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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 세이브로 따먹다-230화 (230/235)

〈 230화 〉 파견 임무 (10)

* * *

*

"청월참(月?)"

감정이 담겨 있지 않은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래 저런 이름의 기술이었던가.

'저 달을 본지가 벌써 몇 년 전이지.'

인간과는 시간개념 자체가 다른 악마는 하늘에 떠오른 달을 보며 감상에 빠졌다.

오래전 한 인간이 사용했던 검술이었던가. 그때도 저 달에 시선을 빼앗긴 순간 모든 게 결정되었지.

그때와 비교한다면 좀 부족해 보이긴 했으나, 저 남자의 힘은 위험해 보였다.

'신성력은 아니지만, 다른 의미로 더 강할지도 모르겠군.'

악마에게 치명적이라 알려진 신성력과는 궤를 달리하는 종류의 힘이지만 위험하다는 사실은 변함없어 보였다.

인간계에 내려오기 위해서는 수많은 제약들이 걸리는데, 완전한 상태도 아닌 지금 여기서 저 공격을 막아낼 방법은 없어 보였다.

처음 느껴보는 이질적인 기운, 저들은 아마 이 세계의 존재들이 아니겠지.

자신들이 사는 장소 역시 이들과는 다른 세상이었으니, 그리 놀랄 것도 아니었다.

그나저나 푸른 달이라.

그런대로 볼만한 모습이구나.

__서걱.

불쾌한 느낌이 몸을 스쳐 지나가고, 보름달이 사라지며 검으로 그은 듯한 잔상만이 자리에 남았다.

악마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과거의 검술을 사용한 인간을 눈에 담았다.

'그래. 확신할 수는 없지만, 또 만나게 될 거 같은 기분이 드는구나.'

저 뒤에 있는 빛의 창녀라도 노려볼까 생각했으나 눈을 부릅뜨고 이쪽을 노려보고 있는 남자 때문에 포기했다.

주먹으로 말도 안 되는 일은 하는 인간.

'재미있구나.'

역시 인간은 재밌다.

고작 필멸자인 주제에 어떻게 저런 괴물들이 나타나는 걸까.

개인 개인은 별것 없는 벌레에 불과하지만, 가끔 저런 괴물들이 나타나곤 했다.

불멸자인 자신들조차 이해할 수 없는 괴물들이.

악마는 의식이 흐려지는 게 느껴졌다.

방금 일격으로 여기에서 육체를 유지할 시간이 끝난 모양이다.

*

[ 대단한 업적입니다! ]

[ 인간의 몸으로 검의 의지를 실현 했습니다.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

[ 엘레넨가 비전 검술의 레벨이 상승합니다. ]

[ 대적할 수 없는 존재를 제거했습니다. 당신의 업적에 모두가 찬송할 것입니다. ]

[ 모든 스텟 + 3 ]

생각하지 못했던 보상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모든 스텟 +3은 생각보다 큰 보상이었다. 거기다 레벨이 더럽게 오르지 않던 비전 검술까지 올라가다니.

기분은 좋지만, 기술의 반동인지 조금 불편한 느낌이 있었다.

아마 주변에 마력을 동조시키는 것을 넘어 순환시키면서 생기는 부작용인 모양이다.

'솔직히 기초 심법으로는 감당 못하는 느낌인데.'

검에 의지를 담는 검술이니, 아마 전용 심법이 있지 않을까.

악마 녀석이 사라진 자리에는 참혹하게 베어진 시체들과 불타듯 사라진 마법진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방금 뭘 한 것이냐..?"

방금 검술에 최태수조차 놀란 표정으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그래도 나름 인간의 몸으로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만들어진 검술이라 그런지 최태수도 놀란 모양이다.

최태수에게 대답하려는 순간 몸이 휘청거렸다. 주변에 있는 기운을 억지로 사용한 반동인 모양이다.

반발력이 있는 힘을 억지로 사용했으니 어쩔 수 없으려나.

"이봐요. 괜찮아요?"

내가 쓰러지려 하자 옆에 있던 박혜지가 달려와 붙잡아 줬다.

"그냥 좀 어지러울 뿐이야."

"그게. 그 검술의 극인 것이냐? 그리고..."

아마 본인이 준 물건이라서 그런지 최태수는 눈을 반짝거리고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아까 공격 때문에 내 아래쪽에 있는 단전을 눈치챈 모양이다.

하긴 무협하면 단전인데, 최태수는 마력 심장을 통해 기술을 구현하고 있으니까 저런 반응도 이상한 게 아니다.

하지만 굳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거 없어도 영감님은 세지 않나.

"읍! 읍!"

"흠... 여기서 말할 주제는 아닌 모양이구나."

상황이 끝났다는 걸 아는지 고결하게 생긴 여인이 이쪽을 보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급한 상황이라 저쪽을 까먹고 있었네.

우리는 인질들에게 다가가 구속을 풀어주기 시작했다.

오래된 속박 때문인지 손목에는 쓸린 자국이 남아 있었다.

"구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프레이야 교단의 성녀 프리실라라고 합니다."

은색보다는 백발에 가까운 반짝거리는 하얀 머리카락.

고생이라고는 하나 해보지 않았을 것 같은 곱상한 외모와는 다르게 그녀는 당당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동작하나 하나가 어딘지 모르게 고귀한 느낌이 들었다.

태도도 공손하기 그지없고 예를 지킬 줄 아는 사람 같아 보였다.

저쪽에 묶여 있는 이들도 평민은 아닌지 얼굴에서 귀티가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이 시대에 대해서는 자세히 모르지만, 평민이 저런 느낌을 풍기기는 힘들겠지.

'여기서는 가장 높은 사람인가. 하긴 성녀니까 그럴 수도 있겠네.'

프레이야 교단이라고 하는 걸 보면, 확실히 그쪽 세계는 맞는 모양이다.

당장 죽을 위기에 있었음에도 소리를 지르거나 난동을 부르는 사람이 없는 건 신기하다고 해야 하나.

보통 이런 상황이면 공황에 빠지는 게 보통이니 말이다.

안도의 한숨이나 힘이 풀려 보이는 인간은 있지만, 난동을 피우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 성녀의 눈치를 살피는 모습이라 해야하나.

성녀의 몸 여기저기에는 강하게 묶은 탓에 밧줄 자국이 남아 있었으나 그녀가 힘을 끌어 올리자 상처가 치료되기 시작했다.

"이 사람은 힐러 인가요?"

"본인 입으로는 성녀라는데."

"성녀요? 그 소설 속에 나오는 성녀를 말하는 건가요?"

최태수와 박혜지는 여인을 신기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저희가 사용하는 마력하고는 다른 느낌의 힘이네요?"

"특이하구나. 힐러들과 비슷하지만 다른 느낌이야."

치료가 끝난 성녀는 묶여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 구속구를 풀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 시작했다.

일반인의 몸으로는 풀 수 없는 재질인지 고생하고 있자 최태수가 다가가 구속구를 파괴하기 시작했다.

"아.. 감사합니다. 생명의 은인에게 계속 빚만 지고 있네요..."

보통 권력을 가진 사람은 권위적인 태도가 나오기 마련인데, 성녀는 전혀 그런 느낌이 없었다.

구속구가 파괴되자 프리실라는 눈을 감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녀를 중심으로 새하얀 날개가 나오기 시작하더니,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깃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거... 정수아랑 비슷한 느낌인데. 신성력?'

깃털이 떨어지는 순간 사람들의 생기가 돌아오기 시작하고, 나도 불쾌한 느낌이 사라졌다.

[ 사교도의 비밀 제단을 클리어했습니다. ]

[ 30초 후 게이트 밖으로 이동됩니다. ]

"음?"

"눈앞에 이상한 게 보이는데요?"

"저도 보입니다.."

물어볼게 한가득 있는데, 기도를 하는 탓에 뭘 물어보지도 못하겠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시간만 흐르기 시작했다.

점점 줄어드는 시간은 0초를 향해 가기 시작하고, 우리의 몸이 점점 흐릿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돌아가는 걸까요?"

"뭐가 어떻게 되는 건지 모르겠구나. 나도 그리 오래 산건 아니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구나."

"저도 처음입니다."

시간이 흘러가고 그 자리에 남아 있던 프리실라가 눈을 떴다.

"정말 감사합니다...?"

프리실라는 사라진 귀인들을 찾기 위해 고개를 돌렸으나 그들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사라지셨습니다. 마치 연기처럼 흐릿하게 변하시더니..."

"프레이야 님이 저희를 돕기 위해 보내신 분일까요."

그녀는 무슨 일이 일어난 지 이해하지 못했으나. 다시 눈을 감고 감사의 기도를 올릴 뿐이었다.

*

"그게 정말이야?"

"그렇습니다."

"하아...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거야?"

윤승아는 이지아의 보고에 얼굴을 구겼다.

그녀의 심경을 보여주듯 주변에 있는 물건들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 게 그녀 였으나.

이번 만큼은 그 경우가 달랐다.

가장 믿었던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이라서 그럴까.

크게 의지했던 건 아니지만, 그동안의 시간을 생각한다면 정이 들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 인물의 배신은 그녀를 흔들기에 충분했다.

"어쩐지 최근에 조용하다 싶더니..."

자신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소중한 딸의 아빠.

대한민국의 최고의 헌터중 한 명이라 불리는 자신의 남편.

비록 정상적인 관계는 아니라고 해도 다른 이들보다는 신경 쓰던 인물 중 한명.

그런 남자가 무엇이 아쉬워서 이런 짓을 벌인 걸까.

윤승아는 피우지도 않는 연초를 피우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의 손길에 구석에 있던 바실리스크의 독액을 첨가한 고량주가 두둥실 거리며 날아왔다.

헌터들을 취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술.

일반인들은 한 잔만 먹어도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극독이었다.

S급 헌터인 그녀에게는 그저 고량주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손짓 한번에 병목이 정교한 무언가로 자른 것처럼 깔끔하게 잘려나갔다.

서울에 가장 높은 건물 중 하나인 사신 길드 본사 건물의 최상층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

어둠이 내려앉은 시간임에도 자동차들은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어디론가 달리고 있었다.

여전히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의 모습.

매일 보던 풍경인데, 오늘만큼은 다르게 느껴지는 걸까.

그녀는 조용히 고량주를 입에 담았다.

언더락도 아니고 스트레이트로 마셔서 그럴까. 씁쓸한 맛이 입안에 퍼졌다.

"쓰네."

"..."

이지아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조용히 고개만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너도 한잔할래?"

"예."

"웬일이야? 우리 지아는 술 안 마시잖아?"

"..."

"하여간 말도 없고, 반응도 없고 재미없다니까?"

"죄송합니다."

"또 또. 재미없게."

__꿀꺽꿀꺽.

바실리스크 주가 든 병에는 벌써 내용물이 절반밖에 남지 않았다.

"서아도 위험할 수 있는 일인데... 그 인간한테는 서아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걸까."

"아무리 마스터라 해도, 그렇게 빨리 마셨다가는 위험할 수 있습니다."

"하, 내가 누군지 모르는 거야? 나 S랭크 헌터 윤승아야!!"

"마스터. 진정하시는 게.."

"하..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윤승아의 주변에는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간 김지호가 다른 여자와 외도하는 사진들이 둥실 거렸다.

어떤 방식으로 다시 젋어 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차라리 외도만 했다면 이렇게까지 화나지는 않았을 거다.

아카데미 내부의 기밀사항을 정체도 모르는 놈들에게 넘기다니.

큰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자칫 잘못했으면 서아마저도 위험해 질 수 있는 사항이었다.

"서아한테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죄송합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아..."

윤승아는 답답한 마음에 그저 바실리스크 주를 마실 뿐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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