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7화 〉 파견 임무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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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 너머로 넘어간 순간 끈적거리면서 불쾌한 공기가 우리를 반겼다.
어딘지 모를 장소의 동굴인지, 길게 늘어선 통로에는 횃불이 좌우로 달려 있었다. 간격이 길어서인지 살짝 어두운 느낌이 들었다.
“이건.. 사람의 발자국인가.”
최태수는 바닥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발자국을 보고 중얼거렸다.
상당 시간이 흐른 것 같긴 하지만, 분명하게 보이는 사람의 발자국.
“조심하는 게 좋겠구나.”
우리가 예상했던 공간과는 다른 풍경의 모습에 박혜지는 긴장한 모습이었다.
일반적인 게이트처럼 드넓은 자연이 펼쳐질 줄 알았는데, 사람의 흔적을 탄 장소가 나올 줄이야.
이런 게이트가 없는 건 아니지만, 보통은 고대의 유적인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우리가 들어온 장소는 최근까지도 사람이 있었다는 느낌이 드는 장소였다.
벽면에 새겨져 있는 기이한 문자들은 이들이 지성을 가진 존재라는 점을 명시시켜주었다.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글자구나.”
최태수는 벽면에 쓰인 문자를 보고 중얼거렸다.
“여기에도 사람들이 사는 걸까요? 저는 이런 글자를 본 적이 없는데…”
지구에서는 본 적 없는 문자들, 그게 의미하는 건 이들은 우리와 다른 차원의 존재라는 뜻이겠지.
그리고, 그 글자들은 내게는 너무나 익숙한 글자였다.
비전 검술서를 사용하기 위해서 강제적으로 익혔던 글자니까.
“어둠에서부터 시작된 존재여, 가장 깊은 어둠에게 가장 미천한 자가 부르니… 그 뒤는 뭐라고 적힌 거야?”
그 뒤는 제국어와는 다른 문자로 쓰여있어서 읽을 수가 없었다. 그나마 알아볼 수 있는 건 이게 다고 나머지는 특정한 문자들이 뒤섞여 있었다.
“당신 이 글자를 읽을 수 있어요?”
“조금은, 나머지 글자들은 못 읽겠어.”
“여기에 대해서 아는 게 있는 건가요?!”
뭔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박혜지가 가까이 다가왔다. 최태수 역시 말은 안 하고 있지만, 이쪽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자세는 몰라. 저번에 받은 검술서 때문에 알게 된 글자니까.”
“검술서..?”
“결국 익히는 데 성공한 모양이구나.”
“완전히 익힌 건 아닙니다만.”
“저 왜 저만 빼고 얘기하시는 거죠?”
박혜지가 따지려는 순간 저 멀리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우리는 어두운 공간에 벽을 바싹 붙여 몸을 숨겼다.
“흠… 이상한 소리가 들렸는데.”
“너 뭐 잘못 먹은 거 아니냐? 저번부터 몸이 허해 보이더니.”
“너는 못 들었어? 분명 여기서 사람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고.”
“어떤 미친놈이 여기까지 들어와? 악마들이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분명히 들었는데…”
“늦으면 혼나니까 따라오기나 해.”
“이상하다…”
왜 항상 이런 장소에 있는 놈들은 얼굴을 가리고 있는 걸까.
그나마 후드를 뒤집어 쓰고 다니는 놈들과는 다르게 하얀 가면을 쓴 남자들은 이쪽을 잠깐 보더니 유유히 사라졌다.
그건 그렇고, 저렇게 커다란 몸으로 벽에 바싹 붙어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어색하다 해야 하나.
“사람이 있긴 하는구나.”
“게이트 안쪽에 저런 지성체가 있는 건 처음 봐요..”
게이트 너머가 다른 차원이라고는 해도, 항상 몬스터만 살고 있을 뿐이었다.
놈들의 모습을 봐도 절대 우리와 같은 헌터는 아닌 것처럼 보였으니 둘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제국어를 쓰는 걸 보면 확실히 프레이야 쪽 세계인 것 같은데. 어떻게 된 것인지 알고 있어 마키나?’
역시 이번에도 자세히 알려줄 수 없으려나.
[ “하위 차원이 맞습니다. 단지.. 시간의 축이 조금 뒤틀렸네요.” ]
시간의 축이 뒤틀렸다고?
그러면 저번에 갔던 시간대의 세계는 아닌 건가.
그때 만났던 인류가 패배한 시점인 건지, 아니면 이제 막 놈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시점인건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만약 패배한 시점이라면, 여기 있는 놈들이 우리 쪽으로 넘어오면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지겠지.
사실 관련이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설마 이게 멸망하고 관련이 있으려나.’
그 뒤로 마키나에게 더 물어보려 했으나. 이번에도 대답해줄 수 없는지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직접 부딪쳐서 알아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 보였다.
이번에 발견한 특수 게이트, 아니 차원의 균열이라고 해야 할까. 기존에 생겨난 게이트와는 이질적인 느낌.
설마 이것도 그 녀석의 영향이려나.
“완전히 가버린 모양이구나. 흠… 어떻게 해야 할 거 같으냐. 혜지야.”
“저도 잘 모르겠어요. 게이트 안에서 인간을 만난 건 처음이라서…”
게이트 안쪽에 있는 건 명백하게 인류의 적이었으니 그냥 쓰러트리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놈들이 적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힘들었다.
“조금 더 수색하고 결정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일단은 이 수상한 장소를 더 수색해 보는 걸로 결론을 내렸다.
만난 사람들은 제압만 시키고 사살은 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기로 했다.
우리가 넘어온 균열이 위치한 장소는 창고와 가까운 복도 쪽이었다.
외부에서 들어올 수 있는 통로가 존재하지 않아서, 딱히 의심 없이 사라진 모양이었다.
우리는 잠입을 하기 위해 소리가 날 만한 물건들은 임시로 창고에 보관해 두기로 했다.
박혜지는 창고 구석에 쌓여있는 우리의 물품 위에 인첸트가 된 천을 올렸다.
마력을 불어넣는 순간, 천이 외부에 있는 바닥과 벽지에 반응하더니 서서히 색이 변하기 시작했다.
가까이서 확인하면 이질감을 느낄 수 있긴 했지만, 이 방 안이 어두운 상태라 그런지 꽤 그럴싸하게 보였다.
이상한 석상들과 장신구들을 보관하는 창고라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 것도 있어?”
“짐을 숨겨두기에는 나쁘지 않은 장비죠. 마석을 연결해 두면 지속시간도 길어서 별로 문제가 되진 않을 거에요.”
저런 장비들을 사용하기 시작하면 수십억이 깨지는 건 한순간이지.
괜히 헌터들이 돈이 많이 드는 게 아니었다. 단순히 무기와 방어구만 사용하면 모르겠는데.
저런 마법도구 까지 사용하기 시작하면 버는 만큼 돈을 많이 써야 한다.
“은신할만한 장비는 없어?”
짐을 챙긴 게 내가 아니라 뭐가 들어있는지 나는 잘 모르는 상황이었다.
김정호하고 박혜지가 챙긴 걸 옮기기만 했으니까.
뭐, 남의 집에 와서 물건을 막 뒤져볼 수도 없기도 하고,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위장용 후드를 가져오긴 했지만… 여기서는 쓸모가 없을 것 같네요.”
박혜지는 초록색 개구리 무늬가 새겨진 후드를 들어 올리며 중얼거렸다.
일반적으로 풀과 나무가 무성하게 자란 밀림이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이런 동굴이 나올 줄 몰랐던 모양이다.
“허허. 아니면 둘은 여기서 기다리는 게 어떠냐? 나 혼자서…”
“할아버지!”
“그렇게 크게 말 안 해도 잘 들린다.”
창고 안이라고는 해도 저렇게 크게 말하면 들킬 위험성이 있었지만, 이미 최태수가 기막을 펼쳐둔 상황이었다.
그냥 주먹으로 뭐든 다 부술 것 같이 생긴 영감인데, 마력 컨트롤 능력은 엄청 섬세한 편이었다.
‘하긴 그러니까 괴물이라 부르는 거겠지.’
“당신. 들키지 않도록 조심하도록 하세요.”
“네가 제일 조심해야 될 거 같은데.”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거에요!”
“그럼 한번 살펴보자꾸나. 여기가 뭐하는 곳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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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한 가면을 쓴 남자들이 순찰을 하며 앞으로 지나갔다.
자신들 바로 근처에 저런 거구의 영감과 두명이 숨어 있을 거라는 건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지 하품을 늘어지게 하며 지나갔다.
“하암… 피곤해 죽겠는데 순찰은 왜 시키는 건지…”
“우리 같은 말단은 위에서 까라면 까야지 뭐… 그래서 다음 교대 시간은 언제냐?”
우리는 벽 위에 두 팔과 다리로 지지한 상태에서 놈들이 지나가길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좁은 통로에서 몸을 숨길 곳은 천장밖에는 없었다. 그나마 천장의 높이가 일반적인 건물의 1.5배 정도는 더 높다고 해야할까.
실내에서 굳이 고개를 들고 다닐 일은 없으니 나름 숨을만한 장소였다.
자세를 유지하는 게 힘든 것만 빼면 말이다. 어디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고개를 돌려 보니 자세가 불안정해 보이는 박혜지가 보였다.
‘떨어질 거 같은데.’
박혜지가 자세를 고치는 순간 작은 돌 부스러기가 놈들 뒤로 떨어졌다.
돌맹이가 떨어지는 순간 우리 3명은 숨소리조차 내지 않기 위해 잠시 호흡을 멈추었다.
내가 눈으로 눈치를 주자 이쪽을 보며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는 박혜지.
‘이거 설마 걸리는 건가.’
놈들도 그 소리를 들었는지 고개를 돌려 뒤쪽을 확인했다.
“음? 방금 뭐가 떨어지지 않았냐?”
“아무것도 안 보이는 데? 돌 부스러기밖에 없잖아.”
“잘못 들었나 보다. 가자.”
‘휴…’
그냥 지나가는 놈들을 보며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더이상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지나간 걸 확인하고 우리는 천장에서 내려왔다.
“뭐하는 거야 너 때문에 들킬 뻔 했잖아.”
“뭐..뭐라는 거에요. 시..실수 한번 할 수도 있지.”
“허허. 이거 이러고 있으니 옛날 생각이 나는구나.”
“옛날이요?”
“그래. 내가 지금보다 더 젊었던 시절에 빌런 녀석들을 상대할 때…”
“저희 게이트 안입니다.”
본인의 과거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느낌이 들어서 가볍게 말을 끊었다. 여기가 무슨 밖도 아니고 게이트 안에서 이야기 할 시간이 어딨어.
‘아니 왜 그런 섭섭하다는 표정인데요. 박혜지는 아쉽다는 얼굴이고…’
그렇게 지나가려던 순간, 복도에서 갑자기 문이 열렸다. 우리가 반응하기도 전에 곧장 튀어나오는 두 녀석.
“응?”
“저기에 문이 있었네.”
“너희는 누…!”
녀석이 소리를 지르려는 순간, 빛보다 빠르게 달려간 최태수가 놈들의 뒷목을 쳐 기절시켰다.
경험이 많은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한 일격. 놈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졌다.
“흠…”
그냥 벽처럼 보이는 장소였는데, 무슨 마법이라도 적용된 건가.
우리는 쓰러진 두 녀석을 보고 서로 입을 다물었다.
기절한 녀석들을 끌고 방안으로 들어가자 평범한 공간이 나타났다.
“여기는 이 두 녀석만 쓰는 모양인데.”
저 후드랑 가면만 쓰면 놈들도 못 알아 보지 않으려나.
나는 기절한 녀석들에게서 후드와 가면을 벗기기 시작했다.
“지금 뭐하시는 거죠?”
“변장해보자. 어차피 구분 못 할 거 같은데.”
“변장이라. 그것도 좋은 생각이구나.”
조금 냄새가 나긴 하지만, 이렇게 변장하니 놈들하고 똑같이 보였다. 이 정도면 문제없겠네.
“저… 여기서는 어떻게 나가죠?”
“…”
문을 여는 법을 몰라서 좀 헤맨 거만 빼면 큰 문제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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