아.”

“카넨?”

공간 이동 마법으로 사라진 후에 어디에 갔나 싶었다. 그런데 목소리가 들려와 마석 뒤에 숨어 있는 사람을 보니, 역시나 카넨이었다.

“받아 주십시오.”

“…그대의 용기에 찬사를 보냅니다. 그런데 이렇게 큰 마석을 주는 마물이 있어요? 너무 위험한 것 아닌가.”

“서쪽 숲에서 잡으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규칙을 어기진 않았습니다.”

무언가 말이 이상했지만, 굳이 자세하게 알고 싶지는 않았다. 자세히 알아서 좋을 것은 없을 것 같았다.

“내게는 보답을 주지 않는 겁니까?”

“줘야죠.”

페리아가 다른 이들에게 했던 것처럼 가호를 주려다가 멈칫했다. 마력을 지니고 있는 카넨에게 성력이 담긴 가호를 주었다가는 역효과가 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결국 주저하며 카넨에겐 무엇도 주지 못했다.

“다음 마석을 가지고 올 때까지 생각해 주십시오. 보답.”

“…알겠어요.”

카넨이 가고 난 뒤 페리아는 엄청난 고민에 휩싸였다. 아무리 사이가 안 좋은 모습을 보여 주었어도 아직까지는 남편인데, 아무거나 줄 수는 없었다. 가호야 다른 사람이랑 같다고는 해도 저만 할 수 있는 특별한 일이었으니 얼버무릴 수 있었으나,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뭘 줘야 하는 거지?’

성력으로 무언가 만들까 했는데, 큼지막한 것이라면 모를까 세세하게 사용하는 것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큼직한 것을 만들자니, 너무 눈에 띌 것 같아 사양하고 싶었다.

“고민은 좀 해 봤습니까.”

고민은 카넨이 올 때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페리아는 아직도 답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차라리 밖에 나가서 꽃을 사 올걸 그랬나, 다음부터는 참가 신청을 해서 아예 마석을 받을 일을 만들지 말아야겠다고도 생각했다.

“뭐 갖고 싶은 거 있으세요?”

“…당신.”

“예?”

“나는 당신이 제일 갖고 싶다고.”

귀부인들 몇몇이 입을 막고 소리 없는 아우성을 내질렀다. 그녀들은 서로 눈을 바라보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그 카넨 님이 여자에게 목을 매는 날이 오다니…….’

‘심지어 대공비는 아무런 생각이 없어 보이는데 대공이 매달리다니!’

믿을 수 없는 모습이었다. 몇 달 전 연회에서도 그랬지만, 카넨이 페리아에게 매달리는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그 후 페리아가 카넨과 따로 연회장을 빠져나가는 것을 보고 사이가 틀어졌다는 소문이 사교계에 파다했다. 이제 페리아는 끝났다고. 그래 봤자 운 좋게 자작이 된 남작 따위가 아니었냐고. 그녀가 성녀라는 것은 믿지도 않았다.

그런데 페리아의 냉담한 태도를 보건대, 사이가 틀어졌던 것은 맞았다. 하지만 저 잘생기고 권력 있는 남자가 매달리는데, 마음이 약해지지 않을 여자는 없다고 생각했다.

“고작 마석으로 저를 가질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그건… 그렇지.”

카넨이 페리아의 말을 듣고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귀부인들의 반응은 갈수록 가관이 되었다. 저렇게 거대한 마석을 본 것도 처음이었다. 대체 얼마나 강대한 마물을 죽여야 저런 것이 나오는지 감이 오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대공비는 무슨 자신감으로 저러는 거야?!’

‘대체 왜 대공은 그 말을 수긍하는 건데?!’

페리아와 카넨은 주변이 혼란에 휩싸이든 말든 전혀 신경도 쓰지 않고 그들끼리 대화를 나눴다.

“…기사들은 무투 대회에서 승리하면 키스를 받는다던데.”

“그냥 승리하는 게 아니라 우승할 때고, 이건 무투 대회도 아니잖아요.”

“이 정도 크기를 가져오는 사람이 더 있을 것 같습니까? 당연히 우승할 겁니다.”

“그건 모르는 거예요.”

페리아가 그의 말을 일축했지만 카넨은 이미 기대하는 눈치였다. 페리아가 조금 고민하다가 그에게 손짓했다. 그 한 번의 손짓으로 페리아의 바로 앞까지 카넨이 다가왔다. 페리아가 그의 붉은 눈동자를 빤히 보았다.

“눈, 감아요.”

페리아가 양손으로 그의 뺨을 감싸고 자신의 쪽으로 당겼다. 그렇게 가까워진 그의 입술에 자신의 입을 맞추었다가 한 번 쪽- 하고는 곧바로 떨어져 버렸다. 아쉬운 마음에 카넨의 입술이 그녀를 따라붙었지만, 이미 그녀의 입술은 제게서 도망간 뒤였다.

아주 조금만 손을 뻗으면 닿을 그 거리에서, 페리아는 카넨에게 조그맣게 속삭였다.

“오늘 밤에, 마탑으로 갈게요. 기다리고 있어요.”

카넨이 고개를 끄덕이자 페리아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그를 놓아주었다. 아직 갈증을 느끼고 있는 카넨을 보면서 입꼬리를 끌어 올려 웃었다.

“그나저나, 보답이 키스로 바뀌었으니 다른 사람들이 마석을 가지고 와도 키스를 해 주어야 하려나.”

페리아가 카넨에게 다 들으라는 듯이 중얼거리자, 그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리다 못해 잿빛으로 변해 갔다.

“절대 안 됩니다.”

“글쎄요. 어떡하지…….”

페리아가 고민하는 척하자 카넨은 혹시나 다른 누군가 마석을 가지고 올까 봐 안절부절못했다. 감히 자신의 아내에게 키스를 받으려고 한다고? 그렇다면 없는 죄라도 만들어서 없애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 그들이 가호 대신 키스를 받는지는 모르고 있음을 카넨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말로 그녀에게 키스를 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을지 없을지도 미지수였기에 카넨은 대책을 마련했다.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네, 이따 봐요.”

페리아가 키득거리면서 말 끝내기 무섭게 카넨은 서쪽 숲으로 공간 이동을 했다. 그러고는 마력을 끌어 모아 인근에 존재하는 모든 마물을 없앴다. 흔적조차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마석까지 모조리 다 소멸해 버렸다. 마력을 꽤 많이 쓰긴 했지만 페리아가 다른 이에게 입을 맞추느니 차라리 이게 나았다. 그제야 카넨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고 페리아에게 돌아갔다.

숲 안쪽에 들어갔던 참가자들이 갑자기 마물이 보이지 않는다며 찾다가, 찾다가 결국 포기하고 대회장 입구로 돌아왔다. 카넨이 페리아에게 하는 모습을 일그러진 얼굴로 바라보았던 황제가 현재 상황을 눈치챘다.

“대회는 이것으로 종료하도록 하지.”

황제의 말에 따라 참가자들이 자리로 돌아가고, 궁정 마법사들은 혹시나 숲에 남아 있는 참가자들을 불러 모으러 갔다. 이제 관람객들이 받은 마석을 토대로 점수를 계산하는 것만 남았는데, 모든 이의 눈이 페리아의 앞에 있는 마석을 향했다.

“숲의 주인이라도 잡은 거야?”

“숲의 주인도 저 크기는 아닐걸?”

모두가 페리아의 우승을 점치는 가운데, 트라비안 공작은 제 아내의 곁에 앉아 밝은 표정으로 그녀의 입에 케이크를 넣어 주고 있었다.

황제가 기사단이 넘긴 종이를 받아 들었다. 각각의 관람객이 받은 마석의 점수를 모두 합산한 것과 최종 우승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최종 우승자를 발표하도록 하지.”

카넨이 보기 드물게 연신 미소 띤 얼굴로 페리아를 바라보았다. 많은 것을 기대하는 눈치였다.

“최종 우승자는…….”

많은 사람들이 페리아에게 눈이 갔다. 하지만 그녀는 곁눈질로 카넨을 보면서 애써 평정을 찾고 있었다.

“리첼 트라비안 공작 부인. 축하하오.”

“뭐? 왜?!”

기사들이 우승 상품을 페리아 옆에 앉아 있는 트라비안 공작 부인에게 가져갔다.

카넨은 믿을 수 없다며 즉각 항의했지만, 트라비안 공작은 그럴 줄 알았다며 기사들이 가져온 황금 장미를 아내의 머리카락에 꽂아 주었다.

“대공, 마석을 어디서 가지고 온 거지?”

“서쪽 숲에서!”

카넨이 경어도 집어치우고 말하자 황제의 미간에 주름이 더욱 깊게 파였다.

“그래, 서쪽 숲에 있는 마물을 잡아서 마석을 가지고 오는 것이 규칙이었지.”

“그래서 서쪽 숲에서 마물을 잡아서 마석을 가지고 왔잖아!”

“후우, 대공.”

카넨이 그제야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깨달았다. 그래도 황제인 형의 권위를 위해서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존댓말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예, 폐하.”

“서쪽 숲에 ‘살고’ 있는 마물을 잡아 오는 것이 이 대회의 목표이지, 서쪽 숲으로 거대 마물을 소환해서 잡아 오는 것이 규칙은 아니오.”

“제가 소환했다는 증거가 있습니까?”

카넨의 말에 황제의 눈이 트라비안 공작을 향했다. 트라비안 공작은 여유롭게 웃으며 카넨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트라비안 공작이라면 눈치를 채고도 남았겠네.’

그래서 트라비안 공작이 여유롭게 앉아 있었던 거였구나.

모든 퍼즐이 맞춰진 느낌이었다. 어쩐지 마석이 너무 크더라니. 이곳에 존재하지도 않는 마물을 친히 소환까지 해서 잡은 뒤 마석을 가지고 온 것임을 모두가 알게 되었다.

‘굳이 그렇게까지…….’

페리아는 마석을 굴려 보았다. 자신을 그렇게까지 우승시키고 싶은 이유가 있었나.

‘황금 장미가 금으로 만든 거라 내게 주고 싶은 거였나.’

팔면 돈이 많이 나올 것 같긴 했다. 기본적으로 금으로 만든 데다가 황가의 인장이 박혀 있으니 그 가치가 컸다. 게다가 최근 몇 년간은 트라비안 공작이 독점하다시피 가져갔으니 희소성은 더욱 높았다. 제가 이렇게 값나가는 물건들을 좋아하니 선물해 주고 싶은 것 같았다.

물론 황제가 준 물건을 팔 생각을 하는 것은 페리아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카넨이 하는 행동이 생각보다 귀여워서 웃음이 나오는데, 카넨은 엄청나게 진지했다.

“일부러 가서 안 잡고 번거롭게 소환까지 해서 잡아 온 건데!”

“누가 그러래?”

“윽…….”

카넨이 노려봤지만 트라비안 공작은 그런 그를 한 번 비웃어 주고는 다시 제 아내에게 눈길을 돌렸다.

카넨은 서쪽에서 잡은 마물의 수는 자신이 훨씬 많다고 주장하고 싶었지만, 단번에 소멸시켰기에 마석조차 남지 않아 페리아의 점수엔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어차피 페리아가 우승할 것이라고 믿었기에 누가 주워서 그녀에게 가져갈까 봐 걱정되어 깨끗이 없애 버렸던 것인데 이게 이렇게 후회가 될 줄은 몰랐다.

“오늘 참여한 모든 이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황제가 맺음말을 하면서 대회가 종료되었음을 알리자 많은 이들이 우르르 몰려나갔다. 제 뜻대로 되지 않아 어깨가 축 처져 있는 카넨에게 페리아가 걸어갔다.

“카넨.”

“페리아…….”

“고생했어요. 이따가 밤에 만나요.”

카넨이 무언가 떠오른 듯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빛냈다.

***

늦은 밤, 마탑주의 방에서 오랜만에 성력이 느껴졌다.

“카넨.”

“와, 왔습니까, 페리아!”

그녀가 자신의 방에 온 것만으로도 카넨은 작게 감동했다. 그는 책상 위에 놓인 조그만 상자를 페리아에게 내밀었다.

“이게 뭐예요?”

“열어 보십시오.”

페리아가 의아해하며 뚜껑을 열자 화려한 머리 장식이 들어 있었다.

황금 장미를 선물해 준 것이 마음에 걸렸던 카넨은 대회가 끝난 후 공간 이동으로 대륙을 건너가 그곳에서 가장 큰 레틸 제국으로 갔다. 그리고 경매가 열리지 않는데도 경매장을 찾아가 다음 경매에 올라갈 예정인 물건들을 경매장에서 제시한 기대가보다도 훨씬 큰 액수를 제시하면서 쓸어 온 것이다.

“그게 황금 장미보다 훨씬 가치가 있을 겁니다.”

페리아가 머리 장식을 꺼내 자신의 머리에 꽂았다.

“역시 사 오길 잘한 것 같습니다. 그건 트라비안도 사 오지 못할 겁니다.”

이전에 트라비안이 카넨에게 조언했던 것을 떠올리며 다른 대륙으로 건너가 사 온 것이었다. 다른 대륙의 물품을 사 오는 것은 비용은 그렇다 치고 시간이 굉장히 많이 들었다. 게다가 가지고 오는 길에 도적에게 빼앗기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고마워요, 카넨.”

페리아는 상자를 내려놓고 뿌듯해하는 카넨에게 다가갔다.

“마력, 많이 쓰지 않았어요?”

어느새 그의 바로 앞까지 다가간 페리아가 그의 목에 팔을 감았다. 카넨은 제게 전해져 오는 페리아의 따뜻한 체온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그녀에게서 나는 달콤한 체향을 떠올리자 저절로 하반신에 힘이 들어갔다.

“그래서 말인데, 카넨.”

“예.”

페리아는 느릿하게 움직이며 팔을 모아 카넨을 자신의 쪽으로 당겨, 숨결이 섞일 만큼 가까운 거리에 오게 했다. 말을 하면 입술이 스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만큼 아주 가까웠다.

“이전에 내가 했던 제안에 대해서는 생각해 봤나요?”

“…….”

카넨은 순간적으로 제 심장이 바닥에 떨어져 데굴데굴 굴러가는 것만 같았다. 페리아가 저를 용서한다고 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내가 그래도 이렇게까지 하는데.’라고 생각하며 그녀가 용서했으리라고 지레짐작했다.

하지만 지금 페리아의 말은 카넨의 기대를 산산조각 냈다. 카넨은 오직 마음을 바랐는데, 페리아가 바라는 것은 그의 몸뿐이었다. 물론 이전에 페리아가 말한 대로 마력을 얻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이득이기는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만으로는 너무 공허할 것 같았다.

“페리아…….”

“네.”

“이전처럼 돌아갈 수는 없습니까.”

슬픈 표정을 지으며 하는 카넨의 말에 페리아가 단호하게 답했다.

“네.”

“제가 어떻게 하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해도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요. 지금까지의 일이 쌓이고 쌓여서 이렇게 된 거니까.”

심장에 응어리가 진 느낌이었다. 페리아를 설득하기 위해서 말을 꺼내고 싶었지만, 자신이 무슨 말을 해도 더 안 좋은 결과를 낳을 것 같았다. 그저 트라비안이 제게 말했던 대로 그녀에게 비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러면, 앞으로의 일이 쌓이고 또 쌓이면 바뀔 수 있는 겁니까?”

“…글쎄요.”

페리아의 말대로라면 가능성이 있었다.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가만히 손을 놓고 있어 봤자 지금의 상태가 개선될 가능성은 없었다. 그러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했다.

“알겠습니다. 당신의 제안, 수락하겠습니다.”

카넨은 이렇게라도 해야 그녀에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라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앞으로의 일이 또 쌓이고, 쌓이면 언젠가는 페리아가 한 번쯤 자신을 돌아보지 않을까.

“하기 싫은 거라면 억지로 할 필요는 없어요. 강요하는 건 아니니까.”

페리아가 강요하지 않더라도 카넨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단 하나밖에 없었다. 그녀와 접점 없이 지내다가 언제 이혼 통보를 받을까 불안해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페리아는 자신이 아니더라도 누구라도 만나서 잘 지내고도 남을 사람 같았다.

“아뇨, 제 선택입니다.”

카넨이 차마 손대지도 못하고 있던 페리아의 허리에 팔을 감았다. 페리아가 지그시 눈을 감은 것을 시작으로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리고 곧, 그것으로 만족할 수 없는 탐욕스러운 입이 벌어지면서 페리아의 입 안으로 혀를 밀어 넣었다. 그의 혀는 마치 생명수라도 되는 것처럼 그녀의 타액을 탐했고, 가까스로 들어올 수 있었던 그녀의 입 안을 샅샅이 훑으며 제 흔적을 남겼다.

마력이 채워지는 느낌과, 그녀의 입술을 마음껏 탐하고 있다는 카타르시스가 카넨의 온몸을 뒤덮었다.

“하아, 페리아.”

단지 키스를 했을 뿐인데도 흥분한 그의 페니스가 아플 정도로 부풀어 올랐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페리아? 말해 보세요, 어떻게 하고 싶은지. 다 할 테니.”

“기분 좋게 해 주세요. 방법은 상관없으니.”

어려운 요구였다. 차라리 무얼 해 달라고 하는 것이 편한데, 대체 어떻게 하면 그녀가 기분이 좋을지. 언제나 색다르게 하는 것을 좋아하는 페리아였기에 더욱 머리가 아파 왔다.

“카넨, 일단 좀 넣어 줄래요? 그다음에 생각해요.”

카넨이 색정적인 미소를 띠더니 그녀를 책상에 엎드리게 했다. 치렁치렁한 드레스를 태워 버릴까 하다가 그녀의 허리까지 걷어 올리고 자신의 바지에서 페니스만 겨우 꺼내 그녀의 음부에 비볐다.

“흣, 카넨, 빨리…….”

이미 축축하게 젖어 있는 음부가 언제든 그의 페니스를 삼켜 낼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뭘 했다고 벌써 이렇게 젖은 겁니까, 페리아.”

카넨은 여유로운 척 그녀의 위로 엎드려 허리를 움직이며 제 것을 음부에 비비며 그녀의 음핵을 자극했다.

“너무 오랜만이라, 하고 싶어서…….”

“내게 오기 전부터 이랬다는 겁니까?”

페리아가 고개를 끄덕이자 카넨은 오히려 무서워졌다. 만약에 자신이 그녀의 제안을 수락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지. 답을 듣기 전까지는 혹시 그녀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키스를 한 것 정도로 이렇게 젖은 것인가 했는데, 너무 낙관하고 있었다는 것만 다시 깨달을 뿐이었다.

“일단 드레스부터 다 벗기고 넣겠습니다.”

그녀의 부드러운 살결을 느낄 수 없는 드레스가 거추장스러웠다. 카넨이 그녀의 등에 붙어 있는 리본을 하나씩 풀어나갔다.

“…태울래요?”

하마터면 그녀의 말을 듣고 사정할 뻔했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유혹하는 페리아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언제는 태우지 말라더니, 이제는 얼른 넣고 싶다고 태워도 된다며 조르다니. 카넨은 그녀의 유혹을 사양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순식간에 드레스가 화르륵 타 버리고, 이제는 나신의 페리아가 되었다. 페리아가 곧바로 다리를 더욱 벌리며 넣어 달라고 졸라 댔다.

“흐으, 읏……!”

저만 몸이 달아 있는 것을 안 카넨은 오히려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어차피 페리아는 지금 자신의 품속에 있었다. 그래서 이전과는 달리 그녀의 질 안의 주름 하나하나를 느끼며 제 분신을 천천히 밀어 넣었다. 그리고 곧바로 빼는 것이 아니라, 더 안쪽까지 꾸욱 눌렀다가 빼니 깊숙한 곳을 누를 때마다 페리아의 입에서 교성이 흘러나왔다.

“조, 좀 더 빨리.”

이 정도로는 만족할 리 없는 페리아가 스스로 허리를 흔들며 쾌락을 원했지만, 카넨이 직접 움직이며 그녀를 몰아가는 것보다는 훨씬 약했다.

“기다려 주십시오. 이미 며칠 기다려 보지 않았습니까.”

“더 이상 기다리기 싫어요, 카넨. 얼른.”

카넨이 제 남성을 밀어 넣은 상태로 그녀가 책상을 잡고 있던 손을 가져왔다. 몸을 기댈 곳이 없어진 페리아가 불안해했지만, 카넨은 그녀의 양 손목을 단단하게 잡았다. 그리고 그 상태로 허리를 흔들어 대자 페리아의 몸이 정처 없이 앞뒤로 흔들렸다.

“읏! 흐읏!”

카넨이 그녀의 손목을 자신의 쪽으로 더욱 당기자 페리아의 몸이 움직이면서 페니스가 찌르던 위치가 바뀌어 새로운 자극을 주었다.

“카넨, 응! 하앗……! 조, 좋아요!”

“좋습니까?”

“읏, 응!”

그녀가 좋다고 하는 것은 이 체위와 쾌락인 것을 알고 있지만,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좋아한다고 하니 마치 자신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저도 좋습니다, 페리아.”

그렇게 생각하니 하반신에 더욱 힘이 들어가서 세차게 움직였다.

“허리를, 더 흔들어 보십시오. 더.”

“못 하겠어… 읏!”

간만에 느끼는 쾌락에 페리아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지금 이 상태만으로도 곧 절정에 다다를 것 같았다. 하지만 카넨은 그녀를 더욱더 몰아갔다.

“페리아, 제 좆을 끊어먹을 생각입니까. 그랬다가는 당신과 이런 시간을 보낼 수 없게 되지 않겠습니까.”

“흐읏, 그, 그렇지 않아…요.”

“그러면 조금 힘을 빼십시오.”

“그게, 조절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 흐아!”

결국 절정에 올라 버린 페리아가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하지만 카넨은 그녀를 봐줄 생각이 없는지 절정에 오른 그녀의 질에 계속해서 자신의 것을 쑤셔 박았다.

“읏! 그, 그만! 흐윽!”

“당신의 그만은 그만이 아니던데.”

양손이 붙잡힌 상태로 도망갈 수도 없던 페리아가 연달아 절정에 오르더니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흐, 흐으…….”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도 아직 가시지 않은 여운에 손이 바들바들 떨려 왔다.

“먼저 박아 달라고 그럴 땐 언제고, 이렇게 주저앉아 버리니 곤란합니다.”

페리아가 고개를 들자 카넨의 좆이 발딱 서 그의 배꼽까지 올라와 있었다. 자신의 애액으로 번들거리는 그의 페니스를 보자 저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침대로 가시겠습니까.”

페리아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다시 올 쾌락에, 아직 끝나지 않은 절정에. 페리아는 무릎걸음으로 걸어가 그의 페니스를 손에 쥐고, 제 입에 넣어 버렸다.

“큭! 페리아, 이러지 않아도 됩니다!”

당황한 카넨이 그녀를 만류하며 허리를 뒤로 뺐지만, 페리아가 따라붙어 그의 귀두를 빨았다.

“으윽!”

저만 몰아가던 카넨을 몰아붙인 것이 즐거웠으나 카넨이 자꾸만 뒤로 빠지니, 그녀가 그의 허벅지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제야 카넨이 뒤로 물러나는 것을 멈추고 페리아의 머리에 손을 올리고 그녀의 혀를 받아들였다.

한 번씩 빨아올릴 때마다 카넨의 입에서는 신음이 터졌고, 페리아가 그의 귀두 끝 조그만 구멍을 핥을 때면 다리가 떨려 왔다. 페니스를 다 입에 담을 수 없어 손으로 위아래로 흔들면서 해야 했지만 오히려 만족감이 더 컸다.

저를 몰아가던 카넨이 제 눈앞에서 점점 무너져 가자 페리아는 다리 사이가 간질간질해지는 기분이었다. 조금 전까지 휘몰아치던 절정에 안에서는 애액이 흘러나왔다. 페리아는 저도 모르게 그를 붙잡고 있던 손을 내려 제 클리토리스를 문질렀다.

“읍, 흐읍, 읍!”

조그만 입에는 페니스가 가득 차서 제대로 말을 할 수 없음에도 그녀의 신음 소리는 그 틈새로 새어 나왔다. 클리토리스를 문지르던 작은 손은 어느새 그녀의 질 안으로 들어갔고, 손가락 하나로는 만족할 수 없는 그곳에는 조금 지나니 두 개가, 또 조금 지나니 세 개의 손가락이 들어가 있었다.

조금씩 흔들리는 페리아의 어깨를 보고 시선을 내렸다가 제 좆을 물고 자위하고 있는 페리아의 모습에 그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사정해 버렸다.

“큭!”

카넨은 그녀의 입에서 제 페니스를 빼내려고 했지만 페리아가 기둥을 세게 붙잡고 놓아주지 않아 그녀의 입 안에 사정해 버렸다.

“하아, 하아, 페리아! 괜찮습니까?”

카넨이 대강 천 쪼가리를 만들어 그녀의 입에 대어 주자 페리아가 우에에 하면서 입 안에 들어 있던 정액을 뱉었다.

“어지간하면 삼키려고 했는데, 평소보다 향이 너무 진하네요.”

“…그, 그건!”

카넨이 당황하여 얼굴이 붉어지자 페리아가 씨익 웃었다.

그녀가 자신을 놀리려는 모습까지 사랑스러워 카넨이 얼버무리며 제 손에 있던 것을 태워 없애 버렸다. 그리고 페리아를 안아 들어 침대에 눕혔다. 둘이서 함께 자던 침대에.

“그건 그렇고, 당신의 손가락은 얇아서 두세 개 들어가 봤자 티도 안 나지 않습니까.”

카넨이 페리아의 손을 들어 애액이 묻어 있는 손가락을 핥았다. 그녀가 부끄러워져 손을 빼려고 했으나 그가 놓아주지 않아 그의 혀가 제 손가락을 타고 가는 것을 생생하게 느껴야 했다.

“당신 손가락 세 개 넣어 봤자, 내 손가락 두 개 넣은 것보다 별로 느낌도 안 올 것 같은데.”

“…모, 모르죠.”

카넨이 누워 있던 페리아의 질 안에 가운뎃손가락을 쑥 집어넣었다.

“충분히 젖어 있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이번에는 안을 휘젓던 중지 손가락으로는 모자랐는지, 검지손가락도 같이 넣어 질 벽을 긁었다.

“흐윽!”

“어떻습니까? 당신 손가락 세 개와 비슷하지 않습니까?”

페리아의 손가락 세 개보다 훨씬 자극이 강했다. 길이도 길이거니와, 자신이 넣을 때보다 들어가는 길이가 엄청나게 차이 났다. 게다가 자신은 그저 넣었다 빼는 것을 반복했을 뿐인데, 카넨은 손가락을 교차하지를 않나, 손가락을 구부려 질 벽을 긁어 대는 바람에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페리아가 고개를 내저으면서 부정하자 카넨이 제 손가락을 하나 더 집어넣었다.

“흐음, 아무리 봐도 제 손가락 세 개만큼 느낄 것 같지는 않은데. 느끼는 곳을 찾아서 그 부분만 자극할 수 있어서 그런가.”

카넨이 한 손가락만 조금 구부린 채로 손목을 이용해 넣었다 뺐다. 질 벽을 긁으면서도 안쪽 깊이까지 손가락으로 톡톡 쳐 대니 페리아가 저도 모르게 도망치기 위해 발로 이불을 밀어내며 침대의 위쪽으로 향했다.

“이러면 곤란합니다, 페리아.”

결국 카넨이 그녀의 다리 사이로 들어가 양쪽 어깨에 그녀의 다리를 올렸다. 허리가 떠 버리니 도망을 갈 수도 없어 속절없이 그의 손길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애액이, 엄청나게 흐르고 있습니다.”

카넨은 그녀의 질에서 흘러내리는 백탁액을 혀로 핥았다. 페리아가 몸을 움찔거리자 짙은 미소를 띠고 그녀의 음핵을 빨아 당겼다.

“아흣! 그, 그만!”

그녀가 어떻게 하면 자극을 느끼는지 알고 있기에, 손가락은 그녀의 민감한 지점을 계속해서 긁고 쑤셔 댔으며, 혓바닥은 음핵을 둥글리며 이따금씩 입술로 빨아들여 페리아를 미치게 만들었다.

제 좆은 당장이라도 그녀의 안에 파고들어 사정하고 싶어 했지만 카넨은 오늘 작정하고 그녀를 몰아세우려고 했다. 다른 남자로는 만족 못 하도록, 결국엔 제게 다시 찾아오도록. 그렇게라도 그녀와의 접점을 계속 이어 가기 위해서.

“하윽!”

페리아가 허리를 비틀면서 쾌락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그에게 골반이 단단히 잡힌 탓에 빠져나가지 못했다. 결국 페리아의 음부에서 애액이 쏟아져 나와 카넨의 얼굴을 뒤덮었다.

“하으, 카, 카넨, 괜찮아요?”

카넨은 자신의 얼굴을 대강 닦고, 제 입술에 묻은 그녀의 애액을 혀로 할짝였다.

“괜찮습니다.”

조금 전 짙은 절정에 몸부림 쳤는데도, 그런 그의 모습을 보자 또다시 몸이 떨려 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페리아는 카넨의 손목을 붙잡았다.

“페리아?”

“누워요, 카넨.”

그녀가 미약한 힘으로 당겼을 뿐인데 카넨은 속절없이 끌려와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곧 제 허벅지 위에 앉은 페리아 때문에 안 그래도 단단하게 솟아오른 분신이 터질 듯이 아파 왔다.

페리아는 그런 카넨의 페니스에 제 음부를 맞춰 서서히 내려가면서 말했다.

“오늘은, 아무래도 내가 당신을 잡아먹고 싶으니까.”

***

죽을 것 같은 쾌락 속에 신음하던 페리아는 중간에 몇 번이나 실신할 뻔했지만, 결국 새벽별이 반짝일 때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다.

“…배고파.”

“얼른 먹을 것을 준비하라고 하겠습니다.”

카넨이 종을 울려 펭귄을 부르자, 페리아는 왠지 반가운 느낌이 들었다.

“아니에요, 집으로 돌아가서 먹으면 되죠.”

“…돌아갈 겁니까?”

“그래야죠, 나도 내 집이 있는데. 거기서 하녀들에게 준비하라고 하면 돼요.”

페리아는 간단하게 제 몸을 성력으로 씻어 냈다.

“편하게 쉬다가 가셔도 됩니다. 오늘이 아니라 내일 가도, 한 달 뒤에 가도, 십 년 뒤에 가도, 아니면 여기서 영영 살아도 됩니다.”

페리아는 카넨이 하는 말의 뜻을 알아들었다. 하지만 어영부영 그와 다시 사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아직 페리아의 마음속에서는 그 무엇도 해결된 것이 없었다.

“나중에 원할 때 연락해요.”

페리아는 성력을 이용해 편한 가운을 만들어 걸쳐 입었다.

“…식사만이라도 하고 가십시오.”

“괜찮아요. 찾아오기 번거로우면, 편지해요.”

페리아는 무심하게 말하고는 공간 이동 마법을 열어 자신의 저택으로 사라졌다. 그녀가 사라진 뒤 방에 홀로 남은 카넨은 그녀가 사라진 곳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커다란 손으로 제 눈을 가렸다.

“페리아, 제발…….”

***

그 후로 몇 개월이나 이와 같은 상황이 유지되었다. 페리아가 마탑에 불쑥 나타나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카넨과 몸을 섞기도 하고, 그녀를 기다리다 못한 카넨이 저택으로 찾아가 페리아를 안기도 했다.

“페리아, 평소보다도 더욱 느끼는 것 같은데?”

“흐읏, 흐읏…….”

페리아의 양쪽 손목은 철로 된 구속구에 묶인 채 침대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녀의 손목이 다칠까 부드러운 천에 감싸여 있었지만,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철컥 하는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누, 눈이라도 풀어 줘요.”

손목을 감싼 부드러운 천은 그녀의 눈도 가리고 있었다. 풀려고 해도 양 손목이 묶인 채라 풀 수가 없었다. 그렇게 페리아는 시야도 가려지고 몸의 자유도 빼앗긴 채 그에게 몸을 맡기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마법을 이용해 침대의 시트조차 느껴지지 않게 하고 싶은데, 당신에게 마력이 통하지 않아 애석할 따름입니다.”

카넨은 따뜻하게 녹인 최음 크림을 듬뿍 떠서 그녀의 몸에 발랐다. 그의 손이 지나가는 곳마다 페리아가 몸을 움찔 거리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다리가 배배 꼬이는 기분이 들었지만, 안타깝게도 다리 사이에는 카넨이 자리 잡고 있어 음부에서 애액이 흐르는 것을 그대로 그에게 보여 줄 수밖에 없었다.

“이젠… 넣어 줘.”

페리아는 마음이 급해 그에게 경어를 쓸 생각도 하지 못하고 얼른 넣어 달라고 요구했다. 그 모습에 카넨이 한숨을 쉬며 또다시 최음 크림을 듬뿍 떴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녀의 피부가 아닌 음부로 향했다. 최음 크림이 질 벽에 닿자 세포 하나하나가 살아 숨 쉬는 기분이었다. 당장이라도 그의 남성을 마구잡이로 쑤셔 넣어 줬으면 하는데, 카넨은 다시금 손을 거두었다.

“페리아, 자그마치 며칠 만인 줄 아십니까.”

“손가락이라도 넣어 줘… 제발.”

“일주일 만입니다. 어떻게 일주일 동안 찾지 않을 수 있습니까?”

“내가, 내가 잘못했어. 그러니까 얼른, 응?”

“그동안에 저 말고 다른 남자를 찾아간 건 아닙니까?”

“아니에요. 저번에 하고 나서 조금 쉬었을 뿐이에요.”

“그렇게 저를 괴롭히셨으니 만족했을 테지요.”

지금의 구속구는 사실 페리아가 주문한 제품이다. 성력으로 했다가는 그의 손목이 다칠 수 있어 철로 만든 것이었다. 그녀는 저택의 제 침실에 설치해 놓고 그를 불렀었다. 그리고 일주일 전 페리아의 부름에 달려온 카넨은 영문도 모른 채 묶였다.

페리아가 사정해도 된다고 할 때까지 절정에 오르기 직전에 그만두는 것을 반복했었다. 그가 넣고 싶다고 애원하고 또 애원해도 페리아는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고 허락하지 않았다.

한참 만에 그에게 올라탄 페리아가 정말로 삽입만 했을 뿐 움직이지 않아서 카넨은 또다시 미쳐 버릴 것 같았고, 결국 그를 놀리다 못한 페리아가 이제는 해도 되겠다 싶었을 때 딱 그녀만 만족하고 끝나 버렸다.

“그럼 이번에는 저만 만족하고 끝나도……. 그러고 보면 항상 제가 만족하기도 전에 잠들어 버리지 않았습니까.”

“그거야 아침이 될 때까지도 안 끝나니까…….”

이전에 페리아가 섹스가 끝나자마자 저택으로 돌아간 것이 카넨에게는 꽤나 충격적이었다. 그다음에 저택에서는 섹스가 끝나니 카넨에게 손님방을 안내해 주었다. 편하게 쉬고 가라면서. 카넨과 그녀 사이에 정확하게 선을 그어 대니 카넨은 그녀와 떨어지기 싫어 꾀를 낸 것이다.

몸을 섞은 후에 떨이지지 않고 그녀를 끌어안고 한숨 자고 싶으니, 그녀가 잠들 때까지 끝내지 않아 버리는 것이다. 결국 마지막에는 완전히 연소되지 못한 자신의 페니스가 식을 때까지 기다리느라 힘이 들었지만, 그래도 그녀를 안고 잘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럼 이번에는 제가 만족할 때까지 해 보는 건 어떻습니까.”

“장난…이죠?”

“그래 보입니까?”

“…….”

“그래서, 어떡하기를 원합니까?”

페리아는 최음 크림 탓에 안 그래도 미칠 것 같은데 제대로 삽입을 안 해 주는 카넨 때문에 더 미칠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 카넨은 그녀에게 양자택일을 강요하고 있었다. 이대로 계속하면서 카넨에게 했던 그대로 당할지, 아니면 삽입하는 대신 그가 만족할 때까지 계속 붙잡혀 있을지.

“해 뜨기 전에는 놔주는 거예요?”

“불가능합니다.”

그리 큰 희망을 갖고 물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까지 단호하게 거절할 줄은 몰랐다. 이전에 페리아가 그를 괴롭힐 때는 솔직히 속이 조금 시원했다. 그렇게 저에게 절절하게 애원하는 카넨을 보는 것은 꽤나 유쾌했다. 그런데 그것을 이제는 자신이 당할 거라고 생각을 하니 망설여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를 거절하자니 아까 전부터 최음 크림의 효과로 몸이 달아올라 있었다. 그렇다고 그에게 넣어 달라고 하자니, 빼 달라고 할 때 빼 주지 않을 것이 뻔하니 고민이었다.

“…넣어 줘요.”

카넨이 씨익 웃었다. 그는 두 번 물어보지 않았다. 제가 듣고 싶은 답을 들었는데 굳이 두 번 물어 그녀에게 고민할 시간을 주고 싶지 않았다.

“잘 생각했습니다.”

카넨이 곧바로 그녀를 제 무릎에 앉혔다. 앞이 보이지 않으니 팔을 뻗어 그의 목에 팔을 감으려 했으나 철커덕거리는 소리만 날 뿐 그의 목까지 손이 닿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팔을 편하게 내려놓자 그런 페리아의 손에 카넨이 깍지를 껴 왔다.

카넨은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고 천천히 추삽질을 시작했다. 그러자 느껴지는 것은 오로지 저와 마찬가지로 달아오른 카넨의 체온과, 흥분한 듯한 그의 숨소리, 제 음부를 파고드는 그의 두꺼운 살 기둥, 이렇게 세 가지뿐이었다.

제 목에 닿아 오는 갑작스러운 촉감에 놀랐지만 곧 그것이 그의 입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몇 번이고 목과 가슴팍에 제 흔적을 남기려는 카넨 때문에 언제나 정사 후에는 그가 만든 울혈로 인해 목덜미가 얼룩덜룩했다.

“흐읏! 조, 좋아!”

“계속 좋아해야 할 텐데 말입니다.”

“읏!”

페리아는 지금의 상황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서로에게 필요한 것만 주고받는 그런 생활.

서로에게 배신당할 걱정도 하지 않는, 아주 안정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이러다가 여자 주인공이 오면 카넨을 넘겨주…는 것보다는 그때도 이렇게 만나고 싶어서 고민이 되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겁니까?”

“계속 이렇게 있고 싶다는 생각.”

“…….”

그녀의 말에 카넨의 표정이 일순간 굳었지만, 그녀의 눈은 가려져 있어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아직 생각이 바뀌지 않았습니까?”

“무슨 생각이요?”

“그 후로 지금까지의 일들이, 당신의 생각을 바꾸진 않았습니까?”

“…….”

그녀의 침묵이 답을 대신했다. 카넨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한숨을 참지 못했다. 지금 상황이 계속된다면, 이대로 변하지 않는 것이 두려웠다. 이러다가 페리아의 마음이 변한다면, 어느 순간 자신을 찾지 않을 것 같았다. 그것이 못내 두려웠다.

“그렇습니까.”

카넨은 지금의 관계를 더 지속하는 것은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를 포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더욱 슬펐다.

카넨은 최음 크림으로 인해 힘들어하고 있는 페리아를 진정시키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추삽질을 시작하자 그녀의 입에서는 교성이 터져 나왔지만 카넨의 입에서는 한숨이 터져 나왔다.

“읏, 하읏, 카넨, 읏!”

“예, 페리아.”

“읏……!”

구속구가 무색하게도 스스로 허리를 흔들어 가며 쾌락을 좇는 페리아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절정에 오르면서도 카넨이 각도를 바꿔서 삽입하자 또다시 쾌락에 오르는 모습 또한 절경이었다.

“카넨, 읏! 제발! 그만 좀……!”

“더 넣어 달라고 이렇게 조이면서 무슨 말씀입니까.”

결국 무너져 내리는 페리아를 침대에 눕히고 그녀의 허리를 들어 제 다리 위에 받쳐 깊숙이 삽입하자 페리아의 손이 떨려 오는 것이 보였다.

“고작 이 정도로 절정에 오르는 겁니까.”

“크, 크림 때문에…….”

“하지만 제가 좆을 꺼낼 때마다 빠져나가지 못하게 다리로 조이는 것은 당신이 아닙니까. 이것도 크림 때문입니까?”

“으읏!”

“성녀가 이렇게 야해 빠졌을 줄은 아무도 모를 겁니다.”

“그, 그래서. 싫어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카넨이 키득키득 웃으며 엄지손가락으로 그녀의 음핵을 지그시 누른 채로 둥글게 굴렸다.

“하읏!”

그 상태로 조금씩 허리를 움직이자 페리아의 교성은 더욱더 높아졌다.

“카, 카넨 당신이, 만족할 때까지, 한다면서요.”

“예.”

“그런데 나만 이렇게 좋게 하면 어떡해요?”

“당신이 좋아야 제 기분도 좋아지지 않겠습니까.”

“그, 그래도.”

계속해서 숨이 벅차올라 말하는 중간중간 숨을 몰아쉬느라 말이 끊겼다.

“괜찮습니다. 마음껏 느끼세요. 당신이 힘들다고 하면, 적당히 그만둘 테니.”

페리아는 그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전에도 제대로 풀지 못했던 것을 뻔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적당히 그만둘 수 있을 리가. 만약에 지금 카넨이 그만둔다면 자신은 일주일은커녕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마탑으로 찾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제가 너무 급했기에 그의 페니스를 서슴없이 받아들였다.

“더 세게.”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카넨이 양손으로 그녀의 골반을 잡은 채 허리를 짓쳐 올렸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그녀의 다리가 낭창낭창 흔들렸고, 그녀의 음부에서는 누구의 것인지 모를 애액이 흘러나왔다.

“흐아! 카넨, 읏!”

페리아가 팔을 휘적거렸으나, 구속구에 묶인 채라 철커덕 소리만 계속 낼 뿐이었다. 카넨이 그것을 끊어 내자 자유로워진 팔이 카넨을 끌어안았다. 그녀가 끌어안자 카넨의 귓가에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땀에 젖은 몸에서 나는 달콤한 냄새가 그의 후각을 마비시키는 것만 같았다.

“페리아, 페리아.”

“으읏! 카넨!”

“정말…….”

“흐으, 으읏!”

페리아가 절정에 다다라 질 벽이 그의 페니스를 마구잡이로 조여 댔다. 카넨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길게 사정했다. 그가 사정하는데도 그녀의 질 벽은 그의 것을 더욱 쥐어짜 냈다.

“…좋아합니다.”

“…….”

카넨이 페리아의 눈을 가리고 있던 부드러운 천을 풀었다. 페리아는 나른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카넨은 자신의 허리를 물려 그녀에게 박고 있었던 분신을 뺐다. 그리고 페리아를 이불로 덮어 주었다.

“당신이 좋고, 당신을 안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계속 이렇게 하는 것은 힘들 것 같습니다.”

“…….”

“나는 당신이 내게 웃어 주기를 바라고,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를 바랍니다. 나에게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고, 때로는 나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하며 화를 내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포기하고, 대화를 나누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당신을 어떻게 믿겠어요.”

“다시 신뢰를 쌓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저는 이대로 계속 당신을 마주하고, 언제 버려질지 몰라 불안해하며 당신을 만날 자신이 없습니다.”

“…….”

“나를 믿고 싶은 생각은 있으십니까. 저는 이 몇 달 동안 그런 것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언제나와 같이 벽을 치고 있는 당신에게, 그 벽에 조금이라도 구멍이 생길까 기다렸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페리아는 조금 놀랐다. 그를 믿을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한 번 자신을 저버렸고, 그리고 그는 원작 속의 캐릭터에 충실했기 때문에 어차피 곧 성녀에게 간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전혀 상상도 못 했다.

“제가 진심을 다해 좋아한다고 말했지만, 당신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건.”

“괜찮습니다, 과거의 제 잘못 때문이니. 하지만, 하지만…….”

그렁그렁 눈물로 가득 찬 카넨의 눈에서 또르르 눈물이 흘러내렸다.

“한 번만 믿으려고 해 볼 수는 없습니까? 믿으라는 것이 아니라, 내게 기회를 한 번이라도 주는 것은 안 되겠습니까?”

페리아는 진심으로 고민이 되었다. 과연 그를 한 번 더 믿어 봐도 좋을지. 하지만 그랬다가 또다시 배신당할까 봐 걱정이 되었다. 저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뒤에서는 죽일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은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최근 그가 자신에게 보여 준 모습은 아주 헌신적이었다. 그 모습을 떠올리니 괜스레 마음이 약해졌다.

‘그래, 믿을지 말지는 기회를 준 다음에 결정해도 될… 거야.’

지금 당장 그를 믿으라고 했으면 오히려 거부감이 생겼을 것이다. 하지만 한 번만 기회를 달라는 그의 말에는 한번 시험이나 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페리아는 이전에 그에게 해 주려고 했었던 것을, 마지막 시험으로 꺼내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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