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탑주의 가짜 아내가 되었습니다-7화 (7/11)

Chapter7

“이것도 드셔 보세요, 대공비 전하.”

“네, 고마워요.”

나는 지금 아무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대공 전하도 드셔 보시죠.”

“고맙군.”

분명 공작 부인과 내가 단둘이 즐기는 티파티였을 텐데…….

지금이 있기까지의 발단은 이랬다.

침실에 틀어박혀 있는 동안에 확인하지 못했던 편지를 살펴보니, 황제 폐하와 신전은 물론, 트라비안 공작 부인에게서도 연락이 와 있었다. 황제 폐하는 이미 뵙고 왔고 신전도 다녀왔으니, 트라비안 공작 부인에게 인사만 하면 되었다.

이전에 자신이 아플 때 도움을 줘서 정말 감사하다며, 괜찮으실 때 공작저로 초대한다는 말에 부담 갖지 말고 얼른 낫기를 바란다고 답장을 보냈다.

‘왜냐하면… 트라비안 공작은 무섭거든.’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공작 부인에게서 다시 편지가 온 것이다. 지난번에 구했던 귀한 찻잎을 우려 마시는데 갑작스러운 전염병으로 못 마시고 죽는 줄 알았다고, 꼭 나와 함께 마시고 싶다는 얘기였다. 조그맣게 차를 마시는 형식으로 진행될 테니 꼭 뵙고 싶다는데… 두 번이나 거절하기 미안해서 가게 된 것이다. 사실 세기의 로맨스의 또 다른 주인공인 트라비안 공작의 아내도 궁금하다고!

그래서 내가 조금은 성급하게 답신을 보낸 것이다. 가겠다고.

***

“카넨, 나 트라비안 공작저에 데려다줄 수 있어요?”

“거긴 왜 가려고 하는 겁니까?”

카넨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근데 진짜로 이상한 건 요즘의 카넨이다. 갑자기 선물이라며 드래곤 레어에서 가지고 온 원석을 방에 한가득 채워서 주지를 않나, 그러면서도 ‘형이 준 보석 몇 개보다 훨씬 낫지?’라고 묻길래 ‘원석보다 세공한 게 더 값어치가 높은 거야.’라고 하니까 충격을 받고 세공사들을 닦달해서 장신구로 만들어 오질 않나, ‘지금 입고 있는 옷에 비해 보석이 너무 화려해서 못 하겠다’고 하니까 드레스숍에 가서 값을 세 배씩 쳐 가면서 옷을 맞추지를 않나……. 대체 요즘 얘가 왜 이러는지를 모르겠다.

솔직히 ‘카넨이 나를 좋아하나?’라는 생각을 안 해 본 건 아닌데, 얘는 원작에서의 설정부터가 ‘여자 주인공을 제외한 나머지에게는 한없이 쓰레기 같은 놈’이었기 때문에 곧바로 답을 찾았다. 그래, 그렇게 생각하니 얘가 나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가정에 신빙성을 더해 갔다. 진짜로 얘가 나를 죽이려고 했는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무턱대고 마음을 열 수는 없지.

“트라비안 공작 부인과 함께 차를 마시기로 했거든요.”

“…알겠습니다. 근데 그러고 갈 겁니까?”

뭐지? 시비 거는 건가? 깔끔하게 입고 가는 건데 뭐가 잘못됐다는 거지?

기분이 확 상해서 내 옷을 살펴보니, 카넨이 다급하게 말을 덧붙였다.

“아니! 저번에 산 드레스는 안 입나 해서 물어본 겁니다!”

“그렇게 화려한 걸 평소에 어떻게 입고 다녀요…….”

“그러면 목걸이나 브로치는? 그거라도 하나 하고 가십시오.”

“드레스보다 더 화려한 장신구를요? 그냥 차 마시러 가는 건데?”

“아, 그게, 고위 귀족들은 그냥 티파티 하는데도 화려하게 입고 가는 것이 일상적입니다!”

아, 그런가? 확실히 그럴지도. 나는 고작 남작이었으니 모르지만 황실의 일원인 카넨이라면 나보다 더 잘 알 것이다.

결국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펭귄의 도움을 받아 옷을 갈아입었다.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신난 표정의 카넨이 목걸이도 채워 주고, 팔지도 끼워 주고, 손가락마다 반지도 끼워 주려고 하길래 적당히 하라고 하니까 또 시무룩해졌다.

모든 준비를 마치니 약속 시간까지 5분도 채 남지 않았었다. 그래서 예정대로 카넨에게 공작저에 데려다줄 것을 다시 한번 부탁했다.

“그럼 부탁할게요.”

“알겠습니다!”

신전 외의 공간 이동은 어떻게 될지 모르니 카넨과 함께 가는 게 안전하지. 게다가 공작저에는 가 본 적이 없어서……. 다음에는 신성력으로 공간 이동하는 걸 도전해 봐야겠다.

카넨이 즐거운 마음으로 나를 끌어안고는 공간 이동을 했다. 그러자 공작저 앞이었다. 원래는 10분 일찍 도착하려고 했는데, 약속한 시간에 딱 맞게 도착하게 됐다. 공작저의 현관에는 내가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던 공작과 공작 부인, 그리고 도열한 사용인들이 있었다.

그들을 보고 난 후 나는 입술을 깨물고 속으로 생각했다.

‘…카넨, 죽인다…….’

손이 절로 분노로 부들부들 떨렸다. 아무리 봐도 공작 부인의 옷이 무척 간소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나의 신분이 조금 더 높다고는 하지만 오늘 입고 옷은 매우 과했다. 카넨의 농간을 눈치챈 나는 그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두고 봐요…….”

카넨은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며 억울한 표정이었지만, 그가 사 준 옷과 장신구를 착용하고 있는 것에 대한 만족감까지 모두 숨길 수는 없었다. 나는 작게 한숨을 쉬고 공작과 공작 부인에게 인사했다.

“오랜만이에요, 공작 부인.”

“만나서 너무 반가워요, 대공비 전하!”

트라비안 공작 부인이 해맑게 웃으면서 인사했다. 그 얼굴을 보니 나를 죽이려고 하는 걸로 의심되는 카넨과 함께 있으면서 불안 초조했던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다. 카넨과 트라비안 공작은 글자 그대로 대충 인사했다.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였지만, 카넨도 공작도 서로 대강대강 인사했으니 괜찮겠거니 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대공비 전하. 부디 편안하게 계시다 가시기를 바랍니다.”

“환영해 줘서 고맙습니다, 공작.”

트라비안 공작이 카넨과 인사할 때와는 달리 나에게 호의를 숨기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자, 카넨이 굉장히 당황한 것이 모두에게 느껴졌다. 물론 나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공작이 제 부인이 아닌 다른 이에게 호의를 보이는 일이 굉장히 드물기 때문이다.

“공작 부인과 함께 마시고 싶은 찻잎이 있어요! 그리고 차와 잘 어울리는 디저트도 준비했답니다.”

“어머, 고마워요! 이 얼마 만에 하는 티타임인지 모르겠어요! 정말 기대가 되네요.”

카넨은 티타임의 중요성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으니 나 혼자 식사하는 것이 당연했다. 요즘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마주 앉아서 조금씩 식사를 하려고 하긴 했지만.

‘카넨도 오래 살려면 건강을 생각해야지. 아, 마력만 있으면 되니 상관없나?’

그러다 보니 디저트는 정말 가끔 내가 먹고 싶다고 하면 펭귄에게 시켜 만들어 왔다. 펭귄은 디저트 또한 잘 만들어 꽤나 만족스러웠지만, 식사도 나보다 적게 하는 카넨을 앞에 두고 디저트까지 해치우자니 나 혼자 살이 찔 것 같아 불편해서 안 먹게 되었다.

‘하지만 공작 부인과 함께 먹으면 맛있게 먹을 수 있겠지!’

내가 기대에 부풀어서 공작 부인을 따라 나서는데, 이상하게 카넨이 따라왔다. 카넨이 따라오니 공작도 당당하게 따라오고.

“카넨, 안 가요?”

“혹시 공간 이동을 잘못해서 못 돌아올 수 있으니까…….”

“아, 고마워요! 그러면 이따가 돌아가기 전에 데리러 와요!”

그러니까 좀 저리 가렴. 나도 마음 편하게 맛있는 디저트 좀 먹자.

그런데 카넨은 나의 명백한 축객령에도 꿈쩍도 않고 계속 우리를 따라왔다.

“…여자들끼리 차 마시는데 끼는 남자는 매력 없어요.”

카넨이 매우 놀란 표정을 짓더니 무언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공작, 물어볼 것이 있네.”

“말씀하시죠.”

카넨이 공작과 공작 부인을 번갈아 보더니 공작에게 말했다.

“잠시 자리를 옮겼으면 좋겠군.”

꽤나 진지한 얼굴에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 카넨을 보고 공작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저렇게 진지한 얼굴을 하는 것을 보니 혹시 이전에 발견한 신전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하는 건가? 그렇다면 자신이 있는 것이 나았겠지만, 공작 부인을 두고 그쪽으로 가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다.

카넨이 알아서 잘 설명할 거라 믿으며 그들을 보내고 공작 부인을 따라 정원에 차려진 티 테이블로 향했다. 정원을 들어서자 아름다운 분수와 오색찬란한 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고, 바로 곁에 누가 봐도 맛있어 보이는 다과가 훌륭하게 차려져 있었다.

“저희 제과장이 대공비 전하께서 오신다는 얘기를 듣고 엄청 힘을 줬어요. 물론 저도 최고의 대접을 해야 한다고 하긴 했지만요.”

공작 부인이 배시시 웃으며 말을 하는데, 어쩌다 저런 무서운 공작님과 결혼을 한 건지 의아할 정도로 사랑스러웠다. 공작이 자신의 아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했다.

“고마워요. 그런데 제과장이 따로 있어요?”

“아… 네. 제가 디저트 먹는 것을 좋아해서…….”

얼굴을 붉히는 공작 부인을 보니 외전의 내용이 떠올랐다. 공작과 공작 부인이 번화가에 있는 디저트 가게에 데이트를 갔다가, 공작 부인이 디저트를 맛있게 먹는 것을 보고 공작이 많은 돈을 주고 공작저로 데리고 왔었지.

먹을 거 잘 주는 사람은 착한 사람이야……. 그런 의미에서 공작은 참 좋은 사람이지.

내가 다 알고 있다는 듯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공작 부인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귀여워!

하녀들이 카트를 밀고 와 테이블 위에 차와 디저트가 올라간 접시를 놓았다. 접시 위에는 공작 부인만큼 상큼한 딸기가 듬뿍 올라간 케이크가 있었다.

내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향을 맡아 보니, 그윽한 향이 정말 일품이었다. 예전에 남작 시절에는 돈이 없어서 이런 차를 못 마셨는데. 한 입 마셔 보니 깔끔하면서도 담백하고, 입 안에 향이 계속 돌아서 마치 맛있는 향수를 마시는 느낌이었다. …예시가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은데. 여하튼.

“향이 정말 좋네요.”

나의 반응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던 공작 부인이, 나의 가벼운 대답에도 굉장히 기뻐했다. 그리고 나는 간만에 달콤한 디저트를 먹으며 행복에 겨워하고 있었다.

***

페리아가 만족스러운 티타임을 보내고 있을 때, 공작의 응접실에서도 카넨과 공작이 딱딱한 공기 속에 마주 앉아 있었다. 그들의 앞에는 페리아와 공작 부인이 마시는 것과 같은 차가 두 잔 놓여 있었지만, 누구도 손대지 않은 채로 식어 가고 있었다.

“…할 말이 없으면 나는 내 아내에게 가 볼까 하는데?”

다른 이들 앞에서는 존대를 하던 공작이 원래의 습관대로 말을 편하게 했다. 공작은 날 때부터 공작이었던지라,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궁궐에 와서 카넨, 카르파 형제와 곧잘 친하게 지내 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계속되는 침묵에 공작이 자리를 일어나려던 그때, 카넨이 입을 열었다.

“너는…….”

“뭐.”

“…….”

“아, 뭔데?”

공작의 짜증 어린 목소리에도 카넨은 단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지금 상황에서 약자는 자신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내와 사이가 좋다지?”

의외의 주제가 나와 눈을 동그랗게 뜬 공작이 되물었다.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군.”

“왜? 공작부인이 너를 굉장히 호감을 갖고 보던데.”

“…더욱 정진해야겠군.”

카넨은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됐다. 분명 공작 부인은 애정이 담긴 눈으로 공작을 바라봤고, 공작과 공작 부인이 사이가 좋다는 건 페리아를 비롯해서 궁에 갈 때마다 한 번씩은 들었던 말인데 아니라고?

“나와 리첼은, 사이가 좋은 정도가 아니다. 아주 열렬하지.”

“아, 그래.”

카넨이 저도 모르게 무성의한 대답을 했다. 그나마 ‘어련하시겠냐’는 말이 덧붙으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은 것이다.

“고작 나를 호감이 담긴 눈으로 보고 있었다니……. 예전에는 눈에서 애정이 샘솟았는데…….”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공작을 보고 카넨은 기괴한 생물을 처음 접한 사람처럼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나는 내 아내에게 가 봐야겠어. 그럼…….”

“잠깐! 아직 대화가 끝나지 않았어!”

“뭐지?”

“…아… 가… 지… 줘.”

“뭐라는 거야?”

공작은 아내와 함께하는 일분일초가 중요한데 제대로 말도 안 하고 늘어지는 카넨이 짜증 났다. 그렇다고 칼로 베어 버릴 수도 없는 게 저런 놈도 일단은 이 나라의 황족이긴 했다. 황족을 거슬렀다가는 제 아내가 힘들어질 수 있으니 참아야지.

“아내와… 사이가 좋아지는 방법 좀 알려 줘.”

“호오.”

카넨이 이런 말을 하게 될 날이 오다니. 맨날 쓰레기처럼 이 여자, 저 여자 만나던 놈이. 쓰레기 냄새가 옮으면 리첼이 싫어한다고 꺼지라고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카넨이 우물쭈물하면서도 간절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마음에 든 트라비안 공작은 큰마음을 먹고 가르침을 전수하기로 했다.

“이건 나도 들은 얘기지만, 내 아내와 나 정도의 관계를 원한다면 참고해도 좋을 거다.”

공작의 말이 시작되자 카넨이 숨을 죽이며 귀를 기울이고, 그의 말에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삼류는 공처가고, 이류는 애처가라고 한다. 아내를 두려워하거나 사랑하기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이야기다.”

“삼류는 공처가, 이류는 애처가…….”

“그래. 지금은… 경처가의 시대다.”

“경처가?”

“그래. 아내를 존경하고 공경해야 하지.”

“존경…….”

카넨이 머리에 새기기라도 할 것처럼 존경과 공경을 중얼거리는 것을 본 공작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가르침이 계속되었다.

“아내의 눈길이 닿는 것,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을 그 정도에 따라 세분화해서 기억하도록 해라.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내가 아내에게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를 언제나 알게 해라. 관심과 정성. 이 두 가지가 가장 중요하다. 재력은 부수적인 것이다. 재력은 아내에게 관심을 표할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하다.”

사랑받는 남편이 되는 방법을 설파하던 트라비안 공작이 그가 하는 말을 뇌에 새기고 있던 카넨에게 물었다.

“비전하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말해 봐라.”

“좋아하는 건 보석과 작위, 싫어하는 건… 생명을 위협하는 것?”

“보석과 작위를 싫어하고 생명을 위협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말고.”

“…….”

카넨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공작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 태어나라. 너는 이번 생애에 그른 것 같다, 카넨.”

“아, 안 돼! 안 돼! 어떻게 할 방법이 없을까?”

카넨은 입에서 ‘선생님’이라는 단어가 나올 뻔한 것을 겨우 삼켰다. 태어나면서부터 오만방자한 황족이자 마탑주로 살아 왔는데, 지금 이 순간은 공작의 신발이라도 닦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간절함이 있었으면 애초에 아내에게 관심을 갖고 잘해 줬어야지.”

“…드레스도 사 주고 보석도 사 줬어.”

“재력은 부수적인 거라니까. 예를 들면 아내가 디저트를 맛있게 먹는 것을 보고 제과장을 저택으로 데리고 오는 정도, 선물 받은 차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을 보고 그 아내가 부족함 없이 차를 마시고 다른 사람들을 대접할 만큼의 생산 물량을 확보할 수 있을 정도의 재력이면 충분하다. 너는 공간 이동으로 다녀오면 되니까 더욱 편리하지 않나!”

그러면서 공작은 만약 자신이 마법사였으면 제과장을 데리고 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한 명의 요리사가 만드는 음식이 아니라 다양하게 먹일 수 있게 대륙을 건너서 여러 나라의 유명한 음식도 가지고 왔을 것이라며 한탄했다. 그 과정에서 카넨이 ‘만약 가져왔는데 페리아가 싫어하면 어떡해?’라는 질문을 했다가, ‘좋아하는 것 하나를 찾기 위해서는 백 번의 실패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좌절했다.

이어진 트라비안 공작의 말이 카넨의 폐부를 찔렀다.

“사람의 마음을 쉽게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지 마라.”

빈사 상태의 카넨에게 트라비안 공작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것은 아내 자랑이 7할, 자신이 아내에게 해 주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2할, 카넨에 대한 잔소리가 1할로 이루어졌다. 카넨은 공작의 말 속에서 자신이 실천할 수 있는 것을 찾아 헤맸다. 결국 그들의 대화는 공작이 더 이상은 안 되겠다며 자신의 아내에게 찾아가면서 끝이 났고 지금에 이른 것이다.

“대공비 전하께는 제가 정말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신전을 지어 드릴까 했는데 거절하셨다고요.”

돈 얘기가 나오니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했으니 그렇게 감사해하지 않으셔도 되지만, 신전 대신에 기부금은 받습니다.”

호호호호, 그러니까 돈으로 주렴. 쓸데없이 신전 같은 거 짓지 말고.

“아내가 예전보다도 건강해지고, 체력도 더 좋아져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얼핏 들으면 건강을 찾은 아내에 대한 감사의 인사였겠지만, 트라비안 공작은 그의 눈빛이 어떤지 숨기지도 않고 공작 부인을 바라보았다.

‘지금 아내를 잡아먹는 데 도움을 줘서 고맙다고 신전을 지어 주겠다고 한 거였구나…….’

공작 부인의 새빨개진 얼굴을 보니 자신이 오해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이대로 계속 앉아 있다간 공작의 원망을 들을 것 같아 빠르게 일어났다.

“대공비 전하! 자, 자주 와 주세요……!”

공작 부인은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보면서 말했다. 아무래도 트라비안 공작은 신분으로 꺾어 누를 수 있는 사람들의 방문은 받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러니 공작보다 신분이 높은 대공가에서 와야 그녀가 침실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것 같았다.

‘역시 절륜남! 역시 트라비안 공작! 힘내요, 공작 부인!!’

나는 엄지를 치켜들고 한쪽 눈을 찡긋 감았다.

“차 잘 마셨습니다. 다과도 하나같이 훌륭하네요. 다음에 또 맛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대공비 전하!”

공작 부인의 다급한 부름에도 불구하고 나는 카넨과 함께 공간 이동으로 떠났다. 왜냐하면, 아까 전부터 공작 부인을 바라보는 공작의 시선이 아주 엄청났기 때문이다.

“이제야 방해꾼이 사라졌군요. 정말 긴 시간이었어요, 리첼.”

그들이 사라지고 난 공간에서 트라비안 공작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그녀의 몸을 옭아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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