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8화 〉 파견 임무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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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를 살펴보기로 마음먹은 우리는 로브와 가면을 뒤집어쓰고 방 안에서 나왔다.
최태수도 같은 방식으로 위장할까 고민도 했지만, 저 거구의 몸에 뭘 씌운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포기했다.
본인이 괜찮다고 해서 신경은 안 쓰고 있기는 한데, 솔직히 겁나 신경 쓰인다고 해야 하나.
‘도대체 저기에 어떻게 매달려 있는 거지?’
이런 표현을 써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무슨 바퀴벌레도 아니고 잡을 곳도 없는 천장에 매달려 이동하는 최태수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거기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최대한 은밀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아무리 봐도 그런 느낌인데.
“위쪽 자꾸 보지 마요. 그러다 들키면 어쩌려고 그래요.”
옆에 있던 박혜지가 옆구리를 치며 계속해서 눈치를 줬다.
“괜찮은가 싶어서..”
“허허. 나는 괜찮다네.”
천장에서 최태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보면 안 된다는 건 알고 있긴 하지만, 일반인의 2배는 되는 거대한 거구가 천장에서 매달려 기어 다니고 있는데 어떻게 무시해.
그래도 처음 봤을 때보다는 좀 충격이 적다고 해야하나. 계속 보니까 좀 익숙해지는 느낌이 드는 거 같기도 하고.
“주의하도록 하세요.”
“알았어.”
그렇게 앞으로 걸어가는 순간, 멀리서부터 인기척이 들려왔다.
확실히 녀석들이 이곳에 사람이 없을 거라 안심했던 이유를 알 것 같은 기분이다.
아무런 장애물도 없이 긴 통로만 존재하는 공간이 이렇게 많다 보니, 몸을 숨길 장소가 마땅치 않아 보였다.
벽속에 있는 문도 이곳에 있는 녀석들이 아니면 알 수 없을 것 같고.
“그러니까 말이야.”
조금씩 선명하게 들려오기 시작하는 목소리에 박혜지와 나는 최대한 침착한 상태를 유지하며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내가 그때 어떻게 했느냐면… 음?”
멀리 있던 녀석들이 우리를 발견했는지 이쪽을 바라보았다.
“다..당신 괜히 들키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박혜지가 녀석들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누가 봐도 수상할 정도로 떨고 있으면 놈들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횃불을 들고 있는 녀석들은 말없이 이쪽으로 다가왔고, 우리는 그저 앞으로 걷기만 했다.
“수고가 많으십니다. 의식이 시작된 걸로 아는데 왜 여기에 계십니까?”
놈들은 우리를 보며 정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놈들끼리도 자세히는 모르는 건가.’
아까 놈들의 대화를 생각해 보면 정찰을 하는 건 말단들의 임무 같으니 우리보다는 계급이 낮은 모양이다.
거기다, 아까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로브에 달린 배지가 어느 정도 계급을 말하는 모양이다.
적어도 앞에 있는 녀석들은 우리보다 계급이 낮다는 거겠지.
“개인적인 일이 있어 좀 늦어졌을 뿐이다. 다들 의식 장소에 있나?”
“그렇습니다!”
“그래. 수고가 많군. 우리는 의식 때문에 먼저 가보도록 하겠다.”
나는 적당히 놈들의 어깨를 두들겨 주고는 녀석들을 지나쳐 앞으로 걸어갔다.
뭐 어떻게든 넘긴 모양이다. 놈들과 거리가 벌어지자 옆에 있던 박혜지가 말을 걸었다.
“뭐라고 하신 거에요?”
아, 생각해 보니 박혜지와 최태수는 녀석들이 뭐라고 말하는지 모르는구나.
스킬로 얻은 언어라 그런지 딱히 생각하지 않아도 말하고 듣는 게 가능한 모양이다.
“무슨 의식이 있는 모양이야. 정찰은 하는 건 말단의 업무고, 우리가 있는 옷 주인의 계급이 더 높은 거 같고.”
“그렇게 능숙하게 말하는 걸 보니 대단하구나.”
깜짝이야.
그렇게 위에서 말할 거면 좀 깜빡이 좀 키고 말하세요 영감님.
“뜻은 알 수 있어도 그렇게 직접 말하는 것까지는 힘들다고 들었는데 대단하구나.”
“맞아요. 전혀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았을 건데. 어떻게 음절을 재현할 수 있는 거죠?”
스킬로 얻으면 된다고 말해도 둘이 납득 할 수 있을 거 같지는 않다.
나는 그냥 스킬을 얻으려고 이것저것 노력하다 보니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넘어갈 수밖에는 없었다.
“그건 그렇고 의식이라니. 이런 장소에서 하는 의식이라면 분명 정상적인 일은 아니겠죠?”
딱봐도 수상하게 생긴 가면을 쓴 녀석들이 하는 의식이라.
듣기만 해도 위험한 냄새가 나는 느낌이다.
“그건 그렇고 어디로 가야 하죠?”
의식이 있다는 건 알았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게 문제였다.
개미굴처럼 긴 통로가 사방으로 이어져 있는 미로 같은 곳이라고 해야하나.
“저쪽에서 특이한 기운이 느껴지는구나.”
기척이라도 내고 말씀하시라니까.
갑자기 머리 위에서 소리가 들려 오는 거 아무리 들어도 적응이 안 되는 기분이네.
뭐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닌가.
“저도 느껴져요 할아버지.”
“저쪽으로 가볼까요?”
“둘 다 위험할 수 있으니 조심하도록 해라.”
멀리서 느껴지는 특이한 기운을 향해 우리는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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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복도가 이어지는 공간과는 다르게 드 넓은 공간이 이어졌다.
벽에는 특이한 문양으로 장식된 기둥들이 세워져 있었고, 중앙에는 붉은색 액체로 그린 마법 진이 새겨져 있었다.
그 중심에는 거대한 지팡이를 든 사람이 중심에 서 있었다.
주위에는 사람의 유골로 보이는 뼈들이 장신구처럼 박혀 있었다.
일반적인 사람이 본다면 자연스럽게 눈살이 찌푸려졌을 것 같은 모습.
“드디어. 때가 되었다.”
방안을 들어선 순간부터 코를 찌르는 불쾌한 냄새가 났으나 주위에 있는 이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였다.
대재사장. 교단의 제사장을 맡은 남성은 뒤늦게 들어온 두 명에 눈살을 찌푸렸으나. 지금은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드디어 이 땅에 광원이 찾아올 때가 되었다.”
어두운 방안에 불쾌한 냄새가 가능한 장소와는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 단어.
__쿵! 쿵!
제사장의 목소리에 따라 주위에 있던 이들이 모두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쯧. 의식에 맞춰 확실히 연습해 두라 했거늘…’
모두가 똑같은 박자에 움직였으나 어딘지 모르게 어색해 보이는 두명.
늦게 온 것부터 시작해 자꾸만 둘의 존재가 거슬렸다. 의식만 아니었으면 두 녀석을 앞으로 불러내 본보기를 보여 줬으리라.
“빛의 창녀를 몰아내고, 이 땅에 진정한 주인이 강림할 때가 되었다.”
__쿵! 쿵!
놈들이 드디어 정신을 차렸는지 처음에 어색했던 모습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알맞은 타이밍에 발을 구르는 모습.
“읍!!! 읍!!!”
드디어 가장 중요한 행사를 위해 준비한 제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밧줄에 묶여 저항하지 못하는 여성은 온몸을 비틀며 발버둥치기 시작했다.
빛의 창녀의 딸이라 불리는 이.
가장 고귀하기에 그만큼 더 추하다 할 수 있는 이.
그리고 그 고귀한 피 뒤로 무수히 많은 사람이 밧줄에 묶여 있는 상태로 장소로 끌려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모두 팔과 다리가 묶인 상태에서 눈을 가려져 있어 지금 앞을 볼 수 없었다.
오늘 이 의식을 통해 교단이 위대한 첫걸음을 내딛는 날이었다.
이 날을 위해 준비된 산제물 50명.
이미 이 제단을 만들기 위해 더 많은 이가 사용되었으나. 그들의 피의 값은 지금 준비된 이들의 값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창녀의 딸아! 그 동안 그 더러운 손으로 얼마나 많은 이들을 고통받게 하였느냐!!!”
__쿵! 쿵!!
“오늘 네년의 더러운 죄는 피로써 갚아질 것이다!!!”
제사장의 말에 맞춰 성녀를 제단 위에 올리고 고정하기 시작했다. 의식에 사용될 단검을 꺼내 드는 제사장.
불길한 기운이 주변에 있는 마법진과 반응하며 기분 나쁜 불빛을 내기 시작했다.
“아아!! 가장 깊은 어둠이여!!! 당신에게 더러운 창녀의 딸을 바칩니다!!!”
제사장이 칼로 성녀를 찌르기 위해 고개를 들어 올린 순간, 어두운 공간 위에는 거대한 인영이 매달려 있었다.
“바..칩니다?”
일반인에 두 배는 될 것 같은 거대한 몸집의 남성이 천장에 매달려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너무나 섬뜩한 기분에 제사장이 뒤로 물러서는 순간이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다만, 확실히 착한 녀석들은 아닌 것 같구나.”
천장에 매달려 있던 최태수가 그대로 떨어졌다.
__콰앙!!!!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주변에 있던 이들이 모두 밀려나고, 그 중심에는 대제사장의 목을 쥐고 있는 최태수의 모습이 보였다.
“이놈!! 어디서 나온 것이냐!!”
제사장은 최태수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등바등 거리고 있었으나, 한번 쥐어진 손은 전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무슨 힘이…’
자신이 들고 있던 검으로 남자의 팔을 찔렀으나, 남자의 팔은 강철보다 단단한 것인지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크허헉.. 허허억…”
“제사장님!!!!”
최태수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하자 제사장은 괴로운 듯 몸을 비틀기 시작했다.
골통 분쇄자라 불릴 만큼 적에게는 자비가 없는 최태수.
그에게 붙잡힌 순간 이미 끝은 결정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__퍼엉..
“히이이익!!!”
“제..제사장님이…”
머리가 사라진 제사장의 시체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피칠갑을 한 남성의 눈이 자신들을 노려보기 시작하자 그들은 자연스럽게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저걸 어찌 같은 인간이라 부를 수 있을까.
놈들이 입구로 도망치려는 순간, 고운 미성과 함께 한 여성이 입구 앞을 막아섰다.
“인신 공양인가요. 이런 녀석들은 살려두어서는 안 되겠죠.”
가장 늦게 들어왔던 두 명 중 한명이 검을 꺼내 들며 앞으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걸음걸이 하나하나에 느껴지는 품격에 적이 습격했다는 사실도 잊은 채 주위에 있던 이들이 모두 그녀를 바라보았다.
우아한 움직임은 단순히 걷고 있었음에도 연극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용서하지 않겠습니다.”
잠시 꿈을 꾼 느낌이 들었으나. 제단 위에서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는 괴물에 그들은 모두 정신을 차렸다.
피칠갑을 한 거구의 남성과 가녀린 선을 가진 여성. 조금이라도 생존 확률이 높아 보이는 건 여성 쪽이었다.
그들은 무언가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탈출을 위해 입구로 달려드는 순간, 여성의 검이 칼집에서 뽑혀 나왔다.
그리고 얇은 물이 스치고 지나간 순간.
“어..?”
“아…”
짧은 단말마와 함께 그들의 목이 떨어져 나갔다.
인식조차 하지 못할 아주 짧은 시간에, 칼날처럼 날카로운 물이 그들의 목을 자르고 지나갔으리라.
어쩌면 저게 자비일지도 몰랐다.
적어도 자신이 죽는지도 모르고 죽을 테니까.
그리고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김시우는 생각했다.
“둘이 닮았네.”
“무슨 일이냐!!!”
제단 밖에서는 무장을 한 녀석들이 이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저놈들이나 상대해야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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