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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 세이브로 따먹다-229화 (229/235)

〈 229화 〉 파견 임무 (9)

* * *

*

코끝에 느껴지는 피 내음에 자연스럽게 얼굴이 구겨졌다.

여기저기 낭자한 혈흔과 함께 사방에 퍼져있는 덩어리 들은 내성이 없는 사람들이 본다면 아마 구역질을 하지 않았을까.

최태수가 손을 뻗을 때마다 사방에 흩뿌려지는 인간이었던 조각들은 잔혹하다는 말을 넘어선 행동처럼 보였다.

잠시 시야가 흐려지며 어린 시절의 모습이 떠오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이런 비릿한 혈향이 사방에 가득했었지.

단순히 분위기로 따진다면 이곳이 더 칙칙하고 불결한 느낌일까.

하지만 불쾌한 감정만을 비교한다면 과거의 그 장소가 더 심하리라.

자신이 칼이 움직일 때마다 사람의 머리가 몸에서 분리되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 정신 나간 사람이 존재할지는 모르겠지만, 박혜지는 그런걸 즐기는 부류의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의 손길에는 그 어떤 망설임도 담겨 있지 않았다.

최태수가 그저 묵묵히 머리통을 깨부수는 것처럼, 박혜지도 무감각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

자신이 베고 있는 이들은 사람이 아니니까.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확실하게 죽이고 있을 뿐, 그녀는 그저 사냥하고 있을 뿐이었다.

과거.

각성을 하기 전.

그녀는 남들과 똑같은 가정에서 자란 평범한 아이였다.

아니, 조금은 특별한 가정에서 사랑을 받으며 자란 아이로 남부럽지 않은 가정에서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란 아이였다.

언제나 그렇듯, 모든 사건은 갑작스럽게 일어난다.

게이트가 생겨나고 괴물들이 넘어오기 시작하면서, 인류는 이전과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

뉴스에서는 누가 죽고 죽었다며 연신 보도했으나. 그녀에게는 크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단순히 사망자 몇 명이 죽었을 뿐, 누가 죽었는지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으니 당연한 이야기일까.

유복한 그녀에게는 몬스터의 습겨으로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이 너무나 멀게 느껴졌다.

하지만 너무 유복한 가정형편 때문일까.

특별한 힘을 얻은 범죄자들의 표적이 된 것은 말이다.

그날 강도들이 그녀의 집을 습격했고, 매일 자신을 지켜줄 거라 생각했던 경호원들이 무참하게 살육당하는 모습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저 벌벌 떨며 몸을 웅크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매일 아침이면 자신을 깨워주러 올 가정부도, 자신을 학교에 데려다 주던 운전기사도, 혼자 있게 내버려 두지 않던 경호원들이.

그녀의 눈앞에서 죽었으니까.

그게 너무나 충격적인 나머지 그 후로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자신의 할아버지인 최태수가 달려와 칼을 휘둘렀다는 점일까.

주먹을 뻗을 때마다 드러나는 안쪽의 흉터는 그때 남았던 흉터들이 많았다.

물론 S급이라는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 새롭게 새겨진 흉터들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그녀의 기억 속에는 그러했다.

큰 충격에 빠져 한참을 틀어박혀 살던 그녀였으나.

각성을 하면서 그녀는 다시 세상 앞에 섰다.

무력했던 과거의 자신과는 다르게, 최태수처럼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이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다시는 이런 피해자들을 만들지 않겠다는 각오로 그녀는 빌런을 용서하지 않기로 했다.

그들은 같은 사람이 아니라, 괴물, 헌터로써 사냥해야 할 몬스터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그녀가 목을 치는 것은 일종의 자비였다.

가장 고통 없이 빨리 죽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 일 테니까.

검을 휘두르려는 순간, 묵직한 손이 자신의 손목을 잡았다.

“혜지야.”

귓가에 들려오는 최태수의 목소리.

“아.”

“너무 흥분했구나. 괜찮느냐?”

“죄..죄송해요. 또 걱정을 시켜 드려서 그러니…”

“괜찮으니까 진정하거라.”

부드럽고 따스한 목소리에 떨림이 줄어드는 느낌이 들었다.

“흠..흠. 아무튼 이런 인간들은 용서할 수 없어요.”

“하하. 당연한 소리를 하는구나.”

방안에 있던 이들은 둘의 웃는 얼굴에 몸을 떨 수밖에 없었다.

*

지옥이 있다면 이곳일까.

곰같은 사내와 가녀린 몸을 한 소녀가 만들어 내는 학살극에 모두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문앞에서 지원이 오길 기다리는 것도 포기했다.

‘소드 마스터…’

푸른색 오러를 사용하는 소드마스터가 입구에서 들어오려는 경비들을 모두 도륙 내버리고 있으니 말이다.

어디서 보낸 자들일까.

이정도 실력이 있는 인간들이라면 소문이라도 날 법하지만, 이들은 전혀 본 적 없는 자들이었다.

물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미녀의 검사와, 주먹으로 검과 머리를 박살 내는 영감.

‘도대체 어디서 이런 놈들이 온 거지?’

성녀를 구출하기 위해서 교단에서 보낸 이들일까.

그렇다고 하기에는 그들의 몸에서는 티끌 같은 신성력도 느껴지지 않았다.

모험가 길드에서 보냈다고 하기도 힘든 수상한 조합.

분명 맨몸인데 칼도 마법도 통하지 않는 저런 괴물이 왜 지금 시기에 여기에 있단 말인가.

성녀를 인질로 잡을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지만,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영감이 지키고 있는 탓에 그건 꿈도 꿀 수 없는 이야기였다.

아니면 제국에서 보낸 자들일까.

‘그래. 저런 괴물들을 숨기고 있을 수 있는 놈들은 제국밖에는 없겠지.’

꿀꺽.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에 삼킨 침이 목울대를 넘어가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분명 죽음을 각오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이곳에서 죽게 될 거라는 건 꿈에도 몰랐다.

자신은 제국을 증오하여 여기에 왔는데, 결국 제국의 손에 죽는 것인가.

그 많던 인원들이 고작 3명의 검사에게 무참하게 도륙당하고 있었다.

“아… 가장 깊은 어둠이시여.”

죽음이 눈앞에 다가온 순간, 그의 제단 주변에서 죽어가는 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넘치는 시체와 죽은 자들의 영혼들.

살아서 나갈 수 없다면, 적어도 놈들을 데려가야 하지 않겠는가.

제단 주변에서 한 노파의 시체가 꿈틀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대 제사장이시여…’

놈들은 끝이라 생각했지만, 끝이 아니니.

“가장 깊은 어둠이시여!!!! 당신의 충직한 종이 스스로를 바치니. 저 악한 이들을 멸하소서!!!!”

“멸하소서!!!”

“혜지야 뭔가 이상하구나!!”

“저도 느꼈어요!!”

주위에 있던 이들이 모두 품 안에 칼을 꺼내 자신의 심장을 일제히 찔러 넣었다.

말릴틈도 없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둘은 눈살을 찌푸렸고, 무언가 이변이 일어났다.

*

무언과 거대한 흔들림에 심장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뭐야?”

고유 영역을 활성화한 상태로 칼을 휘두르던 나는 고개를 돌려 안쪽을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검붉은 색으로 빛나는 마법 진에서 뻗어나온 불쾌한 무언가가 심장에 칼이 꽂혀 있는 이들을 끌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수십, 수백의 손에 끌려나간 시체들은 마법진에 닿은 순간 마치 연기라도 되는 것처럼 사라지기 시작했다.

“아아.. 가장 깊은 어둠이시여…”

“어둠이시여….”

나와 싸우던 놈들이 갑자기 무릎을 꿇고는 감격한 것처럼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시발… 뭐야 이게?”

__서걱.

눈앞에서 칼을 휘두르고 있는데도 놈들은 그 어떤 반응도 없었다.

본인의 목숨보다 소중한 무언가가 있는 건가?

이게 흔히 말하는 광신도라는 걸까. 나는 소름이 끼치는 느낌에 놈들을 빠르게 처리하고 안쪽으로 이동했다.

불길한 기운이 가득 찬 장소에서 최태수와 박혜지는 인질로 보이는 이들을 구조하고 있었다.

제단 위에 있던 아름다운 여성과 눈을 가리고 있는 나머지 인원들을 서둘러서 이동시키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야?”

“나도 모르겠어..”

사람들을 구석으로 대피시킨 순간, 처음 최태수의 주먹에 의해 머리가 날아갔던 녀석의 시체가 허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마법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더럽고 추악한 기운이 놈을 감싸기 시작하더니 사라졌던 머리가 다시 생겨났다.

“anf!$

ak!

?1afd?”

제국어도 아니고,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괴상한 목소리에 최태수가 주먹을 쥐었다.

“뭔진 모르겠다만, 기다리면 안 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저도 그렇게..”

__파아앙!!!

최태수의 주먹은 내 대답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주먹이 닿지 않았음에도 폭발이 일어나더니 허공에 떠올랐던 시체가 산산조각이나 제단 위에 흩뿌려졌다.

‘이걸로 해결된 건가?’

작은 기대를 품고 제단을 보았으나. 세상일은 그리 쉽게 될 리 없는 법.

제단 안쪽에서 검은색의 무언가의 상반신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최태수가 한 번 더 주먹을 뻗으려는 순간, 무언가의 상반신이 손을 뻗어 최태수의 주먹을 방어했다.

__콰아아앙!!!

거대한 두 힘의 격돌에 몸이 밀려날 정도로 강렬한 파동이 생겨났다.

“성격이 급한 인간들이구나.”

낮고 기괴한 목소리가 방안을 울려 퍼졌다.

칠판을 긁는 것 같은 듣기 싫은 소리에 자연스럽게 눈살이 찌푸려졌다.

붉게 충혈된 눈과 거대하게 솓아 있는 검붉은 뿔.

우리는 저런 존재를 이렇게 부른다.

“악마..?”

“인간들은 그렇게 부르기도 하지. 너희는 아주 특별한 냄새가 나는구나. 한 번도 맡아 본 적이 없는 냄새야.”

놈은 주변에 있는 시체들을 흡수하며 점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어째서 저 말이 들리는 거죠?”

“이번에는 나도 이해되는구나.”

“문자를 사용하고 있는 게 아니니 말이다. 흠.. 쉽게 이야기하자면 의식을 전달하고 있는 거지. 너희같이 하등한 존재들은 하지 못하는 일이지만.”

녀석의 존재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이 생기지만, 중요한 건 저대로 놈을 내버려둬서는 안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고유 영역 : 활성화 ]

[ 마나 심법 : 활성화 ]

__파직 파직…

주변에 있는 불쾌한 기운들이 항마의 힘을 만나 반발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마치 스파크가 튀는 듯이 푸른색 불꽃이 일어나자 놈의 표정에도 변화가 생겼나.

“위험한 힘을 가지고 있구나.”

그때의 감각을 떠올린다.

마나심법을 통해 주변에 있는 힘을 순환시킨다. 텅 비어있어 반발이 적었던 그때와는 다르게 더 불쾌한 감각이라 몸에서 거부반응이 일어났다.

오염된 마나와 항마력이 서로 반발을 일으키고 있으나, 곧 내 의지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변이 어두워지고, 하늘에는 보이지 말아야 할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력이 요동칠수록 조금씩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지금 뭘 하려는 거지?”

놈의 목소리가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본래 변신할 때는 기다려 줄 필요가 없지.

“이놈! 그만둬라!!”

여유로워 보이던 처음과는 다르게 다급한 목소리.

하늘에는 그날과 같은 푸른색의 보름달이 떠올랐다.

“푸른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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